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시리즈의 첫 작품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에 두 명의 런던 경시청 소속 경감이 등장한다. 토비아스 그렉슨(Tobias Gregson)레스트레이드(Lestrade). 이들은 홈즈의 수사 능력과 추리 실력을 돋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경찰 캐릭터이다. 그렉슨이 등장하는 사건은 《주홍색 연구》 가 유일하다. 레스트레이드는 단편에서도 계속 등장한다. 결백한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하거나 범인의 속임수를 간파하지 못해 사건 해결에 쩔쩔맨다. 홈즈는 허점 많은 레스트레이드의 수사 방식을 대놓고 깐다.

 

그렉슨과 레스트레이드는 서로 라이벌로 의식하는 사이다. 웃긴 점은 홈즈는 두 사람을 ‘틀에 박힌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2% 부족한 인재라고 평가한다. 홈즈의 눈에는 그렉슨과 레스트레이드의 관계는 ‘도토리 키 재기’일 뿐이다. 그래서 홈즈는 왓슨(Watson)에게 능력이 고만고만한 경감들끼리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보는 일이 재미있을 거라고 말한다.

 

 

 

* 원문 :

 

“he and Lestrade are the pick of a bad lot. They are both quick and energetic, but conventional—shockingly so. They have their knives into one another, too. They are as jealous as a pair of professional beauties. There will be some fun over this case if they are both put upon the scent.”

 

 

* 황금가지 (2판, 44쪽) :

“그렉슨하고 레스트레이드는 형편없는 집단에서 그나마 나은 인재들입니다. 둘 다 민첩하고 의욕이 넘치지만 틀에 박힌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건 정말 놀랄 정도입니다. 게다가 두 사람 다 서로를 미워하지요. 직업여성들처럼 질투심이 많거든요. 만약 둘 다 이 사건에 뛰어들었다면 일이 꽤 재미있어질 겁니다.”

 

* 현대문학 (주석판, 59쪽) :

“그레그슨과 레스트레이드는 형편없는 패거리 가운데서 그나마 발군이야. 둘 다 민첩하고 열정적인데, 생각은 틀에 박혔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말이야. 게다가 그들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직업여성처럼 질투가 심하거든. 둘 다 현장에 투입되었다면 일이 꽤 재밌어질 거야.”

 

* 엘릭시르 (50~51쪽) :

“아름다움을 다투는 사교계의 숙녀들처럼 서로를 질투하죠.

 

* 동서문화사 (37쪽) :

“게다가 둘이 서로 질투하는 걸 보면 꼭 장사꾼 여자 같단 말이야.”

 

* 코너스톤 (개정판) :

“게다가 그 둘은 여성들처럼 질투가 심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지.”

 

* 펭귄클래식코리아 (45쪽) :

“마치 창녀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 질투를 하죠. 두 사람 모두 이 사건에 관심을 두게 된다면 제법 재미가 있을 겁니다.”

 

* 문예춘추사 :

매춘부처럼 서로를 질투하고 있거든. 만약 두 사람이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될 걸세.”

 

 

 

‘beauties’는 ‘beauty’의 복수형이다. 이 문장에 사용된 ‘beauties’는 명사로 ‘여자’로 해석한다. 단어 앞에 있는 ‘professional’을 결합하면 ‘(전문)직업을 가진 여자’가 된다. 홈즈가 언급한 ‘professional beauties’는 구체적으로 어떤 여자를 말하는 것일까? 수많은 주석가들은 ‘직업여성’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았는가 보다. 특히 정전에 나오는 사소한 단어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주석을 단 레슬리 S. 클링거(Leslie S. Klinger)도 ‘professional beauties’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직역을 선택한 번역가들은 ‘professional beauties’를 원문 그대로의 의미를 살려 ‘직업여성’으로 옮겼다. 반면 의역을 선택한 번역가들은 그냥 ‘여성(여자)’로 번역했다. 엘릭시르 판은 ‘사교계의 숙녀들’로, 펭귄클래식코리아 판과 문예춘추사 판에는 각각 ‘창녀’와 ‘매춘부’로 되어 있다. ‘professional beauties’를 ‘창녀’와 ‘매춘부’로 번역하게 된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 

 

홈즈 시리즈는 잡지 <스트랜드 매거진(The Strand Magazine>)에 처음 발표되고, 잡지에 연재된 작품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그리고 미국에 발행되었는데 이 세 가지 텍스트마다 조금씩 단어의 차이가 있다. 클링거는 잡지에 연재된 텍스트와 단행본 텍스트를 포함한 영국 판본과 미국 판본을 비교하면서 미국 판본에 누락되거나 새로 추가된 단어와 문장을 주석으로 소개했다. 미국 판본이 나왔을 때 ‘professional beauties’를 ‘prostitutes(매춘부들)’로 인쇄될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클링거가 그 점을 언급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미국판에서 단어가 수정된 일은 없는 것 같다. 

