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 전집 4 러브크래프트 전집 4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류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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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언덕과 정원, 햇살 속에서 노래하는 분수, 잔잔히 속삭이는 바다 위로 솟아 있는 황금빛 절벽, 청동과 돌로 이루어진 잠든 도시로 뻗어 있는 평원, 그리고 예장을 걸친 백마에 올라 깊은 숲의 가장자리를 따라가고 있는 어둑한 유령 같은 영웅들의 행렬에 대한 기묘한 환상에 대한 꿈을 꾸고서 한밤중에 잠을 깬 몇몇 사람들이 우리들 중에도 존재한다. (「셀레파이스」에서, 182쪽)

 

 

꿈속의 정신상태는 평상시의 정신활동과 다른 뚜렷한 특징을 가진다. 꿈을 꾸는 동안 우리는 엉뚱한 시공간으로 순간적으로 쉽게 이동하거나, 여러 시공간이 겹쳐지고 혼동되는 현상을 겪는다. 연속된 사건들의 원인과 결과를 따지지는 못하지만, 꿈에서 느꼈던 정서는 평상시보다 더 생생하다.

 

18세기 이탈리아의 작곡가 타르티니는 꿈에서 악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다.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꿈에서 들은 소리를 재현해 보려 했다. 그 음악은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로 탄생했다. 시인 생 폴 루는 매일 밤 침실 문 앞에 ‘시인은 시작(詩作) 중’이라는 글귀를 걸어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꿈에서 많은 영감의 원천을 찾았다. 살바도르 달리는 자서전에서 일곱 살부터 여덟 살까지 현실과 상상적인 것을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꿈과 신화의 지배 속에서 살았다고 밝혔다. 특이한 유년시절의 기억은 그를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표현하는 초현실주의 미술의 중심으로 우뚝 솟게 만든 자양분이 되었다.

 

달리에 의해 꽃 피운 초현실주의는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 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한다. 따라서 초현실주의는 자아도취적이고, 시적이고 꿈과 같은 세계의 향연으로 이해됐고 기교가 부족한 난해한 미술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초현실주의가 추구하는 환상의 세계는 그동안 익숙했던 사회질서와 정체성을 파괴해 낯설고 두려운 미지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고전 공포소설의 대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트프도 마찬가지다. 그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초자연적 현상을 유령 같은 외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꿈속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 역시 달리처럼 꿈과 신화의 지배 속에 살았던 괴이한 은둔자였다. 소설을 통해 기이한 환상들이 결합한 어두컴컴하고 습한 꿈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곳에 러브크래프트가 꿈속에서 만났을 법한 신비스럽고도 괴상한 존재들이 산다. 크툴루, 니알라토텝, 데이곤은 수많은 후배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들에 의해서 새롭게 재창조되었다. 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거대한 외계인처럼 생긴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지만, 지금까지도 오컬트 마니아들은 러브크래프트의 창조물들에 열광하고 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악마의 책’ 네크로노미콘이 가공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오컬트 마니아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책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러브크래프트와 관련된 오컬트 신드롬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이다.

 

