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붕' 상태의 마음
올해 1학기 학사일정이 수료된 지 이제야 1주 정도 지났다. 여름방학인데도 예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썩 유쾌하지 않다. 어느덧 대학생활의 반 정도를 지난 지금, 대학교 3학년에게는 '방학'이라는 것은 어쩌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한 기말고사가 끝나고 난 뒤에도 계절학기 수업을 위해서 방학 기간에도 학교에 등교해야 하고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 외국어, 각종 자격증 학원에 다녀야 한다. 이제 도서관은 스펙을 준비하는 나에게는 제2의 집이나 다름없다. 끝이 없는 공부만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1학기동안 성적을 위해서 공부했던 노력에서 나온 결과가 나쁘게 나오는 바람에 제대로 '멘붕' 맞은 상태다.
농담으로 말하자면 나의 정신은 현재 '초토화' 상태다. 총 7과목의 최종 성적을 확인하는 순간, 예전보다 더 못한 결과에 대해서 무척 치욕스럽게 느껴지고 내 자신 스스로에 대해서 분노감이 쌓이는 중이다. 이미 지나가버린 1학기의 시간들이 무척 후회스럽기만 하다.
나는 나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스스로 믿었다. '할 수 있다'는 마음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표 성취를 위한 자신감은 어느새 '자만감'으로 변해버렸다. 내 마음 속에는 이미 '부지런함' 대신에 '오만, 나태함'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노력'은 사라지고 겉멋 든 허울뿐인 '능력'만 믿었다. 중간고사 때는 기대했던 목표치 점수가 나오지 않았을 때만 해도 기말고사에 더욱 집중하고 충실히 했어야 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시간상 역부족이었으며 내가 감당해야 할 공부의 양도 상당했다. 결국에는 대학생활에 있어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고 말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는 고독을 안아주는 것만해도 버겁기만 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씁쓸한 기억들은 조금씩 잊혀지게 되었다. 방학이지만 지금도 학교에 나오고 있다. 계절학기 수업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오전에 계절학기 수업 중간고사를 쳤다. 오전에 계절학기 수업을 마치고 나면 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는다. 발걸음을 도서관으로 옮긴다. 오후에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영어와 컴퓨터 자격증 공부를 한다. 물론 그 곳에서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읽기도 한다. 다만 방학 기간이라 오후 5시에 도서관이 문을 닫는다는 게 조금은 아쉽지만.
학교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하는 날이 많다. 공부할 때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어서 좋지만 솔직히 혼자 책상 앞에 앉아서 하루종일 책만 보면서 지낸다는 것은 무척 외로운 일이기도 하다. 공부하는 데 있어서 고독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공부한 노력의 대가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번 학기는 고독과의 싸움에서 패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도서관에 가게 되면 두 세 명 이상 모여서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예전에는 그러한 풍경에 별 관심도 없었는데 이제는 기나긴 아웃사이더의 생활을 견디기에는 내 감정의 인내에 한계가 온 듯하다. 서로 모여서 얼굴을 맞대면서 공부를 하고 휴식 시간에는 외로울 일이 전혀 없는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부럽던지... 이제는 고독을 내 스스로 안아주는 것만해도 버겁게 느껴진다. 오히려 공부하기 위한 집중력을 흐트려놓는 방해 요인이 되고 있다.
공부에 지친 머리를 식힐 때면 그냥 도서관에 꽂힌 책들을 확인한다거나 아니면 그냥 무의미하게 창문 너머 캠퍼스 풍경을 바라볼 때가 많았다. 도서관 건물 안에서 혼자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가끔은 운 좋게도 친한 동기들을 만날 때도 있지만 수업 시간도 서로 다르고 나만큼 공부하는 녀석이 많지 않아서 도서관에서 자주 보는 일은 많지 않다.
우연히 그들을 만나다, 그리고 위로받다
오늘도 계절학기 수업 중간고사 시험을 끝나자마자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방학이라서 그런지 도서관 건물 내부에 학생들이 많지 않다. 간혹 나처럼 혼자사 공부하는 몇 몇 아웃사이더들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고요하면서도 적막한 도서관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오히려 사람 발길이 드물어진 조용한 도서관에 있으니 이전에 느꼈던 외로운 감정들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조용한 도서관 안에 있으니 그동안 내가 바라보지 못했던 대상들이 조금씩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우연하게 말이다.
