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파기의 즐거움 - 손가락 하나로 만나는 해방감
롤랜드 플리켓 지음, 박선령 옮김, 존 하이햄 그림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비염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요즘같이 선선한 날씨는 반가워하지 않는다. 콧물, 코 막힘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준다.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는 옆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소음이다. 조용한 독서실 같은 곳에서 유난히 코를 훌쩍거린다거나 코를 자주 풀면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집중력을 방해한다. 코가 막히면 코로 숨 쉬는 것이 불편하다. 특히 잠잘 때 입이 벌어져서 코를 심하게 곤다.

 

나는 비강 크기가 작은 데다가 비용 증세까지 있어서 콧속에 콧물이나 코딱지가 가득 있는 걸 싫어한다. 코가 막히면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어렸을 때 코를 자주 팠다. 무조건 집에서만. 어린 시절에 어떤 친구는 코딱지를 파다가 다른 친구에게 들키는 바람에 놀림 받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빼낸 코딱지를 눈에 잘 띄지 않은 책상 밑에 몰래 붙여놓는다. 나도 그랬었다. 지저분한 이야기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사용한 책상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데, 책상 밑에 살펴보면 굳어진 코딱지 덩어리가 있다.

 

지금부터 지저분한 이야기가 나올 예정이니 비위가 약한 분은 이 글을 끝까지 읽지 않길 바란다.

    

 

 

 

 

괴도 놈팡의 첫 번째 괴작 도서는 코 파기와 관련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모든 사람이 눈치 없이 자유롭게 코를 팔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코 파기의 즐거움(씨앗을뿌리는사람, 2005)이라는 황당한 책을 펴내게 된다. 이 책은 황당한 저자 소개로 시작한다. 책을 펼치기 전에 저자 이력을 꼭 확인해보시라.

 

 

저자: 롤랜드 플리켓

 

1934년에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성 코털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로스앤젤레스로 옮겨가, 코 파기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소낭><점액>을 펴내게 되는데, 이는 그 때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코털의 위치를 사상 처음으로 비과학(鼻科學) 주요 주제의 첫머리로 끌어올린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76년에는 <머나먼 콧날>을 출간했고, 1979년에 영국의 의학 잡지 란셋'면봉-어디로 갔나?'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코 풀기에 대한 고찰을 담은 연구 논문 '후루룩, 카악, '1989년에 나왔다. 모교의 코 고고학과 명예 교수이자, 2006 현재 옥스퍼드 코파막파 대학에 특별 연구원으로 초빙된 상태다. 결혼해서 아들을 한 명 두었는데 그 또한 열성적인 코 파기 애호가이다.

    

 

주황색 겉표지를 걷어내면 예사롭지 않은 그림이 있는 속표지를 만난다. 오른쪽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은 여자의 이름은 모나리자가 아니라 코나리자. 저자는 코 파기의 역사를 소개한다. 기원전 사람들은 옆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이 실컷 코를 팔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은 코파기 행위를 상형문자로 기록했다. 그러나 코 파기가 금기 행위로 인식하게 한 결정적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의 웨섹스 지방을 통치하던 해럴드 왕은 코를 자주 파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코 파는 습관을 권장하기도 했다. 1066년 노르망디 공국의 정복왕 윌리엄과 맞붙은 헤이스팅스 전투 중에 해럴드 왕은 전사하고 말았는데, 그의 죽음이 황당하다. 적군과 싸우는 도중에 해럴드 왕은 코 파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자신에게 날아오는 적의 화살을 피하지 못해 그 자리에 죽고 말았다. 해럴드 왕의 죽음으로 인해 노르망디 공국은 승리했고, 윌리엄 왕이 영국 왕위를 차지한다. 윌리엄 1세가 되어 노르만 왕조를 연 그는 과거 해럴드 왕이 내세운 정책을 모두 폐지했다. 공공장소에서 코 파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선포했다. 이 법을 어기는 백성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 이후로 영국인들은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숨길 수 있는 실내에서 코를 파게 되었고, 다수 사람이 모여 있는 공공장소에서 코를 파는 행위를 삼갔다.

 

 

 

 

 

 

여기까지 들으면 코 파기 행위가 억압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역사라고 믿게 되겠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전부 이다. 코 파기의 역사를 다룬 책의 1장은 으로 시작해서 으로 끝난다.코 파기 애호가가 패러디 방식으로 만들어 낸 가짜 역사다. 저자는 우스꽝스러운 가짜 역사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 행위인 코 파기가 허위의식으로 인해 불결한 행위로 여겨지는 현실을 비판한다.

    

 

 

 

 

 

2장부터 코 파기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코 파기에 관한 특이한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질문 못지않게 저자의 답변도 특이하다. 코 파기의 기본적인 기술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뭉쳐서 튕기기. 코딱지를 둥그스름한 알갱이처럼 만들어서 튕기면 된다. 아니면 코딱지를 먹어도 된다. 코를 파려면 엄지, 검지만 있으면 된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코를 파기 시작했으면 특별한 훈련 없이 자연스럽게 코 파기 능력이 숙달된다고 주장한다. 다만, 코가 붉게 부어오를 정도로 과도하게 코를 파는 행위를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타인의 코를 파는 행동을 금지한다. 그나마 이 내용이 정상적이다.

 

황당한 질문과 답변을 몇 개 골라봤다.

