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0원짜리 문고본치고는 너무 두껍군.’
올재 출판사의《시경》에 대한 첫 느낌이다. 《문심조룡》과 《시학 / 데 아니마》와 같이 올려놓으면 확실히 《시경》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된다. 《시경》의 전체 쪽수는 707쪽이다. 이틀 전에 올재 클래식스 열일곱 번째 시리즈를 소개할 때 역자 신동준 소장과 인간관계 출판사의 관계에 염려한 적이 있다. 이번 달에 인간사랑 출판사도 《시경》을 출간할 예정인데, 올재 출판사가 염가로 먼저 내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올재 출판사의《시경》에 ‘일러두기’라는 글에 출간 목적을 알게 되었다. 올재 출판사의 《시경》은 공익 목적으로 펴낸 한정판 문고본이며,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양장본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재 출판사의 문고본과 인간사랑 출판사의 양장본은 내용상 큰 차이를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가격에서 큰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재고가 동나기 전에 얼른 인터넷 교보문고로 들어가십시오, 여러분!
현재 역자 서문까지만 읽은 상태다. 주요 내용만 간추려서 정리하면 이렇다. 《시경》을 공자가 쓴 책으로 알려졌는데, 틀린 말이다. 책의 저자명에 ‘공자’를 쓸 수 없다. 공자는 3,000편의 시 중에 500여 편을 골라서 《시경》을 만들었다. 그래서 공자는 저자라기보다 편저자에 더 가깝다. 그러나 편저자가 정말로 공자가 맞는지 확실하지 않다. 공자가 《시경》 편집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맨 처음 언급한 사람이 사마천이다. 사마천의 증언을 토대로 공자가 원래의 시를 10분의 1로 산삭(刪削)했다는 일명 ‘산거설(刪去說)’이 나오게 된다. 산삭이란 불필요한 글자를 삭제하는 것을 말한다. 학자들은 사마천의 증언을 믿고, 공자가 《시경》을 만들었다고 확신했다. 산거설에 이의를 제기한 몇 몇 학자들이 있었으나 산거설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시경》을 만든 이에 대한 논란이 남아 있어서 ‘작자 미상’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중국의 학자들은 공자와 《시경》의 관계를 타당성 있게 설명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사마천의 증언을 확신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논어》에서 찾기도 한다. 《논어》‘양학’편에서 공자가 시의 중요성을 설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경》이 《서경》, 《역경》(주역)과 함께 ‘유교 3경’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유학의 관점으로 시를 이해하는 학습 방식이 하나의 전통이 되자 문제점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희의 《시경집전》은 유학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텍스트가 되었다. 그렇지만 사대부들은 《시경집전》을 과거시험 합격을 위해서 읽어야 하는 책으로 사용했다. 이들은 시를 읽는다기보다는 과거시험 합격을 기원하면서 달달 외웠다. 이런 공부 방식은 악습을 낳는다. 지금의 대학수능시험을 생각하면 된다. 수험생들은 한 문제 더 맞추려고 적지 않은 양의 한국 시를 거의 외우듯이 공부한다. 이렇다 보니 시를 읽는 기회가 줄어들고, 시구 하나하나 해부해가면서 해석하려고 한다. 알고 보면 시구에 별 의미가 없는데도 말이다. 시험문제 출제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시의 해석에 부합하는 정답을 요구한다. 문학작품을 대하는 수능시험 공부 방식은 해석의 다양성이 외면 받는다. 사대부들이 대하는 《시경집전》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주희의 《시경》 주석에 반박할 생각을 하지 않고, 무조건 외웠다. 유학자들은 주희의 해석을 흠잡을 데 없는 완전무결한 진리로 믿었다.
중국과 일본의 시경학(詩經學)은 《시경집전》에 의지하는 《시경》 해석을 폐기한 지 오래다. 오늘날의 시경학은 《시경》을 유교 경전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넘어섰다. 고대 중국의 사회구조 및 풍습을 이해할 수 있는 서정적인 민가(民家)로 분석한다. 다양한 관점의 해석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주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 소장은 김학주의 《새로 옮긴 시경》(명문당, 2010)이 구시대적인 주희의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한 텍스트로 지적한다. 신 소장은 최근 시경학의 추세가 반영된 번역본으로 을유문화사의 《시경》(정상홍 역, 2014)을 추천했다.
신 소장은 《시경》을 “사랑 타령의 유행가인 ‘뽕짝’ 연가(戀歌)”로 이해하면서 접근했다고 밝혔다. 《시경》은 악보가 없는 노랫말 모음집과 같다. 즉, 남녀 간의 애정을 소재로 만들어진 고대 중국의 가요 모음집으로 보면 된다. 그런데 ‘뽕짝’이라는 표현이 꺼림칙하다. 뽕짝은 트로트를 비하하는 의미가 있는 속어다. 《시경》의 학문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뽕짝’은 비유에 적절한 단어로 부적합하다. ‘대중가요’로 비유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 《시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같이 읽을 수 있는 책들 (신동준 소장이 ‘역자 서문’에서 소개한 책들) (링크로 연결되어 있어서 ‘클릭’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