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소리 마마 밀리언셀러 클럽 4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그림은 내겐 즐거운 절망이다.  

- 프랜시스 베이컨 (1909~1992) -

    

 

 

  베이컨의 음울한 자화상   

영국의 추상주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이 평생동안 그린 그림들 중에는 정상적인 형체라고 보기 어려운 얼굴들이 담긴 초상화와 자화상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사실, 이 그림이 그의 자화상인지 분명한 출처를 알 수 없다. 베이컨은 평생 몇 점의 자화상과 자화상을 그리기 위한 많은 습작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 그림이 베이컨의 자화상이 확실하다면 그의 실제모습과 어느 정도 유사하게 그린 자화상일수도 있겠다. 불규칙한 형태 속에서도 그의 실제 얼굴의 실루엣이 남아 있으니까.     

일단 그의 그림들은 섬뜩하고 참혹하다. 베이컨 자신 얼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캔버스에 담아낸 모든 인간의 얼굴들은 눈, 코, 입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뭉갰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왜 이런 끔찍하고 흉칙한 형상의 그림들을 그렸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과 추측들이 낳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 프랜시스 베이컨 ' 이라는 대중들의 머리속에 쉽게 각인되게 하는 이름을 세계 미술사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화가에 대한 독특한 생의 이력일 것이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름이 같아서 착각할 수 있겠지만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 유명한 철학자의 후손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동성애자 화가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어린시절의 베이컨은 누이의 속옷을 몰래 훔쳐 입다가 아버지에게 발각되어 크게 혼나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 정신적인 혼란을 겪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베이컨에게는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지우고 싶은 부정적인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알콜 중독자에다가 틈만 나면 자신에게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의 그늘을 베이컨은 영영 벗어나지 못했다.   

훗날, 자신도 알콜 중독에 빠질 정도로 매일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폭음을 할 정도로 유별난 ' 괴짜 ' 였으며 유년시절의 우울한 기억들은 화가가 되어 ' 베이컨 표' 그로테스크적 아름다움을 창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 회화의 괴물 ' 이 사랑했던 남자 

 

 


프랜시스 베이컨 <조지 다이어의 초상화를 위한 연구>, 1967년 


 

 


<사랑의 악마> (원제: Love is Devil, 1998년) 

프랜시스 베이컨과 조지 다이어와의 동성애적 연애를 토대로 만든 영화. 

이 영화의 조지 다이어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분하였다.

 

그는 평생 4명의 남자들과 동성애적 관계를 맺었는데, 그 중에 조지 다이어와의 관계는 영화로 만들 정도로 유명한 미술사적 스캔들로 남게 되었다. 조지 다이어는 좀도둑이었지만 베이컨에게는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사랑스러운 존재였으며 자신의 피폐하고 암울한 삶을 지탱해주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그에게 다양한 예술적 영감을 제공해주는 뮤즈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나머지 3명의 동성애자 애인들처럼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하고 불행한 결말으로 끝나게 된다. 조지 다이어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정작, 베이컨은 자신의 절대적인 존재가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하여 자신의 곁을 떠나야했는지 알지 못했다.  1992년,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홀로 쓸쓸히 숨을 거둘 때까지  ' 회화의 괴물 ' 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에 대한 그리움을 자신의 캔버스에 구현한 조지 다이어를 보면서 만족해야만 했다.

 

  

 

  ' 우리 사회의 괴물' , 아이코     

 

 


프랜시스 베이컨 <그림>, 1946년

 

프랜시스 베이컨이 다룬 그림의 주제는 ' 뭉개진 고깃덩어리' 같은 얼굴의 형상 이외에도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질것만 같은 ' 진짜 ' 고깃덩어리를 그려넣기도 하였다. 그에게 고깃덩어리는 미술적인 영감을 제공해주는 동시에 육식의 즐거움을 만족할 수 있는 ' 쾌락 ' 이었다.   

그래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 고깃덩어리 ' 그림들을 보게 되면 그의 미술에 대한 호불호가 쉽게 갈라지게 된다. 어떤 이들은 베이컨 특유의 그로테스크에 매료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수억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명화를 ' 끔직하면서도 다시는 쳐다보기 싫은 불쾌한 그림 '  을 치부하고 만다.  

이런 대중들의 평가는 기리노 나쓰오의 <아임 소리 마마>를 처음 읽게 된 독자의 반응과 평가에서도 볼 수 있다.  

작년에 군 복무할 때 처음 읽고난 뒤에 올해 들어서 기리노 나쓰오의 악명 높은 소설과 재회하게 되었다.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아이코의 살인 과정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읽은 소설 주인공들 중에서 최악의 인물일 것이다.   

