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친. 소 (내 4차원 친구를 소개합니다)
제 친구 중에는 유독 남다른 성격을 가진, 4차원적인 녀석 한 명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친한 친구들 중에서 눈에 띄일 정도로 유별날 뿐만 아니라 나의 유일한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자란 친구이기도 합니다. 특이하게도 제가 대학생이 되면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친구의 실명을 밝히기는 그렇고 하니, 별명으로 소개하겠습니다.
그 친구와의 첫만남이 아직도 기억합니다. 2007년, 두근거리면서도 대학생이 된다는 설레는 마음을 가슴에 안고 과 OT 때 그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별명은 '오리원숭이' 랍니다. 서울에 생활했을 때 주위의 서울 친구들이 이렇게 불렀다고, 본인 스스로 말했답니다.
어쨌든, 으레 신입생 동기들과 선배들이 한 방에 모여 빙둘러 앉아서 자기소개를 하게 되면 본격적인 OT가 시작되는 것이죠. 그래서 오리원숭이가 자기 소개를 하게 되었는데, 3년 전인데도 서울말 쓰는 그 녀석의 소개 멘트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온 오리원숭이라고 합니다 , , ,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제가 집에서 먼 대구에 있는 대학교로 오게 된 것은 대구 여자가 이쁘다고 하길래 대구 여자들과 사귀고 싶어서 이곳 학교에 다니기로 했습니다. "
주위의 선배들은 물론이고, 저를 포함한 동기들은 그 녀석의 독특한 소개에 웃고 말았습니다. 저는 생판 모르는 처음 본 녀석의 소개가 어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대구에 살아서 잘 모르겠지만 지방이나 서울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구 여자가 미인이라는 말을 듣긴 합니다. 그런데 진짜로 대구 여자가 이쁜다고 단지 사귀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집에서 수천 km나 떨어진 대구에 있는 학교에 오다니 , , , 순간 저는 오리원숭이가 돌+아이인줄 알았습니다. (뭐 지금도 돌+아이 소리 간혹 듣는 녀석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 저 녀석, 수능 성적이 얼마나 개판이었으면 이런 대구에서 수준이 낮은 학교에
왔을까? "
뭐, 저도 수능 성적이 좋지 않았고 가까스로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만(제가 다니는 학교 , , , 사실 그리 좋은 수준의 학교가 아니랍니다) 저런 말을 할 정도이면 왠지 놀기만 놀고 공부 좀 안 할 거 같은 느낌이 문득 들었답니다. 어쨌든 저와의 오리원숭이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으며 생각보다 오리원숭이는 대구 생활에 잘 적응하였고 동기들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물론 저도 그 친구의 자취방에 자주 놀러가서 외박할 정도로 오리원숭이와 많이 친해졌습니다.
서울 여자 vs 대구 여자
그런데 이상하게도 2학기가 지났는데도 그가 바라는 대구 여자와의 교제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봐도 오리원숭이는 여자 선배들의 귀여움을 받을 정도로 나름 얼굴이 괜찮은 편이고 (이 말이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본인 입으로는 서울에서 여자랑 10번 넘게 사귀어 봤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 꿀리는 남자애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그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OT 때 소개한 말도 생각난 것도 있었고 여자친구를 안 사귀고 있는지도 무척 궁금했었습니다.
cyrus : 오리원숭아. 너 OT 때 대구 여자랑 사귀고 싶다는고 말한거 , , ,
일부러 웃기려고 그런거였지?
오리원숭이 : 아니, 난 그 때 진심으로 말한거야. 나 진짜 대구 여자 사귀고 싶어서
여기 학교에 입학했는거라니까.
cyrus : 야! 그런데 2학기가 되었는데, 아직도 여자를 못 사귀고 있냐?
너의 잘생긴 페이스와 여자를 꼬시는 말빨 정도면 괜찮은데 , , ,
오리원숭이 : 그럼, 넌 지금까지 대구에 살았으면서도 여자를 한 번도 못 사귀어봤냐?
난 그게 궁금하다.
cyrus : , , , -_-;;
이런 , , , 예상치 못한 오리원숭이의 반격에 급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제가 궁금했던 내용에 대해서 다시 물어봤습니다.
cyrus : 으흠 , , , 그건 맞는 사실이지만 , , ,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 , ,
왜 대구 여자를 못 사귀고 있냐 말이다. 너 OT 때 말한거 기억 안 나?
