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테헤란에서의 죽음

 

 

 한 돈 많고 권력 있는 페르시아 사람이 어느 날 하인과 함께 자기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하인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방금 죽음의 신을 보았다고 했다. 죽음의 신이 자기를 데려가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하인은 주인에게 말 중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말을 빌려달라고 애원했다. 그 말을 타고 오늘 밤 안으로 갈 수 있는 테헤란으로 도망을 치겠다는 것이었다. 주인은 승낙을 했다. 하인이 허겁지겁 말을 타고 떠났다. 주인이 발길을 돌려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죽음의 신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자 주인이 죽음의 신에게 물었다. 

 “왜 그대는 내 하인을 겁주고 위협했는가?” 그러자 죽음의 신이 대답했다.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늘밤 그를 테헤란에서 만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그가 아직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표시했을 뿐이지요.” (pp 106)

 

 

 

 위의 우화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중에서 ‘테헤란에서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내용이다.

 인생은 덧없다. 발버둥 쳐봐야 우리는 모두 테헤란으로 도망간 하인처럼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허무하게 막을 내릴 세상살이 또한 매정하기 그지없다. 계급 같이 굳어져 가는 빈부 격차. 뒤쳐진 사람들은 아득바득 살아봐야 별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아 절망한다. 경쟁의 정상에 서 있는 사람들의 삶도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다. 선진국일수록 우울증 환자가 많고 자살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자살 문제는 이제는 미국까지도 알아주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어버렸다. 세상을 떠난 사람의 자살 동기를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그 원인으로는 경제적 형편, 애정, 과도한 스트레스 및 열등감에서 비롯된 우울증까지 실로 다양하다.

 요즘에는 정서적으로 심약한 청소년들이 왕따로 인한 집단폭력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하는 비보가 자주 들려오고 있다. 안 그래도 청소년들은 쉴 틈 없는 경쟁체제의 입시교육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마당에 이제는 학교 생활 내 왕따 역시 청소년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있다.

 

 

 

 

 수용소 생활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

 

 빅터 프랭클은 현대문명의 고질병인 우울, 중독, 막연한 공격성향, 자살 등은 모두 똑같은 원인에서 나온다고 진단한다. 삶에서 별 기대할 게 없다는 절망감이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라는 니체의 말을 힘주어 강조한다. 그는 삶의 의미를 찾아줌으로써 건강함을 되돌리려는 ‘로고테라피(logotherapy)’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는 자신이 아우슈비츠에서 보낸 3년간의 체험에서 비롯되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그 곳에서의 체험을 로고테라피의 관점에서 설명한 책이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순간, 죄수들의 인생은 깨끗이 사라져 버린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죄수번호 매겨진 살아있는 시체로서 살아갈 뿐이다. 미래도 과거도 없고 고통만 있는 생활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절망적인 생활 속에서 과연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프랭클은 ‘그렇다.’라고 말한다.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뺐길 수 없는 인류 최후의 자유를 깨닫는다. 그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다. 닥친 고난을 자신을 강하게 하고 가치를 만드는 계기라고 확신한다면, 시련은 오히려 축복이 된다. 

