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전에 곰곰생각하는발님의 글에 달린 흥미로운 내용의 댓글을 접했다. 그 댓글을 작성한 분은 수다맨님이다. 수다맨님의 설명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사아드 알 비쉬는 13년 넘게 사형집행관을 맡았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사형 방식은 참수형이다. 즉 무함마드 사아드 알 비쉬의 직업은 우리말로 하면 ‘망나니’다. 온갖 잡다한 지식이 정리된 ‘나무위키’에 무함마드 사아드 알 비쉬에 대한 짤막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제부터 언급될 내용은 나무위키에 참고한 것이다.
무함마드가 십 년 넘게 망나니를 하는 이유가 그의 일을 대신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사형집행관은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보수를 넉넉하게 받는 직업이다. 무함마드는 죄인 한 사람씩 목을 자를 때마다 오랫동안 피땀 흘리면서 번 돈보다 더 많이 받는다. 그런데 그는 현지 인터뷰에서 자기 일이 알라가 용서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도 사람인지라 사람을 한 번에 죽이는 일에 죄책감을 느꼈다. 테러를 일삼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때문에 이슬람이 살상이 허용된 위험한 종교로 오해받는다. 그런데 이슬람은 생명을 중시하는 종교다. 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살인의 경우를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특히 명분 없는 살인을 하지 말라고 밝히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꾸란의 구절을 마음대로 인용, 해석하여 자신들의 테러 행위를 정당화한다.
참수형에 사용된 도구는 장검과 도끼다. 초기의 참수형은 지체 높은 사람들, 즉 왕족이나 귀족들이 받는 형벌이었다. 강도, 절도, 간통 등 단순 범죄자들은 교수형을 받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참수형의 권위적인 의미가 잃기 시작했고, 왕족이 아닌 사람도 참수형을 받았다.
참수형이 기계화로 발전된 것이 바로 단두대, 즉 ‘기요틴(guillotine)’이다. 단두대는 프랑스 혁명사를 논할 때 절대로 빠져선 안 되는 필수 요소다. 프랑스 혁명 말기 자코뱅당이 주도한 공포정치 시대를 ‘단두대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포정치 시대는 단두대로 시작해서(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처형) 단두대로 끝났다(로베스피에르 처형). 단두대의 이름으로 남게 된 기요틴 박사는 흔히 단두대를 발명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단두대를 새로운 사형 방식으로 도입하자고 국민의회에 제안했다. 기요틴 박사는 고통 없이 ‘인간답게’ 목을 치는 인도적인 사형 방법을 원했다. 기요틴의 등장으로 사형집행자는 사형수의 목을 향해 검과 도끼를 내려치지 않아도 되었고, 사형수는 목이 잘려나가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런데 취지는 그럴 듯했지만 진행 상황은 그리 인간적이지 않았다. 단두대에서 공개 사형이 진행되는 날에는 인간 본성과 거리가 먼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군중들은 참수된 인간의 피가 불치병을 낫게 해준다는 미신을 믿었다. 사형이 집행된 후에 군중들이 단두대 주변으로 몰려왔다. 사형집행관의 조수들은 잘려나간 머리나 목 없는 시신에 흘러나오는 피를 컵에 받거나 손수건에 적셔서 군중들에게 돈을 받고 팔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집행관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망나니’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에는 ‘망나니’는 성직이 포악한 사람을 비난할 때 쓰는 단어가 되었다. 그렇지만 실제 사형집행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망나니에 가까운 인성을 가지지 않았다. 무함마드 사아드 알 비쉬는 자기 일이 이슬람 교리에 어긋날까 봐 걱정했다. 그리고 자식들이 자신처럼 사형집행관의 길을 걷지 않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 당시 최고의 사형집행관이었던 샤를 앙리 상송이라면 무함마드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해주고 남았을 것이다. 상송은 루이 16세를 포함하여 수천 명의 목을 잘랐다. 그의 가문은 증조부 때부터 대대로 사형집행인으로 활동한 집안이었다. 상송 가문의 증조부가 사형집행인의 딸을 만나 결혼하지 않았으면 상송 가문은 훌륭한 귀족 집안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나 하기 힘든 직업이 으레 그러하듯, 상송 가문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받았다. 그래서 상송은 자신의 회고록에 사형제가 폐지되기를 밝혔다.
과거의 공개 사형은 군중을 겁주고 일벌백계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시작됐다. 그렇지만 잔혹한 처벌의식의 잔인성은 군중을 길들여 놓았다. 사형이 집행되는 날은 축제 분위기다. 공개 사형은 황홀한 구경거리다. 권력자가 단두대에 오르면 군중은 일상에서는 맞설 수 없었던 권력에 대해 조롱을 하거나 돌팔매질까지 한다. 그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인간의 역사를 보면 사형장에 끌려가는 사람에게 조롱하는 군중이 자주 등장한다. 미셸 푸코의 분석대로, 누군가를 하나의 속죄양으로 삼고 타자화함으로써 사회의 어두운 면을 개인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여러 문제가 중첩돼 벌어진 사건을 한 개인에게 향한 분노로 표출된다면,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되는 비극적인 과정을 보지 못한다. 사형이 또 하나의 살인인가 아니면 마땅한 정의의 실현인가를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제의 하나다. 사형집행인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사형집행인조차 호기심 어린 구경거리의 일부로 보고, 그를 비하하는 태도는 인간의 존엄성에 상처를 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