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aggro)’라는 게임 은어가 있습니다. 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도발적인 채팅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공격적’이라는 뜻을 가진 ‘aggressive’의 속어입니다. 어그로는 상대방을 도발해 분노를 유발합니다. 그래서 게임에서 상대방을 도발하는 행위를 ‘어그로 끈다’라고 말합니다. 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어그로꾼’이라고 부릅니다.
알라딘에도 어그로꾼이 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가 부끄럽지만, 그 어그로꾼이 바로 접니다. 올해에 알라딘의 문제점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한 ‘어그로꾼’이라는 표현 대신에 ‘프로불만러’라고 부를 수 있겠군요.
인터넷 댓글 창에 어그로꾼 한 명 등장하면 무시무시한 키배(키보드 배틀)이 일어납니다. 어그로꾼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상대방의 적대감과 분노를 표출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그로꾼은 도발 대상을 향해 시비를 걸기 시작합니다. 상대방은 어그로꾼의 시비에 달려들 것이고, 언쟁의 강도가 높아집니다. 키배의 열기가 뜨거워지면 어그로꾼은 유유히 전장을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컴퓨터 모니터 뒤에 숨어서 불구경하듯이 즐깁니다.
어제 만화애니비평(줄여서 ‘만애비’)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제가 서프러제트 운동과 넥슨 사태의 배경을 잘 몰라서 만애비님의 글에 대한 의견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이미 몇 몇 분들이 비판 의견을 내주셔서 서프러제트 운동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만애비님의 주장의 오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논리적 오류를 범한 만애비님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서 어제 일을 언급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상대방의 비판 의견을 받아들이는 만애비님의 모습이 좋게 봤습니다. 지금까지 알라딘에 일어났던 키배를 몇 차례 구경해봤는데 만애비님 같은 분을 본 적이 없었어요. 자존심에 세고, 부끄러움을 참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었어도 끝까지 굽히지 않습니다. 내 잘못을 인정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굴복당한 느낌이 들거든요. 자신의 의견이 틀렸음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비회원 계정으로 댓글을 단 사람들입니다. ‘이갈리아’라는 닉네임의 비회원은 만애비님 서재에 일어난 키배를 구경하다가 자신이 노무현재단 후원회원이라고 밝힌 만애비님의 댓글(8월 17일 17시 5분에 작성)을 봤을 겁니다. 그리고 만애비님의 글을 비판하면서 노무현 지지를 철회하라는 말까지 남깁니다. 그 밑에 ‘만화비평’이라는 닉네임의 비회원은 누가 봐도 어그로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만애비님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만약 만애비님이 감정적으로 대응했으면 논쟁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만애비님을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뻔뻔한 사람’으로 봤을 겁니다.
저는 비회원 계정으로 댓글을 다는 기능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그로꾼은 비회원 상태로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댓글을 남깁니다. 자신의 정체가 노출되지 않는 점을 이용해 마음껏 시비를 겁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닉네임을 도용해서 비회원 댓글을 다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시루스라는 닉네임의 회원이 평소에 저를 싫어한다고 상상해봅시다. 잘난 척하고, 남들에게 관심을 받으려는 모습에 불만을 품습니다. 시루스는 저를 엿 먹이려고 ‘cyrus’라는 닉네임으로 비회원 댓글을 달면서 어그로를 끕니다. 제로서는 정말 화가 나고, 짜증 나는 일이죠. 비회원 댓글의 단점은 댓글 작성자가 누구인지 밝힐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비회원 악성 댓글을 막으려면 비회원 댓글을 달지 못하도록 설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실 계정으로 어그로성 댓글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당해봐서 잘 압니다. 그 회원 닉네임이 밥풀이던가, 딱풀이었나? 아무튼, 어그로꾼을 만나면 피곤해요. 이런 사람은 그냥 무시하는 것이 정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