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의 앨리스 증후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란 질환이 있다. 매일매일 동화 속을 보게 되는 신기하면서도 슬픈 증후군이다. 내가 그 증후군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저 여자와 있는 모든 순간이 동화가 되는 걸까?" 

- 드라마 <시크릿가든> 12회, 주원의 독백 -

  

 

작년 12월,  찬 바람이 쌩쌩 불던 그 겨울,  주말 밤 10시만 되면 대한민국 모든 여성들의 가슴을 뜨겁게 불태워주던(?) TV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그 이름은 바로, 드라마를 시청하는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한번쯤 '주원앓이' 를 일으키게 만들든 [시크릿가든]이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 '주원'으로 분한 현빈을 대한민국 최고 스타로 우뚝 서게 만들 정도로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한 회가 TV에 방영되고난 뒤에도 드라마 속 대사와 장면들이 시청자들에게 회자될 정도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 장면 중간에 삽입된 OST뿐만 아니라 주원으로 분한 현빈이 읽은 책들까지도 때아닌 인기 열풍을 얻게 되었다.   드라마 덕분에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책이 루이스 캐럴이 쓴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수백년 전에 쓰여진 고전 동화는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앨리스' 는 드라마 내용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주원이 읽은 책으로만 그치지 않고 드라마 대사에 인용될 정도로 '깨알 같이' 등장하였다. 

드라마 12회분에서는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 분)은 '다모'가 되어 액션 장면을 멋지게 소화하는 장면이 있다.  혼자 속으로 라임에 대한 연정을 키워 나가고 있었던 주원(현빈 분)은 스턴트 촬영하는 장소까지 따라오게 되는데 라임의 액션 장면을 넋을 놓으면서까지 바라보다 속마음으로 되뇌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란 질환이 있다. 매일매일 동화 속을 보게 되는 신기하면서도 슬픈 증후군이다. 내가 그 증후군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저 여자와 있는 모든 순간이 동화가 되는 걸까?" 

라임을 향한 애틋한 사랑을 '앨리스'로 비유하여 낭만적으로 표현한 이 대사 덕분에 라임의 스턴트 액션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현빈의 모습이 드라마 최고의 명장면이 되었으며 동시에 '앨리스 증후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앨리스 증후군' 의 증상은 아주 신기한 시각적 환영이다.  이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편두통을 가지고 있는데 물체가 작아보이거나 커보이거나 왜곡되어 보이거나 하는 증상을 호소한다.  말 그대로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동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환상적인 현상들이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나도 주원처럼 <앨리스>를 읽어봤지만... 

  

 

최근에 <앨리스>를 읽으면서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는  

내심 은근히 이런 모습을 바래왔건만... 

 주위 사람들은 내가 책 읽는 모습은커녕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조차 

그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ㅠ_ㅠ (크흑..) 

 

 

 

 

 

 

  

 

 

 

 

 

 

 

 

지난 달에 시험 공부를 하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틈틈이 독서를 하곤 했었다.  그 때 읽은 책이 바로 <앨리스>다.    친한 친구들과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었는데 독서를 하고 있는 나의 새로운(?)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항상 이 책을 가방 안에 넣고 다니면서 읽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학교 교과서 이외에는 책과는 아예 담 쌓은 남정네들이라 그런지 내가 책 읽는 모습에 관심도 없었고 심지어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도 단 한 명도 물어보지 않았다.    비록 무의미한 상상이지만 공부를 같이 하는 동료들 중에 단 한 명의 이성이라고 있었으면 어떤 반응이 찾아올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왠만한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현빈이 나온 [시크릿가든] 정도는 분.명.히 시청했을 터이고 드라마에 나왔던, 주원이 열심히 읽었던 <앨리스> 역시 알고 있지는 않았을까...?   

  

사실 <앨리스>를 이름만 들어왔을 뿐이지 온전한 이야기를 접해본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작년에 드라마로 인한 앨리스 열풍이 일어났을 때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앨리스>를 읽어 볼 기회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서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시험 공부를 하다가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재미난 책을 읽기 위해서 고른 것이 바로 <앨리스>였다.  

