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 꿈을 향한 도전 ' 에 매료된 대한민국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열정’ 이라는 말에 익숙해졌다. 면접관은 구직자에게, 광고는 소비자에게 ‘ 당신은 과연 열정적으로 살고 있느냐.’ 고 물어본다. 특히 우리 사회를 이끌어나가야 할 젊은 세대들에게. 취업의 당락을 결정짓는 입사 면접은 물론 ‘슈퍼스타 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그렇다. ‘열정적으로 부딪치면 무엇이든 이루어낼 수 있다.’ 는 말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대표적 논리로 통하고 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꿈’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끝없는 노력과 도전으로 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시청자들 역시 그들과 함께 울고 웃게 만들며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그 어떤 조건보다 도전자가 가진 ‘재능’ 과 ‘열정’ 과 ‘노력’ 의 크기로 평가되면 큰 사랑을 받았으며 유사 프로그램들도 양산되고 있다.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 과 아나운서 공개채용 프로그램인 ‘신입사원’ 등 뜨거운 열정으로 꿈을 향해 달려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 외에도 '성공신화' 오페라 가수 폴 포츠를 탄생시켰던 영국의 브리튼 갓 탤런트를 표방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국내에도 나온다고 하니 그야말로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평범한 대중, 특히 젋은 세대들에게 ‘꿈을 향한 도전’ 이라는 열망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열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열정이라는 또 하나의 본성이 발현되기도 한다.
단순히 꿈과 열정만 가지고 대한민국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어제 스승의 날을 맞아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고등학교에서 김황식 국무총리가 특강하게 되었는데 김 총리는 그 날 특강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 꿈, 열정, 사랑의 정신으로 G20 세대인 학생들이 선진 인류국가를 향한 대한민국의 희망이 돼 달라" 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세계의 찬사를 받는 중심국가로 도약했다면서 학생들의 무대는 국내가 아닌 세계무대라고 강조하였다.
'열정' 이라는 단어 속에는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에 대한 열정은 충분한 보상을 필요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열정의 정신만 가지고도 G20 세대들은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무대까지 주름 잡는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말이야 정말 쉬워 보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통해서 직업으로 삼는다는 인생의 목표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되는 것이니까. 누구든지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하는 사회, 정말 좋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젋은 청춘의 세대들이 열정만 가지고 희망의 씨앗을 틔우기에는 너무나 척박하다.
열정의 미학화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작년에 슈퍼스타 K2에 허각이 우승하여 대중들로부터 이목을 끌었던 무렵에 정치인들 사이에서 '너도나도 허각처럼' 될 수 있는 공정사회를 외쳤던 적이 있었다. 특히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렸던 대정부 질문 중에 한나라당 소속 홍일표 의원은 허각의 등장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이며 불공정에 지친 국민들에게 공정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강조하였다.
홍 의원은 허각을 앞세워 공정사회의 화두를 내비쳤다는 점에서 여기서 이 글에서 말하고자하는 열정을 강조하는 사회의 문제점과는 연관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환풍기 수리공' 허각의 성공 스토리는 성공에 목말라 있던 대한민국 젋은 세대들에게는 자신도 허각처럼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단비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젋은이들은 노래실력을 가지고 성공한 허각을 통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꾸준히 노력하여 자신의 존재 가치를 실현시키고 싶어했다.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 성공을 위한 프로세서의 유형은 비단 허각의 등장에만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해찬 前 국무총리가 교육부 장관 재임 시절에 주장한 '하나만 잘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 ' 는 평등교육을 표방하기 시작할 즈음에 게임 실력만 가지고 대기업 임원 못지 않는 연봉을 받는 프로게이머 임요환의 등장이 겹치게 되면서 많은 학생들과 청년들 사이에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열심히 하여 성과를 발휘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무모하게 하나만 가지고 매달렸던 학생들과 청년들이 맞닥뜨린 진짜 현실은 신자유주의적 경쟁 사회였다. 일명 '이해찬 세대' 라고 부르던 젋은이들은 거대한 경쟁 사회 시스템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눈여겨 봐야할 점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교육부 장관으로 활동하던 시절이나 제2의 허각을 꿈꾸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습에는 공통적으로 젋은이들 사이에서는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이 아름답게 포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수반하면서까지 젋은이들이 성공을 위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아부으면서 하고 있는 작업의 행위들이 '노가닥' 즉 노동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시나리오 작가 故 최고운 씨와 인디음악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의 꿈을 자본주의가 어떻게 착취하고 있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금도 영화의 꿈을 안고 충무로로 들어온 젊은이들은 '돈보다는 경력이 중요하다' 는 논리에 임금 한번 받지 못한 채 날을 새며 일하고 있으다. 게임을 좋아하는 젋은이들은 스타리그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게이머가 되기를 바라면서 24시간 하루종일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서 게임을 하고 있다. 과연 이 수많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제2의 박찬욱, 제2의 택뱅리쌍이 몇 명이나 나올 수 있을것인가?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밀려나게 된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열정이 부족했음을 느끼면서 스스로 '루저' 가 되고 반면에 경쟁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들은 공장의 기계처럼 열정을 권하는 사회 속에서 열정을 바쳐야하는 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열정 노동의 등장
열정이 노동이 되어버린 오늘날, 청년들은 자신의 열정이 노동이 되고 있는지 모른채 다음과 같은 귀납법적인 프로세서를 형성하게 된다.
