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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버블
지야 통 지음, 장호연 옮김 / 코쿤북스 / 2021년 1월
평점 :
평점
3.5점 ★★★☆ B+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안 보이는 건 안 보이는구먼.”
(영화 <자토이치>의 마지막 대사)
우리는 심각한 상황을 보고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심각한 상황이나 오류를 초기에 신속히 발견해서 대처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란 게 있다. 대형사고 1건이 일어나기 전에 작지만 비슷한 사고가 29건이나 일어나고 사소한 징후는 300건이 발생한다는 법칙이다. 불길한 조짐을 예의 주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경미한 징후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캐나다의 과학 저널리스트 지야 통(Jiya Tong)은 대형사고의 결정적 원인이 되는 문제를 미처 보지 못하는 인간을 ‘현실 거품’, 즉 리얼리티 버블(reality bubble) 속에 갇힌 존재라고 말한다. 거품은 우리를 둘러싼 일상이다. 일상은 평화롭고 안정적이다. 거품 속 세계에 익숙한 우리는 일상 너머에 있는 심각한 상황을 보지 못한다. 거품이 터지면 대형사고가 일어나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심각한 상황을 실감한다. 거품 속에 있는 우리는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거품 밖에 일어난 파국의 징후를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종종 외면한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면서 인식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어 있어서 눈을 뜨고 있어도 나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경미한 문제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맹점’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맹점은 현실 거품을 터뜨리는 경고성 징후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지야 통의 《리얼리티 버블》은 우리를 ‘눈만 뜬 바보’로 만드는 맹점들을 소개한다.
우리는 아주 크거나 아주 작은 규모의 존재나 사건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것들을 눈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후 온난화 같은 현재 진행형인 전 지구적 문제의 심각성에 둔감하다. 또 우리에게 이로운 미생물과 그 역할에 대해 무지하다. 미생물이 질병을 일으키는 유해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지구의 유일한 주인이라고 믿는 우리는 주변 세상과 다른 존재와 상호 연결되어 살아가는 방식을 망각한다. 자신이 생물보다 한 단계 수준 높은 우월한 존재라고 본다. 인간만이 감각과 의식을 갖춘 유일한 존재라는 착각은 인간 중심주의의 한 예다. 인간 중심주의는 동물을 인간을 위해서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대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맹점들이다. 맹점은 개인의 타고난 약점으로만 작용하는 게 아니다. 한 집단 전체나 사회 안에서 작용하는 맹점도 있다.
물과 전기가 없는 일상을 상상하기 싫다. 우리는 물과 전기의 소중함을 잘 알면서도 물과 전기가 어디서 오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어디서,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물과 전기를 낭비하고, 환경오염의 주범 중 하나인 플라스틱을 무분별하게 쓰고 버린다.
맹점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삶이 지속할수록 지구의 수명은 줄어든다. 지구의 수명이 줄어들면 인류 최후의 날이 앞당겨진다. 맹점을 외면하면서 현실 거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에만 매달릴 수 없다. 터진 거품을 또 만드는 일은 거품 밖의 문제들을 소극적으로 보게 만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저자는 맹점의 오류에서 벗어나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도구를 제시한다. 그 도구는 바로 ‘과학’이라는 이름의 렌즈다. 과학 렌즈는 우리의 현실 인식 범위를 좁게 만든 낡은 세계관에 의문을 품게 만들며 맹점을 보게 만든다.
하지만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지 말자.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과학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과학도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자본과 권력과 결탁한 과학은 정확한 사실을 왜곡하고 은폐한다. 따라서 과학 렌즈를 최대한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면서 사용하려면 계속 연마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식을 의심하고 비판할 줄 아는 자세와 회의적인 사고를 늘 유지해야 한다. 과학 렌즈 연마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가까이 있는 문제를 잘 볼 수 없는 원시(遠視)를 교정할 수 없다.
※ Mini 미주(尾註)알 고주(考註)알
[주1]
* 86쪽

주기율표에 나오는 118개의 원소 가운데 26개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주1] 가속기나 원자로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핵반응을 일으켜 만들어진 방사선 원소를 인공 원소(artificial element)라고 한다. 자연에 아주 적은 양으로 존재하거나 특정 조건에서만 생기는 원소는 수명이 짧다.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미량의 천연 원소 역시 인공 원소로 분류하기도 한다. 따라서 인공 원소를 명확히 정의하기 어렵다. 인공 원소의 정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원소의 개수가 달라질 수 있다.
[주2]
* 87쪽

트리니티는 인류 최초의 핵무기였다.
[원문]
Trinity was the world’s first nuclear weapon.
[주2] 인류 최초의 핵무기는 1945년 8월 6일, 9일에 각각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다.
[주3]
* 413쪽

발렌타인데이 → 밸런타인데이
[주4]
* 441쪽

g[중력 상수]가 지금보다 작았다면 빅뱅의 먼지는 그냥 계속해서 팽창하여 은하, 항성, 행성 그리고 우리로 결코 뭉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중력 상수의 값은 생명이 존재하기에 딱 적당하다.
[주4] 중력 상수(gravitational constant)는 대문자 G로 표시한다. 소문자 g는 중력가속도(gravitational acceleration)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