 인간은 이상과 가치를 위해서 죽을 수도 혹은 살고자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프랭클은 삶의 의미 찾기를 포기한 사람은 며칠 못가서 죽음에 이르렀다고 증언한다. 자신에게 처한 불행한 환경에 감당하지 못한 인간은 본능적인 생의 의지를 잃고 죽음에의 의지로 달려가게 된다. 반면,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묻는 사람들은 삶의 의욕을 잃지 않는다. 인생은 시련과 죽음 없이 완성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의 의미를 놓아버리는 순간, 내 모든 시련은 감내해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는 절대 고통으로 변해 버린다.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인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이후 3년에 걸쳐 암흑 속에 생활하면서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잃었다. 그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마침내 동물의 위치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고, 동물 이하로까지 전락하는 인간의 벗겨진 실상과 대면했다. 그러나 그런 극한 상황의 절망 속에서도 인간의 삶이 결코 무의미한 것 일수는 없다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 이런 통찰 속에서 프랭클은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요법의 뼈대를 형성한다. 즉, 인간에게는 그 재능이나 체험에 관계없이 인생에서 겪게 되는 어떤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공허한 '희망고문'이 아닌 어려운 현실을 바라볼 줄 아는 '현실고문'도 필요하다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고통은 좌절된 욕망에서 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프랭클에 따르면 긴장과 갈등 없는 상태는 최선이 아니다. 인간은 힘든 상황에서 처하게 되면 오직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희망만을 생각한 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려고 한다. 하지만 프랭클처럼 최악의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실제로는 이런 사고방식이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올가미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소개된 '스톡데일 패러독스' 사례야말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지나친 낙관주의에 사로잡힌 사고방식의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스톡데일 장군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 동안 수용소에 갇혀 있으면서 20여 차례의 모진 고문을 당했고 언제 풀려날 수 있을지,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든 것이 불안정한 수용소 생활을 견뎌내고 무사히 생존할 수 있다.

 반면, 낙관주의자들은 수용소 생활을 견디지 못한 채 그 곳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갈 거야’하고 희망을 가졌던 낙관주의자들이 크리스마스를 수용소에서 보내게 된다면 이번에는 ‘부활절까지는 나갈 거야’하고 말한다. 그리고 부활절이 오고 다음에는 또 크리스마스를 고대한다. 즐겁게 보내야 할 명절을 춥고 어두운 수용소에서 보낸 그들은 깊은 상심에 빠져 결국에는 수용소를 탈출하지 못한 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로 표현하자면 낙관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희망고문'으로 인해서 원하지도 않게 수용소 안에서 불행하게도 죽음의 신을 마주해야 했다. 될 수 없는 일에 자꾸 되는 것처럼 희망을 주지만 결국 결과는 될 수 없는 것으로 끝남으로써 낙관적인 희망을 갖는 사람에겐 몸과 마음을 옥죄는 고문이 될 수밖에 없다.

 스톡데일 장군은 포로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인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대화가 단절된 독방생활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의사소통의 방법을 만들어내고 고문에 견디는 방법도 개발한다. 또한 체력이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체력단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장군은 그 힘든 포로시기를 동료들과 함께 견뎌내었다.

 스톡데일 장군의 수용소 생활은 프랭클이 직접 행동으로 실천한 로고테라피의 본질적 의미와 일맥상통하다. 의미요법에서는 인간의 본질을 ‘책임감’으로 본다. 로고테라피의 행동강령은 보다 구체적인 지침을 일러준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듯이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하려는 바는 첫 번째 인생에서 망쳐놓았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즉, 패배감으로 과거를 곱씹지 말고 주어진 현재에 충실해라는 뜻이다. 이럴 때 실패는 미래를 위한 거름이 된다. 나아가 프랭클은 자신을 넘어설 것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자신에 대한 집착은 자신의 정신을 병들게 만든다. 그러나 자신의 비관적 처지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자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랭클 역시 스톡데일 장군처럼 비참한 수용소 생활 중에도 삶의 기쁨을 찾는다. 고된 노동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생각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이나 인간이 먹기엔 너무나 열악한 멀건 국물 속에서 고기 한 조각을 발견하는 즐거움, 나아가 인간이 좀 더 근본적으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극한적인 고통 속에서 발견한다. 그중 하나가 사랑이었고, 나머지는 삶의 의미였다.

