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론스키는 키릴 이바노비치 브론스키 백작의 아들인데, 페테르부르크의 젊은 귀공자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표본 중 하나야. 난 그자를 트베리에서 알게 됐어. 내가 거기에서 근무할 때 그자가 신병 징집을 하러 왔었거든. 재산도 상당하고 미남인 데다 발도 넓고, 시종무관 이겠다, 게다가 또 무척 귀엽고 착한 사내란 말야. 아니, 그저 단순히 착하기만 한 게 아니야. 내가 이곳으로 돌아와서 알게 된 바로는 교양도 있고 아주 총명한 사내야. 말하자면 뭐랄까,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는 전도양양한 사내야." (p.85) 

그러나 브론스키는 내게 그다지 매력있게 다가오질 않는다. 착한 사내? 귀여운 사내? 흐음, 글쎄. 아직 1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브론스키는 정말이지 매력있는 남자가 아니다. 전혀 내가 사랑에 빠질 만한 남자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는 내게 평범한, 세상의 모든 다른 남자들과 다르지 않은 남자인데, 그런데 그를 다른 남자들과 구분 지어주는 특징이 있다. 단 한가지의 특징, 그는, 안나를 건드린다. 안나의 내면을 건드리고 안나의 눈빛을 건드린다.  

그런데 갑자기 거기서 또다시 전혀 새로운, 뜻밖의 여자가 돼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안나에게서 그녀 자신도 경험이 있는 성공에서 오는 흥분의 빛을 발견했다. 그녀는 또 안나가 스스로 불러일으킨 환락에 도취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키티는 이 감정과 이 조짐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 안나에게서 보았던 것이다. 그녀는 그 눈 속에서 떨리며 불타오르는 광채를, 저도 모르게 입술이 벌어지게 하는 행복과 흥분의 미소를, 그 동작에 나타나는 한층 또렷한 우아함과 확실함과 경쾌함을 보았던 것이다. (pp.164-165)  

 

 

 

 

 

 

 

사람들 다른 사람들과 구분지어주는 특징은 바로 그런데서 오는 것 같다. 나를 움직이는 사람, 나를 빛나게 하는 사람. 그러니까 나를 자꾸 웃게 만드는 사람, 나를 자꾸 설레이게 만드는 사람. 다른이들이 보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데, 그다지 다를바가 없는데 나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그 한가지의 특징. 그것은 나로 하여금 그를 완벽한 사람으로 느끼게 만드는 게 아닐까. 게다가 브론스키는 안나에게 더할나위 없이 적극적이다. 이미 남편이 있고 사교계에 명성이 자자한 안나에게.  

"난 당신이 이 기차에 타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어째서 돌아가세요?" 그녀는 승강구의 난간을 붙잡으려던 손을 내리고 말했다. 억누를 수 없는 기쁨과 되살아난 생기로 그녀의 얼굴이 빛났다.
"어째서 돌아가느냐구요?"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되물었다. "내가 당신이 계시는 곳에 있고 싶어서 왔다는 것은 아실텐데요. 난 이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p.206) 

후아- 난 이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 당신의동작 하나하나도 난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잊을 수 없습니다‥‥‥" (p.207) 

아이쿠야, 이 고백을 듣는 안나가 "그만하세요, 이제 그만하세요!" (p.207) 라고 밖에 대체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브론스키의 이런 행동은 꽤 부럽기까지 하다. 

그는 자기 객차 옆에 멈춰서서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 번 더 봐야겠다.' 그는 저도 모르게 히죽 웃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그 걸음걸이, 그 얼굴을 봐야겠다. 틀림없이 무슨 말을 하겠지.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 그리고 어쩌면 생긋 웃어줄지도.' (p.210) 

어릴적에 한 남자사람에게 '여자는 먼저 고백하기 힘들잖아요'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는 '남자도 힘들어요'라고 말했더랬다. 그때야 나는 비로소, 아 그렇지, 남자라고 먼저 고백하는게 쉬울리가 없어, 라는 생각을 했던게 문득 생각났다. 누구든 상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일이, 그러니까 상대에게 어쩌면 거절을 당할지도 모르면서도 고백을 한다는 행위가 남자라고 쉬울리 없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은 상대를 사랑하고 애태우는 마음에 대해서도 같을거다.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 무언가 내게 말을 건네주길 바라는 마음. 그것은 상대를 사랑하고 있다면 남자든 여자든 모두에게 솟아나는 마음이 아닐까.  

