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데 고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19~1823년)

 

 

 

사투르누스(Saturnus)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농경의 신이다. 라틴어 이름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씨앗을 뿌리는 자’다. 그는 아들 제우스와의 싸움에 패배하여 이탈리아로 피신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농업기술을 보급했다. 사투르누스는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Kronos)에 해당한다. 크로노스는 시간의 신이다. 자신의 누이이자 대지의 여신 레아는 크로노스와 결혼하여 헤라, 포세이돈, 데메테르, 하데스, 헤스티아를 낳았다. 그러나 크로노스는 5명의 자식에게 살해될 것이 두려워 그들을 잡아먹는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다. 스페인의 화가 고야는 자식들을 뜯어 먹는 크로노스의 광기 어린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크로노스는 시간을 지배하는 신답게 인간의 소중한 시간도 집어삼킨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현대판 ‘사투르누스/크로노스’다. 자녀들의 학업을 위해서라면 경제적, 심리적으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 무엇보다 ‘자식농사’만큼 중요한 농사가 없다.명문대 진학 여부가 '자식농사'의 성패로 인식한다. 부모는 자신들이 직접 뿌린 소중한 씨앗 같은 자식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한다. 원하는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입시교육 열기에는 대학 졸업장이 더 높은 임금과 지위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와 명문대에 입학하기만 하면 사회적 성공이 보장될 것이라는 부모의 기대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과외를 뱅뱅 돌리는 부모들 때문에 자녀들의 학원순례행렬은 늦은 밤까지 이어지고, 대학입시만을 위해 유치원 때부터 조련 당한다. 부모들은 미래를 담보로 자녀들에게 엄청난 양의 공부를 강요한다. 교육열에 눈이 먼 부모는 아이들에게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을 빼앗아 집어삼킨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선택할 권리마저 박탈한다.

 

 

 

 

 

 

 

 

 

 

 

 

 

 

 

 

 

초등학생 이순영 양이 쓴 동시집 《솔로 강아지》(어린이가문비, 2015)가 잔혹성 논란으로 인해 전량 폐기되었다. 시집에 수록된 ‘학원 가기 싫은 날’은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이빨을 다 뽑아 버려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
눈물을 흘리면 핥아 먹어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가장 고통스럽게

 

 

이 시 옆에 있는 삽화는 자극적이다. 죽은 엄마 보이는 여성 옆에 아이는 심장을 집어 든 채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독자를 바라본다. 아이 주변에 피가 낭자하다. 해당 출판사는 이 양의 동시집을 이렇게 소개했다. (개인적으로 논란이 되는 삽화가 잔인하다고 생각하기에 보고 싶은 분을 위해서 따로 '링크'를 걸어두겠다. 북플이 아닌 알라딘 서재로 로그인해서 '링크'라고 적힌 단어를 클릭하면 삽화를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거칠게 쏟아내기도 하는데 시적 예술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자신이 체험한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탄복과 함께 현실의 비정함에 대한 탄식들을 시로 쓰고 있다. 이것들은 어린이가 느끼는 정직한 반응으로서 어른에게도 성찰의 여운을 남긴다.

 

 

문제의 시와 삽화를 본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 허용 수위를 넘어섰다고 해당 출판사를 향해 비난했다. 자녀가 있는 일부 학부모들은 이 책을 아이들에게 절대로 읽히고 싶지 않다며 분노했다. 반면 학생들은 삽화가 무서워도 시의 내용에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SNS에서는 출판사의 동시집 폐기 처분 결정에 대해 설왕설래하고 있다. 동시집의 삽화와 이 양의 문장 표현력이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적절하지 않으므로 폐기 처분에 찬성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출판사의 폐기 처분 결정을 이 양의 창작 욕구를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부당한 검열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잔혹한 느낌을 주는 동시를 쓴 이 양의 정신 상태를 걱정하기도 했다. 이 양을 ‘사이코패스’라고 맹렬하게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기서 동시집 폐기 처분이 표현의 자유 범위와 관련하여 옳은 결정인지 나쁜 결정인지 내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보류하겠다. 정답 없는 문제를 둘러싸고 서로 옳다 그르다고 싸우다 보면 이 문제의 큰 논점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진짜 논점은 이 양이 잔혹한 시를 쓰게 만든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양을 ‘사이코패스’라고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이 양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폭력성을 숨김없이 시로 표출하게 만든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 왜 이 양은 동심을 파괴하면서까지 고어 영화의 한 장면 떠올리는 시를 써야만 했을까?