(1)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이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
(2) 그러므로 나는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가 아니다.
(3) 고로 나에겐 노동자의 권리가 필요 없다.
- 한윤형, 최태섭 외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p 186 -
이렇다보니 열정이 곧 근면, 성실함이라고 생각하는 젋은이들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열정이 가져다주는 성공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한 채 산업의 노동으로 유입되고 있다. 그리고 성공을 이루지 못한 결과에 대해서 열정이 부족하다고 자신 스스로 반성해야했다.
열정 노동이 우리나라에 등장하게 되는 시점은 IMF와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1990년대 이후의 상황에서부터다. 당시 정부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만이 신지식인이다.’, ‘영화 한편이 자동차 몇천대보다 낫다.’ 등의 논리를 펴며 산업 구조를 대폭 재편했고 동시에 고용의 안정성을 무너뜨렸다. 이 과정에서 빈자리를 채우려는 수단의 일환으로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 경영하라.’ 는 식의 탈노동자화가 장려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수용하여 한국적으로 변신하게 된 신자유주의는 직업에 관계없이 열정적으로 한 우물만 파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유연화’ 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노동시장 재편은 ‘더 많은 해고’ 의 자유를 기업에 주었을 뿐 노동자들의 현실은 갈수록 나빠졌다. 자본이 열정을 동원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자본은 ‘꿈을 좇으라’는 구호를 유포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근면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꿈을 좇아 나선 청년 노동자들이 결국 마주치는 것은 ‘노동 의 유연화’ 의 결과 비약적으로 늘어난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 신분으로의 편입이었다. 자신의 열정이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다가 한순간에 비정규직 인생으로서 궁지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열정이 죽어버린 대한민국 사회
제도화한 열정은 20대들을 가혹하게 몰아세우고 있다. 열정노동은 힘들다 토로하는 20대들에게 기성세대들은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 , ‘그 정도 열정이 없어서야…’ 라고 자극하며 끝없이 일하라 한다. 열정을 뒷받침된 근면과 노력은 성공을 위한 미덕이 되어버려 세상 물정 모르는 젋은 청년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러면서 열정을 매개로 개인의 노동력을 시장 경쟁에 편입시키는 ‘열정 노동’ 의 세계에서 실패는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된다.
그렇다면 열정 노동의 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견고한 체제로 이루어진 제도화된 구조를 개선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제서야 열정 노동의 구조를 비판한다하더라도 열정이 성공을 위한 미덕이 되어버린 지금, 상황을 극복하기가 어렵기만 하다. 지금도 수많은 젋은 구직자들은 여러번 대기업 면접 심사를 통해서 자신의 '열정' 을 강조하고 있을 것이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그 '열정' 은 도서관에 틀어박혀 앉아 정작 좋아하는 일과 관련이 없는 각종 자격증, TOEIC 공부에 한창 쏟아붓고 있다. 경쟁 사회 속에서 만약에 조금이라도 '열정'적인 자세가 보이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쳐진다거나 죽을 때까지 평생 하류 사회 속에서 살아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렇듯, 젋은 세대들은 열정 노동의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학교에서는 이솝 우화의 '개미와 베짱이' 에 나오는 개미처럼 부지런하고 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른이 되면 성공할 것이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오늘날로서는 개미처럼 단순무식하게 성실함의 노동을 강조하다가는 정작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 열정은 인생의 성공을 위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원동력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의 열정은 한낱 노동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떻게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정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면접관의 눈에 들어오기 위해서 평소에 하지 않은 생각과 행동들을 자신의 열정이라고 포장해야 한다. 그리고 열정이 얼마나 발휘하느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라는 극명한 결과로 나뉘어진다.
이렇듯, 경쟁과 지본이 우선시되는 탐욕에 점칠된 사회구조 속에서 수많은 젋은 대한민국 청년들의 열정은 본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