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001-468] 호밀밭의 파수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불안감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 제4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 제6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 제8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 제10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중략)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 이 상 <오감도 제1호> 중에서 -

 

이상의 '오감도' 는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시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시적 상황은 단순하면서도 작가가 독자드에게 무엇을 알리고자하는지 의도가 불분명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시인이 독자들을 향해 아무런 의미 없는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 시에서 등장하는 '아해'(兒孩)는 아이의 옛 말이다.  13명의 아이가 도로로 질주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는 화자는 무섭다고 말한다.  하지만 왜 무섭게 느껴지는 독자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골목이 막혔건 뚫렸건, 아이들이 질주를 하지 않아도 화자는 어떠한 상황에 상관없이 막연하게 불안감과 공포를 느끼고 있다.  이상이 일제 강점기 시대에 활동한 시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암울한 시대 속에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의 시인 자신이 느끼고 있는 정신적 불안을 상징하고 있다.    

 

독특한 내용의 시 '오감도' 속에서 볼 수 있는 시인의 정서적 불안감은 절망적 모더니즘 시대를 산 당대 식민지인들의 자화상이면서도 반면에 오늘날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 관계의 단절이 심화되어가는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대상이나 세상을 대할 때 마음 속에는 극심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특히나 인간이 나이를 먹어감으로써 성장하면 할수록 곧 마주하게 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극대화된다.   특히 청소년기 때는 주변적 상황과 위치에 따른 갈등과 방황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절정의 시기이다.

누구는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고 누구는 또래보다 먼저 사회로 나가 돈을 번다. 또 누군가는 제도권을 벗어나 울타리 없는 세상에 던져지기도 한다. 각자 처한 상황과 환경이 다르고 가슴 속의 꿈과 좌절의 비율도 다르겠지만 모든 젊음에 깃든 공통점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불안감이다. 기성사회의 벽은 높기만 하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와 가치관은 반항의 대상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어떤 운명을 가진 존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혼란스럽다. 

 

 

  홀든 콜필드의 이유 없는 반항  

 

"인생은 시합이지, 맞아,  인생이란 규칙에 따라야 하는 운동 경기와 같단다." 

"예, 선생님,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시합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시합은 무슨.  만약 잘난 놈들 측에 끼어 있게 된다면 그때는 시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측에 끼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시합이 되겠는가?   아니.  그런 시합은 있을 수 없다.    (pp 19)

 

감수성이 예민한 홀든 콜필드에게는 학교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 모두 바보들의 세계이다. 깊은 마음의 대화를 나누며 우정을 쌓아야 할 학교 기숙사는 겁주고 싸우는 공간이었고, 가정은 마음의 안식처가 아니라 숨어서 들어가거나 도망쳐야 할 대상이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운동 경기에서 볼 수 있는 '게임의 법칙'을 가르치는 비인간적인 교과목이었다.  운동 경기는 경쟁을 통해 승패를 가려야한다.  역사가 게임이라면 처음부터 보잘 것 없는 쪽에 선 경우에도 게임으로 성립될 수 있는지, 과연 게임에서 진 패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 홀든은 세상에 강한 의문을 던진다.  부정적인 의문 속에는 불합리하게 움직이는 인생에 대한 내면적인 두려움이 작용되고 있다.

홀든에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거짓과 위선, 불의와 폭력, 모순이 가득한 곳이다. 엄격하고 무관심한 아버지와 날카로운 성격의 어머니, 옷차림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교장, 유일하게 의지했던 앤톨리니 선생에게 겪는 '기분 나쁜 경험' 등은 홀든을 세상 밖으로 밀어내고 냉소적인 반항아로 만든다. 그리고 세상은 다른 존재의 상처에 대해 눈길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냉소적이다. 센트럴 파크 남쪽에 있는 연못이 얼어붙으면 그곳에 살던 오리들은 어디로 가게 될지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듯이.  