그러나 사랑은 얼마나 불안하고 위태로운가. 게다가 자신의 처지가 약하게 느껴질수록 불리하게 느껴질수록 더 그렇다. 

"만약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녀는 속삭이듯이 말했다. "제발 내 마음이 안정되도록 해주세요." (p.277) 

안나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거다. 안나가 기혼자여서, 아이가 있어서 이렇게 말한다는게 아니라, 사랑을 시작할때, 그리고 사랑을 진행해 감에 있어서 우리 모두는 조금쯤 불안하지 않을까. 상대가 나에게 확신을 주기를, 안정되도록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마찬가지. 나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렇게 말하고 싶어질 것이다. 내 마음이 안정되도록 해달라고.  

안나는 브론스키에게 우리는 친구가 되자고 말한다. 그러나 오, 브론스키, 그는 얼마나 용감한가!  

"우린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 자신도 알고 계시잖아요. 우리 두 사람은 그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되든지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 되든지 둘 중 하나예요.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p.278)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니, 오!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나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단호함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오전중에 아주 기분 나빠지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분명하게 이 통화가 싫고 그렇게 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상대는 끝까지 본인의 말을 들으라고 했다. 그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나보다 직급이 높았기 때문에 나는 그사람이 끊기 전까지 전화를 끊을수가 없었다. 그 전화를 끊고 나서는 내내 기분이 나빴다. 산책을 가자는 동생들에게 너희들끼리 다녀오라고 했다. 아침부터 텔레비전에서 기사식당 돈까스를 보고 먹고싶다고 노래를 했었는데, 산책을 다녀오던 동생들이 전화로 불러낸다. 돈까스 먹자고. 나는 나가서 돈까스를 함께 먹으면서 이 기분을 어떻게 달랠까, 너무 답답하다, 돈까스를 씹으며 고민하다가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올림픽공원으로 갔다. 

 

이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한적했고 바람이 불었다. 나는 잠깐 멈춰서서 사진을 찍었다. 

올림픽 공원에는 사람이 많았다. 은행잎도 단풍잎도 아주 예쁜 색깔로 물들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은행잎들을 두 발로 꾹 밟아보았다. 

 곳곳의 벤치에는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올림픽공원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 아주 많았는데, 나는 아주 예쁜 여자사람을 보았다. 그녀는 구두를 신고 있었고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도 예뻤고 머리도 예뻤고 몸매도 예뻤다. 그녀는 한 남자와 함께 걷고 있었다. 나란히 올림픽공원을 산책하는 그 커플은 보기에 아주 좋았는데, 나는 문득 저 남자는 저 여자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저렇게 예쁜데, 저렇게 예쁜 여자와 이렇게 좋은 곳을 함께 걷다니. 지금 저 남자는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내 맘대로 추측을 해봤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벤치에 홀로 앉아 책을 좀 읽어야지 싶어졌다. 오늘 내가 준비한 것은 맥주 대신 『안나 카레니나 2』였다. 은행잎이 수북하게 쌓인 바로 앞의 벤치에 앉아 자전거를 세워두고 책을 읽으면 기분도 나아지고 집중도 잘되서 후딱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웬걸, 다섯장정도 읽고 나니 손이 시려웠다. 몹시 추웠다. 이빨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나는 후다닥 책을 가방에 넣고 다시 자전거를 몰아 집에 왔다. 집에 와서도 내내 추워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초저녁 잠을 조금, 잤다. 

