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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 - 문학.신화.역사를 관통하는 조너선 실버타운의 실버과학에세이
조너선 실버타운 지음, 노승영 옮김 / 서해문집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80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편안히 죽을 노후를 맞이해야 한다는 바람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100세를 누리는 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 학자들은 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풍족한 사회가 되면서 2020년 내 100세 진입을 예견하고 있다. 그런데 오래 사는 게 늘 축복만도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의 신 아폴론은 쿠마의 무녀 시빌레(Sibyl)를 좋아했다. 그러나 시빌레는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했다. 그녀의 환심을 사고자 아폴론이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했다. 시빌레는 손에 모래 한 움큼을 쥐면서 모래알 수만큼 수명을 내려달라고 한다. 아폴론은 그가 말한 대로 천 년을 살게 했다. 그런데 시빌레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다. 깜빡 잊고 영원한 젊음을 같이 달라는 소원을 비는 것을 잊었다. 천 년의 수명은 구애를 뿌리친 그녀에게 아폴론이 한 앙갚음이었다. 세월이 흘러 늙고 쭈글쭈글해진 시빌레는 저주받은 삶에 한숨만 쉬었다고 한다. T.S 엘리엇은 시 《황무지》에 영원히 죽지 못하는 시빌레의 모습을 묘사했다. 아이들이 시빌레에게 “뭘 원하니?”라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죽고 싶어.”
늙는 것을 반길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욕구와 하루라도 더 젊어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인간이 늙어간다는 것은 육체적·정신적으로 노화란 변화가 찾아오는 것을 말한다. 나이를 먹게 되면 신체적으로는 피로, 식욕저하, 피부의 위축, 근력감소 등의 변화가 먼저 온다. 인간의 노화현상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은 많다. 수명의 한계를 알고 있는 인간이 노화를 체험할 때는 언제나 고통이 따른다. 인간의 성장은 대략 20세에 완성되며 이후부터 모든 세포조직은 서서히 쇠퇴해 결국 소멸한다. 인간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는 기껏해야 50번밖에 분열하지 못한다. 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염색체의 끝부분인 텔로미어(telomere)가 일정길이 만큼 짧아져 얼마만큼 분열하면 세포는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죽는다. 나이를 먹으면 이처럼 분열과정을 끝낸 세포들은 하나씩 사라진다. 그러나 인간의 세포 중에 끊임없이 분열하여 죽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도 있다. 암세포는 제한 없이 영원히 복제를 거듭한다. 암세포의 분열은 인간의 수명을 단축하는 위험한 요인이다.
과학은 ‘왜’보다는 ‘어떻게’의 물음에 더 뛰어난 재주를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왜 늙으며 죽을 수밖에 없는지 묻기보다는 그 늙음과 죽음이 어떤 생물학적 과정을 통해 나타나며 그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에 관심을 쏟는다.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 조너선 실버타운 교수는 ‘왜 오래 사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이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찾는다. 그가 쓴 책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의 매력은 문학, 신화, 역사를 아우르는 저자의 해박한 상식과 과학 지식을 결합해내는 능력에 있다.
진화는 생명체가 생존하고 번식하기에 유리한 유전형질을 선택한다. 이처럼 생존이나 번식에 유리한 유전자를 선호하는 것을 자연선택이라 부른다. 진화론 관점에서 보면 노화의 정복은 간단치 않다. 노화와 노인병은 인류라는 종을 유지하기 위한 자연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진화의 추동력인 자연선택은 결과적으로 번식에 성공한 개체의 유전자를 퍼뜨릴 뿐 우리의 수명과는 어떤 관계도 없다. 생존과 생식에 성공한 개체의 유전자는 퍼지고 그렇지 못한 유전자는 사라진다. 인간이 장수란 목표를 이뤄도 무병(無病)의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평균 수명은 늘어났지만, 인간의 최고 수명은 그다지 늘어나지 않았다. 통계 자료에 의하면 수명이 많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질병 없이 사는 기간을 표시하는 건강수명은 그리 증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떤 학자는 100세 시대에 건강하게 살려면 체형과 얼굴 등이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사람이 100세가 되면 노화와 노안 등으로 고통스럽게 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건강하게 살려면 대대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연 수억 원 이상을 들여 탄생한 노인은 어떤 모습일까? 노화를 개조(?)한 100세 노인은 아름다운 모습일까? 노화를 피한다고 한들 죽음의 신의 감시를 피하기 어렵다. 시빌레 이야기를 통해서 깨달은 중요한 교훈이 하나 있다. 인류의 생체시계 속에 창조의 시간과 파괴의 시간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명은 삶과 죽음으로 구성된다. 이 원리에는 수십억 년 동안이나 다양한 환경에 적응해온 우리 조상 생명의 삶과 죽음이 응축돼 있다. 노화와 죽음 자체를 거부하는 것 역시 생명의 원리마저 거부하는 태도다.
늙어 죽지 않고 영생하는 것은 과학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과학은 노화와 장수 쪽으로는 아직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세균은 사라지지 않고 영생할 수 있다. 세균은 자손을 낳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분열하는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세포생물은 죽어 없어지는 방법을 선택했다. 노화는 적어도 다세포 생물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아무리 영원한 이별이 슬픈 일이라 해도 생명을 다하면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이쯤 되면 생명의 노화와 죽음이야말로 진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특별한 우주의 기운을 받는다면 오래 살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