대구 여자 사귀려고 여기 대구에 있는 학교에 다니기로 했다면서 , , ,
그러자, 오리원숭이는 얼굴에 화색이 돋으면서 천연덕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오리원숭이 : 아 , , , 그거 , , , 그 때 말한거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니.
사실은 대구 여자랑 사귀고 싶은데 , , , 여기 생활해봐서 느낀건데
대구 여자들은 내가 사귀었던 서울 여자랑 다른거 같아.
저는 처음에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대구 여자랑 서울 여자랑 차이점이 뭐시길래 , , , ?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어봤습니다. 대구 여자랑 서울 여자의 차이점이 뭔지를 , , , 그런데 그 녀석의 대답을 듣고나니 무척 황당했었습니다.
오리원숭이 : 대구 여자들은 너무 폐쇄적인거 같아. 서울 여자들은 약간의 농담에도
잘 웃고 반응을 해주는데
여기 대구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무뚝뚝한 것도 같더라.
왠지 웃는 것도 억지로 웃어주는 것도 같고 , , ,
그리고 대구는 서울처럼 재미있게 놀만한 곳이 없어서인지 모르겠는데
노는 것도 그리 재미있지도 않고 , , ,
내 생각이지만 서울에서 사귀었던 여자들이랑 성격이 정반대인거 같아.
그래서 사귀기가 쫌 그래.
그의 말이 약간은 대구를 비하하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기분이 제일 안 좋았던 이유는 여자를 지역에 따른 문화적 차이를 빗대어 비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의 말이 너무 일부분만 보고 있는 '우물 안 개구리' 식 오류에 빠졌다면서 그 녀석의 잘못된 논리를 지적해주었습니다. 서울에 사는 모든 여자가 다 잘 놀며 대구에 사는 여자들은 재미 없다는 식의 논리는 성립 자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제 말에 오리원숭이는 수긍이 한다는 자세를 보였지만 , , , 원래 남자나 여자나 남의 말에 잘 수긍하지 않으며 겉으로나마 상대방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는 자세만 보여주는 것이 남자이기도 하죠. 즉, 한 쪽 귀로 듣고 다른 한 쪽 귀로 말을 흘러버린다는 것이죠.
지역 문화 차이가 빚어낸 연인의 갈등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들이 수록된 <아가씨외 철학자>에는 1920년에 발표되었던 [얼음 궁전]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얼음 궁전]이 집필했던 1920년이나 <아가씨와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단편소설집을 출간했을 때에는 피츠제럴드 문학 인생 중에서는 작가로 활동한지 얼마 안 되었으며 주로 단편만 집필했던 초창기 시절 입니다.
이 단편소설에는 샐리 캐롤 해퍼라는 미국 남부 쪽에 위치하는 조지아 주에 사는 여자와 반대로 북부 지역 쪽에 살았던 해리 벨라미라는 남자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도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남부에서 쭉 살아왔던 여자와 그 반대로 북부에서 살았던 남자로 대비되면서도 이 남녀 주인공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설정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지만 유독 샐리는 자신이 살았던 남주의 조지아 주와 전혀 다른, 벨라미가 사는 지역의 문화와 환경에 무척 낯설어합니다. 조지아 주보다 기온이 낮은 북부 지역의 추위에 몸을 떨어야했으며 모임 장소에서 작은 농담도 하지 못하는 북부 특유의 사회적인 분위기에 당황해하기도 합니다.
남부에서는 약혼녀나 젋은 기혼녀도 사교계에 처음 발을 디딘 여인에게 베풀어지는 조금은 가식적인 농담이나 찬사를 똑같이 기대할 수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것이 전부 금지된 것 같았다.
- <피츠제럴드 단편선 2> 민음사, [얼음 궁전] p 63 -
그래서 해리가 사는 마을에 세워진 명물인 아름다운 얼음 궁전 안에 들어가게 된 샐리는 결국, 그동안 마음속에 쌓여왔던 북부 지역에 대한 심적 고통과 불안정한 마음이 폭발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샐리는 자신의 집이 있는 곳에 가고 싶다고 조증을 부리기도 합니다.