홀든이 왜 그렇게 반항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작가는 독자들에게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공한 유대인 아버지, 교양 있고 예민한 어머니 사이에서 부유하게 자라면서 주류사회를 지향하는 청소년이 겪는 정신적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홀든이 속한 계급의 아이들은 사립 기숙사학교를 다니면서 좋은 집안 출신의 친구를 사귀고, 아름답고 자존심 강한 여학생과 사랑을 속삭이며,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다음 전문직에 안착함으로써 부모 세대의 안정된 삶을 이어가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그런 삶이 홀든의 정신을 속박하는 요소로 작용했고 이를 잠시나마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고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이유 없는 반항이었다.

끊임없이 투덜대고 반항하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세상을 욕하는 그가 언뜻언뜻 보이는 순수함, 세상의 얼토당토 않은 폭력 앞에서 겁을 먹는 장면, 학교와 집을 멀리 하면서도 한때 미워한 친구들을 떠올리고 먼저 죽은 남동생 앨리와 집에 남은 꼬마 여동생 피비를 그리워하는 모습 등은 겉으로는 거칠게 굴 망정 속은 어떻게든 세상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어린아이에 불과한 홀든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홀든이 '호밀밭의 파수꾼' 이 되고 싶은 이유   

하지만 홀든은 삶에 대한, 세상에 대한 의욕을 결국 놓지 못한다. 역겨운 세상을 도피하고 싶지만 결국은 살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가끔씩은 자신도 모르게 '잘 살아보자' 라는 생각이 불쑥 떠오른다는 점, 결국은 어른이 되고, 또 다음 세대를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을꺼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거야. 애들이란 앞 뒤 생각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야. 그럴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건 그거야. 바보같겠지만 말이야.  

(pp 229~230)

  

<호빌밭의 파수꾼>에서 제일 유명한 홀든의 대사이면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홀든은 '파수꾼' 이 되고 싶어하는 생각을 본인 스스로 '바보같은 일'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홀든의 생각이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나 할 줄 아는 단순한 발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간이 미지의 대상과 세계와 대면하는 순간이 오게 되면 '뜻밖의 현상' 이 벌어진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인간의 '현상' 이란 인간은 주의 깊고 명민해지며, 자신의 모든 감각 능력을 발휘하여 미지의 대상과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알지 못했던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상력 사전> pp 6) 

홀든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위협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스스로 극복하고자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생각없이 달리고 있는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 '호밀밭의 파수꾼' 이 되는 것이다.   이상은 그저 질주하고 있는 13명의 아해들을 무서워할뿐 방관하고 있는 반면에 홀든은 자신과 같은 동등한 상황을 겪게 될 호밀밭에서 놀고 있는 꼬마들을 지켜내고자 한다.   '파수꾼' 으로서의 임무는 홀든에게는 적대적인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면서도 더욱 더 성장해나가기 위한 '홀든 콜필드' 라는 주체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새로운 도전 과정이다.   그래서 홀든 콜필드라는 소년의 성장통은 소설이 발표된 지 50년이 된 지금까지도 수많은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샐린저의 소설이 미국 고등학교와 도서관에서 최고의 금기도서와 최고의 권장도서가 된 것은 역설적이다. 작가는 당초 성인들을 위해 이 소설을 썼지만 전 세계 10대들이 홀든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열광하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성장한다는 것은 흔히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으로 말한다. 세상살이를 잘 모르는 사람을 철이 없는 어린아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곧 다가오게 될 '어른' 들의 세계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이유 없는 반항과 냉소가 철없던 행동과 생각으로 느껴지면서 어느덧 우리는 나이를 먹어 가는 것이 아닐까?     굳이 홀든처럼 '파수꾼' 이 될 생각은 하지 못하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미지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잊은 채 성장하고 있는 점이야말로 지극히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마음 속에는 공포와 두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내딛기 위한 삶의 의욕과 도전 정신이 우리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는 곳에 숨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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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1-09-21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년 전에 토론 모임에서 읽었던 건데...많은 주제로 열띤 토론을 했던 기억이 있네요. 기억에 남는 건, 홀든이 되고 싶은 사람이, 낭떠러지 옆에서 사람이 떨어지지 못하도록 하는 캐쳐가 되고 싶다는 거하고....센트럴파크 오리 얘기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택시 운전사에게 홀든이 얘기하던 오리 말이지요..ㅎㅎ
이 책 재밌죠?^^

cyrus 2011-09-23 19:05   좋아요 0 | URL
네, 언제나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어서 좋은 소설인거 같아요.
처음 읽었을 때는 홀든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반복해서 읽게 되니깐
홀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고, 몇 몇 문장들 중에는 감명 깊게 읽었던 것도
있었어요. ^^