우리 학교 도서관에는 총 5층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일부 층계별의 복도를 이루고 있는 벽에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들이 액자로 걸려져 있다. 비록 진짜 원본이 아닌 '복제품'이지만. 그동안 학교생활을 하면서 학교 도서관을 다른 동기들에게 비해 많이 가는 편이다. 그런데 도서관 건물 내부에 내가 좋아하는 화가들의 그림들이 액자에 걸어져 있다는 사실을 오늘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꽤 많은 그림 액자들이 있었다.
* 도서관 지하


클로드 모네 「인상 : 해돋이」1872년
도서관 지하에는 옛날에 발간된 책들이나 많이 훼손되어 읽을 수 없는 책들을 따로 보관하는 보존서고와 기계실이 있다. 내가 신입생 때만 해도 지하를 통해서도 도서관 내외부를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군대를 갔다오고 난 이후부터는 지하실에 출입통로를 폐쇄해버렸다. 지하실이야말로 사람 발길이 많지 않는 허름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지하실 공간 또한 윗층 자료실 공간만큼 평수가 꽤 있어서 그냥 보존서고 자료실로 쓰기에는 조금은 아까운 면이 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공간 속에서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 그림 액자도 안쓰럽고.
지하실에는 클로드 모네의「인상 : 해돋이」와 빈센트 반 고흐의「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이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1889년
클로드 모네와 빈센트 반 고흐, 태어나고 자란 나라만 다를 뿐 인상주의 미술이 한참 꽃 피우기 시작한 시기에 동시대에 활동했다는 사실이 이들 두 사람을 연결시켜줄 수 있는 공통적인 사항이다. 모네와 고흐, 이 두 사람이 서로 예술적으로 교류한 사실은 전혀 없지만 타자들과의 친밀한 교류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한편으로는 갈망했던 화가들이다. 그랬기에 이들도 내적으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유약한 사내였다. 고흐는 알다시피 동생 테오와 Dr. 가셰를 포함한 몇 몇 친분 있는 이들을 빼면 친구가 많지 않는 전형적인 외톨이다. 고흐가 그나마 외로움을 완전하게 달릴 수 있는 방법으로는 오직 붓과 팔레트를 잡고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고독한 감정들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또 돌아와서 작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손에서 붓이 떨어질 것 같다. 나는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3점의 대작을 완성시킨다. 그것은 사나운 하늘 밑에서 엄청나게 넓어지는 밑밭을 그린 작품으로, 나는 극도의 슬픔과 고독을 충분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 -
* 도서관 1층


빈센트 반 고흐 「아이리스」1890년
고흐는 생전에 수천 점의 유화들을 남겼는데 그 중에 꽃을 대상으로 그린 그림들이 꽤 많이 있다. 고흐가 그린 정물화라고 하면 '해바라기' 연작이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도서관 1층에 자리잡고 있는 '아이리스(붓꽃)' 또한 유명한다. 아이리스의 꽃말은 다양한다. '기쁜 소식, 존경, 신비한 사람, 우아한 마음, 사랑의 메시지, 아름다움의 소유자' 등등. '아이리스의 꽃이 피고 나면 첫키스의 향기가 난다' 누군가는 아이리스의 그윽한 향기를 이렇게 감성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과연 고흐는 아이리스의 꽃말을 알고 있었으며 그림을 그리는 내내 아이리스의 향기를 맡아봤을까? 고흐는 혼자 있을 때나 정신병원에 요양 생활을 했을 때나 항상 꽃들이 만발한 정원 내부에 걷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에게는 정원은 이방인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는, 평화롭고 자신만을 위한 은밀한 공간이었다. 그는 정원에 혼자 거닐게 되면 외톨이인 자신이 모습과 아름다운 꽃이파리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자신의 아름다운 향기로 사람들의 감각을 매혹케하는 꽃과 비교를 하기도 했다. 외톨이 고흐에게는 그러한 꽃의 존재가 마냥 부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이리스의 꽃말처럼 불행하게도 죽을 때까지 제대로 된 아름다운 사랑의 경험도 해보지 못했으며 시대는 고흐의 독창적인 예술을 알아주지 않았다. 비록 세상을 떠난 뒤 수십년이 지나서야 그의 삶과 예술은 위대한 아름다움으로 존경받을 수 있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아르장퇴유의 정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 1873년
클로드 모네 또한 정원의 풍경을 화폭에 많이 담은 '정원의 화가'이다. 그는 생전에 정원 딸린 거처에서 생활하면서 정원의 풍경화를 많이 그렸는데 르누아르는 아르장퇴유 정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데 열중하고 있는 모네의 모습을 그렸다. 그저 자신의 인상주의 화풍의 동료 화가의 일상적인 모습의 한 장면을 그린 그림에 불과하지만 르누아르 특유의 밝은 색채의 톤이 더해져 자신이 좋아하는 정원 속에 그림을 그리는 모네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더욱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느껴지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모네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음을 피로하게 만드는 번뇌로 가득한 속세에서 떨어진 곳에서 자신만의 공간에서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한번쯤은 꿈꿔볼 만한 꿈이기도 하다.
