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 미국의 출판사 알프레드 노스(Alfred North)는 고양이를 주제로 한 세계의 시를 모은 <The Great Cat>를 출간했다.
*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아인북스, 2017)
* 이상화, 이장희 《이상화. 이장희 시선》 (지만지, 2014)
* 보들레르 《악의 꽃: 앙리 마티스 에디션》 (문예출판사, 2018)
* 보들레르 《악의 꽃》 (아티초크, 2015)
* 보들레르 《악의 꽃》 (문학과지성사, 2003)
* 릴케 《검은 고양이》 (민음사, 1974)
* 박성민, 송승현 옮김 《고양이를 쓰다: 작가들의 고양이를 문학에서 만나다》 (시와서, 2018)
이 시 선집에는 《악의 꽃》에 실린 보들레르(Baudelaire)의 『고양이』, 릴케(Rilke)의 『검은 고양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한자리에 모은 이 책에 우리나라 시인이 쓴 시도 있다. 그 시는 바로 고월(古月)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다』다. 영문 제목은 ‘The Spring is a cat’이다.
세계의 명시들을 모은 책에 한국의 시인으로 유일하게 소환된 이장희는 누구인가. ‘그건 너’, ‘한 잔의 추억’ 등의 히트곡을 부른 가수 이장희의 동명이인이다. 시인 이장희의 본명은 이양희다. 1920년에 ‘장희(樟熙)’로 개명했고, 필명으로 ‘장희(章熙)’를 썼다. 그는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이병학이다. 이장희는 이병학과 첫 번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는데, 이장희가 다섯 살 때 친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이병학은 두 번째 부인과 결혼하여 5남 6녀를 두었으며 이장희가 죽기 5년 전에 세 번째 아내를 맞아들였다. 당연히 이장희의 이복 형제와 자매가 더 늘어났다. 이병학은 두 명의 아내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첩 1명을 두었다.
고월은 생전에 많은 시를 쓰지 않았다. 1924년에 문단에 등단했고 1929년에 음독자살하였다. 고월의 몇 안 되는 친한 문인 중 한 사람이었던 동향 출신의 시인 목우(牧牛) 백기만이 1951년에 <상화와 고월>이라는 시 선집을 편찬했고, 한동안 잊힌 이장희의 시 열한 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시인 이상화를 가리킨다. 지금은 대구를 낳은 유명한 문인이라면 가장 먼저 이상화와 『운수 좋은 날』의 작가 빙허(憑虛) 현진건을 떠오르지만, 백기만과 이장희도 대구 시민이라면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할 대구 출신의 문인이다. 이장희, 이상화, 현진건 이 세 사람 모두 광복을 보지도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고월은 1929년에 자살했고, 이상화와 현진건은 1943년 4월 25일 같은 날에 숨을 거두었다. 이들과 친하게 지낸 목우만이 조국의 광복을 지켜봤다.
고월은 대구의 부호 집안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친어머니의 이른 죽음, 그리고 이복 형제와 자매가 많은 복잡한 가정환경은 시인의 폐쇄적인 성격을 형성하는 원인이 되었다. 우울하고 조용한 성격 탓에 친하게 지낸 지인과 동료 문인이 많지 않았다. 시인 겸 국문학자 양주동은 고월을 ‘술 마실 줄 모르는 말수가 적은 문인’으로 기억했다. 문인들 사이에서 주당으로 유명한 양주동과 목우가 있는 술자리에 고월이 합류했는데, 목우는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안주만 먹는 고월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이상화가 나라 잃은 시대에 대한 고뇌를 안으면서 시로 쓰고 있을 때, 고월은 친일파 아들이라는 죄의식에 갇혀 살았다. 어쩌면 ‘친일파의 아들’이라는 낙인은 너무나도 소심한 시인을 더욱 고립하게 만든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고월은 상화와 목우처럼 항일 운동을 하면서 시를 쓰진 않았지만, 고월이 생각하기에 식민지 시대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버지와의 불화를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이병학은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했으며 일본어에 능숙한 고월이 자신의 가업을 이어받기를 원했다. 이병학은 고월에게 중추원의 어떤 직무를 맡아달라고 제안했으나 고월은 거부했다. 시인은 일본인과 관련된 아버지의 명령을 모조리 거부했고, 아버지와의 갈등은 더욱더 깊어졌다. 다만 고월이 친일파 아버지의 명을 거부했다고 해서 그를 ‘저항 시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 고월은 사교성이 부족했던 사람이다. 그는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아버지의 일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고월은 절제된 언어로 이미지를 묘사하는 시를 주로 썼는데, 그의 섬세한 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준 시가 바로 『봄은 고양이로다』다. 고월은 이 시에서 생동감 넘치는 봄의 기운을 고양이의 신체 부위로 비유했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문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봄은 고양이로다》 20쪽)
한국 모더니즘 시의 지평을 연 수작으로 평가받는『봄은 고양이로다』는 19세기 프랑스 모더니즘의 선구자 보들레르의 『고양이』와 함께 언급되곤 한다. 그러나 보들레르의 시에 나타난 고양이는 퇴폐미와 생명력을 동시에 가진 팜 파탈(femme fatale)의 이중적인 매력을 의미한다.
