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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의 검은 개 카프카의 쥐 - 우울증은 어떻게 빛나는 성취가 되었나
앤서니 스토 지음, 김영선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2월
평점 :
영국의 총리를 지낸 처칠(Winston Churchill)은 평생 자신을 괴롭힌 우울증을 ‘검은 개(Black dog)’라고 불렀다. 누구나 함께 살 수 있는 반려견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우울의 정도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공허감에 시달리며 세상만사가 귀찮고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물론 이런 감정은 흔히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대개는 우울함이 정상 범위를 넘어서도 치료하지 않고 가볍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증상들이 장기간 지속한다면 심각한 우울증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우울증을 절대적으로 위험한 병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극심한 우울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울증은 때론 창작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처칠, 카프카(Franz Kafka), 뉴턴(Isaac Newton), 융(Carl Gustav Jung) 등 위대한 작가나 학자, 예술가들은 정신병의 위협 속에서 아주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다.
《처칠의 검은 개 카프카의 쥐》는 인생에서 ‘애증의 반려견’인 우울증과 그 밖의 정신병을 주제로 한 책이다. 영국의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 앤서니 스토(Anthony Storr)는 유명인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인간을 따라다니는 여러 형태의 ‘마음의 그림자들’을 해부한다. 저자가 말뚝 삼은 전제는 우울과 불안, 강박 등이 부정적인 것만이 아닐뿐더러 창조력의 근원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저자가 언급한 사례가 그것을 입증한다. 처칠은 꼬리를 흔들면서 자신을 따라오는 ‘검은 개’를 외면하기 위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카프카는 늘 불안에 떨었다. 그가 쓴 글에는 독선적인 아버지와 아무 힘이 되어주지 못했던 연약한 어머니 사이에서 무력했던 카프카의 감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싫어하지만 결국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에 대한 혼란스러운 양가감정은 우울증이나 공황발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한 카프카는 여러 차례 파혼 끝에 결국 평생 미혼으로 살았다. 카프카는 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글을 썼다. 그에게 글쓰기는 예술이기에 앞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외로운 투쟁에 가까웠을 것이다. 카프카의 글에 나오는 인물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외롭게 살다가 떠난 카프카 자신이었다.
뉴턴은 세 살 때 어머니가 재가하는 바람에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성격이 약간 뒤틀려 있었고,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정신 발작에 시달렸는데,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인지 의심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자신이 세상을 바꾼 위대한 인물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뉴턴이 이룬 성취는 그칠 줄 모르는 탐구 열정이 만들어 낸 것일까, 아니면 ‘이성에 완전히 벗어난 정신’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나온 것일까. 저자는 뉴턴의 학문적 성취 일부는 자존감을 높이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자존감이 낮은 뉴턴을 자신의 능력을 의심했고, 그러한 극심한 불안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뉴턴을 괴롭힌 병적 불안은 그가 뛰어난 업적을 남기는 데 어느 정도 이바지했다.
수많은 정신병 환자를 만난 융도 ‘검은 개’를 피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우울증을 개인적 고통으로 인식하지 않고, 중년에 이르는 모든 사람이 겪는 고통으로 인식했다. 융은 ‘중년의 위기’에 관심을 기울인 최초의 심리학자이다. 융의 성인 발달 연구는 프로이트(Freud)를 비롯한 당대 정신분석학자들이 외면한 ‘중년 우울증’을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발판으로 작용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성적 억압이 신경증의 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융은 프로이트 심리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융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신경증은 환영할 일이다. 너무 심한 신경증은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지만, 적당한 신경증은 자기 자신을 다시 볼 수 있게 만드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융은 “그 사람이 신경증에 걸리게 돼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즐겨 말했다고 한다. 이 책에 수록된 두 편의 글 『성인 발달의 양상: 융의 중년』과 『정신분석과 창의성: 프로이트』는 프로이트 심리학과 융 심리학의 명확한 차이점을 아주 쉽게 설명한 글이다. 여기서 저자는 프로이트 심리학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융 심리학을 지지한다.
이 책에 나오는 유명인들은 모두 비범한 재능과 정신질환을 양손에 거머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정신적 기질이 창의성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우울증이 반드시 창의성을 높여준다는 식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펼치지 않는다. 『진정한 천재는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라는 글은 ‘광기=천재’라는 오랜 미신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번뜩이며 스치는 영감(靈感)을 정신병과 연관 짓는 입장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정상’, ‘질서’에 익숙한 사회는 이것에 살짝 벗어난 ‘새로운 사람’을 ‘비정상’,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여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런 사회에 태어난 ‘노력하는 천재’는 ‘괴짜 천재’가 되어 푸대접을 받기도 한다. 그는 프로이트를 비판하지만, ‘상상력이 불만으로부터 나온다’는 프로이트의 말에 동의한다. 삶에 대한 불만족이 유발하는 우울증과 불안 장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다. 인간은 한 가지에 만족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더 좋은 것을 원한다. 그래야 삶에 대한 불만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인간은 그것을 양분으로 삼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영국의 작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의 표현을 빌려 ‘갈망하는 상상력’의 가치를 강조한다. 따라서 인간은 항상 더 나은 것을 찾기 위해 상상하고 노력한다면 우울증이라는 약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다. 처칠, 카프카, 뉴턴 등은 ‘검은 개’를 물리치기 위해 끊임없이 상상력을 펼쳤고, 오랜 노력 끝에 새로운 것을 창작해냈다.
이 책이 주는 교훈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더 나은 것을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잃지 않는 삶의 자세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죽을 때까지 간직해야 할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주]다. ‘뷰티풀 마인드’를 유지하는 것은 곧 희망을 이야기하는 일이다. ‘뷰티풀 마인드’는 괴짜 천재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주] 정신분열증을 앓은 수학자 존 내쉬(John Nash)의 일생을 그린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