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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평점
3점 ★★★ B
18세기 프랑스의 풍경화가 위베르 로베르(Hubert Robert)의 별명은 ‘폐허의 로베르’다. 폐허가 된 고대 건축이 있는 풍경을 자주 그려서 이런 별명이 생겼다. 여행기 형식으로 된 장편소설 《토성의 고리》를 쓴 독일의 작가 W. G. 제발트(Winfried Georg Sebald)에게 붙여주고 싶은 별명은 ‘폐허의 제발트’다.
《토성의 고리》에서 화자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기 쉬운 폐허의 현장들을 응시한다. 그가 주목한 폐허의 현장들은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최적의 여행 장소와 거리가 멀다. 그곳엔 쓸쓸함이 감돌고 있다. 화자는 자신을 덮쳐오기 시작한 공허감을 벗어내기 위해 영국의 서퍽(Suffolk) 주로 도보 순례를 한다. 소설의 부제는 ‘영국 순례’다. 하지만 소설 속 화자의 여행은 영국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의 내면은 가지처럼 뻗어서 영국 너머의 세계로 향하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장소를 답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화자는 사우스월드(Southwold)와 월버스윅(Walberswick) 마을 사이를 오가는 철교를 바라보다가 19세기 중반 중국의 시대상을 되돌아본다. 이것은 ‘눈으로 보는 여행’이 아닌 ‘마음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여행’이다. 화자가 폐허의 현장들을 둘러보면서 사색에 빠질수록 허무와 우울은 더욱 선명해진다. 우울한 순례자는 망각과 무관심의 풍화 작용으로 부식되고 퇴색된 장소들을 보며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면서 발전해왔던 세상의 허망함을 깨닫는다.
점점 세상은 더 좋아질 거라는 낙관적인 믿음은 인류를 눈멀게 한다. 세상을 좋아지게 만드는 데 기여한 인간은 역사의 승자가 된다. 승자에게만 주목한 역사는 대대손손 보존되는 우상(偶像)을 견고하게 해주는 재료다. 우상이 우뚝 서 있을수록 우상의 그림자는 더욱더 짙어진다. 우상의 그림자는 패자 또는 무명으로 기록된 역사를 가린다. 《토성의 고리》에서 보여준 작가의 글쓰기는 폐허의 장소에 드리운 우상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부식되어 뿔뿔이 흩어져버린 역사의 파편들을 모으는 작업이다. 토성의 고리는 토성에 접근하다가(토성의 중력에 의해서) 부서진 위성들의 잔해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 제목은 주류 역사가 만든 거대한 우상을 못 이겨 산산조각이 난 또 다른 ‘역사의 파편들’을 의미한다. 작가가 글로 기록하면서 복원한 역사는 미래 낙관론과 우상 중심의 역사관에 도취한 인류가 보지 못한 세상의 진실이다.
《토성의 고리》는 인내심이 필요한 소설이다. 화자의 순례는 옆길로 새거나 때로는 미로 같은 장소에서 헤매기도 한다. 여기에 폐허의 현장들을 둘러보면서 느낀 상념까지 버무려진 글은 작가의 문장을 따라가는 독자를 지치게 한다. 여행은 폐허를 응시하는 화자를 심란(心亂)하게 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독자의 마음이 심난(甚難)하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알
* [주1] 역자는 바실리스크(Basilisk)를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전설의 뱀(32쪽)’이라고 설명했다. 맞긴 한데 이는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전설이다. 고대 로마 제국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Plinius)의 저서 《박물지》(최근에 번역본이 나왔다!)에 따르면 바실리스크가 내뱉은 숨결에 독성이 있어서 그 숨결만 닿아도 죽는다. 이것이 고대 사람들이 상상한 바실리스크의 위력이다. 중세에 접어들면서 바실리스크 전설은 과장스럽게 변형되었는데, 메두사(Medusa)처럼 눈만 마주쳐도 죽는다든가 그 울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죽을 수 있다는 설정도 나왔다.
* [주2] 33쪽에 언급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환상의 존재들에 대한 책》(El libro de los seres imaginarios)은 《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민음사, 2016)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 46쪽
아편을 맞고 몽롱한 상태에 빠진 콜리지(1772~1834, 영국의 시인 · 평론가)라고 해도 그의 몽골 군주 쿠빌라이 칸을 위해 이보다 더 몽환적인 장면을 그려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주3]
[주3] 아편에 취한 콜리지가 몽롱한 상태에 쓴 시가 바로 『쿠블라 칸』(Kubla Khan)이다. 콜리지는 꿈에서 본 쿠빌라이 칸의 여름 별궁 제나두(Xanadu, 제너두)를 소재로 이 시를 썼다.
* 294~295쪽
오후에 그들은 오랫동안 함께 앉아 따소(16세기 이딸리아의 시인)의 『해방된 예루살렘』(Gerussalemme liberata)과 『신생』(Vita nuova)을 읽었고, 어린 소녀의 목이 진홍색으로 붉어지거나 자작의 심장이 목깃까지 두근거리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주4] 《신생》은 단테(Dante)의 작품이다. 번역본은 《새로운 인생》(민음사, 200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