고월은 총 서른여섯 편의 시를 남겼는데, 『봄은 고양이로다』가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고월의 시는 ‘숨어 있는 보석’과 같다고 할 수 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싶은 고월의 시는 『겨울의 모경(暮景)』이다.
큰 거리는 저문 연기에 젖어
동정이 몽롱하고
녹슨 무쇠 같은
둔중한 냄새가 잠겨 흐른다.
그러나 가다가는
앓는 소리 은은한 전차가
물오른 풀잎 같은
뾰족한 신경을 드러내고
때 아닌 푸른 꽃을
허공에 날리기도 한다.
길바닥은
얼어서 죽은 구렁이 같이 뻗으러졌고
그 위를
세찬 바람이 돛을 달고 달아나면
야릇한 군소리가
눈물에 떨어 그윽이 들린다.
잘 주절대고 하이칼라인
제비의 유령이
불룩한 검정 외투를 휘감고 비틀거리는
사이에 있어서
흐른 은결같이 허여스름한 옷 그림자가
고요히 움직인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너머로
핏줄 선 눈알같이 불그레함은
마지막으로 넘어가는
날 볕의 얼굴이 숨어있음이라
이들 눈에 드는 모든 것이
저마다 김을 뿜어서
그는 환등의 영사막이며
침울한 데생을 보는 듯하다
(《봄은 고양이로다》 36, 38쪽)
이 시에서 고월은 근대적 시공간으로 변모하는 조선의 어느 도시(경성 혹은 대구?)를 관찰하는 산책자(flaneur: 플라뇌르)다. 모든 것이 서양식으로 대체되고, 인간이 소외되기 시작했던 조선의 도시. 시인은 군중 속에 쓸쓸히 걸어가면서 도시의 우울을 데생처럼 묘사한다. 『도시의 모경』은 도시인의 고독을 관찰하면서 도시의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보들레르의 작업을 떠오르게 한다.
1980년대 초반에 이장희 시 전집이 두 권이나 출간되었지만, 현재는 절판되었다(두 권 모두 알라딘에 등록되지 않은 책이라서 정확한 제목을 입력해도 찾을 수 없다. 헌책을 판매하는 웹사이트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이상화. 이장희 시선》(지만지, 2014)은 이장희의 시 34편 원문을 실었다. 고월이 쓴 시가 많지 않아서 36편을 전부 실어도 좋을 텐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 두 편이 제외되었다. 2017년에 출간된 《봄은 고양이로다》 (아인북스)가 현재로선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장희 시 전집이다. 이 책은 시의 원문만 실은 게 아니라 한문과 고어를 쉬운 말로 풀이한 현대문도 함께 실었다.
그런데 이 책에 시인의 생애를 설명한 내용이 중복되어 나온다. 그렇다 보니 독자에게 혼란을 주는 내용이 보인다. 《봄은 고양이로다》230쪽 ‘이장희 프로필’에는 출생 월일이 ‘1900년 1월 1일’로 적혀 있고, 231쪽 ‘이장희 연보’에는 ‘1900년 11월 9일’로 되어 있다. ‘이장희 프로필’과 ‘이장희 연보’는 제목만 다를 뿐 거의 비슷한 내용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있는 ‘이장희’ 항목에 보면 그가 태어난 날이 ‘1월 1일’로 되어 있다. 고월은 ‘1900년 11월 9일’에 태어난 것이 맞다. 그리고 책에 고월이 이병학의 12남 9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고 되어 있는데도 다음 장에는 시인이 ‘맏아들’로 태어났다고 잘못 적혀 있다. 또, 책 앞날개에 ‘이장희 전짐’이라는 오자가 있다. ‘전집’으로 고쳐야 한다. 《봄은 고양이로다》는 시 전집에 걸맞지 않게 편집이 엉성하다.
고월 이장희는 정지용, 김기림과 함께 조선의 이미지스트(Imagist)로 평가받아야 한다. 가수 이장희가 시인 이장희보다 더 유명하다. 고향인 대구에서도 그의 이름과 시들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안타깝기만 하다. 두류공원에 이장희 시비(詩碑)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대구 시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잊힌 요절 시인의 봄은 언제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