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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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를 소설 속에 등장시켜라.

그러면 그가 펼치게 되는 미학론은 적어도

나에게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올더스 헉슬리, 《연애대위법》, 동서문화사, 606쪽)

 

 

 

톨스토이(Tolstoy)《전쟁과 평화》는 한마디로 웅장하다. 이야기가 묵직한 데다 분량도 방대해 완독이 쉽지 않다. 《전쟁과 평화》는 귀족 사회의 허례허식, 남녀 간 사랑, 군인들의 애국심, 러시아 민중의 낙천성 등 인간의 다양한 정서를 기가 막히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는 다채로운 삶의 유형을 그린 작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 이야기 속에 때로는 고민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체념하면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있다. 아무도 톨스토이만큼 작중 인물의 미묘한 심리 상태를 전달하는 표현력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전쟁과 평화》는 1805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부터 데카브리스트(Decabrist, 십이월당원) 반란의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한 1820년까지 15년 동안 격동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쓰였다. 이 소설에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주인공을 한두 명으로 특정할 수 없다. 《전쟁과 평화》의 기본 줄거리는 네 가문의 흥망성쇠다. 볼콘스키 가문, 베주호프 가문, 로스토프 가문, 쿠라긴 가문의 일원들이 등장한다.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은 냉철한 두뇌를 가진 인물이다. 그의 친구 피예르 베주호프는 방탕한 생활을 하는 이상주의자이다. 피예르는 표도르 돌로호프와 바람난 아내 옐렌과의 결혼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프리메이슨에 가입한다. 프리메이슨 가입 이후로 그는 다시 세상에 태어나는 기분을 느낀다. 피예르는 신(神),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 고민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기병 장교로 복무한 후 퇴역하여 영지를 경영한다. 옐렌의 오빠 아나톨 쿠라긴은 니콜라이의 여동생 나타샤를 유혹하는 바람둥이로 그녀와 약혼했던 안드레이 공작과 대립한다. 나타샤는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여성이다. 소설 초반부에 아름답고 기품 있는 전형적인 귀족 아가씨로 등장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성격의 변화가 나타난다. 나타샤와 쿠라긴의 염문이 알려지면서 안드레이 공작과의 약혼은 깨지게 되고, 한동안 나타샤는 실의에 빠진다. 그 후 종교에 귀의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되찾는다. 전투 중에 크게 다친 안드레이 공작을 만난 나타샤는 그가 숨을 거둘 때까지 간호한다. 그녀는 피예르와 결혼하여 남편과 자식들을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아내로 살아간다.

 

《전쟁과 평화》는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쉽게 읽힐 책도 아니다. 사상 최대의 인물들이 나오는 만큼 서사 구조가 산만하다. 소설에 5백 명이 넘는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크고 작은 여러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서로 만나기도 하고 얽히기도 한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읽기 힘든 작품에 열광하는 걸까. 답은 책장을 넘기면서 경험하는 일반 소설과 다른 독특한 구성 방식에 있다. 로렌스 스턴(Laurence Sterne)의 소설 《트리스트럼 샌디》만큼은 아니지만, 《전쟁과 평화》는 독특한 서사 구조로 되어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 또는 특정 사건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두고, 작가는 개입하지 않는다. 작가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그러나 《트리스트럼 샌디》는 작가의 적극적 개입에 의해 이야기가 샛길로 빠져서 두서없이 전개된다. 《전쟁과 평화》도 ‘기승전결’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탈피해 독자가 기대하는 이야기의 흐름을 거부한다. 톨스토이는 이야기 중간마다 전쟁과 역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출한다.

 

《전쟁과 평화》 3권 2부 19장은 보로디노(Borodino) 전투의 과정을 분석한 톨스토이의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낸 글이다[1]. 18장과 20장은 피예르와 그 주변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다. 보로디노 전투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시간적 배경이지만, 전쟁사에 관심 없는 독자라면 역사적 전투에 대한 작가의 분석을 건너뛸 수 있다. 《전쟁과 평화》는 총 2부로 구성된 ‘에필로그’로 끝맺는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역사관을 주장하기 위해 에필로그를 썼다. 이처럼 소설을 통해 자신의 역사관을 드러내는 작가의 개입이 《전쟁과 평화》의 독특한 매력이다.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의 등장과 러시아의 승리 원인을 하나의 원인으로만 설명하는 역사적 관점을 비판한다. 그에게 역사적 사건은 수많은 사람의 힘이 합쳐져서 생긴 시대적 산물인 것이다.

 

무슨 이런 장르가 불분명한 소설이 있을까. 사실 에필로그(정확히 말하면 ‘논문’)를 읽지 않아도 소설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 작가의 개입은 소설의 완성도를 떨어뜨리지만 다른 러시아 근대소설에서 볼 수 없는 《전쟁과 평화》만의 문학적 가치는 훌륭하다. 이 소설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야기 군데군데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는 점이다. 피예르는 프리메이슨의 중심인물이 되어 활동하지만, 여전히 그의 삶은 환락과 방탕 속에서 헛되이 낭비된다. 1847년 톨스토이는 고향 야스나야 폴랴나(Yasnaya Polyana)에 돌아와 농민들의 생활 개선을 위한 이상적인 경영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야심 찬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상류사회에서 방탕과 나태한 삶을 살았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욕망, 죄의식에 관대하지 않았다. 그는 일기에 자신의 결점과 자기비판에 대한 기록을 남겼고, 피예르처럼 지치지 않고 자신의 결점을 되돌아보면서 반성과 성찰을 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톨스토이는 청년 시절부터 뼈아프게 고민했다. 《전쟁과 평화》 속에는 피예르와 톨스토이가 찾은 몇 개의 해답이 들어 있다.

