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자크 『사라진느』

(Sarrasine, <인간 희극> 제1부 풍속 연구의 ‘파리생활 장면’에 수록)

 

* 발자크 『아듀』 (Adieux, <인간 희극> 제2부 '철학 연구'에 수록)

 

 

 

체호프는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은 언제나 낭만적 수식으로 가득 찬다. 수필가인 故 장영희 교수는 문학의 주제가 한 마디로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가?’에 귀착된다고 했다. 사랑이 없는 인생이야말로 ‘팥 없는 찐빵’이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다. 과연 세상의 모든 사랑이 아름다울까? “죽을 만큼 사랑해! 영원히.” 대중가요에 가끔 이런 노랫말이 들어 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이 말에 동의하는가. 아주 위험한 말이다. 사랑에 중독된 사람들은 말한다. 나 자신보다 그를 더 사랑한다고, 함께 있음으로써 매일매일 벼랑에서 떨어지는 고통을 겪을지라도 결코 헤어질 수 없다고. 정말 짜릿한 사랑의 속삭임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사랑을 받는 상대는 행복해하는 것이 아니고, 고통스러워하거나 혹은 점점 더 나빠질 뿐이다. 그들은 연인의 집착 때문에 숨 막혀 한다. 결국은 ‘사랑’을 무기로 자신도 상대방도 괴롭게 만든다. 사랑은 동전의 양면처럼 증오와 짝을 이룬다. 끝없을 것 같았던 호감과 관심은 점점 통제나 구속으로 변질하며 집착과 폭력으로 이어진다.

 

조각에만 정열을 바치던 사라진느는 로마에서 우연히 만난 미모의 가수 잠비넬라를 사랑한다. 사라진느의 눈에는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잠비넬라의 모습이 마치 피그말리온의 아름다운 조각상처럼 보인다. 가수의 매력을 눈앞에서 가까이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라진느는 스스로 무서운 결심을 한다. ‘그녀의 사랑을 받을 것, 아니면 죽어버릴 것.’ 일단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접근해보지만, 잠비넬라는 조각가의 구애를 완강히 거부한다. 포기를 모르는 조각가는 강제로 그녀에게 입맞춤하면서까지 자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라고 강요한다. 무례하게 구애하는 사라진느를 멀리하기 위해서 잠비넬라는 그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사실 잠비넬라는 여자가 아니라 거세된 남자였다. 사라진느는 잠비넬라의 고백을 처음에는 믿지 않는다. 여전히 조각가는 잠비넬라가 여자로 보였다. 결국에 사라진느는 말도 안 되는 진실을 깨닫게 되자 가수를 납치하여 죽이려고 한다. 사라진느는 잠비넬라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었지만,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자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여 사랑의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한다. 자신은 잠비넬라를 보고 싶고 입맞춤을 하고 싶은데 자기 없이도 잘 사는 가수의 모습에 질투심을 느낀다. 약간 스토커 기질을 보이기도 한다. 집착과 사랑을 혼동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유형이다.

 

『아듀』는 슬프게 끝나는 사랑 이야기이지만, 여기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도 과도한 애정 집착을 드러낸다. 전쟁터에서 생이별 한 필립과 스테파니는 몇 십 년 뒤에 극적으로 재회하게 되지만, 스테파니는 필립을 사랑했던 기억을 잃어버렸고, 설상가상으로 실어증에 걸려 반쯤 미친 여자가 되었다. 필립은 스테파니가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려고 노력한다.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녀가 좋아하는 사탕을 건네주기도 한다. 필립은 스테파니와 가까이 지낸다면 언젠가는 스테파니도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필립은 한 여자를 끝까지 사랑하는 멋진 남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희망적 기대가 현실에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권총으로 그녀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조카딸 스테파니가 위험에 처한 사실을 알게 된 노인은 다급하게 그녀를 껴안고, 필립을 저지한다. 필립은 이 극단적 행동이 자신과 그녀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노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스테파니를 껴안으면서 필립을 저주한다.

