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6시부터 서구청 앞에 촛불 집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퇴근하자마자 서구청으로 향했습니다. 서구청에 도착해보니까 6시 35분이었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요? 사실 집회라고 하기에 민망한 분위기였습니다.
촛불이나 피켓을 든 어른들의 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어제 집회를 주최한 서구주민연대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분들이 촛불과 피켓을 들고 있었습니다. 제가 장소에 도착하니까 한창 노래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인도 위에 스무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집회 날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고등학교 앞에서 걸려 있었는데요, 고등학생들이 그 플래카드를 보고 모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촛불을 든 학생들이 없었습니다. 이 학생들도 TV에서 보던 집회를 생각하고 왔는데 그것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 의기소침했을 겁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집회가 처음이라서 낯설고 신기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소규모 집회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습니다.
서구청 앞 인도는 버스정거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집회 장소에 대해 걱정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인도가 좁은데다가 그곳에 10명 정도의 인원만 모여 있어도 지나갈 틈이 없습니다. 집회 인원을 최대한 많이 모이기 위해서 집회 장소를 서구청 뒤편에 위치한 공원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정거장 주변에 아주머니 한 분이 서서 집회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혼잣말하듯이 집회를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분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일부러 집회 장소에 찾아온 샤이 박근혜 성향의 동네 주민이거나 박사모 소속 회원처럼 보였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10분 내내 계속 박근혜를 옹호하는 말만 했습니다. 촛불 집회를 공산주의 국가에서 나올 법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집회에 구경하는 학생들을 공부하기 싫어서 집회에 왔다는 식으로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박근혜를 규탄하는 언론도 못 믿겠다고 합니다. 간혹 이런 어른을 만나곤 합니다. 대구에는 생각이 꽉 막힌 어른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주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은 건지 한 여학생이 일침을 가했습니다.
"아주머니, 집회가 마음에 안 들면 보지 말고, 그냥 가세요!"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질 뻔했으나 주변 학생들과 어른들이 말려서 말다툼으로 번지지 않았습니다.
대구가 새누리당과의 인연을 끊는 길은 요원해 보입니다. 집회에 모인 학생들에게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누리당을 지지한 어른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할망정 집회에 구경하는 학생들을 마치 집회에 선동당한 학생처럼 말하면서 꾸짖느라 바빴습니다. 이 학생들이 왜 집회에 모였을까요? 어른들은 이 상황을 불러일으킨 심각한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은 채 회피할 뿐입니다. 저는 소규모 집회 분위기가 낯설어서 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저도 어제 잘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집회를 구경만 하고 떠난 소심한 어른이었으니까요. 어제 일이 부끄러워서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