 

성적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경쟁 위주의 입시교육은 이 양 같은 아이들의 마음을 멍들게 했다. 폭력의 기본속성은 경쟁을 유도하는 강제적 교육문화에 있다. 아이들은 협동적인 사회 구성원의 책무를 배우기 전에 경쟁의 치열함을 먼저 배우고 있다. 경쟁과 입시지옥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아이들은 패배감과 좌절감을 떨쳐내지 못해 자신의 마음속에 폭력의 씨앗을 품는다. 입시교육제도의 올가미에 걸린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하고 있다. 학습 일정을 관리하는 담당 선생님이 되어 24시간 아이의 일상을 간섭하고 공부하라고 지시만 내린다. 부모의 강요에 계속 순응한다면 다행이지만, 이를 장기간 내버려두면 부모에게 반기를 들고 일탈에 빠질 수 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과도한 관심이 아이의 머릿속에 부모나 교육 현실에 더 반항적이고 적대적인 생각을 키운다. 불행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  《식인문화의 수수께끼》 한스 아스케나시 / 청하 (1995년, 절판)

 

 

옛날 티베트인이나 호주의 부족은 부모의 시체를 먹는 식인 풍습이 있었다. 효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이들의 식인 풍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부모를 먹는 식인 풍습을 반인륜적이라고 비난해도 그들은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에 먹는다고 말한다. 부모와 자신을 일체화하는 의미에서 식인 풍습을 지키는 부족이 있다면, 반대로 사회적 처벌의 수단으로 식인행위를 하는 부족도 있다. 콩고의 카탕가 족은 죄인의 심장을 먹는다. 이들은 범죄를 저지른 것은 손이 아니라 심장이라고 생각했다. 솔로몬 군도에서는 적의 시체를 먹는 것이 복수에 걸맞은 행위로 여겼다.

 

‘학원 가기 싫은 날’은 입시교육에 지친 아이들의 적대심과 폭력성이 투영된 가장 잔인하면서도 서글픈 목소리다. 자식을 조종하는 부모는 아이들의 욕구에 맞추기보다는 자신들이 정해놓은 길을 강요하기 십상이다. 자식들에게 절대자로 군림한다. 자식이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너 잘 되라는 마음에서 공부를 시키는 거야”라고 말한다. 부모들은 그것이 ‘좋은 부모’로서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억눌려야만 했던 아이들은 자유를 억압하고 경쟁을 강요하는 부모를 무서워한다.

 

 

친구들과 내기를 했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말하기

 

티라노사우르스
지네
귀신, 천둥, 주사

 

내가 뭐라고 말했냐면
엄마
그러자 모두들 다같이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엄마라는 말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순영,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아이는 불만을 표출하는 데 그치는 반항심만으로 무서운 부모를 설득하지 못한다. 부모는 아이의 태도를 사춘기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무심코 넘길 뿐이다. 부모의 무관심과 강요는 주변 환경에 대한 아이들의 적대심을 키운다. 제우스는 자신을 잡아먹을 뻔한 아버지 크로노스를 공격하는 데 성공한다. 자신이 창조한 것마저 파괴하는 아버지의 광기 어린 욕심은 자식이 아버지를 기습하고 쓰러뜨리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부모 욕심은 자식 농사뿐만 아니라 자식 인생마저 망쳐버린다. 이 양의 동시집을 자기 자식들에게 보여줘선 안 되는 불온서적이라고 발끈하는 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혹시 당신도 자녀의 소중한 자유를 집어삼켜 자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치면서까지 자식 농사를 하는 '사투르누스/크로노스'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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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5-06 2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모의 억압이 애들을 자살로 내모는 폭력임은 인지하지못하면서, 아이의 시가 본인들을 대상으로 잔인한 표현좀 썼다고 길길이 날뛰다니...정말 수준낮네요.
이 동시가 비극이 되는 순간은 잔인한 시구에 있는게 아니라 저런 수준낮은 불관용으로 반응하는 어른들이 입을 여는 순간입니다.

cyrus 2015-05-06 22:41   좋아요 0 | URL
이런 시를 어른들이 보면 양심에 찔려야 할 텐데 아이들의 고통을 모를 정도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무뎌진 것 같습니다. 비극의 원인이 우리 어른들한테 있는데 말이죠.

2015-05-06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7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7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달 무슨 달 쟁반 위의 둥근 달... 뭐 이렇게 달달하게 써야 어른에게 칭창을 받겠군요.
위 시는 어른의 기대를 져버렸기 때문에 논란이 된 것 같습니다.
어떤 아이가 시를 썼는데 이런 내용이더라고요.

