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의 리얼리즘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욕설의 리얼리즘' 이라는 제목의 편지글이 수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욕설은 부정적인 것이며 순화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신 교수의 '욕설의 리얼리즘' 에서는 그러한 통념을 뒤집으면서 욕설의 긍정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 이 글을 쓴 시기였던 1982년은 통혁당 사건으로 인해 교도소에서 복역중이었다. 신 교수가 욕설을 긍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오랜 교도소 생활을 했던 특수한 상황에서 기인하고 있다.
즉, 교도소에서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욕설을 자주 사용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욕설에 대해 새로운 가치와 기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욕설이 서민적 전통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추상적 언어만을 고집하는 인텔리들의 언어와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전제 아래, 욕설을 통해 세상의 사실적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신 교수가 욕설에서 발견한 '리얼리즘' 이다.
싸운 것도 아닌데... 학생 1명이 4시간동안...
욕설(비속어)이란 상스럽고 거친 말로 어떤 대상을 아주 얕잡아 보고 경멸하는 태도로 하는 말이다. 신 교수의 말대로 욕설을 사용함으로써 인간은 심리적 쾌감을 느낄 수 있지만,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며 정서적인 면에서도 나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하지만 욕설이 상대방을 불쾌감을 줌으로써 인간 관계를 해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의바른 말보다 욕설을 통해서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친근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특수적인 기능도 있다. 신 교수는 '욕설의 리얼리즘' 에서 이를 '감정의 비상함이 역설적으로 강조되는 시적 효과' 라고 표현하고 있다.
욕설을 통해서 친근감을 표현하는 대화 방식은 여자보다는 남자들 간의 관계에서 볼 수 있다.
친구를 만나면 이름을 먼저 부르는 대신에 '이 새끼' 라는 욕설이 나오면서 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대화에 몰입하게 된다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들이 쏟아진다. 대화의 주제나 내용의 분위기에 상관없이 욕설로 시작해서 욕설로 끝난다. 그리고 조그만 일에도 화를 내거나 짜증이 날 때도 욕설이 나온다. 이렇듯, 욕설은 부정적인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상 생활 속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너무나 친숙한(?) 어휘가 되어버렸다.
필자 역시 일상 생활에 욕설을 조금(?) 하는 편이다.
정말로 화가 날 때는 나도 모르게 'ㅆ' 이 들어간 욕이 튀어나올 뿐,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는 욕설을 안 쓰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예전에 대화하는 도중에 말해선 안 되는 욕설이 나와 크게 지적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고치지는 않았지만 만약에 그런 지적을 받지 않았다면 욕설이 나오는 언어 습관이 사회 생활하는데 악영향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최근에 한 언론에서는 초,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룻동안 대화를 하면서 욕설을 몇 번 하는지 실험을 하였다. 등교 시간부터 점심 시간까지 단 4시간동안 학생들의 대화를 녹취하였다. 그 결과 일상에서의 학생들의 언어 사용 실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싸운 것도 아닌데… 학생 1명이 4시간동안 385번 욕설]
조선일보 2011년 10월 3일자
학생들은 왜 욕설을 하는가?
이처럼 요즘 청소년들은 성별이나 성적, 생활태도에 상관없이 욕설을 자주 한다. 욕을 하는 아이나 듣는 아이나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을 보면 뜻도 제대로 모를뿐더러 욕설을 하면 왜 안 되는지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생들의 언어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욕설이 심한 학생들은 학교생활기록부 비교과 영역에 기록하고, 대학 입시의 학교장 추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글쎄... 무조건 벌을 준다고 학생들이 욕을 덜 하게 될까?
학생들이 자신의 언어 습관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 이상 쉽게 고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제도가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교사들이 수많은 학생들의 대화를 일일이 듣지도 못할뿐더러 욕 하는 정도를 기준을 잣대 삼아 평가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욕설' 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보면서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 가 머릿속에 떠올려졌다.
세상 어른들의 가식과 허위, 탐욕을 견뎌내지 못하고 감수성 예민한 이 열여섯 살 소년은 말만 하면 욕설이 나온다. 지금은 샐린저의 소설은 청소년에게 권장하는 추천도서가 되었지만 출간 당시만 해도 소설 속 주인공의 거침없이 내뱉는 욕설 때문에 미국의 많은 학교에서 금서로 지정된 적도 있었다.
홀든 콜필드는 네번째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뉴욕의 거리를 헤맨다. 퇴학사유는 성적불량이지만 그 심층에는 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성장과정의 혼란이 자리하고 있다. 부유한 계층에 속했지만 주인공은 현대사회의 추악한 속물 근성과 지식인 계층의 위선에 염증을 느낀다.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조차 없는 홀든이 혼란스러운 정신을 달래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줄 수 있는 자극적인 욕을 해댈 수도 있다. 타이트한 입시 교육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공부 스트레스를 욕설 대화로나마 해소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청소년들의 비뚤어진 언어 습관과 문화가 좀체 고쳐지지 않는 것은 홀든이 겪고 있는 현실처럼 비이상적인 사회적, 심리적 환경이 배경에 있기 때문이다. 집이나 학교, 사회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는 인식을 받거나 혹은 자신에게 펼쳐질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되면 그 불만이 욕설이나 비속어로 발전하게 마련이다.
'언어는 사회의 거울' 이라는 말처럼 청소년들의 욕설문화는 청소년들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 학교, 사회의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함께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화의 재미를 더하는 추임새나, 또래 집단에서 남보다 강해 보이려는 화법 정도로 알고 있다면 욕설을 하지 말아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들어 단호하게 지도해야 한다. 듣는 이의 처지에서 생각하게 하거나 서로 높임말을 쓰도록 규칙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올바른 언어습관로 개선되는 것은 단기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 가정, 학교, 사회에서 어린 시절부터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