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 선언
애널리 루퍼스 지음, 김정희 옮김 / 마디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김소월 ‘산유화’ 중에서)

 

 

 

산에 피는 꽃은 소박하다. 내색하지 않고, 유난 떨지 않고, 저만치서 봄을 이야기한다. 야생화들은 조용한 외톨이의 삶을 닮았다. 화려하게 봄 행세를 하지 않더라도, 나직하게 피어오르더라도, 소리 없이 씨앗을 퍼뜨린다. 모든 존재는 저만치만큼의 거리감을 느끼고 살아간다. 결국, 우리는 세상을 혼자 살아가고 있다. 가족이 있고 연인이 있고, 친구가 있지만 모두 저만큼의 거리감을 느끼고 있으므로 결국은 혼자라는 의미가 된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 태어나서 혼자 가는 존재이므로 본질적으로 외롭고 불안하다. 그런데 우리는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한다. 부득이하게 혼자 있어야 하면 갑자기 우울감이 엄습한다. 개인의 독립적인 생활이 늘어나면서 혼자 밥 먹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외톨이가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을 향한 시선은 조금은 곱지만 않다. 주변 사람들과 떨어져 사는 사람들을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ひきこもり)로 쉽게 규정한다. 심리상담 전문가들은 히키코모리가 감정 처리에 굉장히 미숙하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아예 모든 인간관계를 차단하거나, 자신의 상태에 대한 솔직한 성찰의 기회가 부족해진다고 본다. 그들은 고독의 그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히키코모리의 상황을 우려한다. 단절된 관계 속에서 괜히 엉뚱한 데 화풀이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히키코모리는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는다. 뉴스는 살인 사건 용의자를 히키코모리라는 프레임 안에 가둔다. 단순한 프레임에 익숙해진 우리는 히키코모리를 흉포한 사람으로 여긴다.

 

 

 

 

 

히키코모리라는 단어가 발명되기 전부터 이미 외톨이는 특이하고 음습한 존재로 취급받으면서 살아왔다. “나를 좀 제발 놔두시오!” 좀머 씨의 독백은 아직도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좀머 씨는 무언가 쫓기는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마냥 걸어 다닌다. 일반적인 사람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기이하기 그지없다. 작가 애널리 루퍼스는 독자들 앞에서 외친다. “나를 좀 제발 이상하게 보지 마세요!” 그녀의 외침은 외톨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현실로부터 상처 입은 순수한 영혼의 몸부림이다. ‘하나의 유령이 도시를 배회한다. 외톨이주의 (Ioneriem)라는 유령이.’ 루퍼스는 이렇게 자기 존재를 알린다. 그리고 외톨이를 문제아로 보는 사회 앞에서 당당히 외친다. ‘만국의 외톨이들이여, 단결하라!’ 그녀의 책 《외톨이 선언》은 외톨이가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꿈꾸고, 세울 수도 있는 공동체의 일원임을 강조한다.

 

외톨이에게 세상은 언제나 난세였다. 대중은 외톨이를 사회 부적응자라고 생각한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 모든 손님의 시선을 받는다. 영화 속 외톨이는 고독의 절망감 속에서 점점 미쳐가는 병적인 인간으로 묘사한다. 미디어는 ‘병 주고 약 주기’식으로 외톨이들을 제 입맛대로 이용했다. 반 고흐 같은 예술가를 재주가 넘치는 위대한 외톨이로 내세운다. 외톨이들의 특별한 재주는 만인의 추앙을 받는다. 세상의 외톨이들은 미디어의 ‘약’을 넙죽 받아먹는다. 그러나 이 약은 외톨이들의 존재를 드높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외톨이들에게 일종의 ‘힐링’을 유도하는 가짜 약이다. 현실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외톨이들은 외톨이들의 재주를 선호하는 주류의 반응에 흥분한다. 그들의 반응을 통해서 위로와 안도감을 받으려고 한다.

