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펭귄클래식 1
토머스 모어 지음, 류경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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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도 없는 장소,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1516년에 처음 세상에 나온 이래 늘 좋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왔다. 이 책을 통해서 모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하나의 이상적인 공동체를 묘사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정의와 평등에 기초하여 누구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 사회였다. 모어는 토지 공유제를 기초로 한, 돈이 필요 없는, 자급자족의 소박한 생활방식이 구현된 사회로 묘사했다.   

이 사회에는 화폐가 없는 대신 공동물품저장고가 마련돼 있어서 모든 사람들은 각자 생산한 것을 거기에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자유롭게 꺼내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필요한 생활물자가 모두 늘 거기에 있으므로 누구도 쓸데없는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불안에 쫓기는 일 없이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어가 묘사하고자했던 ' 유토피아 ' 라는 단어에는 그리스어의 ou(없다), topos(장소)를 조합한 말로서 ' 어디에도 없는 장소 ' 라는 뜻으로 의도적으로 지명으로 쓰고 있다. 즉, 유토피아는 ' 현실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 ' 를 일컫는 말인 것이다.  

그렇다면 몽상에 불과하는 이상사회를 묘사한 이 책이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전으로 읽혀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허구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들어 ' 소설 ' 로 분류되어 언급하기도 하며 유토피아 문학의 고전으로 손꼽히기도 하다.

 

 

  양이 ' 사람을 잡아먹었던 ' 15세기의 영국

그러나 뒤집어 보면, 소설과 같은 이 책은 단지 가공의 이상사회에 대한 몽상을 담아낸 흥미 위주의 책이 아니라 당대 영국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겨냥했다고 할 수 있다. 

모어는 헨리 8세가 이혼을 금하는 가톨릭 교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멋대로 영국교회를 창립하여 스스로 그 교회의 수장임을 선언했을 때 거기에 동조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처형을 당하기는 했으나 생애 말년까지 국왕을 측근에서 보좌한 지배층 인사였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당대 지배층의 전횡과 탐욕에 끝없이 시달리는 백성들의 참상을 외면할 수 없었던 양심적인 인간이었다. 그 양심이 우회적으로 표현된 게 바로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6~16세기 영국 사회에 볼 수 있었던 인클로저(Enclosure) 현상에 대한 모어의 비판의식이 담겨져 있다.  인클로저 현상이란 공동 이용이 가능한 공유지를 담이나 울타리 등의 경계선을 쳐서 남의 이용을 막고 사유지로 정하는 것을 말한다.   

15~16세기 영국에는 양모(羊毛) 생산을 이용한 산업이 발달했는데 자본가들은 양모생산이 더 유리한 데서 경지를 목장으로 전환하기 위해 공유지와 농민이 보유하고 있는 땅에 울타리를 쳐놓고 자신의 사유지로 만들어버렸다.  이로 인해서 힘 없는 농민들은 한순간에 실업자 신세로 처하게 되었고 빈곤에 빠진 하층민들이 점차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게 되면서 농토가 황폐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 자본과 권력을 가진 지배층은 양모 산업의 발흥에 편승하여 떼돈을 벌기 위해서 농민들의 전통적인 생활 근거지인 공유지를 사유화하여 양떼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런 모순의 사회상에 대해서 모어는 양이 ' 사람을 잡아먹는 ' 현실이라고 우회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과거에 이 동물들(= 양)은 아주 적은 양의 먹이만 필요로 하던 동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동물들이 지금은 노골적으로 맹렬한 식욕을 발달시키고 있고, 심지어 사람들까지 먹어치우는 동물들로 돌변하고 있습니다.  

(중략) 

가장 훌륭하고 따라서 가장 비싼 양모가 생산되는 영국 각지에서 성직을 맡은 대수도원장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귀족들과 시골 신사들이 자신들의 전임자들이나 선조들이 사유지에서 얻어내던 수입에 점점 불만을 품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게으르고 안락한 삶을 영위해 나가는 일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제 목초지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자신들의 사유지를 최대한 울타리로 에워싸 버리고 있습니다.  사회에 확실한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류경희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p 69~70 - 

 

이런 점에서 <유토피아>는 영국 사회의 모순적인 현실과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 무너져야만 했던 영국 국민들의 비참한 실상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사회적인 현실을 비판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생계수단을 강제로 빼앗아놓고 오히려 그 백성들을 무서운 형벌로 다스리는 지배층의 권력 오용에 대해서도 고발하고 있다.   

