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셜록 홈스(Sherlock Holmes) 시리즈 전집 세트를 장만했다. 사실 이거 고르느라 한 달은 고민했다. 왜냐하면, 어떤 홈스 전집에 오 · 탈자가 많고, 번역이 좋지 않다는 평이 있기 때문이다.
※ [셜록 홈즈 전집 세트, 뭘로 사지?] (작성자: 빅보이7)
http://hi007.tistory.com/1145
나는 홈스 전집을 읽어본 독자들의 추천을 참고했고, 고심 끝에 고른 전집 세트가 ‘시간과 공간사’ 번역본을 골랐다. (빅보이7님의 의견을 따랐다)
혹자는 ‘시간과 공간사’를 줄여서 ‘시공사’로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가 아는 ‘시공사’ 출판사(전두환 대통령의 아들이 운영했던 그 출판사)와 다르다. 출판사 이름만 보고 오해하지 마시길. 출판사 이름을 ‘시공사’라는 말 대신에 ‘공간사’라고 줄여서 부르겠다.
‘공간사’ 번역본은 ‘황금가지’ 번역본과 같은 해(2002년)에 출간되었다. 먼저 나온 건 ‘황금가지’ 번역본이다. ‘공간사’ 번역본의 역자는 추리소설 전문 번역가로 활동했던 故 정태원 씨(1954~2011)다. 정태원 씨는 생전에 추리문학뿐만 아니라 SF, 호러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번역했다. 그런 그의 업적이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게 아쉽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는 정말 불운한 번역가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홈스 전집과 러브크래프트(H.P. Lovecraft) 전집 번역을 준비해왔지만, 출판사들로부터 거절을 받아 출판 기회를 놓쳤다고 한다. 다행히 그의 손에 재탄생한 홈스 전집은 세상의 빛을 보게 됐지만, 러브크래프트 전집은 영영 묻히고 말았다. 정 씨가 번역한 러브크래프트 전집은 고인의 유작으로 남게 되었는데, 선집이라도 정식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2년에 나온 1판은 양장본이다. 표지의 바탕색은 녹색과 남색이고, 표지 한가운데에 홈스의 전신상이 그려져 있다. 표지 덮개를 벗기면 빨간색 속살(?)을 드러낸다.
1판이 나온 지 몇 년 뒤에 2판이 나온다. 책 표지가 달라졌는데, ‘구판’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소개되는 표지다. 단조로운 형태의 1판의 표지보다 2판 표지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로 생각된다. 표지 테두리에 가장 유명한 시드니 패짓(Sidney Paget)의 삽화들을 넣었다. 2판 역시 양장본이며 표지 덮개를 벗기면 검은색 속살을 드러낸다.
정 씨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난 후에 반양장 형태의 3판이 나왔다. 이 책을 평한 독자들은 3판을 ‘최악의 번역본’으로 비판했다. 구판에 있었던 시드니 패짓의 삽화 일부가 삭제되었고, 심지어 문장 일부가 빠진 것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는 어렵게 헌책방과 알라딘 중고매장을 전전하면서 구판을 손에 넣었다. 처음에 1권부터 5권까지는 1판, 6권과 8권은 2판이다. 7권은 아직 구입하지 않았다. 원래는 1판을 구하려고 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책을 모으는 애서가의 소원은 표지 통일이다. 그런데 커버까지 완벽히 갖춘 1판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게다가 얼른 홈스 전집을 장만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2판으로 된 6권과 8권을 샀고, 7권 역시 2판 번역본을 주문할 예정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2판도 조만간 절판의 운명에 처해질 텐데, 기념으로 1판과 2판이 섞인 전집 세트를 가지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홈스 전집 번역본에 대해서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겨났다.
궁금중 1.
홈스 전집 세트 중에 가장 많이 팔렸다는 ‘황금가지’ 번역본은 정말 믿고 읽을 만한 번역본인가? 정말로 ‘황금가지’ 번역본이 홈스 전집 번역본 중에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가?
궁금증 2.
‘황금가지’ 번역본 이외에 다른 출판사의 번역본들(엘릭시르, 문예춘추사 등)은 번역이 잘 되어 있는가?
궁금증 3.
어떤 독자들은 ‘바른번역’, ‘베스트트랜스’ 등 일명 ‘집단 번역’에 의해 만들어진 번역본은 ‘비추’라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이 맞으면 ‘집단 번역’의 오역 사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근거 자료가 보이지 않는다. 정말로 ‘바른번역’과 ‘베스트트랜스’는 홈스 전집 번역 수준을 떨어뜨리게 하는 ‘만악의 근원’인가?
세 가지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기 위해 필자는 시간과 공간사(구판과 반양장본), 황금가지(2015년 2판)’, 현대문학(주석판), 엘릭시르, 문예춘추사, 동서문화사(동서미스터리북스), 코너스톤(2016년 개정판), 더클래식(구판, ‘베스트트랜스’ 번역), 더클래식(개정판, 송성미 역) 번역본을 다 읽어보기로 했다.
이미 작업은 시작했다. 현재 《셜록 홈즈의 모험》까지 읽었고, 《주홍색 연구》, 《네 개의 서명》 번역본 비교 작업을 완료했다. 역시 각각의 번역본마다 원문을 우리말로 옮긴 문장이 제각각 달랐다. 필자는 번역 작업을 해본 적이 없다. 영어 실력은 중학교 수준이다. 일반 독자가 전문 번역가의 번역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아니꼽게 볼 수도 있다. 이 작업으로 특정 출판사나 번역자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일반 독자들도 수긍할 수 있는 오역을 발견하여 알리고 싶을 뿐이다. 번역문을 원문과 비교해가면서 최소 세 번 이상 읽어봤고,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영어사전을 참고했다. 애매모호한 번역문이 있는데도 필자의 독해 실력이 따라주지 못해서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경우가 있다. 이럴 땐 나 같은 아마추어는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나보다 독해 및 번역 작업 능력이 뛰어난 독자나 전문 번역자가 해줄 거라 믿는다.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작업이었다. 10권 넘는 번역본들 모두 도서관 한 곳에 있었으면 좀 더 빨리 작업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주말에 집에 멀리 떨어진 도서관에 찾아가는 것도 고역이다. 교통비가 줄줄이 새어나간다.
문예춘추사 번역본, 코너스톤 번역본 그리고 더클래식 개정판 번역본은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으로 구입했다. 역시 전자책 세트의 가격이 싸서 좋다. 평소 전자책으로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블랑코님을 알지 못했으면 이런 결정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종이책과 전자책의 내용은 똑같다. 실제로 코너스톤 개정판 한 권과 종이책과 전자책을 비교하면서 읽어봤는데 내용의 차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