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더 힘들어
어떤 때는 자꾸만
패랭이꽃을 쳐다본다
한때는 많은 결심을 했었다
타인에 대해
또 나 자신에 대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그런 결심들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패랭이꽃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남길 바라지만
한편으론 잊혀지지 않는게 두려워
자꾸만 쳐다보게 되는
패랭이꽃
- 류시화, ‘패랭이꽃’ -
‘눈에 밟힌다'는 말이 있다. 발에 밟히듯 살에 닿아 사무친 것, 그래서 살에 박히듯 잊히지 않는다.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 지키지 않은 약속, 가지 않은 길. 시간이 약이라지만, 새 시간의 물살에도 지워지지 않고 어룽대는 저 강바닥의 밑그림에는 약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