내가 비위가 강해서 그런지, 아니면 베이컨의 그림을 선호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1년만에 다시 읽게 되니 아이코의 광기어린 아우라는 여전하였다. 하지만, 기리노 나쓰오의 명성을 알게 되어 처음 이 작품을 집어든 독자들에게는 읽는 내내 차례차례 살인을 자행하는 아이코의 모습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힘겹게 읽고 난 독자들에게 또 다시 읽어라고 권하면 또 읽을 수 있는 ' 강심장 ' 독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기리노 나쓰오 골수팬이 아닌 이상 이 책을 두 번 읽는 독자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프랜시스 베이컨의 ' 괴물 ' 같은 그림에는 화가가 경험한 어두웠던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듯이, 그녀가 일삼는 살인, 거짓말 그리고 절도 뒤에는 ' 괴물 ' 이 되어야하는 남모를 고통스러운 과거의 흔적이 있다.   

유년시절의 베이컨에게 친아버지가 가한 잔인한 폭력은 평생 지울수가 없는 마음의 상처가 된 것처럼 아이코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온갖 핍박과 정신적 모욕을 받으면서 자라야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창녀촌에서 몸을 팔아야했다. 아이코는 부모가 주는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야하는 일반적인 어린이들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에는 엄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아이코에게는 모성애를 느끼고 싶은, 따뜻한 사랑의 감정에 목말라 있었다. ' 사회의 괴물 ' 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은 바로 자신을 낳아준 ' 마마 ' 라고 부르는 엄마였다.

결국, 진정한 인간다운 사랑을 느끼지 못한 채 자신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불신은 깊어져만 갔고, 낯선 남자와의 섹스가 유일한 사랑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붉은 고깃덩어리의 맛과 형태에 지나치게 탐닉했던 것처럼 아이코에게도 사랑이란 자신의 입맛에 맞으면서도 자극적이면서도 강렬한 엑스터시였다.

아이코와 아담의 ' 특선 로스구이 섹스' 는 아이코의 광적인 성적 집착을 볼 수 있는것뿐만 아니라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문장으로 재현할 정도로 소설 속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 <두 형체>, 1953년  

 

아이코는 재미있어져서 아담의 대머리 위 고깃덩어리를 얹었다.

 " 봐, 어울려. 당신은 짐승이니까. "

아담은 고기에서 흐르는 피가 미간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내버려둔 채 웃었다.  
(중략)

아담이 고깃덩어리를 안고서 맹렬하게 달라붙었다.  
(중략)

두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고깃덩어리가 끼어 있다. 두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고깃덩어리가 찌부러지거나 비틀려서 지방과 피가 흘러나와 배가 질척거렸다. 


 - <아임 소리 마마> 기리노 나쓰오, 황금가지, p 83~84 -



 ' 섹스와 고깃덩어리 '  

동성 간의 섹스를 좋아할 정도로 육체적 쾌락에 탐닉했으며 세상의 모든 형체를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정신세계와 일맥상통하다.  베이컨은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것은 ' 즐거운 절망 ' 이라고 표현했듯이 아이코에게 살인 역시 아이코만의 즐거운 절망이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재미있게도 ' 사랑 ' 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른 삶의 환경 때문에 스스로 '괴물' 이 되어야만 했다.  

한 남자는 미술사에 기억될 ' 회화의 괴물 ' , 또 한 여자는 독자들에게 기억될 ' 사회의 괴물 ' 로. . .  

 

   

  

 

  ' 봐, 어울려. 당신은 괴물이니까. '   

 

 


<두 개의 고깃덩어리를 들고 있는 F. 베이컨> 존 데킨의 사진, 1953년
  

시대의 ' 괴물 ' 로 살아야했던 프랜시스 베이컨과 아이코는 결국에는 그토록 자신들이 찾고자 했던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한다.  베이컨은 조지 다이어를 포함한 자신의 동성 애인을 자살로 죽는 장면을 봐야만했었으며 아이코는 본의 아니게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만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다시 정상적으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 독단적이며서도 기형적인 사랑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섹스를 통한 육체적인 쾌락에 지나치게 탐하는 베이컨의 사랑은 조지 다이어에게는 심적으로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아이코도 사랑 없는 섹스를 통해서 쾌락을 느끼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면서 살인의 쾌락에도 헤어나지 못하고 만다.  자신의 친모마저 못 알아볼 정도로 아이코는 이미 섹스와 붉은 피에 눈이 멀었던 것이다.   

