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에세이 분야의 책이 있는 책장 주변을 둘러봤다. 바로 옆에 두 명의 아가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들의 수다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고운 목소리는 내 귓가로 흘러 들어갔다.

 

 

 

 

 

 

 

 

 

 

 

 

 

 

 

 

 

아가씨 A : 너 《오체불만족》이라는 책 알아?

              아니 글쎄, 책을 쓴 사람이 불륜을 저질렀대.

 

아가씨 B : 웬 열? 나 어렸을 때 그 책 감명 있게 읽었는데.

              완전 개실망이다.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는 선천적으로 팔다리 없이 태어난 장애인이다. 아시다시피 《오체불만족》으로 그는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었다.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은 그의 도전 의식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감동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 책이 나왔던 1999년은 IMF 위기로 장기적으로 우울했던 시절이었다. 모든 사람의 삶이 좌절 속에 산산이 조각난 상태였다. 사람들은 힘들 때 마음의 위안처를 찾는다. 대한민국 사회는 《오체불만족》을 통해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 에너지를 얻으려고 했다.

 

닉 부이치치의 삶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오토다케 히로타다가 모든 사람에게 추앙받는 위대한 장애인이었다. 그의 자서전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그의 일화를 아는 정도다. 나는 《오체불만족》을 단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다.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선생님이 20여 분 동안 열정적으로 오토다케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오체불만족》을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그 때 당시 나는 지금처럼 책을 좋아하지 않았고, 한자로 된 책 이름이 어렵게 느껴졌다. 그냥 한쪽 귀로 흘러 버렸다.

 

 

 

 

 

 

 

한동안 그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가 어제 그의 근황을 들었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에 ‘오체불만족’이라고 되어 있어서 나는 오토다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줄 알았다. 궁금해서 확인해보니까 그의 불륜 스캔들이 일본에서 터진 것이다. 작년 말에 오토다케는 파리에서 한 여성과 여행을 한 사실이 발각되었고, 결혼 생활 중에 무려 다섯 명의 여성과 불륜 행각을 한 사실까지도 알려졌다. 오토다케는 자신의 불륜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고, 그의 아내는 이 스캔들에 자신도 책임이 있다면서 이혼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도 인간이므로 성욕을 느낀다. 하지만 아내와 자식이 있는데도 바람을 피우는 건 그가 예전부터 강조했던 행복하게 사는 방식과 완전히 어긋나는 행동이다. 성욕을 채우는 것은 개인의 행복을 위한 행위 중 하나다. 오토다케는 쾌락이 주는 행복에 중독되었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집착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는 ‘오처(五妻, 다섯 명의 아내) 불만족’이었다.

 

 

 

 


내 불륜 인생은 내가 만든다

 

 

 

 

 

그래서 나는 파리에 간다

 

 

 

 

 

 

오체는 불만족, 불륜은 대만족

(부제: 내가 다섯 명의 여자를 만나면서 늘 행복하게 사는 이유)

 

 

 

오토다케의 불륜 행위에 실망한 사람들은 그를 비아냥거리는 별명을 끊임없이 만들었다. ‘오체불만족’ 신화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그 자리에 ‘성욕 불만족’이라는 불미스러운 별명이 생겼다. 일본 열도 못지않게 우리나라도 그의 불륜 스캔들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기자들이 이런 선정적인 뉴스를 그냥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수많은 언론은 어제부터 계속 오토다케와 관련된 뉴스를 양산하고 있다. 자신의 글이 튀고 싶어서 환장한 기레기들은 잘살고 있는 닉 부이치치까지 거론한다.

 

오토다케에 크게 실망한 독자들이 중고서점으로 향하고 있다. 한 손에 《오체불만족》을 든 채로. 최고의 스테디셀러가 한순간에 소장할 가치가 없는 종이 폐품 신세로 전락했다. 이제 아무도 그 책을 사는 사람이 없다. 베스트셀러 저자도 인간이다. 우리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인기가 엄청 많을 뿐이지 그들도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한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쌓아왔던 명성이 와르르 무너진다.