우리는 항상 태극기를 보면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데
태극기는 건방지게 인사를 한 적 없다

뭐. 이런 내용, 다시는 태극기에게 인사 안 할래... 요거거든요.
어른 기대에 맞춰 달달한 동시를쓰려는 아이보다는 차라리 이런 솔직한 시가
저는 더 낫다고 보여집니다. 저 시는 아마 내면의 반영일 겁니다.
제 조카도 보면 알지만 아... 정말 지옥입니다.
기숙사 학교인데 아침 6시에 기상 기숙사 숙소로 가는 시간은 새벽 1시....
여기서 끝이냐. 다시 밀린 숙제 공부... 이게 지옥이죠..

cyrus 2015-05-07 17:54   좋아요 0 | URL
저도 수능 세대를 겪었지만, 요즘 아이들이 저보다 더 고생하고 있어요. 이렇다 보니 아이들이 느껴야 할 정신적 압박감도 상당히 크고요. 이걸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있어요. 공부 외에는 하지 말라는 게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책탐 2015-05-07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하겠지만 요즘 아이들은 참 힘들어 보입니다. 어른이 받는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을지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진 모르겠지만 덜하진 않겠죠. 아이의 모든 모습은 잘못됐든 잘컸든 어른의 책임이 아닌가 싶네요.

cyrus 2015-05-07 17:5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이번 동시집 논란을 통해서 어른들이 반성해야 되는데. 이것 또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히고 말 겁니다.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들의 폭력성이 또 다시 화두가 되겠죠.

fledgling 2015-05-07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작 아무리 이런 비판적인 글을 보더라도 아랑곳하지않고 계속 고집하는 부모가 있죠. 어른들은 죽지않을 만큼만 고생시키려는 것 같은데 그러다 진짜 죽어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는 것...

cyrus 2015-05-07 17:58   좋아요 0 | URL
이런 유형의 문제가 과거에도 반복했는데 입시제도의 폐해를 고치지 않는 이상 반성하는 부모를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교육제도의 폐해를 알고 있어도 거대한 제도가 작동되는 현실을 거스를 수 없는 점이 문제입니다.

올리브 2015-05-0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것들은 어린이가 느끼는 정직한 반응으로서 어른에게도 성찰의 여운을 남긴다.>????

제발 교육현실의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 모두들 먼저 생각을 해보자. 어린이가 쓴 시를 출판사가 부모의 동의없이 마음대로 출판할 수 있었는지를. 이것부터 앞뒤가 맞지않는 상황아닌가.
저 시를 쓴 것이 정말 저 아이의 자기 부모에 대한 정직한 반응이라면, 아이를 저지경이 되도록 몰아붙인 부모가, 자기를 잡아먹겠다는 시를 잘썼다고 출판하자는데 동의했다는게 말이 된단 말인가? 아니면, 본인의 경험이 아니라면 절박하지도 않은데 저런 극악한 표현을 하는 것이 정상인가?

정황상 절대 이건 아이의 머리에서 나온 순수한 작품일 수가 없다. (순수한 작품이라도 문제지만) 자기 자식 이름 팔아서 선정적 이슈 장사로 돈에 눈이 먼 부모와 출판사의 합작품일 뿐이다.

cyrus 2015-05-07 18:07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출판사의 서평 내용이나 문제의 삽화 그리고 이 동시집 출간을 허락한 부모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저도 처음에 올리브님처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선정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을 알면서도 ‘예술’로 포장하여 장사하는 출판사와 이를 동의해준 부모가 나빴어요. ‘학원 가기 싫은 날’은 동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저는 이 시가 예술적으로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 글에서 동시집이 예술성 있다는 식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교육제도에 지쳐서 극도의 불만을 가지도록 만든 부추기는 어른의 방관적 태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stella.K 2015-05-07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 방송에서 나와 나도 뭔가 좀 놀랐다.
그 아이 엄마가 책 전량 폐기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냈다고 하더군.
아이의 문제가 된 시 한편 가지고 전량을 폐기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맞는 얘기긴 하지. 하지만 방송에선 시 한 편만 문제가 아니라 7,8편 정도
문제가 된다고 하더군.
부모에 대한 적대감은 누구나 다 있는 것 같긴해.
문제는 그걸 솔직히 표현한 것과 표현하지 못한 것의 차이일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솔직히 시가 좀 으시시 한 것도 사실이네.
출판 보호 협횐지 뭔지 하는 기관에선 어린이 출판물은 심의 대상이 아니라
이건 출판사가 알아서 걸러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참 거시기 하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는지...

cyrus 2015-05-07 18:14   좋아요 1 | URL
논란의 문제가 복잡하게 흘러가는군요. 저는 아이 엄마의 반응에 대해서 자세히 확인하지 못해서 엄마의 가처분 신청이 옳은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판단하기 어렵네요. 그래도 엄마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아요. ‘학원 가기 싫은 날’에서 드러난 아이의 심리 상태를 보고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가처분 신청이 아이의 입장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