 

 ‘삶은 모든 것이다. 삶은 신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움직이며, 이 움직임은 신이다. 삶이 있는 한, 신을 자각하는 기쁨이 있다. 삶을 사랑하는 것은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세상의 고통 속에서, 죄 없이 받는 고통 속에서 이 삶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렵고 가장 커다란 기쁨이다.[2]

 

 우리는 익숙한 생활의 궤도에서 내던져지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버리지만, 사실은 거기서부터 새롭고 좋은 것이 시작됩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행복이 있습니다. 앞길에는 많은 것이, 많은 것이 있습니다[3].

 

 

피예르의 말은 톨스토이의 목소리다. 그 말 속에는 주어진 삶을 어떤 식으로든 극복하려는 의지력이 있다. 톨스토이의 인생관은 인생의 목표를 ‘현재’에 두고 있다. ‘현재’는 ‘살아야 할 이유’이다.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어떤 삶의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피예르와 톨스토이가 깨달은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신에 대한 사랑이고 하나는 삶의 의미였다. 톨스토이가 생각한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선(善)이다. 그는 인간이라면 모두 이 선을 향해서 정진해야 하고 이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은 ‘사랑’이라고 했다. 각자가 자기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 사랑, 즉 신과 삶을 사랑하는 선이 인생을 잘 살기 위한 힘이다. 이것이 피예르와 톨스토이가 발견한 ‘인생의 의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데 굳이 네 권짜리 두꺼운 소설을 볼 필요가 있나요?” 만약 누군가가 내게 그렇게 질문한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한 번은 아닌 두세 번 정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할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톨스토이는 역사와 현실 속 자잘한 삶의 체험을 세세하게 묘사하기 위해 《전쟁과 평화》를 썼다. 무수히 얽힌 인간 관계망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뛰어난 묘사력 덕분에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역사의 큰 물결 속에 흔들리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톨스토이도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쾌락주의자였던 청년 톨스토이의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는 소설이 아니라 '톨스토이'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펼친 인생론은 적어도 이 책을 참고 끝까지 읽은 독자에게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1] 《전쟁과 평화 3》 284~291쪽

[2] 《전쟁과 평화 4》 249~250쪽

[3] 《전쟁과 평화 4》 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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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7-08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과 평화는 오래전에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책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합니다. 번역자가 달라지만, 같은 책도 조금은 느낌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cyrus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8-07-08 20:00   좋아요 1 | URL
《전쟁과 평화》는 완역본으로 읽어야 이 소설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어요..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7-08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좋아요! 늘 미루던 이 고전을 언제쯤 읽을까 ㅎ

cyrus 2018-07-08 20:02   좋아요 0 | URL
진짜 큰 맘 먹고 시도해보세요. 정말 재미없으면 읽다가 덮으면 되니까요..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7-08 20:28   좋아요 0 | URL
러시아 소설은 왜 이리 손이 안 갈까요? 도스토예프스키도 사 놓고 먼지만 쌓이고 ㅜㅜ

cyrus 2018-07-08 20:32   좋아요 1 | URL
저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안 읽어봤어요. 늙어서 시력이 떨어지기 전까지 꼭 읽어야겠어요. ^^;;

레삭매냐 2018-07-0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인디북에서 박형규 교수님 버전으로
읽어 보겠다고 하나씩 사기 시작했는데, 그만
절판되어 버리는 바람에 마저 사지 못해서
읽지 못했다는 변명을... ㅋㅋㅋ

cyrus 2018-07-08 20:21   좋아요 0 | URL
레샥매냐님이 언급한 책이 다섯권으로 된 그 책인거죠? ㅎㅎㅎ 저는 이룸출판사에서 나온 《전쟁과 평화》 원본을 번역한 세 권짜리 책을 가지고 있어요. 문학동네 번역본은 톨스토이가 여러 번 고친 텍스트예요. ^^

2018-07-08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7-08 20:31   좋아요 0 | URL
저는 블로그, SNS 둘 중 하나만 등록하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SNS에 리뷰를 등록하지 않은 응모자를 심사에 배제한 건 아니라고 봐요. 공지에 보면 출판사가 ‘블로그 및 SNS 주소 동시 등록, 하나라도 등록 안하면 심사 불이익 받을 수 있다‘는 식의 말이 없잖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네이버 블로그에도 리뷰 등록할께요.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stella.K 2018-07-09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작년인가, 재작년에 이걸 영화로 봤지.
BBC에서 6부작인가로 만들었는데 나름 꽤 잘 만들었어.
근데 솔직히 톨 할배도 그렇고, 도 선생도 그렇고
둘 다 산맥 같은 존재라 넘기가 어려워.
그런 걸 넌 읽고 이렇게 리뷰까지 썼구나.
잘 썼다. 아무래도 다음 달 당선작이 될 확률이 농후해 보인다.ㅋㅋ

cyrus 2018-07-09 18:13   좋아요 0 | URL
영화를 보셨으면 원작 소설 읽기에 한 번 도전해보세요. ㅎㅎㅎ

리뷰 대회 응모글이에요. 잘 쓴 분들이 많아서 3등에 입선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ㅠ ㅠ

stella.K 2018-07-09 19:38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가?
그렇다면 리뷰 대회는 정말 모르겠다.
그 보단 심사위원이 다르잖아.ㅋㅋ
그게 아니어도 넌 매달 4만원의 도서구입비가
생기는대도 양이 차질 않냐? 욕심은...
난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 알았는데 까먹고 있었나?
아무튼 핑계낌에 잘 읽었네.
혹시 1등하면 한턱 쏴!ㅋㅋㅋ

2018-07-09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9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