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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평점 :
자기 삶의 행로를 스스로 결정해서 가는 사람들은 부럽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멋있게 해내는 사람들은 드물다. 이미 가족의 토대가 되어버린 자리를 내던지고 새로운 길을 떠난다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짓으로 간주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젊음에 높은 가치를 두는 세상이지만 남성들의 나이 듦에는 권위와 힘과 경험의 미덕을 부여한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이 든 여성은 이미 성적인 아름다움을 잃었기에 여성이 아닌 모성에 무게를 두게 된다. 여성은 어려서는 깨질세라 보호받는 딸로, 결혼 후에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와 아줌마로 살아갈 뿐이다. 늘 어쩔 수 없이 끌려가야 하는 삶 또한 현명한 것은 아니리라.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번지점프처럼 ‘자신’이라는 밧줄에 발목을 묶고 새로운 세계로 온몸을 던져볼 것인가.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는 여성들이 나이에 따라 다르게 체험하는 고민을 담고 있다. 독신녀 다에코와 전업주부 미나코. 언제부터인가 그녀들은 숙제를 채 마치지 못한 아이처럼 조급해한다. 다에코는 지금 일을 바꾸지 않으면 평생을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야 한다는 열병에 시달린다. 마흔 살의 미나코는 올 한 해도 또 이렇게 가는구나 하는 그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다. 여자들은 나이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휘청거린다. 언제까지나 지리멸렬한 청춘의 시간이 지속할 거라 착각한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 일이 만만치 않음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하면 시간의 속도가 실감 나게 다가온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에는 점점 무성(無性)의 존재로 변하는 여성들의 나이 듦이 세세하게 펼쳐진다. 여성이 주체적인 인간으로 사는 데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사실을 많은 여성이 모르고 살아왔고 살고 있다. 미나코 역시 망설임 없이 ‘아줌마’로 부르는 나이와 몸을 가지고 있지만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사람들은 마흔쯤 되면 이제 일에서도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고, 삶에도 여유가 더해져 인간으로서 행간을 조금씩 넓혀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가족과 일에 파묻혀 앞만 보고 달려가다 어느 날 맞닥뜨린 마흔은 내 것이 아닌 양 생경하기만 하다. 마흔이면 뭔가 이뤄놓을 줄 알았는데 번듯하게 이뤄놓은 것도 없고, 여전히 미래는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삶의 일정을 언제나 나이에 맞추어 진행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대번 묻는 말이 “몇 살이세요?”이다. 그리고는 “결혼하셨어요?” “아이는?” “둘째 계획은?” 이런 식의 질문이 이어진다. 몇 살이 넘기 전에 무엇을 꼭 해야 한다는 적령기의 압력이 모든 나이의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다. 일곱 살 소녀 리나는 적령기에 휘청거리는 두 여자의 헛헛한 속내를 아직 잘 모른다. 그러나 리나도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리라. 소녀에서 아가씨, 아가씨에서 아줌마, 아줌마에서 할머니로 진행하는 과정을 지날 때마다 포기해야 하는 것도 점점 많아진다. 세월의 변화에 따른 ‘여성성’의 상실을 제 탓인 양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기도 한다.
살면서 희망과 좌절이 언제 올지 예측할 수 없다. 어쩌면 자신의 기대와 소망을 비껴가는 일들을 겪으며 사는 게 삶일지 모른다. 삶은 ‘해답이 찢겨나간 문제집’과 같다. 결과의 차이가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규정할 수 없다. 인생을 살아오는 과정에 부끄러움 없이 성실하게 살아왔다면 누구나 가치 있는 인생을 산 것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소멸해가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열정으로 세상을 보는 지혜와 생의 본질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