다시는 추운데 혼자 나가서 책 읽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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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나 그리고 호박전
    from 마지막 키스 2010-11-11 17:05 
    친구와 『안나 카레니나』를 함께 읽고 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친구와 같은 책을 동시에 읽어 간다는 건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짜릿함을 준다. 그 책 내용이 슬펐든 어쨌든간에.   친구와 나는 수시로 자신이 인상깊었던 장면을 문자메세지로 찍어준다. 우리는 같은 책으로 읽고 있기 때문에 쪽수를 써준다. 서로가 밑줄 그은 부분이 같다고 환호를 하기도 하고, 톨스토이는 천재라고 자꾸만 문자 사이로 얘기한다. 
 
 
... 2010-11-07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요일부터 읽으신다더니 많이 읽으셨네요, 다락방님. (태그를 보며) 톨스토이는 천재 맞아요 ㅋ. 전 부활이랑 다른 중단편도 많이 읽었는데 천재가 맞더라구요. 말씀드렸듯이 알라딘 책상자에서 사은품으로 비비안 리가 주인공인 안나 카레니나 DVD가 나왔는데 이게 무슨 사은품인지 당최 모르겠네요... 우선 왔으니까 받아두긴 했지요, 크~

내일은 오전에 비가 온다고 하고, 일요일은 저물어 가고 있어요.

다락방 2010-11-08 13:10   좋아요 0 | URL
진짜 천재인것 같아요, 브론테님. 안나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그걸 그대로 표현해낸 것 같아요. 어쩌면 그렇게 안나고 하고 싶은 말들을 그러니까 안나가 느끼고 생각하는 사랑과 지겨움과 죄책감과 하는 그 모든 것들을 그렇게 잘 써놓았을까요? 아, 감탄하고 있습니다. 얼른 읽고 싶은데 어제는 술마시고 자느라 못읽고 지금은 회사라 못읽고..답답해요.
저는 안나 카레니나를 소피 마르소 주연의 영화로 먼저 보았거든요. 대학시절에요. 처음에 안나가 기차 타고 오는 장면만이 생생하고 그 다음부턴 줄곧 졸았던 것 같아요.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보면 느낌이 정말 다를것 같아요!

월요일이 가고 있습니다.

2010-11-07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8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poptrash 2010-11-08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자전거 타고 싶어요.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일 거다, 하고 남자가 여자에게 말해주면서 ("저기 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은 마피아인데, 떼인 돈을 받지 못해 보스한테 혼나고 여자친구 한테도 이별을 통고 받아서 씩씩 대면서 삼겹살을 먹으러 가는 중인데 혹시 모르지, 가다가 오소리라도 만나면 즉석에서 잡아 먹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잘 지켜봐" 라는 식으로) 시시덕 대는 영화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요. 밤을 샜더니 졸려서 자야겠어요.

다락방 2010-11-08 13:13   좋아요 0 | URL
추웠어요, 팝님. 이 날씨에 자전거는. 귓가로 바람이 슝슝 부는건 기분이 좋은데 이 날씨의 이런 바람은 아휴 추웠어요. 손도 시렵고 춥고 이빨이 달달 떨려요. 벤치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추워가지고 ㅠ0ㅠ

지금쯤 잠 잘자고 있어요? 와타야 리사 꿈 말고 니콜 크라우스 꿈 꿔요!

2010-11-08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8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0-11-08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신발 속에 숨어있을 다락방의 하얀발.

오늘은 새로운 날!