    

 

Q. 엄마에게 코 파는 법을 물어봐도 될까?

A. 귀싸대기를 맞고 싶지 않다면 참는 편이 낫다.

 

Q. 어째서 그런가?

A. 대부분의 여성이 그렇듯 여러분의 어머니도 자기가 코를 판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59)

 

Q. 코를 파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은 언제인가?

사실 하루 중 어느 때나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앞에 있을 때가 가장 좋다. 점심시간이나 차 마시는 시간, TV 시청 도중이 코 파기 제일 좋은 때이며 교실, 버스, 기차, 지하철 안이나 사무실 등이 코딱지를 튕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볼 수 있다. 또 공식적인 만찬이나 환영회, 임관식, 무도회 등은 그야말로 코를 파기에 가장 완벽한 기회라고 볼 수 있다.

 

(60)

 

Q. 코 파기를 용인하는 조직들 중에 가입할 만한 곳이 있나?

A. 다음 단체들은 단순히 코 파기를 용인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국회, 덕수궁 보존 협회, 남산도서관 학생회, 한강고수부지 관리협회

 

(63)

 

 

국회를 제외한 나머지 조직명은 번역자가 국내 독자의 웃음 코드를 맞추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국내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조직명으로 바꿨다. 외국 만화를 우리나라 정서에 맞도록 번역할 때 많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현지화 또는 로컬라이징(Localizing)’이라고 한다. 외국 단어를 억지로 한국 언어에 맞추다 보면 어색한 느낌이 날 때가 있다. 그 예가 바로 남산도서관 학생회.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에 학생 독서회는 있어도, 학생회는 없다. 학생회는 학교 내에 만들어지는 학생들의 모임이다 

 

Q. 누군가 코를 파지 말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할 수 있을까?

A. 우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사람들에게 코 파기 장면을 목격 당했다면상황을 여러분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다음과 같이 대꾸하면 된다.

 

이 멋진 색깔/크기/모양을 좀 봐!”

조용히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내 코딱지를 달라고 할 거야.”

넌 코가 끊임없이 근질거려서 계속 만지고 싶어지는 그런 날 없어?”

이렇게 나서주다니 고맙기도 해라. 안 그래도 내 코딱지는 다 떨어진 참이었어.”

    

 

 

 

 

 

 

저자는 독자가 코 파는 기술을 이해할 수 있게 글로 설명하는 대신 간단한 그림으로 만들었다. ‘코르시카식 찌르기는 프랑스의 코폴레옹(저자는 코를 파는 나폴레옹을 코폴레옹이라고 우습게 패러디했다)’이 선호하는 코 파기 방식이다. 참고로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코 파는 기술은 맴맴 하강법이다. 손가락을 소용돌이처럼 돌려서 코딱지를 빼낸다. 사실 맴맴 하강법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자주 하는 방식이다. 특이하게 코를 파고 싶다면 삼지창 공략법을 추천한다.

 

다음부터 코를 파다가 사랑하는 이성에게 들기면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해보라. “넌 코가 끊임없이 근질거려서 계속 만지고 싶어지는 그런 날 없어?” 이성이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서 당신의 코 파기를 사랑해주는 진정한 반려자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이성이 코를 만지고 싶어 하는 날이 있다고 인정하면 헤어지지말고 끝까지 잡아라. 당신의 코딱지를 사랑해줄 수 있는 여자다. 반대로 당신의 질문을 듣고 이성이 불쾌한 표정을 지은 채 당신의 뺨을 날린다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사람을 만나 보시길. 그리고 코 파는 모습을 연인에게 들키지 않도록 항상 주위를 잘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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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1-04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연필보다 더 특이한데요,^^;
cyrus님, 편안한 밤 되세요^^

cyrus 2015-11-05 18:32   좋아요 0 | URL
비밀독서단에 소개된 연필 책은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코 파기 책이 더 특이합니다. 정말 읽고 나면 황당한 웃음이 나올 겁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5-11-04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내, 이런 책도 있었군요^^
쉬운듯 흥미를 끄는 내용은 모두 cyrus님 리뷰 덕분인 것 같습니다. ^^

cyrus 2015-11-05 18:33   좋아요 0 | URL
종이와 잉크가 아까운 책이었습니다. 빨리 절판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책의 원서도 절판되었더라고요. ㅎㅎㅎ

yureka01 2015-11-04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넵 큰거 나오면 시원 하거든요 ㅎㅎㅎㅎ재밌는 책입니다..ㅎ

cyrus 2015-11-05 18:34   좋아요 1 | URL
큰 코딱지를 ‘왕건’이라고 부릅니다. ㅎㅎㅎ

인디언밥 2015-11-0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악 배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진지하게 읽으면서 ˝헉 진짜야?! 사형?!˝ 이랬는데, 바로 밑에 뻥이라고 ㅋㅋㅋㅋㅋ
그리고 그림 엄청 웃기네욬ㅋㅋㅋㅋㅋ 코 후비는 사람 표정이 심각해서 더 웃긴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5-11-05 18:35   좋아요 0 | URL
글과 그림 모두 특이한 책입니다. 다 읽고 나면 헛웃음이 나옵니다. ㅎㅎㅎ

transient-guest 2015-11-05 0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코파기를...시도때도 없이...즐긴답니다..

cyrus 2015-11-05 18:36   좋아요 0 | URL
솔직하게 고백하실 줄이야... ㅎㅎㅎ

stella.K 2015-11-05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 파기나 귀 파기가 묘하게도 쾌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야.
근데 귀 파기는 몰라도 코 파기는 정말 사람들 앞에서는 잘 못하겠더라.
근데 초등학교 때 대놓고 코를 파는 아이들이 몇있었어.
그들의 대범함과 자유로움이 혐오스러우면서도 부럽더라구.ㅋㅋ

cyrus 2015-11-05 18:38   좋아요 0 | URL
아이들은 순진해서 코를 파는 것과 코딱지 먹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부모님이 그걸 더러운 행위로 가르치는 순간, 아이들은 혼자서 몰래 코를 파요. 저도 코딱지 먹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