하지만 <앨리스>는 장르가 분명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쉽게 읽혀지지 않는 작품이다.   현실의 세계에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환상적인 사건들이 뒤죽박죽되어 전개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의 묘사나 대사 속에서는 작가인 루이스 캐럴이 의도적으로 삽입한 풍자와 넌센스 그리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수수께끼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마틴 가드너 (1914~2010) 

   
  가드너는 대중들을 위한 과학을 널리 알리는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중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에 독자들을 위한 유희 수학 게임을 컬럼 형식으로 연재할 정도로 수학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유희 수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 덕분에 가드너는 수학적 유희가 가득한 <앨리스>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앨리스'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앨리스>는 위대한 영문학 작품이 되는 동시에 다양한 관점을 통해서 연구되고 해석되어지는 텍스트로 남게 되었다.  미국의 대중 과학 저술가로 유명한 마틴 가드너 가 광범위한 주석을 단 <앨리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출간하게 됨으로써 그동안 <앨리스> 속에 오랫동안 숨겨져왔던 수학적 유희와 넌센스들이 봉인 해제되듯이 독자들에게 공개되었다. 

나는 시험이 끝나고 난 뒤에 국내에 번역된 가드너의 <주석 달린 앨리스>에 수록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역시 같이 읽었다.  한 페이지마다 박혀 있는 어마어마한 주석 때문에 <앨리스> 텍스트만 온전히 읽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오리혀 가독성 떨어지게 만드는 단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시중에 나와 있는 번역된 <앨리스> 텍스트를 다 읽고 난 뒤에 가드너의 <주석 달린 앨리스>를 읽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면 처음에 읽었던 텍스트에서 알지 못했던 넌센스와 언어 유희의 의미를 <주석 달린 앨리스>를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되는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앨리스>의 탄생과 관련된 뒷이야기

 

 

(左)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  

(右) 캐럴이 직접 촬영한 7살의 앨리스 리델 (1860년) 

 

가드너의 <주석 달린 앨리스>뿐만 아니라 국내에 번역된 <앨리스>에 수록된 역자 해설를 읽었다면 <앨리스>라는 소설이 작가 캐럴이 친분이 있었던 리델 가(家)의 자매들 중 둘째 앨리스 리델을 위해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은 지금까지도 그의 생애와 관련된 수많은 추측과 의문점이 있을 정도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루이스 캐럴' 은 필명이며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다.  그는 원래 수학자로 활동했으며 수학과 관련한 논문 몇 편도 저술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는 실제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내향적이었으면서 말을 더듬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는 말을 더듬지 않은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린 소녀들 앞에서뿐이었다고 한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그는 자신보다 많이 어린 예쁘고 가냘픈 몸에 영리하고 활발한 소녀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친구로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어린 남자 아이들은 유독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수학 교수를 지내던 학교의 학장인 딸과 친분을 맺을 수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훗날 <앨리스>라는 명작을 탄생케 한 캐럴의 인생에 유일한 '뮤즈' 앨리스 리델이었다.  

캐럴은 앨리스가 동행한 리델 가의 딸들과 함께 템즈 강을 따라 보트를 타면서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준비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그러자 앨리스는 그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고, 소녀의 호의적 반응에 신이 난 캐럴은 앨리스 리델을 위해 직접 글을 쓰고 손수 삽화를 그린 이야기 책을 크리스마스 기념일에 맞춰 선물하게 되었는데, 그 책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땅 속 나라의 앨리스' 이다.   이듬해, 이야기 책은 내용을 좀 더 손질한 끝에 '루이스 캐럴' 이라는 필명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친숙한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이 때, 당시 영국의 유명한 삽화가인 존 테니얼이 그린 삽화가 추가되었다.  

   

 

[존 테니얼이 그린 <앨리스>의 삽화 일부] 

 

 

 

 

 * 앨리스가 전면으로 나오는 삽화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아기 돼지를 껴안은 앨리스의 모습이 귀엽다. 

 

 

* 앨리스와 체셔고양이와의 만남

 

 

하지만 스무살 남짓 차이가 나는 내성적인 숫총각과 귀여운 소녀와의 교류 관계는 오랫동안 이어질 수가 없었다.  캐럴은 사진 촬영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특히 여자아이들의 사진을 즐겨 찍었다.  그래서 지금도 캐럴이 직접 찍은 앨리스 리델의 어린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이 몇 장 남아있기도 하다.   

