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 국민학교에서 역사교과서 파동까지
김한종 지음 / 책과함께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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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진실은 단 하나! (명탐정 코난)

 

언제나 민족은 단 하나! (이승만)

 

언제나 국사 교과서는 단 하나! (박근혜)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악명 높은 살인마다. 이 살인마는 나그네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여독을 풀 수 있도록 친절하게 대접하는 척 한다. 살인마의 집에는 침대 하나가 놓여 있다. 나그네를 침대에 눕힌 다음, 그 사람의 신장이 침대보다 길면 칼로 신체 일부를 잘라 침대 크기에 맞추었다. 반대로 나그네의 신장이 침대보다 짧으면 몸을 늘려서 잔인하게 죽였다. 이 살인마는 크레타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기도 했던 테세우스에게 죽임을 당한다. 살인마는 자신이 나그네를 살해했던 바로 그 동일한 방식에 의해 죽는다. 자기의 기준대로 사물을 판단하고 처리하는 사람이나 그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가리킬 때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도 프로크루스테스와 그의 침대를 볼 수 있다. 요즘 이것들 때문에 난리다.

 

정부와 뉴라이트는 프로크루스테스 집단이고, 그들은 교과서포럼 대안교과서라는 괴상한 침대를 가지고 있다. 이 침대에 다양한 종류의 국사교과서를 강제로 눕혀 내용을 수정하려고 한다. 프로크루스테스 집단이 원하는 건 딱 한 가지. 국정 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국정 교과서를 만들어야 자신들의 입지를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좌편향 시각으로 기술된 내용이 있으면 삭제한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 시대를 다룬 진술이 빈약하다 싶으면 좋은 업적만 추가시킨다. 국사교과서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자르고, 억지로 늘린다. 뉴라이트는 국정 국사교과서를 만드는 일이 좌파 정권의 친북, 반미, 반재벌 인식에서 벗어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시도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김일성이 지휘한 동북항일연군 부대의 무장 항쟁을 역사적 사실로 보지 않는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익숙한 뉴라이트는 북한 지도자의 과거 업적이 남한에서 미화될 우려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사회주의자들의 항일 독립운동은 자세히 서술하는 반면, 자신들이 숭배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자신만의 절대적 원칙 혹은 지식을 정해 놓고 상대방의 생각을 자신의 그것과 일치하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태도는 상대방을 향한 배려가 없는 독선적인 횡포다.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는 프로크루스테스 집단이 만들어 놓은 침대에 맞춰진 채 여러 차례 삭제되고,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다. ‘이승만-프로크루스테스 집단’은 일민주의를 주창하면서 우리나라는 ‘홍익인간’ 등 고대 신화 정신을 이어받은 단일 민족 국가임을 강조했다. 일민주의는 민족은 어떠한 개인과 단체보다 귀중하다고 주장하는 국가주의적 성격이 농후한 이념이었다. 민주주의보다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일민주의자들은 단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이승만 정부는 일민주의를 내세워 자신들의 ‘반민주주의’를 덧칠했다. 박정희 정부는 애국심을 고취하는 국사 교과서를 만들어 한국적 민족주의, 즉 반공 정서를 더욱 강화했다. ‘박정희-프로크루스테스 집단’의 후예들은 뉴라이트로 성장하여 국사 교과서를 자신들의 침대에 눕히려고 시도한다. 그들은 역사 교사나 학자들의 의견을 무시한다. 심지어 자신들의 주장을 밀고 나가려다가 간혹 말도 안 되는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좌편향 역사 인식이 짙은 금성판 국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 수가 많으니까 전교조가 개입한 결과라고 우긴 적이 있다.

 

박근혜 정부와 뉴라이트가 결합한 프로크루스테스 집단은 과거로 회귀하고 싶어 한다. 국정 교과서 도입은 정권의 정당화를 위해 역사가 이용됐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시도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민주의 정신을 국민에게 호소하기 위해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겼다. ‘박정희-프로크루스테스 집단’은 국정 국사교과서 하나로 만들면 자유민주주의가 살고, 여러 종류 교과서로 흩어지면 자유민주주의의 존엄성이 위협받는다고 국민에게 호소한다. 뉴라이트가 그토록 이승만 대통령을 열렬히 좋아하고, 국정 국사교과서 도입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런 소모적인 논쟁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이념 대립으로 점칠 된 국사 교과서 논쟁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사 교과서 논쟁 다음으로 골치 아픈 역사 논쟁이 또 하나 있다. 보수와 진보가 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때, <환단고기>를 들고 나온 프로크루스테스 집단, 일명 ‘환빠’ 역사학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한다. 이들은 상고사 논쟁을 부추긴다. 광대한 영토를 가진 고조선을 위한 역사를 새로 만들려고 자신들의 침대인 <환단고기>에 맞춘 국사 교과서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