 

 

 



 

 

 

 

 

 

 

 

 

* 이케가미 료타 《도해 메이드》 (AK커뮤니케이션즈, 2010)

 

 

‘professional beauties’를 이해하려면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의 사회를 파악해야 한다.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은 1837년부터 시작해서 1901년까지다. 정확히 총 63년 7개월 2일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엘리자베스 2세의 고조모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고조모의 통치 기록을 깼고, 아흔을 넘은 그녀는 여전히 정정하다) 이 길고 긴 시기를 빅토리아 시대라고 말한다. 빅토리아 시대는 영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화려한 시절이면서도 가장 보수적인 시절이었다. 도덕관이 엄격했고, 전통적 가부장제 사회의 질서를 유지 · 보존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진출의 기회는 여전히 제한되었다. 특히 중류 계층의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좁았다. 1880년대에 이르러 여성의 교육열이 높아지고, 남성의 경제력에 얽매인 여성들의 숨통이 서서히 트이기 시작했다.

 

 

 

 

 

 

 

 

 

 

 

 

 

*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 (현대문학, 2013)

*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현대문학, 2013)

 

 

 

중류 계층 여성이 가장 많이 선호한 직업은 가정교사(governess)였다. 학교를 다닌 여성이라면 충분히 노려볼만한 직업이었다. 《네 개의 서명》(The Sign of Four)의 사건 의뢰인이자 왓슨의 아내가 된 메리 모스턴(Mary Morstan)는 포레스터 부인(Mrs. Forrester) 댁의 가정교사였다. 홈즈 시리즈의 첫 번째 단편집 《셜록 홈즈의 모험》 마지막에 수록된 『너도밤나무 집』(The Adventure of the Copper Beeches)의 사건 의뢰인 바이올렛 헌터(Violet Hunter)의 직업도 가정교사다. 실제로 작가 코난 도일(Conan Doyle)의 누이도 가정교사로 일했다고 한다.

 

그런데 가정교사의 급여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바이올렛 헌터는 가난한 가정교사로 등장하는데, 어려운 자신의 경제 사정을 견딜 수 없어 고심 끝에 고용인 루캐슬(Rucastle)의 이상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바이올렛 헌터처럼 고용인을 찾지 못하면 쫄쫄 굶어야 하는 생계형 가정교사가 상당히 많았다. 중류 계층의 여성은 유복한 가정의 자녀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상류 계층으로 상승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가정교사가 처한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가정교사가 되려는 여성들이 점점 급증했고, 취업 문턱은 좁아졌다. 경제적 독립을 꿈꾸기 시작한 상류 계층의 여성들도 가정교사를 선호했다. 이렇다 보니 한때 존경의 대상이었던 가정교사는 하녀와 동급으로 대우받는 직업이 되었고, 졸지에 ‘불쌍한 선생’으로 전락했다. 심지어 하녀들은 가정교사를 대놓고 무시했다. 가정교사 입장에서는 하류 계층 출신 여성 노동자인 하녀에게 무시당하는 상황이 굴욕으로 느껴졌다. 내가 생각하기에 홈즈가 말한 ‘질투심 많은 직업여성’은 서로 미워하는 가정교사와 하녀를 의미할 수 있다.

 

 

 

 

 

 

 

 

 

 

 

 

 

 

* 번 벌로, 보니 벌로 《매춘의 역사》 (까치, 1992)

 

 

흔히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말한다. ‘신사’라 하면 예의범절을 지키는 올바른 성품의 남성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빅토리아 시대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엄격한 도덕적 규범 및 금욕을 요구했지만, 실제로 성적 문란이 팽배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신사들은 은밀한 곳에서 매춘을 즐겼다. 그들은 여성은 조신하게 행동해야 한다면서 가부장제의 못을 참 열심히 박았다. 빅토리아 시대에 매춘사업을 규제하는 법이 시행되었지만, 허영의 시대에 당연히 매춘이 근절될 리가 없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이 매춘에 종사하는 원인 중 하나가 ‘열악한 경제 사정’이었다. 시원치 않은 봉급을 받고 공장에 일하는 여성 노동자 또는 취업이 불리한 하류 계층 여성 등이 매춘부가 되었다. 결혼 상대 혹은 결혼 자금이 없는 여성은 ‘동거 매춘부(cohabitant prostitutes)’가 되어 상류 계층의 남자를 만났다. 남자들은 동거 매춘부를 아내가 아닌 ‘섹스 파트너’로 대했다. 두 사람 사이에 낳은 사생아는 ‘매춘부의 자식’으로 취급했다.

