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변증법 - 페미니스트 혁명을 위하여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지음, 김민예숙.유숙열 옮김 / 꾸리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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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를 지나면서 미국은 정치 · 사회적으로 커다란 변혁을 겪었다. 1960년대는 여성해방운동이 막 힘을 얻기 시작하며 결혼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전통적 가치들이 흔들리고 있던 시기였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 역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안에서 ‘여성 인권’에 눈뜨게 되었다. 서구 사회의 지배층인 백인 남성들은 흑인, 여성들을 열등한 존재로 격하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통제와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구실을 했다. 1969년 미국의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주도로 시작된 ‘레드스타킹 선언(Red Stocking Declaration)’‘억압 계급으로서의 여성’을 사회적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레드스타킹 선언을 지지한 파이어스톤은 이듬해에 《성의 변증법》(꾸리에, 2016)을 발표했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단순하게 여성 평등만을 주장하는 기존의 페미니즘 시각에서 탈피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마르크스(Marx)엥겔스(Engels)는 역사적으로 여성이 인간의 사회적 관계와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적 관점을 이어받은 파이어스톤은 남성이 하나의 계급으로서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고 봤다. 그녀의 논리에 따르면 여성에게 강요된 결혼, 출산, 가사노동은 억압적인 가부장제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녀는 여성들이 진정으로 해방되기 원한다면 낙태를 남성에게 의존하지 말고 여성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급진적인 미래를 제시한다. 파이어스톤은 인공 태반, 시험관 아기 시술과 같은 ‘인공생식’이 활성화된다면 ‘자연적 생식(生殖)’, 즉 임신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나왈 엘 사다위(Nawal El Saadawi) 등의 페미니스트들은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과 성 이론으로는 여성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를 바라보는 파이어스톤의 입장은 그녀들과 다르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섹슈얼리티의 본질을 파악한 프로이트 이론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파이어스톤은 프로이트 이론과 페미니즘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했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al Complex)가 나타나는 가부장제 핵가족의 문제점을 살폈다. 아들이 어머니에 대해선 근친상간의 욕망을 지니고 아버지에 대해선 경쟁의식을 가지게 되면 아버지와 같은 가부장적 권력을 차지하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친족 구조가 형성되어 있어서 아들의 근친상간 욕망이 억압되고,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력은 유지된다. 그 권력 속에서 성장한 아들은 가부장제에 익숙한 ‘아버지’가 된다. 파이어스톤은 프로이트 이론을 끌어들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가부장제가 여성과 아이의 피억압을 심화시켰다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가부장제 핵가족을 해체하는 대안으로 모든 여성과 아이들에게 ‘성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이어스톤은 ‘(남성)문화’가 만들어낸 ‘사랑’ 개념도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은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사랑하는 남성과의 결혼을 추구한다. 왜냐하면 결혼하지 못한 여성은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없다. 결국,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가 된다. 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져서 가족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는 유지된다.

 

 

맞벌이가 보편화한 지금, 이 시대 여성들은 결혼 후에도 계속 일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계속될수록 여성의 취업뿐만 아니라 재취업도 어려워진다. 이렇다 보니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여성들은 취업 대신에 결혼을 선택한다. 이런 현상을 ‘취집(취업+시집)’이라고 부르는데, ‘취집’을 선택한 여성은 전업주부로 살아간다. 요즘 우리 사회에 ‘1인 가구’ 비중이 늘어나고 결혼을 기피하는 경향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과연 파이어스톤이 예언한 대로 ‘사랑’이라는 현상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를 볼 수 있을까? 그런 사회가 온다면 핵가족이 줄어들고, ‘자녀 없는 부부 가족’이 늘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자녀 없는 부부 가족’은 부부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작동되지 않는 최적의 친족 구조일까? 파이어스톤은 여성은 일부일처제를 지향하고, 섹스보다는 관계에 더 관심이 많고, 애정과 성욕을 혼동하는 동물로 본다. 반면 그녀가 보는 남성은 섹스 이외에는 아무것도 관심 없는 동물이다. 따라서 그녀는 사랑을 낭만화시키는 ‘(남성)문화’를 반대하고, “남성들은 사랑할 수 없다”(197쪽)고 주장한다. 결혼하지 않거나 자녀가 없어도 여성이 사랑하는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한다면 ‘건전한 사랑’을 느끼기 어렵다. 파이어스톤이 지금 살아있다면 현모양처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 결혼이 네 인생 책임 지냐?”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이 문장 하나라도 삭제되지 않도록 그대로 출판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40여 년 전 스물다섯 살의 젋은 파이이스톤의 여성론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을 넘어 인간의 해방과 자유를 꿈꿨던 그녀의 작업은 현재 우리 시대의 요구와도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하지만 《성의 변증법》도 시대적 한계에 갇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파이어스톤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지지하면서 자녀는 ‘권력을 가진 부모’가 되기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부모의 양육이 자녀의 성장에 큰 영향을 준다는 입장을 옹호하는 셈인데 ‘부모의 양육’을 근거 없는 ‘가설’이라고 비판하는 주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의 입장을 내세워 파이어스톤을 비판할 수 있다.