만약에 아이코가 그림 심리 테스트를 하게 된다면 그녀는 '사람의 얼굴' 또는 자신의 얼굴을 어떻게 그릴지 궁금하다.  분명, 베이컨의 초상화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어리가 된 얼굴을 그렸을 것이다.  초상화나 자화상은 그림으로 그려지는 대상의 내면 상태를 표현하기도 한다. 베이컨과 아이코가 그린 얼굴, 즉 세상에는 평생 고치기 힘든, 단호하고 철저하게 세상을 암울하게 보는 그들만의 냉소적인 시선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프랜시스 베이컨와 아이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일반 대중들에게는 혐오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야말로 ' 괴물 ' 이라고 불러도 좋을 최악의 인간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누가 이들을 ' 괴물 ' 로 변하게 했는지는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조지 다이어의 자살은 베이컨이 죽인거나 다름없다. 자신의 비뚤어진 사랑에 대해서 베이컨은 죽을 때까지 반성과 죄책감이 들었는지는 알 길은 없지만, 아이코는 사랑하는 마마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통해서 늦게나마 ' 섹스를 좋아하는 살인 괴물 ' 에서 ' 진실한 인간 ' 이 되었다. 

아이코는 자신의 ' 괴물 ' 스러운 죄의 행위에 대해서 마마에게 사과를 하였는데, 정작 정신적 약자였던 아이코를 ' 괴물 ' 로 만들어버려 평생 괴롭혔던 사회는 그녀에게 따뜻한 사과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녀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못할 망정 아이코에게 ' 괴물 ' 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우리야말로 정신적 약자를 괴롭히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닐까?  

과연, 지금 이 세상에는 아이코가 되고 싶어했던 ' 진실한 인간 ' 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캔버스에서 진짜 ' 괴물 ' 이 되어버린 프랜시스 베이컨은 지금 어디선가 자신의 고깃덩어리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이렇게 비웃으면서 조롱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프랜시스 베이컨 <자화상>, 1971년
 

 ' 이게 당신들의 얼굴이야. 봐, 어울려, 당신들은 괴물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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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1-10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임 소리 마마'에서 이런 멋진 리뷰라니요~
근데 말이죠, 전 기리노 나쓰오를 읽어낼 비위는 아닌가 봐요.

이 밤, 좀 춥고 썰렁한가 봐요.
님 계신 곳은 따뜻하겠죠?^^

cyrus 2011-01-10 15:34   좋아요 0 | URL
집 안이라서 따뜻해요.^^;; 이번 소설을 통해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려고 하는데,, 이 소설은
그리 권할만한 책은 아닌거 같아요..^^;;

굿바이 2011-01-10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랜시스 베이컨의 자화상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공포가 떠오르네요. 아마 그 공포는 자화상의 모습이 낯익어서 느끼는 공포였을 겁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1-01-10 15:38   좋아요 0 | URL
베이컨의 자화상에서 뿜어져나오는 그로테스크는 인간의 어두운
내면 상태를 정확히 그려냈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그의 흉측한
그림들에 열광을 하는가봅니다. 알고보니, 이 화가의 그림들이
나름 수억가치의 경매가가 나올 정도로 인기가 있다더군요,,^^;;

마녀고양이 2011-01-10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이컨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묘하게 공감이 가네요.
많이 공감이 가요. 인간의 뒤틀어진 면과 방금 히어나우님의 페이퍼와 겹쳐서.

기리노 나쓰코의 아웃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 못 읽었어요.
그런데 아임쏘리마마가 이런 쪽 이었군요. 머랄까, 이런 책들은
인간의 악의 근원까지 쫒아가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해요. 나름의 탐미적 부분이 있죠.

작가 미상인 프랑스 소설 'O의 이야기'를 우연히 접했을 때
야한 것도 그렇지만, 상식이라 배운 것을 몽땅 부정하려는데 충격을 받았어요.
토머스 해리스의 한니발도 마찬가지 맥락이죠. 나이 든다는 것은
당연하다 여겼던 사실을 하나씩 부셔버리는데 있나 봐요....

cyrus 2011-01-10 15:42   좋아요 0 | URL
이 소설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기에는 좀 그런 작품인거 같습니다.^^;;
19금 딱지를 붙여져야할 정도로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거든요.
하지만, 마고님 말씀하시는대로 이 소설은 인간의 악의 근원이
과연 어디까지인지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코뿐만 아니라
아이코 주위의 사람들까지도요.

starover 2011-01-16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그림이 좀 끔찍하네요.

cyrus 2011-01-16 19:43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베이컨의 그림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드물긴 하죠.
그림이 워낙 끔찍하고 무섭다보니, 가끔 베이컨의 그림을
악의 상징으로 왜곡되어 표현하기도 합니다.
몇 편인지 모르겠지만,(확실한 건 그 때 조커로 분한 배우가
잭 니콜슨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배트맨>에서 조커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이 제 글에서 소개된 <그림>이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