그러나 캐럴과 앨리스와의 관계가 삐걱거리게 된 이유는 캐럴의 독특한 사진 촬영 때문이었다.  어린 소녀를 찍은 사진들 중 일부는 누드 사진이었다.  어린 소녀의 알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진들은 캐럴이 죽고 난 뒤에 불에 태워져 사라졌지만 일부 몇 장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으며 벌거벗은 리델의 모습을 찍은 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리델의 부모는 앨리스에 대한 캐럴의 기이한 집착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그와의 관계를 단절했으며 그가 앨리스에게 보낸 편지도 모두 파기시켰다.  심지어 앨리스 리델의 후손들마저도 캐럴와 앨리스와의 친분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자료들을 의도적으로 파기시키기에 이른다. 

오늘날에도 캐럴과 앨리스의 관계가 갑작스럽게 단절된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추측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또다른 배경으로는 캐럴이 11살이 된 앨리스에게 청혼했기 때문이라는 원인도 있다.   그리고 어린 소녀에 대한 그의 유별난 관심은 캐럴이 소아성애자였을 가능성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앨리스>, 알고 보면 사랑의 순애보?  

비록 자신보다 나이가 한창 어린 소녀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정상적인 사랑의 방식과는 거리가 있지만 <앨리스> 속에는 귀여운 소녀 앨리스 리델을 향하는 내성적이면서 상상력과 동화적 감수성이 충만한 캐럴의 애틋하고 각별한 감정이 묻어나 있다.   그리고 캐럴과 앨리스와의 관계 그리고 <앨리스>가 처음에는 앨리스를 위해서 만든 이야기라는 것을 비추어 본다면 <앨리스>는 내성적인 말더듬이 수학자가 사랑하는 앨리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면서도 간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려는 일종의 러브레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앨리스와의 행복한 추억을 잊지 않으려는 캐럴의 순정적인 마음 역시 엿볼 수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앨리스를 동행한 자매와 함께 한 템스 강에서의 소풍을 회상하는 내용을 담은 아름다운 내용의 서시(序詩)가 수록되어 있다.  

 

어느 황금빛 오후 내내
우린 한가로이 배를 저었네.
솜씨는 없었지만
작은 팔로 부지런히 노를 저었지.
작은 손은 헤매는 우리를
이끌어주는 척 손직했다네.

아, 잔혹한 세 사람이여!  그런 시간에
꿈을 꾸는 듯한 날씨에,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다니.
깃털 하나도 살랑일 수도 없을 만큼 숨이 약한 이에게!
하지만 불쌍한 한 사람의 목소리가
입을 모아 말하는 세 명의 목소리를 어찌 당해 내겠는가!

(후략)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펭귄클래식코리아, pp 106 -

 

시 속에 등장하는 '세 사람'은 템스 강 위에 띄운 보트를 타면서 캐럴이 들려준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던 리델 가의 세 자매를 가리킨다.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 캐럴은 직접적으로 앨리스에 대한 연정을 드러내고 있다.   <앨리스>가 원래 앨리스 리델, 단 한 명의 소녀를 위해서 만든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애정이 담긴 일종의 헌정사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헌정사 속에는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들이 그녀가 어른이 되어서도 오랫동안 간직하기를 바라고 있다.  '먼 나라에서 온 꽃들로 만든 화관' 은 오랜 세월이 지난 시들어지듯이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잊혀질까봐 걱정하는 캐럴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앨리스!  이 어린아이 같은 이야기를 가지렴.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로 이 이야기를 놓아두렴.
어린 시절의 꿈이
신비로운 기억의 띠로 얽혀 자라는 그곳에.
저 먼 나라에서 꺾은 꽃들로 만든
순례자가 쓴 시든 화관처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제3장 '코커스 경주와 긴 이야기' 편에는 인간처럼 대화를 하는 각종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 널리 알려진 동물이 바로 도도새이다.  <이상한 나라>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동물들 중에서 앨리스를 가장 호의적으로 대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 코커스 경주의 우승자로서 앨리스에게 상으로 골무를 수여하는 도도 (pp 137)   

   
 

재미있게도 테니얼의 삽화 속 도도의 날개 밑에는 인간의 손이 달려 있다. 아무래도 골무를 집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인간의 손을 그려넣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도도의 양 날개는 퇴화되어서 날 수 있는 기능이 상실되었다.  그래서 도도는 일반 새와는 다르게 날아다니지 못하는 '바보, 얼간이  새'라는 별명이 붙여지게 되었고 인간의 지나친 수렵으로 인해서 17세기 말에 멸종되고 말았다.