 '사람들을 살게 하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물에 빠진 사람에게 던지는 동아줄처럼 삶에 닻을 내릴 수 있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왜 그런 환경에서도 죽지 못 하는가’ 하고 프랭클은 역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대개는 ‘아이들 때문에’, ‘내가 지켜주어야 할 사람 때문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 때문에’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댄다. 바로 그것이 생의 의미를 잃은 사람을 삶의 광장으로 인도하는 작은 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살아가면서 배려하는 마음으로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삶의 광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노력이 필요하다. 작은 사랑을 구현하는 길 위에서 피어나는 의미만이 우리를 절망에서 구원하기 때문이다. 프랭클이 일러주는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는 경쟁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숨을 틔워 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요즘 세상은 그야말로 먹고 살기가 힘들고 인간에 대한 정이 메말라버린 삭막하고 각박하기만 하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프랭클이 생활했던 아우슈비츠를 비교한다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축에 속한다. 아우슈비츠에서도 가능했던 프랭클의 인생 의미 찾기가 지금 우리 삶에서 불가능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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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12-31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과 더불어서 흑야와 이것이 인간인가는 아우슈비츠 형무소의 경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죠. 전 그 중에서 흑야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과거 선배들에게 갈굼당하면서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그때는 억지로 읽었는제 지금은 찾아서 읽으니 많이 성장했다고 볼 수 있겠죠.^^새해 행복하시길...

cyrus 2011-12-31 22:26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네요, 세인트님 ^^
저는 군 생활할 때 처음 읽었는데 언제나 읽어도 힘든 삶 살아갈 때 읽으면
힘이 샘솟는 좋은 책인거 같아요. 표지가 강렬한 빨간색에 수용소라는 제목
때문에 군 동기들 사이에서 이 책 읽는다고 눈치 좀 봤어요, 어떤 동기는
이 책에 북한 정권을 옹호하는 내용이 있다는 근거 없는 착각을 할 정도였어요^^;;

세인트님이 읽으신 흑야라는 제목의 책은 처음 들어보네요 어떤 책인지 검색해서 찾아봐야겠습니다. 세인트님도 새해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바라요 ^^

마녀고양이 2011-12-3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랭클은 '실존적 한계'를 인정해야, 진정으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삶이란게, 작고 소소하면서도 다채로운 즐거움을 잃어버린다면
결국 견딜 수 없는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현대 사회는 너무 빠르고 강렬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시루스님, 건강하고 즐거운 일 가득한 새해되셔요.
내년에도 우리, 열심히 공부합시다! 아자! ^^

cyrus 2011-12-31 22:2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살아가면서 작고 소소한 즐거움이라도 느낄 수 있는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가려고요, 이런 기회와 시간마저 없다면
사는게 힘들겠죠? ^^;;

마고님도 새해에는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고 원하시는 일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차트랑 2012-01-01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좋은 글을 읽어왔지만 번번히 댓글을 달지 못했습니다. 뻘쭘해서 인건 이해를 하시겠지요^^ 2011년 통계자료를 보고 너무나 무심했던 사람이구나 자성하면서 좋은 글에 댓글도 남기고 추천도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cyrus님의 글을 통해서 익숙하지만 그 반대는 익숙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새해 더욱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cyrus 2012-01-02 22:1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차트랑공님 ^^
저도 처음에서 서재 활동을 시작했을 때 모르는 이웃분들에게
댓글 한 번 남기는 게 뻘줌했었답니다. 하지만 덕분에
정말 착하고 좋은 이웃분들을 많이 만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차트랑공님도 새해에 좋은 일 가득하길 바라요 ^^

이진 2012-01-02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수용수가 뭘까 하고 항상 궁금해왔어요. 그러다가 어느샌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이 정말 죽음의 곳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제목이 마음에 든다지만, 저는 아직 이런 책을 읽을만큼의 지적수준이 달리기 때문에 ㅋㅋ 장바구니는 아쉽게 패스해야겠어요... 흐

시루스님,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시고 공부도 파이팅!
저도 파이팅해야겠어요.

cyrus 2012-01-02 22:14   좋아요 0 | URL
이진님 나이라면 아직 수용소에 대해서 특별한 감정이 없을거예요,
저도 이진님 나이 때 그랬는걸요 ^^ 지금 읽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언젠가 제 나이 되면(?)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어요.
삶을 살아가는 데 큰 자양분이 될 수 있는 책이거든요 ^^

소이진님도 좋은 일 가득하시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