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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학 도서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신해철의 노래 한 곡 편안히 듣고 가셔도 좋습니다.
Scene #1 우리는 어떤 경제학을 입고 먹고 마시는가
여기는 서울 XX동의 경제학 바(Bar) ‘Economic zone’. 경제학의 ‘집’이 아니라 ‘바’라니 어찌 발길이 멈춰지지 않겠는가. 지금도 유시민이라는 사람이 운영하고 있는 ‘경제학 카페’보다 더 좋아 보인다. 호기심을 참지 못해 가게 문을 활짝 열어 본다. Economic zone은 편안하게 음악과 술을 즐기며 취향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특히 경제학파 칵테일이 인기 주류 메뉴이다. 경제학을 공부하기 싫고, 경제에 관해서 잘 모르는 손님들을 위해서 Economic zone의 장하준 매니저가 칵테일을 추천한다. 어려운 경제학 앞에서 입맛만 쩍쩍 다시는 손님도 이 경제학 바 매니저가 권하는 칵테일을 부담 없이 홀짝일 수 있다. 칵테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술과 음료는 다음과 같다.
A : 오스트리아 학파, B: 행동주의 학파, C: 고전주의 학파, D: 개발주의 학파, I: 제도학파, K: 케인스학파, M: 마르크스 학파, N: 신고전주의 학파, S: 슘페터 학파
경제학파 칵테일 한두 잔만으로도 밤새 혼자 또는 연인이나 친구, 동료들과 속내를 드러내 놓고 경제에 관해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목에 넥타이가 걸려 있는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 Economic zone을 많이 찾는다. 대화에 열 올리는 이도 있고, 옆으로 앞으로 계속 눈빛을 보내며 탐색전을 하는 이도 있다. 사람 구경하며 그 시선을 즐기는 이도 있다.
Economic zone에서 손님들이 많이 찾는 칵테일은 ‘CAN’과 ‘NDK’다. CAN 칵테일은 자유시장 옹호론자들이 좋아한다. Economic zone에서 일하는 수석 바텐더 애덤 스미스는 이곳에서 경력이 가장 많고, 잔뼈가 굵다. 애덤 스미스의 장기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으로 칵테일을 만드는 것이다. 스미스가 아무 손도 안 대고 가만히 서 있어도 칵테일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능력 좋은 동료 바텐더나 손님이 자신의 칵테일 제조에 끼어들거나 왈가왈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NDK 칵테일은 케인스 바텐더가 만든 대표적인 음료이다. 1933년에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NDK 칵테일 한 모금 마시고 난 후부터 뉴딜 정책(New Deal Policy)을 폈다는 일화가 알려지면서 CAN 칵테일만큼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스미스와 케인스, 이 두 바텐더가 만든 칵테일은 판매량 순위 1, 2위를 다투고 있다. 1933년을 기점으로 NDK 칵테일은 오랫동안 1위로 군림하던 CAN 칵테일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는 CAN 칵테일이 다시 판매량 1위로 뛰어올랐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총리가 즐겨 마셨고, 레이건 대통령은 CAN 칵테일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머지 애덤 스미스 바텐더의 얼굴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어 스미스 바텐더 열렬한 팬임을 자처했다.
이 두 가지 종류의 칵테일 말고도 딱 한 종류만 즐겨 마시는 손님도 있다. 열심히 일을 하고나서 꽤 늦은 밤에 Economic zone을 찾는 노동자들은 마르크스 칵테일만 마신다. 덥수룩한 수염을 자랑하는 마르크스가 만들었고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가끔 그의 친구 엥겔스가 칵테일을 만드는 마르크스를 옆에서 도와주기도 한다. 처음에 나왔을 당시만 해도 마르크스 칵테일은 맛과 향이 좋기로 유명했다. 특히 부르주아만 찾는 고급 칵테일 시장에 차별을 두어 가난한 노동자들도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을 선보인 점에서 큰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 한때 애덤 스미스의 칵테일 판매량과 맞먹을 정도로 많이 팔렸던 시절도 있었다. 소련 정권이 독한 마르크스 칵테일을 보드카처럼 마셔댔다. 그런데 1991년에 마르크스 칵테일의 주 고객이었던 소련이 망하면서 칵테일의 인기가 한순간에 추락했다. 칵테일을 지나치게 과음한 탓에 국가의 건강이 피폐해지고 말았다.
현재 중국은 마르크스 칵테일과 CAN 칵테일을 3:1 비율로 조합해서 마시고 있으며 쿠바는 여전히 마르크스 칵테일을 찾고 있다. 반면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째가 짝퉁 마르크스 칵테일을 불법으로 제조하고 있다. 제조법이 순 엉터리인 데다가 맛도 엉망이다. 게다가 이 칵테일은 이름부터가 상당히 위협적이라서 김 씨 일가만 좋아했을 뿐 누구도 마시고 싶어 하지 않는다. ‘Nuclear bomb’,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폭탄주다.
지금까지 Economic zone에서 마실 수 있는 경제학파 칵테일들과 이를 즐겨 마시는 손님들을 소개했다.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다. 경제에서 비롯된 사회의 질병을 치유하려면 내 몸에 맞는 경제학파 칵테일을 마시면 좋다. 경기 불황 스트레스로 인해 잃어버린 입맛도 찾을 수 있고, 경기를 회복시킬 수도 있다. 당신은 Economic zone에서 어떤 경제학파 칵테일을 입고, 먹고, 마시는가.
