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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거울 - 선가귀감
서산 지음 / 동쪽나라(=한민사)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선가귀감》은 서산대사 휴정 스님이 대장경의 핵심 내용을 추리면서 구절마다 주해를 달고 게송과 평설을 덧붙여 이해하기 쉽도록 꾸민 책이다. 법정 스님은 이 책을 한글로 번역할 때, 제목을 '깨달음의 거울’로 정했다.
법정 스님이 직접 쓰신 서문에 따르면 초판이 1962년 선학강행회 이름으로 법통사에서 나왔다고 한다.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의 스님 저서 연보에는 선가귀감이 '1976년 홍법원'에서 출간된 것으로 적혀 있다. 사단법인의 저서 연보 내용이 수정되어야 한다. 법정 스님의 선가귀감 제2판은 1971년 홍법원에서 나왔고, 제3판이 1976년 정음문고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스님은 1961년부터 선가귀감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62년에 나온 선가귀감 역서가 스님이 최초로 저술한 책이다.
누구든지 말에 팔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일이 모두 교의 자취만 될 것이고,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가 될 것이다. (《선가귀감》 50쪽)
불교에서 선(禪)은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한다. 문자를 활용하지도 않고 경전 문구에 의존하지도 않고, 오로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마음과 마음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불교는 무엇을 깨닫기 위하여 수행하는가?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일까? 불자들은 이것이 궁금하다.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없다. 참선 수행자 스스로 ‘이것이 무슨 뜻일까?’하고 의문을 가지고 끝없이 연구하는 공부법이다. 이처럼 유성(有聲)이 아닌 무성(無聲)으로 경지에 이르려는 예는 많다. 불가의 선종(禪宗)이 대표적이다. 문자가 아닌 체험에 방점을 찍은 수행법은 선종을 중국에 전한 달마가 시초이다.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의 이치인 도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인간의 인식 범주를 벗어난 불가사의한 세계는 언어문자로 나타내면 낼수록 본질과는 점점 멀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언어문자로 표현될 수 없는 궁극의 경지가 있고, 침묵이 웅변보다도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렇지만 선종의 사유세계가 확장될수록 깨달음의 세계는 심오해져 중생의 삶과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는 면도 생겼다.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선가귀감》 42쪽)
법정 스님은 선(禪)이 종파적으로 치우치는 바람에 원래 의미가 변질되었다고 지적했다. (《선가귀감》 45쪽 역주 참고) 불도의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므로 언어나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다면서 경전을 소홀히 할 수 없다. 경전은 부처의 말씀이다. 특정 종파의 독단적인 논리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 경전을 경시하는 것은 부처의 근본 목소리를 부정하는 일과 같다. 인간의 사유나 사상은 문자를 통해서 기록되고 계승 발전되고 있다. 우리가 존재와 세계를 사유하는 것도 문자언어를 통해서 하고 있다. 인간의 사유의 범주가 언어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침묵이 능사만은 아니다. 언어와 침묵은 조화 중도를 이루어야 침묵도 빛나고 언어도 의미가 산다.
불가에서 선승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던지는 문제가 있다. 이른바 화두(話頭)다. 선승들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묵언 수행을 하고 정진한다.
게을리 지내지 말라
풀 속에 거꾸러지리니.
(《선가귀감》 게송 44쪽)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생각을 버려야 화두에 대한 의심을 풀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탐욕을 줄이면 고통도 줄어든다. 올해 연말에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큰 사건이 일어났다. 생각해 보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물들어 있는 잘못된 의식과 행위의 근본 원인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애욕의 불꽃’이다.
생사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탐욕을 끓고 애욕의 불꽃을 꺼버려야 한다.
(《선가귀감》 164쪽)
불교에서는 모든 고통의 근본 원인이 인간 스스로의 진리에 대한 무지와 탐욕이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대개 우리의 행과 불행이 절대자의 뜻이나 숙명, 혹은 우연에 의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연기(緣起)의 진리에 대한 무지의 결과이다. 이러한 연기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씨앗은 적게 뿌리면서 수확은 많이 거두려고 한다. 이것이 지나친 욕심, 곧 탐욕이다. 휴정 스님은 “애정이 한 번 얽히면 사람을 끌어다가 죄악의 문에 처넣는다”고 하였다. '나 혼자 잘살기 위해', '나 혼자 편하기 위해' 내가 법을 어기고 부정을 저지르면 그 대가는 곧바로 타인에게 전가되고 결국에는 그 업보가 돌고 돌아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지나친 욕심이 인생을 망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