* 도서관 2층
도서관 2층에 걸려져 있는 두 점의 그림들은 낯설었다. 재미있게도 2층에는 슬픔에 잠긴 채 웅크리고 앉아 있는 벌거벗은 남자의 모습과 삶의 여유로움이 한껏 도취된 채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여자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만날 수 있었다.


제임스 티소 「봄」1878년
3, 40분 동안 검색 끝에 두 남녀가 그려진 그림의 제목과 화가를 알 수 있었다. 먼저 당당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제임스 티소의 「봄」이다. '제임스 티소'라는 화가의 이름은 생소하더라도 그가 남긴 그림들은 처음 접한 관객들도 쉽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동시대에서 활동했으며 그는 파리의 사교계 여인들을 정확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한 그림으로 명성을 얻었다. 티소의 그림들은 인상파 화가들처럼 파리지앵의 일상을 담고 있는 풍경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의 화풍은 인상주의보다는 고전주의에 근접하다고 볼 수 있다.
클로드 모네가 첫 번째 아내 카미유를 위해서 그녀를 모델로 한 그림들을 남겼듯이 티소 역시 오직 한 여자를 사랑할 줄 알았던 감성적인 로맨티스트였다. 제임스 티소는 원래 영국 출신이었으며 본명은 자크 티소였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나이에다가 이미 자식까지 두고 있으며 한 차례 이혼 경력이 있는 캐슬린 뉴튼이라는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 당시 전통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강했던 시기라 티소와 뉴튼과의 연애를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티소의 성공에도 결코 좋은 영항을 주지 않았다. 상류층들 사이에서 작품 주문을 받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티소는 뉴튼과의 연애 이후부터 주문량이 뚝 끊어질 정도였다.
티소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그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듬뿍 담아 뉴튼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를 많이 제작했다. 「봄」또한 뉴튼과의 연애 시절에 그려진 작품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 가지 않았다. 캐슬린은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사랑하는 연인 캐슬린의 죽음은 티소에게는 커다란 상처로 남게 되었고 이후부터 티소는 '자크'라는 이름을 버리고 '제임스'라는 새 이름을 가지고 프랑스로 건너가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속에 그저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는 영국 땅에서 짝 잃는 외톨이로 산다는 것이 힘들었던 탓일까. 그녀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은 티소를 강신술에 심취하게 만들었고 죽은 캐슬린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다고 한다.


이폴리트 플랑드랭 「바닷가에 앉은 젊은 남자의 누드」1837년
이폴리트 플랑드랭이 그린 젋은 남자의 모습은 사랑하는 동반자를 잃은 슬픔 또는 실패한 사랑에 의해 깊은 좌절감과 절망에 빠져버린 사내를 연상하게 만든다. 캐슬린을 잃은 티소의 감정도 플랑드랭의 누드 남자처럼 삶의 절망감에 못 이겨 홀로 움츠러있었을 것이다.
사실 플랑드랭이 관객들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바닷가 한가운데 홀로 앉아 얼굴을 숙인 채 웅크리고 있는 벌거벗은 남자를 그린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찌 보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국 근원적인 고독에서 땔래야 땔 수 없다는 중요한 의미를 알리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모두 고독하게 나고 고독하게 살아가다가 고독하게 들어가는 것. 인간 존재로서 지니는 고독감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운명적인 정서다.
