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1년 만의 재회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오랜만에 대형 서점 K 문고에 들리게 되었다. 거의 1년 만이다.
군 복무 시절, 휴가 차 항상 들리는 곳이 대형 서점이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전역 이후로는 알라딘을 자주 애용하다보니 오프라인 서점으로 가는 발길이 끊어졌다.
월요일로 시작되는 첫 주는 항상 월요병의 괴로움이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오랜만에 오프라인 서점에 들리게 된다는 설레이는 마음 때문인지 오랜만에는 친한 친구를 만나게 될 때의 감정처럼 느껴졌다.
사실은 서점에 들려게 된 이유는
전예원에서 2006년에 출판된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가 위해서였다.
역시나, 초판에 있는 내용 그대로 출판하고 있었다.
10년 전 영어 표기법은 여전하였고
내용에 대한 각주나 주석 역시 따로 구성되어 있지 않았다.
책 내용을 확인하면서 적잖이 실망했다. 더군다나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다수 번역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발간하고 있는 전집이라 국내에서의 셰익스피어 번역 수준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Scene #2 책 지름신 강림
책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서점에 들렀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이상 그냥 가기에는 섭섭하였다.
그래서 오늘 출근하면서 특별히 이 날을 위해서 책 지름신을 모셔 왔다.
책 지름신이 편안히 오실 수 있도록 수중에 쥐고 있는 현금 2만원과 작년 공공도서관 독서왕에 선정되어 받게 된 문화상품권 7장을 준비하였다. 비록 현금은 부족하지만 현금 7만원이나 다름없는 문화상품권이 있기에 부담없이 책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든든한 지원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나는 오프라인 서점에 들리게 되면 책 한 권 구입하는데 30분 정도는 투자해야하는 나름의 원칙이 있다. 지금 보유하고 지원금으로는 책 5권 정도는 구입할 수 있는데 구입하려면 서점에서 2시간 정도는 돌아다녀야 한다.
처음에는 나온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신간도서를 구입하려고 했지만 서점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중에 반값 할인도서를 모아 파는 특별매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대형서점 내부에 팔고 있는 반값 할인도서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유아용 또는 아동용 도서나 요리 레시피나 생활건강 관련 실용도서가 많았다. 그러나 대형서점 반값도서 특별매장에도 찬찬히 잘 살펴보면 분명 읽어볼만한 책 몇 권이 구비되어 있다.
Scene #3 반값할인 도서의 문제점
특히 특별매장에서 유독 눈에 띈 것은 생각의 나무와 이레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었다.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는 스테디셀러 김현의 <칼의 노래>를 출간한 생각의 나무 출판사가 지난 달에 최종 부도 처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이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의 출판사로 유명한 이레 역시 부도를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보니 현재 알라딘에 이 두 출판사의 책들 대부분은 품절 상태이다. 그나마 꾸준하게 팔리고 있는 몇 몇 도서들을 제외하고는 작년에 출간된 책들도 품절인 것이다. 이 품절 상태가 얼마동안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평소에 이 두 출판사의 책을 관심이 있게 지켜본 독자로써는 안타깝기만 하다.
마침 오늘 알라딘에 검색을 하면서 생각의 나무에서 출간된 책들이 품절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살까 말까 고민하였다.
일반 단행본은 3000원, 한 권 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거나 두꺼운 분량의 책 같은 경우에는 20000원으로 균일가로 판매되고 있었다. <러시아 문화예술의 천년>은 분량이 800페이지에 가까운데 정가가 49000원인데 오프라인 대형 서점에서는 거의 반값이나 다름없이 팔고 있었다.
이런 반값으로 판매되는 도서들을 훑어보면서 싼 값에서 구입해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면서 꺼림칙하였다. 이런 반값도서 판매 때문에 출판사들이 줄줄이 부도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해서 출판사가 무분별하게 가격을 깎고 낮추는데다가 이전부터 시행되어져 있었던 온라인 서점 또는 소셜커머스를 통한 반값할인 판매로 인해 출판사의 유통질서는 무너지게 되었고 수익이 악화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무조건 반값할인을 한다고해서 서점을 찾는 독자들이 무조건 구입하는 것도 아니다.
요즘 온라인상에서 DTD라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DTD는 Down Team is Down의 약자이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 라는 뜻이다. 이 말은 김재박 전 프로야구 감독의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김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프로아구 시즌때마다 항상 하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팀이 다음 시즌에서는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한다고 해도 좋은 상승세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네티즌들 사이에서 프로야구계의 명언(?)으로 남게 되었다.
DTD의 뜻은 출판계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독자들이 많이 구입하고 있는 스테디셀러는 수년이 지나도 높은 판매량은 꾸준히 유지되는 반면에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은데가 특히 독자들의 출판 트렌드에 부합되지 않은 비인기 도서들은 판매량이 계속 부진될 수 밖에 없다.
반값할인을 한다거나 갑작스런 홍보의 영향으로 인해 판매량이 늘어난다고 해도 매년 스테디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책들의 판매량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즉, 정가보다 50~60% 정도 반값으로 할인되는 책들은 독자들의 지갑을 열게 해줄 수는 있지만 판매량과 연관되는 수익의 관점에서 보면 출판사가 경제적인 손실을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Scene #3 2시간 끝에 고른 책들
서점 내부를 정신없이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의 2시간동안 저녁식사를 거르면서 서점에 있었던 것이다.
결국, 두 시간동안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오랜만에 부른 책 지름신을 고이 보내드렸다.
딱히 구입할만한 책도 없었고 너무 오랫동안 서점에서 시간을 지체한거 같아서 결국에는 반값도서 몇 권만 구입하였다.
앙드레 지드의 <교황청의 지하실>(종이나라)와 미겔 데 우나무노의 <우나무노 모범소설>(아르테) 그리고 미메시스에서 나온 <현대 건축의 철학적 모험 1>만 구입하였다. 이 세 권 다 반값도서 특별매장에서 구한 것이다.
반값도서 판매가 분명 출판사 입장에서는 좋지 않지만 반면 독자 입장에서는 싼 값에 구입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서 터무니없이 할인되는 판매 형태는 시급되어야 한다. 특히 특정 온라인 유통업체처럼 출간된지 얼아 안 된 신간도서를 정가가 아닌 할인가로 판매되는 경우는 시정되어야 한다. 한 곳의 유통업체가 큰 폭으로 할인하게 되면 다른 경쟁 유통업체에서도 너나 할 것없이 할인하기 때문이다.
과다할인의 출판 소비는 단순히 출판사 부도로 이어질 수 있는 원인이 아니다. 이는 열악한 우리나라 출판문화가 무너질 수 있는 출판계와 독자가 함께 공론화해야하는 심각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