 

 

 

 

 

 

 

 

 

 

 

 

 

 

 

 

 

 

 

 

 

 

 

 

 

 

 

 

 

 

 

 

 

청조사판 《우동 한 그릇》은 1989년에 처음 나왔다. 그 후터 지금까지 표지만 바꿀 채 줄기차게 《우동 한 그릇》을 펴냈다.  

 

 

 

혹시 오토다케가 쓴 책들을 중고서점이나 헌책방에 파려는 분들은 다시 한 번 책장을 확인해보시라. 책장에 《우동 한 그릇》이 꽂혀 있다면, 그 책도 같이 처분해도 된다.

 

《우동 한 그릇》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줄거리를 언급하지 않겠다. 궁금하면 인터넷에 검색하면 줄거리가 다 나온다. 아무튼 《우동 한 그릇》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로 잘 알려졌다.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는가. 《우동 한 그릇》의 저자 구리 료헤이는 왜 책 한 권 달랑 내고, 후속작을 내놓지 않고 있을까? 그는 《우동 한 그릇》만 내고 홀연히 사라진 출판계의 ‘원 히터 라이터(one-hit writer)인가?

 

 

 

 

 

 

NTR : 오타쿠(오덕)의 세계에서 네토라레(寝取られ)를 부를 때 사용하는 은어. 정확한 의미는 자신의 아내 혹은 남편을 타인에게 빼앗기는 상황이다. 즉 구리 료헤이도 오토다케처럼 다른 사람의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다.

 

 

그가 ‘원 히터 라이터’라는 이유로 동정하지 않아도 된다. 구리 료헤이의 근황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있다. 나무위키에 ‘구리 료헤이’를 검색하면 그의 근황뿐만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충격적인 실체까지 확인할 수 있다. 못 믿겠지만 사실이다. 구리 료헤이는 '행동이 구린 료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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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3-25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 그것도 능력인 건가? 결혼하고 잘 사는 모습 보여줬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쩌자고...ㅉ

cyrus 2016-03-26 11:25   좋아요 0 | URL
오토다케가 정계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던데 스캔들 때문에 불가능할 겁니다.

원더북 2016-03-25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처불만족...ㅎㅎ;;; cyrus님의 책제목 센스에 한참 웃었습니다~

cyrus 2016-03-26 11:28   좋아요 0 | URL
오토다케가 아내와 첩 두 명만으로도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

2016-03-25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3-26 11:30   좋아요 1 | URL
오토다케를 만난 여성들은 그의 됨됨이를 좋아서 만난 것이 아니라 그의 부와 명성이 좋아서 따라다녔을 겁니다. 다섯 명의 여자도 잘한 게 없습니다.

alummii 2016-03-25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오처불만족 대박! ㅋㅋ

cyrus 2016-03-26 11:31   좋아요 1 | URL
오토다케 관련 뉴스 댓글에 보면 네티즌들이 만든 웃긴 별명들이 참 많습니다. ^^

syo 2016-03-25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이란 참 대단하죠?
갖가지 의미에서요.

cyrus 2016-03-26 11:39   좋아요 1 | URL
그렇죠. 고난을 스스로 극복하는 능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스스로 파멸하는 무시무시한 능력도 가지고 있죠.

akardo 2016-03-26 0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전 살아있는 사람의 자서전은 안 사고 안 읽습니다. 언제 그 감동을 깨줄지 몰라서요.

cyrus 2016-03-26 11:43   좋아요 1 | URL
평전도 그렇습니다. 평전의 주인공이 평전을 집필하는 과정에 개입할 수도 있거든요. 남아공 출신의 작가 나딘 고디머가 생전에 자신의 평전 이 나오기 전에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책한엄마 2016-03-26 0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 행복전도사였던 분이 자살하신 사건도 기억나요.ㅠㅠ

cyrus 2016-03-26 11:47   좋아요 1 | URL
스캔들 때문에 정계 진출이 좌절되었는데, 다음 행보가 걱정스럽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