* 도서관 5층
도서관 마지막 5층은 서양서자료실이다. 외국어가 어느 정도 가능한 학생들만 이용 가능한 자료실이라서 그런 것일까? 사실 5층도 지하실과 마찬가지로 사람 발길이 많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얀 반 에이크「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1434년
5층에서 만나 본 그림들 같은 경우에는 3층의 그림들처럼 서로 뚜렷하게 대치되어 마주 보고 있었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같은 경우에는 행복한 부부의 전형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반면에 존 에버랫 밀레이의 「오필리아」는 햄릿을 향한 사랑에 실패하다 못해 아버지의 죽음까지 겹쳐 끝내 실성한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련의 여인이다.


존 에버랫 밀레이 「오필리아」1852년
밀레이의 그림이 도서관에 걸어져 있는 복제품 중에서 가장 큰 편이다. 인적이 드문 조용한 5층에 전시되어서 그런지 한손에 꽃을 쥐고 팔을 벌린 채 꽃으로 둘러싸인 강가에 둥둥 뜬 채 창백한 얼굴로 죽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처량해보인다. 5층에 잠깐이라도 들린다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물 위에서 죽어가는 저 여인의 슬픈 사연을 알고 있을까? 죽은 오필리어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꽃들이 관객에게 여인의 사연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녀의 목 주위의 제비꽃은 '순결'을 의미하고 팬지는 '허무한 사랑'을 알려주며, 수선화는 '깨진 희망'을 상징한다. 강가에 핀 양귀비는 깊은 수면상태, 더 나아가 '죽음'을 의미하며, '나를 잊지 말라'는 꽃말의 물망초가 물 위에 떠서 오필리아의 작은 바람을 담고 있다.
우리 삶의 무게가 다르듯 삶이 아름다울 수도 있고 지옥 같을 수도 있다. 우리네 삶은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자신에게 만족을 하는 사람이고 세상을 살아 갈 이유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면 세상을 놓지는 못하리라.
고통을 달래는 순서는 없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애초부터 가진 것 없이 내던져진 삶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을 사람들은 조금만 더 가질 수 있었다면 행복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항상 입에 달고 산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미묘하다. 행복은 비교 대상이 있어야만 행복하다. 그리고 자신보다 잘나거나 완벽한 존재를 비교함으로써 자신은 불행하다가고 자기 판단하기에 이르게 된다. 꼴등이 없다면 일등도 없다는 이치다. 세상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불행이 지배하기 시작한다. 처음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에는 빠져 나오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해보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을 때 삶이 지겨워진다. 살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불운과 불행에 속박되어 있는 자기 자신을 해방시켜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때문이다. 심약한 사람일수록 더욱더 그런 생각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한다. 사람은 불행할수록 자신을 학대한다. 불행에서 빠져 나오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편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토란잎과 연잎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토련(土蓮)이라고도 한다
큰 도화지에 갈매기와 기러기를 그린다 역시 거기서 거기다
누워서 구름의 면전에 유리창을 대고 침을 뱉어도 보고 침으로 닦아도 본다
약국과 제과점 가서 포도잼과 붉은 요오드딩크를 사다가 반씩 섞어 목이나 겨드랑이에 바른다
저녁 해 회색삭발 시작할 때 함께 머리카락에 가위를 대거나 한송이 꽃을 꽂는다 미친 쑥부쟁이나 엉겅퀴
가로등 스위치를 찾아 죄다 한줌씩 불빛 낮춰버린다
바다에 가서 강 얘기 하고 강에 가서 기차 얘기 한다
뒤져보면 모래 끼얹은 날 더 많았다 순서란 없다
견딘다
- 김경미 「고통을 달래는 순서」-
전시회 그림을 구경하듯 명화 복제품들을 쭉 둘러보면서 나는 그들에게 받은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아니 위로받았기 보다는 명화 속에 담겨진 예술가들의 생애와 그림 속의 의미를 쭉 헤아려보면서 내가 겪고 있는 고독과 욕구 불만에서 비롯되는 번뇌들은 이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차피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번뇌는 '거기서 거기'다. 김경미의 시 속 구절처럼 그저 견뎌야하는 것이 유일한 해답이라고는 말 할 수 없지만 고통과 괴로움을 스스로 견뎌내지 못한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나락 속에서 방황할 뿐이다. 이제 나이를 먹어가면 먹어갈수록 익숙해져버린 고독에서 비롯된 소심하고 작은 고통에 대한 관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금은 부드럽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