 

 

 

우리가 아이를 잘 성장하는 데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오늘날 아이들은 제대로 대접 받을 권리가 있는 독립된 개체로 받아들여지며, 둘째는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유년기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그마” 때문이다. 이 도그마를 믿는 사람들은 또한 유년기에 부모와 함께한 특정한 경험이 특히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이 믿음 역시 ‘양육가설’에 속한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 가설》 138쪽)

 

 

 

파이어스톤은 이스라엘의 집단농장인 키부츠(kibbutz)와 비슷한 공동체 사회를 만든다면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로 구분되는 불균등한 관계가 해소될 거로 믿었다. 그녀가 상상한 미래의 공동체 사회는 ‘완전 평등 사회’이다. 그러나 아이는 남성과 여성을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한다. 아이는 또래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자기 자신이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깨닫게 된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자아를 형성하지 않는다. 아이는 자기와 유사한 다른 아이들을 통해 자아를 형성한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 가설》 323쪽)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아이가 친구들을 만나면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게 되는 ‘성별 범주’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수렵채집 생활을 하고, 아이들의 수가 적은 유목민 무리가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완전히 평등한 사회에 가깝다고 말한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집단에는 아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에페족 아이들은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한데 어울려 놀았다. 에페족 아이에게 유의미한 사회범주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아니라 어른과 아이인 것이다. 자녀가 성별에 따른 구별 없이 완전하게 평등한 성 개념을 갖기를 바란다면 아이를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유목민 무리에 보낼 것을 권한다. 그게 아니면 아이들 수가 너무 적어서 놀이집단이 둘로 나뉠 수 없는 지구상의 어딘가로 보내는 것도 괜찮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 가설》 345, 346쪽)

 

 

 

인간의 역사에서 차별 철폐를 내세워 지상천국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들이 원하던 지상천국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utopia)’였다. 그러나 파이어스톤은 현실보다 ‘성 구분 자체를 철폐하는 페미니스트 혁명’이라는 꿈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성의 변증법》 출간 이후로 파이어스톤은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다.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도 페미니스트 혁명 투쟁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녀는 정신질환에 시달리다가 2012년에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나키스트 마 골드만(Emma Goldman)‘더 이상 꿈꿀 것이 없음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아마도 그녀가 죽음을 맞는 순간, 더 이상 꿈꿀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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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8-02-08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현실 세계에서의 최적 optimum이 이상 ideals이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18-02-08 19:47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최적의 조건 또는 환경이 서로 상반되는 양자를 만족시키는 경우가 잘 없죠.

마립간 2018-02-09 07:47   좋아요 1 | URL
제 글을 읽으셔서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교육 방법에 방법에 있어, 자율성과 평등적 결과의 적점, 최적을 찾아 그것을 교육 제도로 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당수의 제도들이 상보성을 이해하지 못해 양쪽의 나쁜 결과를 왔다 갔다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편애가 넘치는 정의감에 의존한) 페미니스트들의 많은 주장들이 최적을 찾기 보다는 상보적인 양쪽을 주장함으로써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삭매냐 2018-02-08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러스님은 곧 페미니스트 전문가가
되실 것 같습니다. 아니 ‘이미‘인가요.

cyrus 2018-02-08 20:47   좋아요 0 | URL
전문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ㅎㅎㅎ 저는 ‘우물(알라딘) 안에 있는 개구리(딜레탕트)‘입니다. ^^

stella.K 2018-02-08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제목대로 사랑이 밥 먹여 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니?
짜릿하고 후끈 거리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잖아.
하긴 난 배우자한테 밥은 먹여줄 수 있어.
하지만 그가 싸놓은 X 치우라고 그러면 도망갈 것 같아.
사랑이 밥 먹여주냐고 하면서 말이지.ㅋㅋ

cyrus 2018-02-08 20:23   좋아요 2 | URL
파이어스톤은 이 책에서 ‘남자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지만, 성(sex)와 에로티시즘을 부정하지 않아요. 그녀는 에로티시즘을 완전히 부정하게 되면 성적 기쁨과 흥분마저 사라진다고 썼거든요.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라면 본인이 싼 똥은 자기가 할 수 있는만큼 치워야죠. 혼자 똥 치우기 힘들어서 ‘사랑의 힘‘이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여자에게 똥 치워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진짜 사랑이라 볼 수 없어요. 그건 사랑이 아니라 강요에요. ^^

stella.K 2018-02-09 13:3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렇지. 옳은 말이야.
그런데 내 말은 이 사람이 수족을 못 쓰게 되는
최악의 경우를 말했던 거지.
내가 조금 오버는 했지?
파이어스톤이 정말 맞는 말을 한 것 같다.

2018-02-08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2-09 11:09   좋아요 1 | URL
‘사랑’이라는 단어가 남아 있어도 남녀 모두 행복하고 만족시킬 수 있는 ‘진짜 사랑’을 경험하기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AgalmA 2018-02-11 14: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68혁명 이후의 유럽 페미니즘, 미국의 여성해방운동이 급격히 식었던 걸 생각할 때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도 비슷한 양상이 될까 좀 우려하는 중입니다. 사회-경제 불안정이 장기화되면 이러한 급진적인 운동은 대중의 장기적 응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속된 말로 먹고 살기 힘든데 자신과 밀접한 문제가 아니면 관심주지 않으니까. 오히려 먹고 살기 힘드니까 이런 페미니즘 움직임에 화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상과 운동의 신선도가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 게 관건입니다. 현재의 급진적 페미니즘으로는 화력이 약하죠. 다양성, 포괄성이 있어야 해요.
뻑하면 메갈리안 들먹이거나 결혼 기피하며 백마탄 왕자 잡는 된장녀 운운하는 인간들과 대결하려면^^;

cyrus 2018-02-12 13:43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 운동은 시대의 요구와 반응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정체될 수밖에 없어요. 여성 선거권이 도입된 이후로 영미권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정체되는 바람에 여성운동이 시들해졌어요. 우리나라 여성운동도 언젠가는 정체기(과도기)를 겪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