아이리시스 2011-09-22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은 속독하는 거예요? 학교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제도권에 반박할 용기도 없던 나는 지독하게 홀든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와 비슷한 문장으로 예전에 책에 썼었는데. 저도 야무님처럼 학교 때 토론했었어요. 그때 대충 읽고 유럽여행 때 기차와 공원에서 읽는데, 진지하게 읽을 때의 나는 더이상 학생이 아니어서, 딱 한번쯤은 다시 학생이 되고 싶기도 했어요.

홀든은 부조리한 학교를 벗어났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곳은 아무데도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절망적이긴 해도, 파수꾼을 꿈꾸는 일이 여전히 어렵긴 해도, 살아가는 한 방법인 건 맞아요. 그죠?

cyrus 2011-09-23 19:10   좋아요 0 | URL
소설 같은 경우에는 속독하는 편이고요,, 인문사회 역사 같은 경우에는
일주일 정도 걸리더라도 천천히 읽는 편이에요. 아니면 알고 싶은 주제의
내용을 읽을 때는 발췌해서 읽고요. 결국에는 책의 장르에 따라
읽는 속도가 다른거 같아요 ^^;;

아이리시스님도 이 소설을 두 번 이상 읽으셨군요. 저 역시 처음 읽을 때랑
또 다시 읽을 때의 느낌이 달랐어요, 비록 힘들고 절망적인 세상이지만
자신 나름대로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한거 같아요.
며칠 전에 이 소설을 등굣길 버스 안에서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어요. '파수꾼' 정도는 아니더라도 절망적인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서요 ^^

루쉰P 2011-09-22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고 싶어지네여 ^^ 시루스님의 리뷰를 읽으니 내가 여태껏 호밀밭의 파수꾼을 제대로 안 읽었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오늘 지친 일상을 마치고 잠자리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리뷰를 보는데 시루스님의 리뷰를 읽으며 대 감동에 빠져 스마트폰으로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고 있어요. 정말 다시 읽고 싶네요. 전 주인공이 방황 끝에 신뢰한다고 믿을 수 있던 선생님이 그를 성추행하는 장면에서 너무 소름이 끼쳐 이 책을 깊이 보지 못 했거든요. 아 잠자리에 누워 정말 마음 속 깊이 읽었어요

cyrus 2011-09-23 19:12   좋아요 0 | URL
꼭 읽어보셔요. 이 소설은 학생부터 시작해서 어른들까지 세대를 불문하고
많이 읽혀지는 고전이니까요. ^^

사실 저도 처음에는 루쉰님이 언급하신 장면뿐만 아니라 홀든이 욕을 하는
서술 방식에 대해서 거리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반복해서 읽어보니깐
홀든의 모습이 어느새 저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

비로그인 2011-09-25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대학다닐때 일요일마다 책 읽고 얘기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 다른 생각도 좀 말해보고, 이렇게 인터넷 공간도 좋지만 서로 얘기하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참 매력이 있다 싶어집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길 위에서 같은 소설을 볼 때마다 그 때 생각이 나네요.

요즘 대학가는 더 그런 여유가 없겠죠??

cyrus 2011-09-26 12:55   좋아요 0 | URL
네, 강의실에 만나면 여자 이야기에서부터(^^;;) 연예 뉴스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거 같은데,, 막상 생각해보면 살아가는데 도움이 안 되는
대화만 하고 있더라고요 ㅎㅎ 한편으로는 친한 친구들 간에 만남을 통해서
대화를 나눈다는 시간이 즐겁기도 합니다. 그런 시간이야말로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여유가 되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