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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 도쿄대에서 우에노 지즈코에게 싸우는 법을 배우다
하루카 요코 지음, 지비원 옮김 / 메멘토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페미니즘의 새로운 목소리는 사회에서 금기시됐던 성, 남녀 성차, 몸과 정체성 등의 문제들을 공개적인 담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낡은 인식의 틀을 깨부수었고, 미지의 세계에 인식의 밝은 빛을 던졌다. 페미니즘 운동 안에선 수많은 이론이 등장해 서로 경합하고 비판과 반박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여전히 완결되지 않은 진행형이다. 계속 성장 중인 이 이론은 이제 막 두 발로 섰을 뿐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일하는 여성들은 착취당하고 있으며, 어머니들은 보상 없는 노동에 짓눌리고 있다. 메갈리아 논란은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의 온도 차를 여실히 보여주는 문제였다.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은 합의할 수 없을 정도로 분열된 상태다.
긍정적 전망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나라 페미니즘을 위한 책이 나왔다. 나처럼 말로만 번지르르하게 페미니즘을 외치면서 실천은 하나도 못하는 철없는 남자들을 위하여 이 책은 여기에 왔다.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의 저자 하루카 요코는 성차별과 성희롱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연예계에 활동한 일본인이다. 그녀가 80년대 일본 페미니즘의 기수라고 불렸던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교수의 세미나에 참석하여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을 그렸다.
페미니즘은 사회 변혁을 위한 필수적인 전략이다.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가 잘못된 것이고 바뀔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된 것만 해도 엄청난 변화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보편적으로 실현된 것은 아니다. 차별은 논리적인 게 아니라 미묘하고 감정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차별은 느껴지는 것이다. 느낌은 객관적이지 못하고 틀릴 수도 있지만, 차별을 당하는 사람에겐 실재적이다. 남자는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을 느낄 재간은 없다. 남자가 차별의 대상이 되어야 여성들의 진짜 목소리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하루카 요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성이 차별을 느껴지는 것은 ‘위화감’이다. 여기서부터 현실을 새로 보고, 인식이 전환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의심’한다. 하루카 요코는 페미니즘을 ‘느끼는 사람을 위한 학문’이라고 했다.
페미니즘을 새롭게 이해하는 그녀의 공부 과정이 흥미롭다. 그녀는 그동안 여성 차별에 향한 수많은 의구심이 언어화되지 않아 불편하게 느꼈던 상황을 되돌아본다. 하루카 요코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을 이해하기 시작한 남녀 누구나 가부장제, 차별 등 거부해야 할 것들에 대해 저항하지 못한다. 솔직히 나도 이 점에 대해서 남모르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왜 모두들 그런 논리 모순을 지적하지 않을까? 그건, 지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지적하지 못할까? 모순이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아서, 언어화되어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말할 수 없는 불쾌감을 느낀다. (89~90쪽)
저자의 ‘말할 수 없는 불쾌감’은 남성 지배 문화의 허위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면서도 그것에 대응하지 못하는 여성의 소외감과 고통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은 여성들이 일상적 삶에서 부닥치는 성차별이라는 일차적 모순 외에 사회의 억압과 갈등구조에 대한 현실 비판의 목소리를 보여준다. 80, 90년대 활발하게 전개된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의 부상은 21세기가 여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까지 낳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모두 90년대 이후 진행된 경제위기(한국은 IMF 외환위기, 일본은 부동산 경제 거품 붕괴)는 뿌리 깊은 성차별 의식과 여성들이 그간 구축해 놓은 사회적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여성 노숙자 문제를 외면한 김대중 정부의 복지 정책을 비판한 송재숙의 《복지의 배신》을 참고할 것) 단순한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서의 여성과 어머니로서의 여성만을 강요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문제가 다시금 주목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페미니즘을 공부한 사람만이 여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페미니즘을 단순히 여성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 아니다. 이러한 발상은 ‘여성의 이익만 찾는 페미니즘’이라는 왜곡된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루카 요코는 ‘학문이라는 권력 장치를 알아차리기 위한’ 페미니즘을 강조했지만, 나는 그녀의 주장을 확장하여 페미니즘은 (남성이 구축한) 사회라는 권력 장치를 간파해내는 이론으로 보고 싶다. 우리가 사회의 권력 장치에 민감하려면 페미니즘을 멀리하게 만드는 편견의 먹구름을 걷어치우고, 권력 장치의 모순을 언어화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느낀 것, 심장으로 이해된 것들이 모여 말로 구체화된다면 부당한 사회를 흔들 수 있는 목소리가 되고, 미래의 후손들을 위한 메아리가 된다. 페미니즘을 제대로 공부했으면 바로 지금 당장부터라도 내 일상생활을 고쳐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용하는 자세이다. '말할 수 없는 불쾌감'을 말끔히 떨쳐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