 

 

 

  토머스 모어 vs 헨리 8세  


 
 

(左) 토머스 모어    (右) 헨리 8세  

모어는 헨리 8세의 신임을 얻을 정도로 대법관에 임명되었지만  

왕의 영국 국교회 설립과 이혼을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국왕과의 기나긴 갈등 끝에 그는 대법관을 사임하였고  

결국에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토피아>는 그 당시 영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헨리 8세의 이혼 문제에 대한 모어의 입장도 드러나고 있다.   

헨리 8세는 왕비 캐서린과의 사이에 아들이 없자, 궁녀 앤 불린과 재혼하려고 하였으나 로마 교황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자신의 재혼을 성립되기 위해서 가톨릭 교회와의 결벌을 선언하고 영국 국교회를 설립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하였다.  

  


  

헨리 8세: 모어 경, 나 앤이랑 결혼하고 싶은데  

대법관인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다네.   

 모어: 폐하, 가톨릭적 교리의 입장에서 보면 이혼을 할 수 없습니다.   

(영화 ' 사계절의 사나이 ' 장면)


 

자신의 재혼을 위한 종교 개혁의 단행으로 가톨릭를 탄압하기 시작했지만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데 최대의 걸림돌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그 당시 국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토머스 모어였다.  모어는 대법관의 자리를 사임하면서까지도 헨리 8세의 국교회 수립과 이혼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고수하여 왕과의 갈등 끝에 참수형에 처하게 되었다.     

영국사에서 기억이 남을 왕과 대법관 간의 갈등은 절대군주로서 막강한 권력 앞에서 탄압받는 가톨릭의 부흥을 꾀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려는 종교인으로서의 모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유토피아>에서는 결혼과 관련된 내용을 보게 되면 모어가 평소에 결혼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토피아 인들의 경우) 그들은 엄격할 정도로 일부일처주의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기혼 부부는 오직 사별에 의해서만 헤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간통이나 견딜 수 없을 정도의 학대 행위가 있을 시에는 예외입니다. 이런 경우 무책 배우자는 지역 담당관 협의회로부터 다른 사람과 재혼해도 좋다는 허락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유책 배우자는 망신을 당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라는 편결이 내려집니다.  그러나 아내가 육체적으로 쇠약해져 간다는 단순한 이유(이것은 절대로 아내의 잘못이 아닙니다)만으로는 남편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이혼을 할 수가 없습니다. 

- 같은 책, p 175 -

  

아마도 모어는 앤과의 재혼을 바라는 헨리 8세의 끈질긴 회유에 맞서서 이렇게 대응했을지도 모른다.  왕이 되기 전 젋은 시절부터 여성 편력이 심했던 헨리 8세에게 모어는 올바른 결혼에 대해서 훈계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 헨리 8세는 두 번째로 결혼한 앤 불린마저 자신이 원했던 아들이 아닌 딸인 엘리자베스 1세를 낳게 되자 다시 이혼을 하게 되었고, 앤 불린은 처형당했다. 그 후로도 헨리 8세는 여러 번의 재혼과 이혼을 거듭했는데 여섯 번이나 결혼한 군주가 되었다)  

 

    

  유토피아에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있다  

 


 

니콜라 푸생 <아르카디아의 목자들> 1650년경
 

  

서양에서 아르카디아(Arcadia)는 동양의 ' 무릉도원 '과 같이 '천국' 또는 '낙원' 을 가리킨다. 아르카디아를 축복과 풍요의 땅으로 묘사하고 있는 니콜라 푸생의 그림에는 양치기로 보이는 세 명의 남자 중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앉아 묘비에 새겨진 글을 읽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 묘비에는 라틴어로 Et in Arcadia Ego(아르카디아에도 내가 있다)라고 쓰여져 있다.  이 말에는 무릉도원과 같은 이상향에도 죽음은 어김없이 존재한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의미심장한 라틴어 명구를 빌어 표현하자면 인간이 간절히 원하면서도 이루어졌다고하는 좋은 세상에도 부정하고 싶은 갈등, 빈곤, 번민 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국격이 높아지고 세계 몇 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는 보도를 지겹도록 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사정은 조용할 날이 없다.  상품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경상수지와 자본수지는 흑자를 기록하고 더불어 국민 소득도 증대한다는데 왜 사는 게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사람만 자꾸 늘어나는 것일까?    

게다가 점차적으로 부조리한 사회로 치닫을수록 시회지도층리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개인의 물욕을 위해서 이용할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생활 터전과 생계수단마저 빼앗으려고 하고 있다.   반면에 이런 어지러운 세상 속에는 걱정, 근심이 없는 이상향인 유토피아적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고 이를 직접 실현시키려고 하는 ' 용자 ' 들도 나오기 마련이다. 

