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 인터넷 서점 알라딘 까는 글로 보셨다면, 낚인 겁니다. 파닥파닥!

 

 

 

 

 

 

 

 

 

 

 

 

 

 

 

 

 

 

 

 

 

 

1993년에 때아닌 ‘아라비안나이트 열풍’이 분 적이 있었다. 김준선의 <아라비안나이트>라는 노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더니 015B 객원가수 출신인 김태우의 <알려지지 않은 아라비안나이트>도 주목을 받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김태우의 노래가 나오기 전에 이미 ‘알려지지 않은 아라비안나이트’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다. 잠깐 1993년에 나온 옛날 신문을 살펴보자.

 

 

 

 

 

 

동아일보에 실린 《알려지지 않은 아라비안나이트》 책 광고다. 이때 당시 김태우의 노래가 서서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출판사는 긴 제목의 책이 1992년에 먼저 나왔다는 사실을 광고로 알렸다. 그러면서도 해당 광고가 김태우의 노래와 관련이 있다고 뻔뻔하게 밝혔다. 노래 인기에 기대어 책을 팔아보려는 출판사의 개수작이다. 김태우가 부른 노래 가사를 보면 알겠지만, 아라비안나이트와 전혀 상관없다. 지금도 나는 이 노래 제목의 ‘아라비안나이트’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알려지지 않은 아라비안나이트라면서 ‘고층빌딩’과 ‘보도블록’이 웬 말이냐.

 

아라비안나이트는 오랜 세월 동안 원작이 축약되는 과정에 이야기 일부는 삭제되고, 원작에 없는 엉뚱한 장면이 삽입되기도 했다. 어린이 동화로 만든 축약본과 완역본을 비교해보면 내용상 확연한 차이점을 볼 수 있다. 완역본을 읽어보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의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알라딘, 알리바바, 신드바드 그리고 셰에라자드는 아라비안나이트의 명성을 드높인 4대 주인공이다. 특히 알라딘은 ‘알라딘의 요술 램프’라는 제목으로 동화로 각색되었고, 애니메이션이나 연극, 영화로 많이 옮겨졌다. 아라비안나이트라고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단어가 알라딘과 요술 램프일 것이다. 보통 알라딘을 아랍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1992년 디즈니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무대는 페르시아풍 도시 ‘아그라바’다. 애니메이션 주인공 알라딘은 원숭이 아부와 함께 사는 좀도둑으로 등장한다. 애니메이션이 워낙 유명해서 디즈니의 설정과 아라비안나이트 원작 설정을 동일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알라딘은 원래 중국 사람이다. 당연히 알라딘이 사는 곳도 중국이다. 앙투안 갈랑은 중국 설화로 알려질 뻔했던 이야기를 아라비안나이트에 편입했다. 프랜시스 버턴도 갈랑의 전례를 그대로 따랐다. 알라딘은 중국인으로 나오지만, 작중 무대에 변화가 있었다. 갈랑은 아랍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중국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심지어 중국을 다스리는 군주를 ‘술탄’으로 표현했다. 애니메이션의 알라딘은 심성이 고운 좀도둑으로 나오지만, 원전의 알라딘은 철없는 백수다. 고집에 세며 버르장머리가 없고, 일하기 싫어하는 캐릭터다. 알라딘의 어머니는 밖에 싸돌아다니기만 하는 아들이 걱정된다.

 

아프리카에서 온 마법사가 알라딘에게 삼촌인 척하면서 접근한다. 마법사는 알라딘을 이용해 신비스러운 정령이 사는 램프를 얻으려고 한다. 마법사의 계략에 걸려든 알라딘은 램프가 숨겨둔 지하 동굴에 갇히고 만다. 알라딘의 손에 마법사가 준 마법의 반지가 껴 있다. 알라딘은 반지의 정령을 불러내어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무엇이든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정령을 만난 알라딘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듯한 자신감에 도취한다. 그는 술탄의 딸 바드룰부두르 공주(애니메이션 알라딘에 나오는 공주 이름은 자스민)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다. 알라딘은 공주와 꼭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계획에 어머니를 끌어들인다.

 

여기서 어머니를 설득하는 알라딘의 모습이 ‘극혐’이다. 어머니는 공주와 결혼하려는 아들이 미쳤다고 봤다. 알라딘은 어머니가 직접 술탄을 만나 자신의 청혼을 알려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한다.

 

 

“어머니가 뭐라고 말씀하시더라도, 다시 한 번 제 결심을 분명히 밝히겠어요. 전 공주님께 청혼을 할 작정이에요.”