 

루퍼스는 비록 외톨이가 현실에서는 비주류이지만, 창작의 세계에서만큼은 주류라고 자부심을 표출한다. 당대에 멸시받던 무명의 외톨이 예술가가 후대에 제대로 인정받아 성공하는 사례가 많이 있다. 그렇지만 루퍼스는 외톨이를 찬양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들떴던 것일까. 외톨이로 살다 간 유명 인사와 예술가 들을 열거하고 설명하는 데 지나치게 열을 높였다. 외톨이의 창조력에 초점을 맞추면서 《외톨이 선언》을 읽으면 헛바람이 들어갈 수 있다. 이건 책의 핵심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독서다. 외톨이가 돼서 방 안에 틀어박혀 창작에 열중하면 대중의 시선에 한 몸에 받는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꿈 깨시라. 여기에 착각한 외톨이들은 주류에게 인정받는 성공에 대한 열망에 들떠서 혼자 흥분한다. 그들의 눈에는 인정의 욕망이 만든 ‘성공’이라는 신기루가 보일 뿐이다. 외톨이가 대중문화에 이바지한 공로는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의 재주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외톨이는 외로운 창작의 임부를 부여받고 이 세상에 태어난 특수한 존재가 아니다. 루퍼스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진정한 외톨이는 따로 있다. 그들은 이 세상 한가운데에 자신이 ‘홀로 있음’을 알면서도 관계의 끈을 여유 있게 잡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이들은 관계의 끈을 밀고 당길 줄 안다. 혼자 있고 싶을 땐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내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잘 듣는다.

 

《외톨이 선언》은 ‘외톨이들은 이 세상에 특별한 존재’라고 떠벌리면서 자신들을 광고하는 책이 아니다. 외톨이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 굴하지 않고, 남들처럼 똑같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진실한 영혼의 목소리다. 진짜 외톨이는 주류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불만으로 가득 찬 유별난 존재가 아니다. 가짜 외톨이는 자신의 위태로운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외톨이라는 가면을 사용한다. 그 가면 속에 숨으면서 자신을 향한 타인들의 눈치를 살핀다. 진짜 외톨이는 외로운 감정을 느껴도 참을 줄 안다. 또한, 남들 앞에서 자신의 고독을 광고하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 자기를 발견하는 데에서 출발하여, ‘나 자신에게로 나아가는 삶’을 찾는다. 그리고 자기를 타인 앞에서 표현하는 공간과 기회를 충분히 확보하고 넓힌다. 즉, 건강한 외톨이는 저만큼 떨어져 살아도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일 줄 안다. 살다 보면 관계보다 혼자가 더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당신이 혼자여도 별일 없이 잘살고 있다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인간이다. 저만치 혼자서 피는 꽃이 아름다운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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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2-2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도현아`라는 가수의 `외톨이`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제 여식의 18번입니다. 어디서 배웠는지 ㅋㅋ

cyrus 2016-02-24 08:28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노래 `외톨이`는 아웃사이더가 부른 비트가 빠른 랩입니다. 도현아의 `외톨이` 한 번 들어봐야겠습니다. ^^

yureka01 2016-02-23 2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독하더라도 외롭지는 말아야 될텐데요^^..(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더불어라면 좋겠습니다.^^))책과 더불어가 알라딘 서재잖아아요 ㅎㅎ^^

cyrus 2016-02-24 08:29   좋아요 2 | URL
맞아요. 가끔 외로우면 사람들과 가까이 다가가서 어울리는 시간을 만들어야 하죠. ^^

하양물감 2016-02-23 22: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혼자인 것을 좋아하는것과 외톨이라는건 다른데 그걸 오해하는 사람도 있구요.
아무리 혼자하는것이 좋다해도
같이 해야할 때는 해줄수도 있어야하지않을까 해요^^

cyrus 2016-02-24 08:33   좋아요 2 | URL
외톨이를 품성이 덜 된 이기적인 사람으로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면 안되겠습니다. ^^

서니데이 2016-02-23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점점 혼자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가고 있다고 하는데, 외로움도 문제가 될 수 있겠군요.
cyrus님, 좋은 밤 되세요.^^

cyrus 2016-02-24 08:33   좋아요 1 | URL
좋은 하루 보내세요. ^^

페크pek0501 2016-02-24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성격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싶어서
예술적이어서 그래, 라는 말을 할 때가 있어요. 비사교적이고 때론 신경질적이고 인간 관계에 서툰 사람이 정말 예술적으로 보일 때가 있거든요.

예술가들에겐 외톨이 기질이 있을 것 같아요...

cyrus 2016-02-24 21:31   좋아요 0 | URL
그런 면이 있어요. 폴 오스터도 글쓰기를 고독을 동반한 행위라고 말한 적이 있으니까요. 김갑수 씨는 자기만의 작업실에서 클래식을 듣는 일이 정말 좋아해서 방송 일 끝나고나면 회식 없이 바로 작업실에 간다고 합니다. 그분도 고독과 창작의 관련성을 인정했어요.

서니데이 2016-02-24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좋은밤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