 
   

 

자신이 제안한 코커스 경주에서 모든 동물들 그리고 앨리스가 우승한 것으로 선언함으로써 상을 수여하게 되는데 도도는 엉뚱하게도 앨리스의 주머니에 있던 골무를 자신이 직접 상을 수여하는 것처럼 전달한다.  

<이상한 나라>에 등장한 도도는 루이스 캐럴, 작가 자기 자신을 희화한 캐릭터로 등장하고 있다.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에 자기 이름을 '도-도-도지슨(Do-Do-Dodgson)'이라고 발음한 것에서 차용하여 '바보, 얼간이 새'로 상징되는 '도도(Dodo)'로 소설 속에서 분장한 것이다.   

그런데, 많고 많은 부상(副賞) 중에 왜 하필이면 '골무'를 수여했던 것일까?   

아쉽게도 마틴 가드너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내용의 주석을 달지 않았다. <앨리스> 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해석의 대상이 되어지듯이 도도가 앨리스에게 수여하는 '골무'에 대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직접 추측하고 상상해보는 것도 좋다.   

 

'골무'는 영어로는 Thimble이다.  이 단어를 영어사전에 찾아보게 되면 골무라는 뜻 이외에도 '고리'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골무는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헝겊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플라스틱, 금속제품으로 된 것도 있으며 손가락 끝에 끼우는 캡 모양과 가운데 손가락에 끼는 링 모양,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포털사이트에 '영국 골무'로 검색하게 되면...  예쁜 무늬가 그려진 영국 골무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과연 사진 속 고급(?) 골무가 진짜로 영국산인지 제대로 확인할 길은 없지만... ^^;;

캐럴이 활동하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19세기 중후반) 때 부유한 사람들이라면 도자기 형태의 아름다운 무늬가 그려진 고급 골무를 사용했을 것이다.  특히, 리델의 아버지은 유명한 영국의 명문대 옥스퍼드 대학 크라이스트처지 학장이기 때문에 고급 골무를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재력을 가졌을 것이다.

 
   

   

영국산 골무는 아름다운 무늬가 그려진 조그만한 도자기를 연상케 한다.  바느질할 때 주로 사용하는 유용한 도구이면서도 아름다운 무늬 때문에 소중히 보관할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앨리스 수준의 연령의 소녀라면 작고 아름다운 물건에 한창 관심을 가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앨리스 수준에 딱 어울리는 작고 아름다운 선물로도 알맞다.   

캐럴이 이런 의도를 정확하게 헤아리고 있지 않았을테지만...  ^^;;  

앨리스가 가지고 있던 골무를 자신이 직접 상품으로 수여하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함으로써 오히려 앨리스를 재미있게 하기 위한 캐럴의 조크(Joke)로도 볼 수 있다. 

 

 

 한 소녀를 향한 사랑이 만들어낸 판타지  

'앨리스 증후군'에 시달렸던 주원은 끝내 길라임과의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루이스 캐럴은 <앨리스>라는 작품 하나만으로 부와 명예를 가지게 되었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다 죽었다.  주원은 '라임앓이'로 인한 앨리스 증후군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소심한 루이스 캐럴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앨리스 앓이'를 하는 독신으로 살아야만했다.    

지금까지도 캐럴이 실제로 앨리스 리델과 사랑에 빠졌는지 연구가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말로 자녀뻘인 앨리스 리델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결혼을 하려고 했는지 확증할만한 증거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캐럴은 어린 소녀들에 대한 순수하면서도 각별한 애정을 자신만의 이성애로서 표출했다는 것이다.   후대의 독자들은 소녀에 대한 캐럴의 애정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롤리타>에 등장하는 험버트 험버트와 비교하기도 하지만 캐럴이 그저 육체적 쾌락을 탐닉하기 위해서 어린 소녀들의 모습에 강하게 이끌렸던 것은 아니었다.   

 " 불쌍하고 가엾은 꼬마 앨리스! "

1932년, 루이스 캐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글에서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G.K. 체스터턴은 <앨리스>가 학자들에 의한 텍스트의 무분별한 해석으로 인해 '오래된 비석처럼 차갑고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변질되고 있다면서 한탄하였다.  그는 <앨리스>가 재미있는 동화로서 읽혀지기보다 어려운 시험문제를 풀듯이 텍스트 해석에 치중하는 독서를 문제 삼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농담과 많은 생각이 요구되는 수학적 유희 그리고 터무니없는 의미를 가진 넌센스 때문에 오히려 <앨리스> 읽기를 기피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캐럴은 독자들로 하여금 곤란하게 만드는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가 아니다.  그리고 독자들을 골탕 먹이려는 괴퍅한 의도도 없다.    우리에게는 그저 복잡하고 머리를 아프게 만들만한 언어적. 수학적 유희와 넌센스들은 오직 자신이 사랑했던 앨리스를 위한 캐럴의 은밀한 밀어(蜜語)다.  앨리스를 향한 사랑이 흥미롭고 독특한 판타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불쌍하고 가엾은 사람은 바로 루이스 캐럴이다. 