다락방 2010-11-08 13:14   좋아요 0 | URL
저 신발 속에 숨어있을 다락방의 못생긴 발 ㅋㅋㅋㅋㅋ
그 새로운 오늘도 이미 지나가고 있습니다. 히융~
저녁은 뭘 먹을까나...( '')

깐따삐야 2010-11-08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저 한 마디에 찬 바람과 뜨거운 바람이 동시에 휑-

저도 어제 앳되고 예쁜 아가씨를 봤는데 남자친구가 단풍나무 아래에 그 아가씨를 세워놓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더군요. 고와 보이는 한편 니들도 어디 결혼해봐라, 하는 비뚤어진 마음도 있었답니다. 그러는 제가 참 흉했는데 사실은 사실이니까, 애써 합리화.ㅠ

다락방 2010-11-08 13:15   좋아요 0 | URL
우린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진짜 대박 아닙니까? 저 시대에 저런 대사를 내뱉을 수 있는 상황이라니! 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요? 상대가 누구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제가 가슴에 품은 상대라면, 아이쿠야, 이러지 마세요, 하면서 좋아 죽었을지도 모르겠어요. ㅠㅠ

전 말이죠,
요즘엔 젊은 여자들이 아주 예뻐요. 그냥 막 예뻐요. 젊다는 것 만으로도 큰 매력요소이니 웃고 발랄하게들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더 예뻐지니까요! 저, 나이 드나봅니다. ㅠㅠ

2010-11-08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8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11-08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은 진짜인가요?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다락방 2010-11-08 13:16   좋아요 0 | URL
오늘은 눈이 온다고, 일기예보에서 그랬다고, 우리 엄마가 나 출근길에 말해줬는데,
만약 정말 눈이 온다면,
저는 최소한 주저앉아 펑펑 울어버리거나,
콱- 죽어버릴랍니다.

치니 2010-11-0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던 거 같은데 브론스키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이런 제길.
뭘 읽으면 뭐하나 맨날 까먹는데.

눈이 올 거 같지 않아요. 그러니 울지도 죽지도 말아요. ^-^

다락방 2010-11-08 14:49   좋아요 0 | URL
ㅎㅎ 그건 저도 마찬가지죠! 게다가 안나 카레니나 같은 작품은 말입니다, 치니님. 저는 지금 읽으면서 지금 읽기에 얼마나 좋은 작품인가 싶어요. 만약 이 작품을 고등학교때 읽었다면, 이십대 초반에 읽었다면, 아마도 톨스토이가 천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을 거에요.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책도 영화도 타이밍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저 잠깐 외근 다녀왔는데 비가 내렸어요. 울지도 죽지도 않을겁니다. 힛 :)

무스탕 2010-11-0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은행 갔다왔는데 비왔어요. 째끔씩 날리더라구요. 누구도 우산을 쓰는 사람은 없었어요. 바람도 많이 불었어요. 그래도 모두 앞으로 걸어가더라구요. 난 뒤돌아서서 뒤로 걷다가 가로등에 부딪힐뻔 했는데 2cm간격으로 피했어요.

여자가 먼저 고백하기 힘든거 진짠데, 그래도 먼저 했는데 반응이 없으면 그 남잘 어떻게 할까요? 죽여버릴까요? ㅋㅋ

다락방 2010-11-08 14:51   좋아요 0 | URL
저는 나가려고 했다가 비 오는 걸 알게 되서 우산을 가지고 나갔어요. 사람들은 정말 우산 없이 걷더군요. 그런데 저는 꿋꿋하게 우산을 들고 걸었어요. 이것이 비여서 다행이야, 눈이 아니여서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면서요.

그쵸, 고백하기 힘들죠. 그리고 고백하지 않고 내내 끙끙대며 가슴앓이 하기도 힘들구요. 이러나 저러나 반응이 없다면, 그것이 상대의 죄는 아니잖아요, 그쵸?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상대를 죽일수가 있나요. 콱- 내가 죽어버릴래요. 흑흑 ㅠㅠ (신파댓글)

L.SHIN 2010-11-08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하군요.
다락님의 부지런함과 점점 더 깊이 있었지는 글솜씨는 매번 감탄스러워요.
잘 지내고 계시죠? ^^
사진이 참 예쁩니다. 저도 가끔은 제 발(정확히는 신발,ㅋ)을 사진에 담아보기도 하죠. 혼자 보곤 하지만..^^;

마태우스 2010-11-09 06:31   좋아요 0 | URL
앗 엘신님이다!