Scene #2 토론하는 사람들, 목소리만 높여서 얘기하네
Economic zone에서 맛 좋은 칵테일을 고를 때 유의할 점이 있다. 장하준 매니저가 경제학파 칵테일을 처음 맛보는 손님들을 위해 알려주는 팁이니, 종이에 받아 적으시길. 일단 바텐더가 권하는 칵테일을 무조건 맹신해선 안 되며 너무 많이 마시지 말 것.
Economic zone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는데 CAN 칵테일만 마시는 자유시장주의자(우파) 손님과 NDK 칵테일과 마르크스 칵테일을 마시는 시장개입주의자(좌파) 손님들끼리 서로 싸우는 것이다. 어떤 경제학파 칵테일이 가장 좋은지 토론을 해보지만 목소리가 점점 높여질수록 밥그릇 싸움으로 변한다. 싸움판에 정치인들도 팔 걷어붙이면서 나서고, 애덤 스미스와 케인스 바텐더가 손님 싸움에 부채질하고 있다.
두 손님은 성격이 확연히 다를뿐더러 경제를 바라보는 방식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자유시장주의자는 애덤 스미스의 생각을 고수한다. 시장을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작동하고, 자유로운 생산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시장개입주의자들의 반박에 맞서기 위해 내세우는 것이 낙수효과다. 국가가 규제하지 않는 시장은 대기업 및 부유층의 소득이 증대되고, 더 많은 투자와 소비가 이루어져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하고 저소득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논리다. 그러나 낙수효과가 현실성 떨어지는 환상이라는 점, 소득불평등이 고착될수록 경제 성장이 어려워진다는 문제점을 피하지 못한다.
NDK 칵테일을 마시는 손님들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간섭하는 것을 좋아한다.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 투자를 과감히 하는 편다. 정부지출도 늘려 유효수요를 창출함으로써 대량실업을 없애고 완전고용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니까 애덤 스미스 바텐더가 케인스 바텐더를 좋아하는 손님들을 싫어한다.
마르크스 칵테일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자본을 재료로 하는 경제학 칵테일을 지나치게 좋아하면 국가가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노동자들이 주도적으로 혁명을 일으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대체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먼저 망한 쪽은 마르크스 칵테일을 마시는 사람들이었다.
장하준 매니저는 경제학을 하는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충고한다. 그러니까 경제학파 칵테일을 하나만 마신다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 볼 수 없다. 칵테일마다 장단점이 한가지씩은 가지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특정 경제학파 칵테일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마시는 경제학파 칵테일을 한 번도 맛보지 않고, 자신이 마시는 경제학파 칵테일이 절대적으로 맛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마치 칵테일을 많이 마셔 취한 사람처럼 말이다. 무조건 자기 말이 옳다고 우긴다.
Scene #3 내가 아는 경제학은 누굴 위한 걸까
우리가 경제학파 칵테일에 취하지 않으려면 칵테일의 맛을 음미만 해서는 안 된다. 칵테일을 정말 좋아한다면 제대로 마실 줄 알고, 칵테일을 만드는 법을 알아두면 좋다. 경제학파 칵테일 바텐더는 당신의 칵테일 지식이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나쁜 생각을 가진 바텐더라면 싸구려 제조법으로 만든 칵테일을 손님에게 최상급 칵테일이라고 속이면서 권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요즘은 한 가지 칵테일만 마신다고해서 칵테일 마니아가 될 수 없다. 서로 다른 맛이 나는 칵테일끼리 섞거나 주스나 기타 비알코올성 음료를 혼합하는 신종 칵테일 레시피가 나오고 있다. 이렇듯 경제학 사상의 이종 교배를 시도하면 복잡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다양하고 균형 잡힌 해법이 나올 수 있다.
가치 판단을 배제한 채 과학적 분석으로 제시하는 경제학자의 주장도 검증해야 한다. 경제학을 과학과 비슷한 학문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경제학은 경제 문제를 해결해주는 정답 하나만 도출하는 학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경제학자들은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제시하거나 예측을 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므로 특정 경제학적 시각만 믿고 추종하는 자세를 경계해야 한다.
경제학을 이해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처음부터 쫄지 마시라. 다양한 경제학파를 칵테일로 비유해서 세련되면서도 알기 쉽게 소개하는 경제학자가 어디 있는가. 장하준 매니저의 경제학파 칵테일 강의는 균형 있는 경제학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최적의 테이스팅 클래스다. 장하준 매니저는 Economic zone에서 일하는 경제학 바텐더를 귀찮게 하거나 맞설 수 있는 손님을 좋아한다. 이런 손님은 최고매니저인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경제학자들의 생각에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 경제 문제를 경제학자에게만 맡겨 두는 것이 불안하다고 생각하면 경제학을 배울 자세가 있다는 마음의 증거로 보면 된다. 경제학자가 내놓은 해법이 당신을 편안하게 먹고 살리는 데 도움이 될거라고 보장할 수 없다. 지적으로 비관주의가 되어 충분한 검증을 통해 나를 위한 경제학을 찾으려는 낙관적 의지가 필요하다. 내가 아는 경제학이 누굴 위한 것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경제학자들에게 사용당하지 않으려면. 경제학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내 살림살이가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