 

“정말이지, 이놈아!” 어머니는 아주 심각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넌 지금 너 자신이 누구인지 완전히 잊어버린 녀석 같구나. 좋다! 네가 네 결심을 기어코 실행해야겠다고 치자. 그렇다면 술탄께 가서 청혼하는 일은 누구에게 부탁할 건데?”

 

“누구긴, 어머니죠!” 알라딘은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어머니! 이건 제가 어머니께 정말 간곡하게 부탁드리는 것이니, 제발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 만일 거절하신다면, 어머니는 이 아들이 죽는 꼴을 보게 되실 거예요.”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5》 1445쪽, 글쓴이가 임의로 인용문을 편집했음)

 

 

알라딘은 어머니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요술 램프를 가졌는지 모른다. 알라딘이 어머니에게 요술 램프의 실체를 밝힌 뒤에 본인이 직접 술탄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알라딘의 주체적인 행동이 돋보였을 것이다. 그 속에 알라딘의 영웅적인 면모가 부각될 수 있었다. 그런데 알라딘은 어머니가 있어야 공주와의 청혼이 가능하다면서 억지 주장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다고 생떼를 부렸다.

 

알라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용감한 영웅이 아니다. 흙수저 주제에 운 좋게 요술 램프를 얻어 단번에 금수저로 변신한 백수건달이다. 알라딘의 어머니는 알라딘과 공주를 이어준 중요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녀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알라딘이 술탄의 총애를 받고 공주와 함께 살면서부터 어머니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축약본에도 알라딘의 어머니가 없다. 알라딘을 혼자서 난관을 극복하는 훌륭한 영웅으로 만들고 싶은 창작자들이 백수건달을 고아로 만들어버렸다.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는 늘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 안타깝게도 어머니의 사랑은 너무나 큰 자식의 그림자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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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7-07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알라딘이 중국사람이었다니...놀랐습니다..ㅎㅎㅎㅎㅎ

cyrus 2016-07-07 15:05   좋아요 0 | URL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 삽화를 보면 알라딘이 변발을 하고 있습니다. ^^

아무 2016-07-07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에는 반지 정령과 램프의 정령이 다 있었어요. 삼촌인 척 접근하는 마법사도 있었고.. 나중에 램프를 몰래 훔쳐서 알라딘만 남기고 궁궐과 공주를 옮겨버렸나 그랬던 거 같은데..
그나저나 알라딘이 중국 사람이었다니 정말 충격이네요.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cyrus 2016-07-07 15:06   좋아요 0 | URL
저는 반지의 정령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알라딘 원전을 보면 반지의 정령의 존재감이 대단합니다. 알라딘이 램프를 뺏겨서 위기에 빠졌을 때 큰 도움을 준 이가 반지의 정령입니다.

마립간 2016-07-0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라비안 숫자가 인도 숫자라는 반전만큼

알라딘이 중국 사람이었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네요.

cyrus 2016-07-07 15:0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을 한 번 정도 봤기 때문에 원전보다는 만화 속 알라딘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마립간 2016-07-07 15:22   좋아요 0 | URL
제 기억의 기본은 TBC에서 방송한 `신밧드의 모험`이고,

이후 제가 읽은 《아라비안 나이트》는 그 책 속의 소제목 `짐꾼 신밧드와 뱃꾼 신밧드`를 포함한 이야기로

어린이용도 아니고 성인용도 아닌 청소년 축약본 같은 것이었습니다. 비교적 분량이 되는 책이었다고 기억되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도 중국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마립간 2016-07-08 10:51   좋아요 0 | URL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읽었던 책에서 `알라딘`의 이야기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cyrus 2016-07-08 16:41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아라비안나이트 선집 중에 ‘알라딘’이 빠진 것도 있을 겁니다. ^^

붉은돼지 2016-07-07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낚인 돼지 한마리 있습니다. ㅋㅋㅋㅋ

cyrus 2016-07-07 15:09   좋아요 0 | URL
제가 처음에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라고 적지 않았네요. 저의 어설픈 장난에 속아주셔서 고맙습니다. ^^

stella.K 2016-07-07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쳇, 싱겁긴...! 아닌가...?ㅋㅋ

cyrus 2016-07-07 21:36   좋아요 0 | URL
제가 여기 떠들어봤자 알라딘이 달라지는 일이 없을 겁니다.
마음에 안 들면 알라딘 브렉시트 해야겠어요. ㅎㅎㅎ

2016-07-08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08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