<앨리스>가 동명의 소녀를 위해서 말더듬이 수학자가 손수 제작한 사랑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평생동안 한 소녀를 향한 사랑앓이를 하다가 독신으로 지내야만했던 '왕소심' 말더듬이 수학자의 이루어지지 못한 슬픈 사랑 이야기와 행복했던 템즈 강에서의 추억은 이제는 '순례자가 쓴 시든 화관' 으로만 남게 되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순간에도 이미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였었지 하지만 그건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니까
난 멈출수가 없었어 이미 내 영혼은 그녀의 곁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조관우의 <늪>에는 이런 가사 구절이 있다.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법이니까"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또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 속으로 도피함으로써 스스로 극복하려고 한다. 

노랫말처럼 캐럴은 <앨리스> 속 환상의 세계를 통해서나마 실현 불가능한 사랑을 이루고 싶어했으며 자신의 감정을 앨리스 리델에게 표출하고 싶어했는지 모르겠다.  말 더듬는 자신을 어리석은 도도새로 둔갑할 정도로 말이다.   상상력이 충만했던 캐럴이라면 자신의 사랑을 상상 속으 동화로마나 가능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지금도 <앨리스>를 읽게 되면 앨리스가 체험하게 되는 황당한 사건들이 재미있고 유쾌하다기보다는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인생을 살아야했던 어느 말더듬이 수학자의 슬픈 사연 때문에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루이스 캐럴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저 간직한 어느 사내의 사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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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1-07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뉘 이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당!!! ^^

cyrus 2011-11-08 14:57   좋아요 0 | URL
꼭 읽어보세요, 읽다보면 황당한 내용도 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있답니다. ^^

아이리시스 2011-11-0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석달린 앨리스 맨날 두 페이지 넘기다가 다시 덮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주석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ㅠㅠ 주석이 나를 잡아먹고, 내가 주석에게 잡아먹히는 느낌이 든다니까요.ㅋㅋㅋ

cyrus 2011-11-08 14:58   좋아요 0 | URL
저 같은 경우에는 이야기만 먼저 읽고난 후에 다시 읽을 때 주석을 읽었어요.
그 중에 정말로 궁금한 내용과 관련된 주석을 중심으로요. ^^

노이에자이트 2011-11-07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리타>에서도 어린 소녀가 육체적 쾌락의 대상은 아닌데, 로리타 콤플렉스라는 용어 때문에 음란한 작품인줄 아는 이들이 많죠.정작 읽어보고 "뭐 이래~야한 소설이 아니네~" 한다는...

cyrus 2011-11-08 14:58   좋아요 0 | URL
앨리스를 읽어본 김에 이번 기회에 롤리타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

yamoo 2011-11-07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틴 가드너의 책들은 정말 멋지죠~ 저두 번역본은 한 권 빼놓고 모두 갖고 있습니다. 윌리엄 파운드스톤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과학 저술가입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만만한 책이 아닌 거 같아요. 논리와 수학적 사고의 핵심이 담겨 있는 동화같은 이야기랄까요~

cyrus 2011-11-08 15:00   좋아요 0 | URL
마틴 가드너가 쓴 이야기 패러독스라는 책도 소장하고 있는데,,
그 책도 참 좋았어요. ^^

논리적, 수학적 사고가 요구되는 요소들을 이야기에 넣다보니 읽을 때
간혹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도 주석을 읽다보면 작가의 창작능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카스피 2011-11-1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도 마틴 가드너 주석달린 앨리스와 펭귄 클래식 앨리스 세트를 가지고 있어요.위 사진에 있는 합본으로 된 앨리스도 살려고 했지만 솔직히 읽기 불편해 아직 안사고 있는데 가지고 있는 분권된 앨리스가 읽기 편하서지요.하지만 약간 주석이 다르다고 하니 살까 말까 고민되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