 

“자기가 힘들다고 너를 죽이려 하다니, 몹쓸 녀석! 저놈은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 그래도 용서해야 되겠니? 용서해서는 안 되겠지? 저놈은 미쳤어. 제 정신이 아니야.” (《사랑과 행복의 비밀》『아듀』 중에서, 141쪽)

 

인간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인간답게 또는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이다.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때때로 정신적인 아픔이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연인 간 다툼이나 논쟁은 서로 알아가는 한 과정이고, 어찌 보면 당연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애를 하면서 육체적인 아픔이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상대방을 위협하여 불안감과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을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서로를 구속하면서 상대방의 모든 것을 공유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집착 상태를 사랑으로 착각하기 쉽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면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과연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잔인하게 제압하고도 사랑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서 확인받아야만 직성이 풀린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애정 결핍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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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5-08-06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최근에 읽은 <에밀리에게 장미를>이라는 단편의 남자편이네요.^^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사랑이라 굳게 믿고, 이렇게 덤벼드는 사람은 상대에게 공포감을 줄 뿐인데요, 그 사람이 ˝사랑해˝하면서 달려들면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
차라리, ˝네가 미워!˝, ˝너를 저주해!˝가 더 무섭지 않을까 해요.

아이들 학교에 갔는데, 성폭력/성희롱 예방 포스터에 예로 이런게 나왔더라구요.
˝데이트 하기 싫다는데 자꾸 데이트 신청하는 것˝
성희롱과 데이트 신청, 애정과 집착, 사랑과 강요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요즘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cyrus님.
여긴 더워요, 아침인데... 몇일 그러다 말겠죠? (그래야되는데...) ㅎㅎㅎ

cyrus 2015-08-06 19:58   좋아요 0 | URL
요즘 여자들 입장에서는 좋은 남자 만나기가 힘들어졌어요. 멀쩡하게 생긴 남자도 사귀어보면 폭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제가 사는 지역이 대구입니다. 아침 9시가 되기 전부터 햇살이 강합니다. 너무 덥습니다. ㅎㅎㅎ

붉은돼지 2015-08-06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라진느>라는 책도 있군요... 제목이 재미있습니다. 마치 사라진 녀 같은...ㅎㅎㅎㅎ

cyrus 2015-08-06 19:59   좋아요 0 | URL
원어민이 발음하면 `사라센`일 겁니다. 사실 저도 `사라진느`라는 표기가 마음에 안 듭니다. ㅎㅎㅎ

stella.K 2015-08-06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처럼 발자크의 소설을 보네.
그렇지 않아도 <인간희극>이 궁금하더군.
다른 작가의 책은 요즘 전집으로 잘도 뽑아내더만
왜 발자크는 그렇게 안하는지 몰라.
내가 잘 모르고 있는 건가? 발자크 전집 있다는 소리 들어 봤든?
암튼 이 소설들 읽어보고 싶다.^^

cyrus 2015-08-06 20:06   좋아요 0 | URL
<인간 희극>에 포함된 장편, 단편만 해도 총 91편이라고 하더군요. 프랑스에서 나온 <인간 희극> 전집이 12권이에요. 분량이 엄청나요. 국내 발자크 전문 연구가가 여러 명 모여서 번역해야 할걸요. 소설의 배경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낯선데다가 장황하게 묘사하는 문장이 지루해서 발자크 소설이 인기가 없는 것 같아요. ^^

페크pek0501 2015-08-06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이야기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사랑이란?
제가 생각할 때, 상대방이 웃게 만드는 것, 이라고 봐요.
사랑이란?
제가 생각할 때, 상대방을 힘들지 않게 만들겠다는 마음, 이라고 봐요.
예를 들면, 기혼 여성을 사랑했던 남자가,
여자가 이혼을 해야만 자기한테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인데
그 남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 ˝당신이 힘든 것은 싫으니 이혼하지 마세요.˝
이것이 사랑이라고 봅니다.

cyrus 2015-08-06 20:10   좋아요 0 | URL
페크님이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가 제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데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사랑을 해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