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씨앗 - 제인 구달의 꽃과 나무, 지구 식물 이야기
제인 구달 외 지음, 홍승효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가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 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천상병  「나무」)

 

 

소녀는 나무를 사랑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나무를 소중하게 여기는 소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썩은 나무라서 더는 자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소녀는 어른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 나무는 썩지 않았으며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었다. 썩은 나무를 사랑한 소녀는 자라서 자연을 사랑하는 멋진 어른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는 썩은 나무 한 그루에 사랑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사람. 어린 시절부터 자연의 위대함을 보면서 자란 제인 구달 박사라면 썩은 나무가 하늘 위로 솟아 자라나는 꿈을 꿨을 것이다.

 

썩은 나무가 자라나는 것은 단지 꿈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자연의 섭리는 소녀의 순수한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아니, 소녀는 기적 같은 자연의 섭리를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나무는 줄기가 죽어도 뿌리가 살아있다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나무에 새로운 줄기가 자랄 수 있도록 복제하는 기능이 있다. 죽은 줄기가 있던 자리에 어린줄기가 자라게 하면서 생명을 연장한다. 이런 나무를 복제 나무라고 한다. 놀랍게도 복제 나무는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았다. 복제 기능으로 살아남은 나무뿌리의 나이가 8만~100만 년에 이르기도 한다.

 

제인 구달 박사는 침팬지의 대모(代母)를 넘어서 자연 사랑을 전파하는 생명의 대모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연의 대모’, ‘생명의 대모’라는 호칭을 듣게 된다면 무척 불편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인간이 자연을 자식처럼 소중하게 키운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멈출 줄 모르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자연은 인간을 위해 희생되어야 했다. 박사에게 열악한 상황 속에서 싹을 틔우고 적응하는 지구 식물은 위대한 ‘어머니 대자연’(Mother Nature)이다. 식물 앞에서 박사는 겸손하다. 인간이 어머니 대자연이 선사하는 신비로운 은혜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태초에 인간은 식물과 함께 숨 쉬면서 살아왔다. 직접 눈으로 보고, 코로 맡아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자연이 내뿜은 신선한 기운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 늘 함께했던 자연의 자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는 지구의 은혜를 많이 받은 동물이다. 멋모르고 자란 인간은 자연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자연을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봤다. 자연의 이익을 마음껏 누렸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는 아이도 어느 날 방 안에 아버지의 지갑을 보는 순간, 욕심이 생긴다. 저 지갑 안에 돈이 있을 텐데. 당장 사고 싶은 것이 있어서 지폐 몇 장이 필요하다. 결국,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저지른다. 아이의 손은 지갑 안을 뒤지고 있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철없이 구는 아이에 불과하다. 지구의 은혜를 누리면서도 자꾸 더 달라고 투정부린다. 이젠 대놓고 자연을 훔친다. 나무를 마구 베고, 식물의 집이나 다름없는 산을 갈아엎는다. 지구 곳곳에 인간이 만들어 낸 생채기가 남는다. 구달 박사는 자연을 훔치는 고약한 버릇을 가진 어른 아이인 우리 인간을 향해 경고한다. 자연을 훔친다는 것은 미래를 훔치는 것과 같다.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에 자연을 마음껏 사용한다면, 후손의 미래가 위태로울 수 있다. 지구 식물이 무한할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크나큰 착각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또 다른 착각이라면 식물은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무생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꽃과 나무도 인간과 똑같이 숨을 쉬며 성장하고,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곤충이나 인간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어떤 나무는 특수 물질로 다른 나무에 위협 신호를 알린다. 처음에 허무맹랑한 가설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여러 가지 실험으로 증명되고 있다. 나무가 고통에 무감각하다면 절대로 이런 경고 신호를 낼 수 없다. 나무도 아픔을 느낀다.

 

인간은 자연을 위한, 더 나아가 지구의 미래 또는 후손의 미래를 위해 희망의 씨앗을 심을 줄 모른다. 심지어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멋대로 재단하다. 농작물의 유전자를 조종하여 GMO(유전자변형 식물체)를 만들어낸다. 욕심에 눈먼 거대 기업과 과학자들이 합작하여 탄생한 GMO는 소비자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자연 생태계를 교란한다. 후손과 지구의 미래와 직결된 자연의 씨앗은 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씨앗의 소중함을 모른다. 조그만 씨앗은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자연이 숨을 쉴 수 있는 희망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지구는 희망을 키우는 최적의 텃밭이다. 인간과 식물은 우주의 유일한 텃밭에서 사이좋게 공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제부터 신비스러운 자연의 영성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온전히 꽃과 나무가 되어보는 꿈을 꾸고 기적을 믿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무를 사랑했던 김형영 시인의 시로 글을 마무리한다. 

 

 

운명을 견뎌내느라
꿋꿋이 서 있는 너를 볼 때마다
내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내 생각은 너무 가벼워
몸 둘 바를 모르겠기에
나는 때때로 네 앞에서 서성거린다.
너를 끌어안고서
네 안으로 들어가려고,
너를 통해서
온전히 네가 되어보려고.

 

(김형영 「나무를 위한 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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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4-12-31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나는 기적 믿는다카이~~~ ❤️ 구달 언니의 반만 닮았으면 좋겠다_^^;;

cyrus 2014-12-31 21:31   좋아요 0 | URL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보면서 한없이 부끄러워져요. 구달 누님의 반을 닮으려면 이 책을 읽어보면 됩니다.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달 누님의 매력이 멋져요. ^^

[그장소] 2014-12-3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모자로 남은 당신! 정체가 뭡니까?
분명..남자사람..이다..싶었는데 또 한순간. ..응..?여자사람..?? ㅡㅡ이제는
다시 남자사람 ! ㅎㅎㅎ 뭐 아무래도 저는 좋은사람. 그러겠지만요..^^ 책가까이 두고 악한이는 없는 거라고..믿고 사니까.
저는 침엽수림에 가면 정신을 못차려요..
이상하게..활엽수가 주는 뭔가와 달라요..ㅎ
나무

진짜 좋아요!!♥

cyrus 2015-01-01 19:14   좋아요 0 | URL
저는 대나무숲을 좋아해요. 바람 불 때 대나무가 흔들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과 귀가 시원해지거든요. ^^

바람돌이 2015-01-01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인구달 하면 침팬지만 생각났는데 이런 이야기도 있군요. cyrus님 덕분에 좋은 책도 담아가고 제인구달에 대한 새로운 얘기도 알고 갑니다.
새해에는 좋은 책 많이 소개해주시고 복도 듬뿍 받으세요. ^^

cyrus 2015-01-01 19:1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바람돌이님도 좋은 책 많이 알려주세요. ^^

해피북 2015-01-01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환경에 관한 이야기 였군요 지구는 희망을 키우는 최적의 텃밭이다라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예요 최적의 텃밭에서 무얼하고 있는지 반성이 되는 글이네요^^

cyrus 2015-01-01 19:18   좋아요 0 | URL
<희망의 밥상>이라는 책의 연장선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원래 <희망의 밥상>에서 식물 이야기도 다루려고 했는데 분량이 많아져서 따로 책을 펴낸 것이 바로 <희망의 씨앗>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