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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책읽기 - 세상을 이해하는 깊고 꼼꼼한 읽기의 힘
로버트 P. 왁슬러 지음, 김민영 외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1월
평점 :
‘소설을 읽는 것은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설은 읽어도 남는 게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소설은 유용한 정보를 주는 책이 아니다. 소설 속에도 지식이 있지만, 전문 분야를 다룬 책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래도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소설을 많이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소설은 ‘누군가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 ‘인생의 정답’이 없다. 그래서 소설 한 권 읽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소설 읽기의 가장 큰 목적은 소설 속 상황에 부닥친 등장인물을 ‘나’로 설정한 후 감정이입을 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등장인물과 더불어 웃고 울고, 슬퍼하고, 기뻐한다. 때로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소설을 읽을 때는 등장인물의 감정에 공감하면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소설 속 인물에게 깊이 감정이입을 할수록 재미있고, 그렇지 못할수록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이미지와 영상, 소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소설 속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낯설어한다. 그래서 그런가? 이제 사람들은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아예 책을 멀리하고 인터넷이 있는 스마트폰을 더 좋아한다. ‘마음의 양식’이 될 만한 책은 아무도 찾아 읽으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오감을 자극하는 ‘쾌락’을 찾는 데 점점 더 익숙해져 간다. 그래도 어떤 이들은 끈질기게 책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책의 매력을 느끼려면, 그것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위험한 책읽기》는 언어로 빚어진 이야기(linguistic narrative)를 이해하기 위해 ‘깊이 읽기(deep reading)’를 강조한다. 언어로 빚어진 이야기는 종이책 속에 있다. 《위험한 책읽기》에 언급되는 ‘깊이 읽기’는 종이책을 느리게 읽으면서 사색하는 방식이다. 《위험한 책읽기》의 저자가 ‘깊이 읽기’를 강조하는 것은 작가의 화려한 문체를 익혀 좋은 문장을 쓰라는 말이 아니다.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나 자신과 타자를 둘러싼 미지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라는 것이다. 결국 책을 깊이 읽는다는 것은 나 자신이 누구이며 내가 타인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하는 과정이다.
‘깊이 읽기’는 산책(散策)으로 비유될 수 있다. 산책은 천천히 걸으면서 자연의 언어를 읽는 일이다. 산책은 한 그루의 나무, 한 포기의 풀, 흙냄새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언어에 집중하는 ‘깊이 읽기’와 다르지 않다. 저자는 독자 스스로 읽을 수 있는 여덟 가지 산‘책(冊)’ 코스를 공개하면서 자신만의 해석을 들려준다. 코스는 다양하다. 『창세기 1~3장』, 『프랑켄슈타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암흑의 핵심』, 『노인과 바다』, 『호밀밭의 파수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파이트 클럽』,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등이 있다. 코스의 순서에 신경 쓰지 말고, 원하는 대로 가면(읽으면) 된다.
그런데 저자는 왜 책 읽기가 ‘위험’하다고 생각했을까. 왜냐하면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줄거리가 아닌 이야기로 표현된 ‘유한한 인간’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문학과 조우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것과 가지지 않은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 우리에게 친숙한 것과 낯선 것은 무엇인지 상기시켜준다.
(27쪽)
우리는 상황을 용이하게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와 정보를 수집한다. 그러나 내러티브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 인간을 질문으로 몰아넣는데, 중요한 것은 질문 자체이다.
이야기는 무엇이 인간 세계에서 지속되며 무엇이 이 세상의 인간을 만들어내는지를 상기시킨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삶이 가진 불안정함, 그리고 우리의 나약함과 평범함이다.
(291쪽)
※ 글꼴을 굵게 하고 밑줄 친 문장은 필자가 강조하기 위해 표시한 것임.
작가와 독자 모두 인간이며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나약한 면모를 이야기를 통해 노골적으로 전하고, 독자도 자신 또한 초라하고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따라서 앞서 언급했듯이 소설에는 ‘인생의 정답’이 없다. 인간은 날마다 ‘인생은 무엇이다’라고 여러 번 정의를 내리면서 살아간다. 독자는 그러한 정의를 수차례 번복하면서까지 소설을 읽는다.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독서는 내가 누구인지, 나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아가는 지적인 여정이다.
저자는 ‘깊이 읽기’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타인에 대한 공감 불능이다. 갈수록 사람들은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데 인색해진다. 그들은 타인이 겪는 삶의 고통이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오로지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해서는 우선 타인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데 독서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책을 접할 때 비로소 독자는 자신과 타인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발견한다. 그렇게 받아들인 타인의 이야기는 독자의 자아를 성장시킨다.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비로소 책은 따분하고 위험한 대상이 아니라 즐거움의 대상이 될 것이며 평생 내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 Trivia
*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말을 인용한 문장에 큰따옴표(”) 한 개가 없다. (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