 

역사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재단하려는 프로크루스테스 집단은 목적 성취를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자신만이 옳고 다른 사람은 다 잘못되었다는 흑백논리의 노예들이다. 이들의 무지함을 막으려면 결국 ‘절대적 가치’로 상징하는 침대를 없애든지 아니면 프로크루스테스를 죽이는 테세우스 같은 사람이 나와야 한다. 국정 국사교과서 도입을 찬성하는 보수 세력은 ‘좌익 빨갱이 교과서 타도’를 주장한다. 여기에 맞서는 진보 세력은 그들이 독재 정권을 미화하는 나쁜 세력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진보 세력은 국사 교과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절대로 테세우스가 되어선 안 된다. 똑같은 방식으로 서로 맞서는 역사 논쟁은 ‘이념 대 이념’ 싸움으로 이어질 뿐이다. 침대를 없애야 한다. 역사를 딱 하나의 관점으로 고정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침대의 주인인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 내용을 손보아야 한단 말인가. 침대에 희생당한 국사 교과서는 피를 흘리지 않는다. 다만, 종이가 낭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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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침대를 없애자 2
    from 새빨간 활 2015-11-19 14:44 
    침대를 없애자 2 이번에 구입한 책장은 뒷면이 없다. 사진 색감을 보면 " 분홍분홍 " 한 느낌이 드는데, 놀라지 마시라 ! 아저씨 방에 벽지 색깔이 무늬 없는 오리지널 분홍색이다. 처음에는 무늬 없는 짙은 노랑(겨자색)을 원했다. " 어떤 색으로 할까요 ? " 지물포 사장이 물었다. 내가 < 겨자색 > 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피식, 웃었다. " 취향이 독특하시네요. 제가 도배만 20년이걸랑요. 아이 방을 꽃무늬 개나리 벽지로 해달라는 주문
 
 
2015-11-18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19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피북 2015-11-18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만나 읽어도 공감이 팍팍되는 글 잘 읽고 갑니다 ㅋㅁㅋ~~

cyrus 2015-11-19 17:34   좋아요 0 | URL
어제 해피북님의 생각이 저랑 비슷해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

인디언밥 2015-11-18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루크루테스.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엄청 흥미롭네요.. 저도 그런 인간이 되지 말아야겠다 싶은데, 돌아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나봐요. 에흉 잘 읽고 갑니당

cyrus 2015-11-19 17:36   좋아요 0 | URL
제가 사람 이름을 잘못 썼습니다. 어떤 분이 알려주셨는데, ‘프루크루테스’가 아니라 ‘프로크루스테스’였습니다. 그리스 사람 이름은 외워도 금방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선한 사람도 나쁜 프로크루스테스가 될 수 있습니다.

2015-11-19 0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11-19 17:40   좋아요 1 | URL
오타 사실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프로크루스테스 이야기가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 잠깐 언급된 걸 보고서 정확하게 기억할 줄 알았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었군요. 상세한 설명 덕분에 다시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간서치 2015-11-19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광장의 시대가 오길 빕니다..

살리미 2015-11-19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tbc에서 방송된 밤샘토론을 보면서, 권희영 같은 사람의 논리를 듣다보니, 정말 답이 없구나 싶더군요. 논쟁은 절대로 좁혀지지 못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침대는 견고하기만 한데, 그렇다면 정권교체 밖엔 답이 없는 걸까... ㅠㅠ
대다수의 의견이 묵살되고, 소수 의견이 다수의견으로 조작되는 현실에서 졸속 역사교과서나 만드는 무모한 일들을 굳이 하겠다는 정권을 과연 선거로 바꿀 수는 있는 것인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cyrus 2015-11-20 22:49   좋아요 0 | URL
건전한 토론으로 서로 간의 의견을 조율하는 건 참 좋은 일인데, 논리성이 결여된 사람이 자꾸 국정 교과서 반대하는 입장이 논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니 답답하고 한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