얼핏 피츠제럴드의 소설 속 해리와 샐리 간의 갈등은 남녀 간의 서로 다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함에 기인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미국 내의 남부와 북부 지역 간의 차이와 지역 갈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해보셨다거나 어느 정도 생활해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미국의 남부와 북부는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으며 우리나라에 서로 다른 분위기가 나는 서울 표준어와 대구 사투리가 있듯이 이들의 언어도 서로 다릅니다. 그리고 지금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남부와 북부로 갈라져 미국 사람들끼리 으르렁거리고 서로 대립하기도 했었답니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국 대륙에서 치뤄진 남북 전쟁은 미국 사회 내 지역 갈등 형성하게 된 동족상잔의 내전이었습니다. 전쟁의 원인은 서로 간의 얽히고 설킨 수많은 갈등들이 있지만 남부와 북부가 싸워야만 했던 진짜 이유는 서로 엇갈린 노예제도에 대한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노예제도 해방을 옹호했던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이 이끈 북부의 승리로 4년동안 치뤄진 혈전을 마무리짓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게 되면서 미국에도 평화와 안정의 시기가 찾아왔지만 전쟁에 의해서 생긴 남부와 북부 간의 지역 감정의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이 앙금 때문에 미국사에서 비극적인 기록으로 남게 될 대형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에이브러험 링컨이 대통령 재임 중에 남부 지역 출신인 배우 부스에게 암살당하고 맙니다. 이렇듯, 미국 내 북부와 남부 간의 지역 갈등은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20세기에서도 이어져 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 지역 갈등의 골
미국의 지역 갈등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문제적인 사회 현상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지역 갈등으로는 영남과 호남 이 유명하죠. 우리나라 같은 경우도 미국의 지역 갈등의 원인과 유사합니다. 6.25 전쟁이라는 냉전 이데올로기로 인한 민족 간의 전쟁이 발발하고 난 뒤부터 지역 갈등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정권의 정치세력들에 의해서 영남과 호남 간의 지역 갈등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고요.
그래서 결혼상대를 찾게 되면 항상 따지게 되는 조건들에는 재산 정도, 성격 등 다양하지만 출신 지역이나 연고지를 따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는 잘 어울리는데, 상대가 기피하는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만남 자체가 불가능할 때가 생기기도 합니다. [얼음 궁전] 속 해리와 샐리처럼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 다른 지역 문화 간의 차이 때문에 사소한 다툼이 발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지역 갈등이나 감정에는 이미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이 심각한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특정 지역에 대한 왜곡되거나 과장된 정보가 더 심각한 지역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오리원숭이의 경우처럼 말이죠. 제가 사는 대구에는 유독 성폭행이나 지하철 대형사고 등 정말 안 좋은 사건사고들이 터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구에 사는 저로서는 왜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대구에 대한 지역 감정이 있는 어느 네티즌을 이를 비꼬아서 대구를 '고담 대구' 라고 하더군요. 고담이라면 만화영화 <배트맨>배경인 악의 도시의 이름을 말하는거죠. 이렇다보니 대구라는 하나의 지역뿐만 아니라 대구에 사는 사람들도 안 좋은 사람으로 폄하되고 맙니다.
저는 지역 갈등을 무척 싫어하며 이런 세상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지역 문화에 대해서 서로 이해해주고 포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평생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할 배우자를 지역 감정을 따지면서까지 고르는 것 역시 옳지 못한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작품 속에서 샐리가 남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개라고 표현하는 대사가 등장하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남부 사람인 해리에게도 갯과라고 말하는 대사는 그녀가 남부에 대한 좋지 않은 지역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려면서도 지역 차별적인 뜻을 감추기 위해서 자신은 민감성이 강한 고양이과이며 갯과는 민감성과 대비되는 과도한 남성상이라고 포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양이과와 갯과가 남녀 간의 서로 다른 감정을 상징하는 재미있는 표현인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표현된 문장 뒤에는 심각한 뜻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에 씁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역 감정뿐만 아니라 지역 차별적인 발언이나 표현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었습니다. 짧은 내용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세상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해줄 수 있어서 뜻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