토머스 모어가 살았던 영국의 시대가 바로 그러했다.  절대군주를 강화하려는 헨리 8세의 시대 속에서의 모어는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목도하면서 주저없이 비판하였다.  비록 뿌리 깊은 영국 사회의 문제점이 사라진 완전한 이상사회를 실현시키려는 급진성을 가진 ' 용자 ' 가 되지는 못했지만 모어의 <유토피아>는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건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사상적인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 그리고 푸리에, 오언, 칼 마르크스보다 먼저 합리적인 이상사회에 대해서 언급했다는 것을 보면 유토피아 문학의 고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역사 속에 혁명가절 기질을 가진 용자들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고 시도를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유토피아>를 읽는다고해서 우리가 이상국가 ' 유토피아 ' 에 갈 수 없었듯이. 

그 곳에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의 현실도 존재하고 있다.  유토피아는 유토피아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가 아닌 우리 ' 인간 ' 의 나라다.  400여 년 전에 쓰여진 <유토피아>에는 토머스 모어가 고발한 부조리한 현실, 즉 사회지도층이 만들어낸 부조리한 사회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래서 <유토피아>는 단순히 부조리한 사회를 잊기 위한 일종의 도피를 위한 독서가 아닌 사회의 문제점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선조의 생각으로부터 찾으려는 독서로서 일독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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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5-31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훠~^^ 저 어제 저녁부터 <유토피아> 읽고 있었습니다.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이 글이 독서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토머스 모어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유토피아 문학의 고전이라는 점에는 별 의심이 안가는 것 같아요. 여튼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1-06-01 16:40   좋아요 0 | URL
오랜간만이에요, 굿바이님 ^^

저도 모어의 입장에 대해서 간혹 수긍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굿바이님이 <유토피아>를 읽고 있는 목적이 궁금해지는데요. ^^


아이리시스 2011-05-31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유토피아 말고 세상의 유토피아가 있으면 좋겠어요. 에잇, 세상이 너무 지옥이예요. 지옥에서 꽃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우리가 다들. 저는 <인간 실격>, <황야의 이리>를 번갈아 읽고 있어요. 특이한 남주인공 둘이라 번갈아 읽으니 두사람이 한사람이 되고 있어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cyrus 2011-06-01 16:41   좋아요 0 | URL
요즘 우리나라 사회가 돌아가는거 보면,, ^^;;
저도 시간이 되면 두 책을 같이 읽어봐야겠어요, 지금은 안 읽어봐서
서로 연관되는 점이 떠올리지 않는데,, 님이 하고 있는 독서와 관련된
글이 나오겠군요. 기대가 됩니다 ^^

마녀고양이 2011-06-01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너무 잘 받았어요.
예상치 못 한 쿠키 선물에 너무너무 기뻤구요.
사진 찍어 올리려다, 결국 하루를 놓쳤어요.
진짜 길고 긴 리뷰를 쓰느라, 시루스님 페이퍼도 못 읽고 감사 댓글만 달아요.

좋은 날 되시구여, 내일 페이퍼 읽으러 다시 들릴게요~ 아줌마 뽀뽀 받아요, 쪽!

마녀고양이 2011-06-01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감탄스럽고 부끄러워지는군요.
몇백년씩 계속 살아있는 책부터 읽어야 하는데,
요즘 소개하시는 책 중에 읽어본 책이 너무 적어요. 귀동냥이나 한 정도이고. ㅠㅠ

유토피아라, 오늘 날은 침침하고 머리가 아파요.
정말이지............. 훅 유토피아로 떠나고 싶군요. 시험 준비 열심히 하셔여~

cyrus 2011-06-01 16:43   좋아요 0 | URL
만족하셔서 다행입니다. <좁은 문>은 일주일 내에 마고님 집으로
도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저는 요즘 현실 사안과 관련된 책을 읽고 싶은데,, 읽는 시간도
부족하고 독서 여건도 마땅치가 않아서 너무 편식적으로 독서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마고님도 열심히 준비 하셔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

2011-06-01 1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2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1-06-02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토피아는 정말 제가 좋아하는 주제에요. 혹시나 유토피아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루이스 멈퍼드의 <유토피아 이야기>가 박홍규 교수님의 번역으로 나와 있으니 참고 하셨으면 좋겠네요. ^^ 저도 재밌고 유익하게 읽은 책이에요.

cyrus 2011-06-02 23:40   좋아요 0 | URL
저두요, 토머스 모어 이외에도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관련 책들이
많이 있죠. 루쉰님이 소개하신 책 읽어보겠습니다. ^^

starover 2011-06-09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토피아가 그런 곳이었군요. 결국 그 곳도 '사람'이 만드는 공간이니까요. 과연 우리는 지금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