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마지막 일요일은 ‘달의 궁전(약칭 ‘달궁’)’ 비대면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다. ‘zoom’ 프로그램을 이용하며 오후 2시부터 화상 채팅이 시작된다. 나는 독서 모임이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서 책방 ‘읽다 익다’에 갔다. ‘읽다 익다’는 건물을 확장 이전하여 올해 2월 1일에 문을 열었다. 책방에 갈 땐 버스를 타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하지만 그 한 시간도 소중하다. 버스 안에서 책 50쪽 분량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책방에 자주 못 가지만, 생각날 때마다 그곳에 간다.
새로 문을 연 ‘읽다 익다’는 넓고 쾌적하다. 과거의 ‘읽다 익다’의 내부 공간이 아주 좁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이 책방지기가 운영하는 여러 모임 장소로 이용되다 보니 나 같이 혼자 오는 손님은 책방 내부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새로운 ‘읽다 익다’에 방음문이 있는 다인용 회의실이 생겼다. 이제 이곳에서 모임과 강연을 진행할 수 있다. 차와 커피를 마시러 오는 손님들이 앉을 수 있는 탁자도 마련되어 있다. ‘읽다 익다’는 책방에 처음 오는 손님과 책방 모임 참석자 모두를 위한 ‘슈필라움(Spielraum: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휴식을 취하면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다. 새로운 ‘읽다 익다’를 열기 위해 책방지기는 커피 만드는 법을 다시 배웠다. ‘읽다 익다’의 시그니처(signature) 음료는 아인슈페너(Einspänner)다.
[달의 궁전 2월의 책]
* 앤드루 포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문학동네, 2019)
3.5점 ★★★☆ B+
책방 소개는 이 정도까지만 하고, 본격적으로 ‘달궁’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2월의 달궁 도서는 앤드루 포터(Andrew Porter)의 단편소설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약칭 ‘빛과 물질’)이다. 십 년 전에 21세기북스 출판사가 《빛과 물질》을 출간했지만, 책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절판되었다. 김영하 작가가 이 책을 언급하면서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문학동네 출판사가 재출간했다.
《빛과 물질》에 총 열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었다. 달궁인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작품은 당연히 표제작 『빛과 물질』이었고, 그 다음으로 『구멍』과 『강가의 개』였다. 『빛과 물질』은 물리학과 종신 교수와 서른 살 연하인 제자의 만남을 그린 이야기다. 소설의 화자인 헤더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약혼자가 있지만, 로버트 교수와의 만남을 이어간다.
교수와 제자 간의 만남은 호불호가 엇갈리는 주제이다. 로버트와 헤더의 모습은 한 쌍의 연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설에 묘사된 두 사람의 행동과 대화 장면만 가지고 연인 관계로 단정할 수 없다. 달궁인은 소설 문장을 톺아보면서 두 사람의 관계(‘로버트는 정말 헤더를 사랑했을까?’, ‘로버트와 헤더를 무조건 섹슈얼한 연인 관계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나눴다. 달궁인 한 분은 『빛과 물질』이 인상적이어서 열 번이나 읽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본인이 갱년기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빛과 물질』 결말이 슬프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달궁의 터줏대감 헤르메스님(알라딘 서재에 활동한 분이다. 여러 리뷰 대회에 수상한 이력이 있는 서평의 고수이다)은 앤드루 포터의 글에서 간결한 문체로 작중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제임스 설터(James Salter)와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의 작문 스타일이 느껴졌다고 했다.
[달의 궁전 3월의 책]
* 디노 부차티 《타타르인의 사막》 (문학동네, 2021)
이번 달의 달궁 도서는 이탈리아의 작가 디노 부차티(Dino Buzzati)의 《타타르인의 사막》이다. 최근에 레삭매냐님이 샀던 그 책이다. 내가 이 사실을 언급하자 달궁인들이 레삭매냐님을 보고 싶어 했다. 레삭매냐님, 달궁은 당신을 잊지 않았다. 달궁은 당신을 위해 판을 깔아 놨다.
이번 달 모임도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참석할 수 있다. 그러나 방역 조치가 풀리고 ‘5인 이상 모임 금지’도 해제되면 대면 모임에 참석할 수 없게 된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