러브크패트프의 소설은 1900년대 초에서 1930년대까지 이르는 시기동안 탄생하였다. 세상에 나온 지 백여 년은 훌쩍 지났다.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고전 공포소설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지만, 상당히 오래된 배경과 이야기 속 분위기는 독자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러브크래프트 작품집을 두세 권 정도 읽게 되면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이야기 전개와 플롯이 유사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상상의 도시, 어두컴컴한 지하 밀실 공간, 축축한 습기와 곰팡내가 가득한 흉물스런 저택 그리고 그곳에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는 악마나 괴물 같은 존재가 등장한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금기의 장소를 작품 속 주인공들은 저주를 무시하고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공포에 떠는 불가사의한 경험을 한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또 어떤 작품에 나온 배경과 주인공 및 주변 인물들이 또 다른 소설에 카메오처럼 재등장하기도 한다. 여러 작품을 계속 읽어나갈수록 작가가 곳곳에 숨겨진 ‘러브크래프트 코드’를 찾을 수 있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하지만 작가는 본인이 만든 창조물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환상적인 분위기의 배경만 약간 언급할 뿐, 정체를 언급하지 않는다. 독자의 의문만 늘어놓게 한 모호한 결말은 훗날 후배 작가들에게 문학적 영감이 되었지만, 러브크래프트 세계에 이제 막 들어선 초보 독자 입장에서는 아쉽고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 밖에도 러브크래트트의 일부 작품에 포와 로드 던세이니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은 낡은 것은 사실이다. 당시에 처음 그의 소설이 나왔을 때만 해도 독자에게 강렬하면서 생생한 공포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러브크래프트 세계에서 마음껏 뛰어놀던 작가의 후예들(스티븐 킹, 클라이브 바커, 브라이언 럼리 등)이 등장하면서 원조는 공포소설의 클리셰가 되고 말았다.

 

황금가지 출판사에 나온 러브크래프트 전집은 총 4권이다. 일반적으로 1권부터 순서대로 읽어나가는 것은 당연한데, 이러한 독서가 러브크래프트 작픔의 매력을 반감시키기도 한다. 왜냐하면, 러브크래프트 문학의 전성기에 나온 걸작들이 1,2,3권에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1권은 데이곤, 크툴루 신화, 니알라토텝, 네크로노미콘 같은 대표적인 러브크래프트 코드가 나오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메인 요리라고 해도 전혀 반박할 수 없는, 훌륭한 에피타이저라고 보면 된다. 2, 3권은 SF가 결합한 코스믹 호러와 환상소설이 등장한 중후반기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 4권은 어떤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4권의 부제는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소설 제목인 ‘아웃사이더’라고 붙였지만, 여기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역자는 서문에 4권을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운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 전집 중 4권은 앞 권에 비해 대체로 작품들이 평이하게 느껴진다는 반응이 많다. 

 

사실 4권에 수록된 작품 일부는 러브크래프트의 초기 작품들이다. 「동굴 속의 짐승」, 「연금술사」「무덤」「데이곤」「니알라토텝」(이상 1권에 수록) 이전에 나온 초기작이다. 러브크래프트 코드가 처음으로 언급되고 소개되는 작품도 있다.

 

비록 잠깐이지만,「인스머스의 그림자」(1권에 수록)의 배경인 인스머스가 최초로 언급되는 작품이「셀레파이스」다. 「이름 없는 도시」는 네크로노미콘의 저자로 알려진 아랍의 광인 알하즈레드가 처음으로 언급된 작품이며 그 이듬해 발표된「사냥개」에서 네크로노미콘이 처음으로 소개된다. 「또 다른 신들」에 지상의 신들이 살고 있다는 카다스(Kadath)가 처음으로 언급된다. 카다스는「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억」(1권에 수록)과 연관된 미지의 공간이다.

 

전집의 목차가 발표 연도순이 아닌 장르별로 정한 것이라서 러브크래프트 세계의 단초가 되는 작품들은 4권에 수록되었다. 음지에 있던 러브크래프트 세계의 등장을 알리는 서막 같은 작품이 전집의 제일 마지막 권에 있는 기이한 편집이 연출되고 말았다. 4권이 나오기를 3년을 오매불망 기다렸던 독자들이라면 이 사실이 허무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러브크래프트 문학의 단물만 잔뜩 읽고 있었다. 4권을 소홀히 읽었던 독자라면 저주받은(?) 4권을 다시 한 번 펼쳐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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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4-11-3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글 쓰시는 분들 정말 부럽고 대단하세요!

cyrus 2014-12-01 12:42   좋아요 0 | URL
예전에 비하면 이것도 줄여서 쓴거랍니다. 그래도 북플로 보기에는 이 글도 길어보이네요. ^^;;

2014-12-01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1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2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2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