 

 

 

 

 

 

 

 

 

 

 

 

 

* 이주은《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 (이봄, 2016) 

 

 

과연 홈즈는 한 번이라도 매음굴에 가봤을까? 홈즈의 좋은 점만 보고 싶은 셜록키언(Sherlockian)이라면 생각하기도 싫은 궁금증이다. 그래도 홈즈 정전을 연구하는 주석가들에게는 그냥 넘어갈 리 없는 흥미로운 주제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매춘은 ‘욕정이 일으키는 도시의 죄악’으로 여겼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매춘부를 ‘타락한 여성’으로 취급했고, 그들을 경멸했다. 신사들은 풍기문란과 성병의 주범을 매춘부에게 뒤집어 씌웠다. 그들은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고,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는 다섯 명의 매춘부를 동물 죽이듯이 잔인하게 살해했다. 런더너(Londoners)들은 매춘부의 죽음을 슬퍼하기 보다는 정체 모를 살인자들의 공포에 벌벌 떨었다. 홈즈의 ‘professional beauties’에 매춘부는 확실히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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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5-25 1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으로는 충분히 창녀나 매춘부로 옮길 여지가 있어 보이는데요? cyrus님의 분석에서는 방점이 프로페셔널에만 찍혀 있지만, ˝뷰티˝에 비하나 비꼬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어떨까요.

이를테면, 그들이 생각하는 ˝진짜˝ 아름다움과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의 창녀나 매춘부들에게 비꼬는 표현으로 뷰티라고 부르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을것 같아요. 제 정말 친한 친구 한 놈은 별명이 장동건이에요. 너무 못생겨서요. 이런 식의 역호칭은 꽤나 횡행하잖아요?

그 ˝프로페셔널˝과 ˝뷰티˝가 서로 보완적(?)으로 작용해서 창녀나 매춘부로 해석할 만한 여지가 생겨나는게 아닐까요?

cyrus 2017-05-25 12:41   좋아요 0 | URL
제가 ‘professional beauties‘를 비꼬는 의미를 쓸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syo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충분히 ‘매춘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종종 예술가들은 매춘부를 ‘자신이 아름답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은 여성‘의 상징으로 그리곤 했습니다. 이게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견이지만, 평소에 여성을 싫어하는 홈즈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직업 여성‘을 매춘부를 비꼬는 표현으로 쓸 수 있겠어요. 정말 예리한 분석입니다. ^^

cyrus 2017-05-2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수정 및 추가할 내용

제가 ‘professional beauties‘를 가정부와 하녀로 해석하는 가설을 주장했습니다.

알라디너 모 님(비밀댓글을 남기셔서 닉네임을 밝히지 않겠습니다)이 알려주신 정보에 따르면 ‘professional beauties‘은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던 여성 사진 모델을 의미하는 단어였습니다.

‘professional beauties‘을 ‘직업여성‘, ‘사교계의 숙녀‘, ‘매춘부‘로 번역한 것은 ‘오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원 글에서 professional beauties의 의미를 주장한 내용은 틀린 해석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5-25 14:58   좋아요 1 | URL
제가 알기로는 그때에는 그림 모델이 직업여성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진의 역사를 봐도 빅토리아 시대 때 누드 사진이 꽤 팔렸습니다. 누드 사진은 그당시 대중의 사치품이었죠. 또한 초창기 영화를 보면 포르노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을 직업여성이라거나 매춘부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억지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cyrus 2017-05-25 15:50   좋아요 0 | URL
매춘부가 누드 모델을 한 적이 있으니까 곰발님의 의견도 일리가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에 대해 좀더 공부해야겠어요. ^^

레삭매냐 2017-05-25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다양한 버전의 책들이 있군요. 아마 저작권 시효가 만료가 되서 그런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 봅니다. 신사의 나라가 진정한 황금기였다는 빅토리아 시대에도 역시나 사회의 어두운 면은 존재하고 있었군요. 금욕적인 시대 조류가 역설적으로 어둠의 원인 중의 하나였다니...

cyrus 2017-05-25 20:28   좋아요 0 | URL
홈즈 시리즈도 저작권 시효가 만료돼서 다양한 번역본들이 많이 나와요. 전자책까지 포함하면 번역본 수가 꽤 많을 겁니다.

찰스 디킨스, 브론테 자매, 조지 엘리엇, 새커리 같은 영국의 작가들의 소설이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가 잘 반영되었어요. 그런 점에서 빅토리아 시대를 이해하는 일이 흥미로워요. 그때 상황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모습과 닮은 구석이 있어요.

yureka01 2017-05-25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이러다 셜록 논문한편 나올 기세 ㅎㅎㅎㅎ^^..좋습니다!~

cyrus 2017-05-25 21:45   좋아요 1 | URL
위의 댓글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 글은 실패한 글입니다. ㅎㅎㅎ

홈즈 시리즈가 생각보다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지금도 셜록키언들은 홈즈를 읽고 분석해요. 정말 놀라운 분석이 있는 반면에 저처럼 어설픈 분석도 있습니다.

돌궐 2017-05-26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책 연구과제는 실패를 했어도 성실한 연구노트를 작성했다면 사업비를 환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사업은 과학 기술 분야가 대부분이지만 인문학에서도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이 글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cyrus 2017-05-26 14:25   좋아요 0 | URL
인문학 연구 자료는 과학 연구 자료와 비교하면 오류를 확인할 수 있고,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역사 분야라면 돌궐님의 말씀처럼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학자들의 텃세부심을 줄인다면 실패를 해도 연구 활동이 이루어질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