다락방 2010-11-09 09:06   좋아요 0 | URL
컴백한게 언젠데 이렇게 뜨문뜨문 얼굴을 보입니까, 엘신님!
저도 제 발을 카메라에 잘 담아요. 물론 혼자보긴 하지만 말입니다. 누구에게 보여줄만한 발이 아니어요. 하하하하
바깥이 많이 추워요, 목도리 하고 다녀요!

마태우스님은 몸이 좋아질때까지 가급적 외출을 삼가해주세요!

2010-11-09 0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불현듯 생각한건데, 내가 고단한 일상을 사는 건 스스로 삽질을 잘해서가 아닌가 싶어졌다. 그러니까 어제도 평소와 다름없이 술을 마시고(응?) 강남역에서 열차를 탔다. 술은 많이 안마셨다. 그래서 취하지도 않았다, 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강남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너무 피곤해서 (월요일도 술, 화요일도 술...) 눈을 감았다. 이제 잠실쯤 됐으려나 싶어 눈을 떴는데 오, 눈앞에 사당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아주 찰나의 시간동안 패닉에 빠졌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본다. 여전히 사당이다. 대체 나에게 무슨일이 일어난건가. 나는 후다닥 내린다. 그리고 반대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당연히 집까지 도착하는데 시간이 엄청 걸렸고, 집에 도착하니 기진맥진. 아 젠장. 힘들어 ㅠㅠ 

집에 도착해서 아빠가 받아둔 알라딘 택배박스를 뜯어 밀레니엄 여섯권을 피아노 위에 쌓아두고, 시집을 펼쳐 들었다. 난 시집안의 시들을 천천히 음미하지 못한다. 아마도 그래서 시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시집을 주문해 두고서도, 어제 친구가 어떤 시집을 샀냐는 말에 제목이 기억 나질 않아 말해주질 못했다. 시인이 누구인지도, 시집의 제목도 생각이 나질 않아서.. 무슨 생각으로 주문을 하는걸까, 나는? 

어쨌든 이 시집을 어제 '훑어본' 결과 그다지 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는 거다. 내가 산 시집이라고 해봤자 몇 권 안되는데, 만족도가 가장 큰 시집은 '박연준'의 시집이었다.  

물론, 이 시집 안에도 몇개의 눈에 띄는 시가 있다.  

 

 

오후 

빛줄기에서 떨어져
멀어져 ‥‥‥ 가는 
가는,
햇살 

오후의 느낌이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낯익은 그림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그러다
당신의 맘속에
자리를 틀겠어요
 

아, 당신의 맘속에 자리를 틀겠어요, 라고 말하면 자리가 틀어지나. 이 시 때문에 이 시집을 사기로 결정했었다. moon 님이 페이퍼에 이 시를 올려주셔서.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라니. 그러다 당신의 맘속에 자리를 틀겠어요, 라니. 정말 후아- 스럽다. 또, 

사랑이 익다 

꽃들은 수증기처럼 피어올랐다 땅속으로 스며들어
버리고
우린 아늑한 저녁을 위해 무작정 길을 걸었다 

아! 사랑이 익어갈 때 무작정 길을 걸으면 아늑한 저녁을 만날 수 있구나. 아늑한 저녁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무작정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가능하구나. 사랑이 익어갈때 쯤엔. 후아- 

 

오늘 아침. 여느때와 다름없이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정말이지 피곤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몇개의 노래들을 들으며 잠실에서 눈떠야지 생각하고 있다가, 그런데 여기는 어디쯤일까 하고 잠깐, 눈을 떴는데!  

오! 눈 앞에 그가 있었다. 그로 말하자면, 고등학생이다. 교복을 입고 있다. 아마 1학년이나 2학년쯤 된 것 같다. 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오늘 벌써 세번째 만난다. 아니, 만난다고 하면 안되지, 나 혼자 '봤다'. 그 학생이 버스 안에서 유독 눈에 띈 건 내가 아는 누군가를 엄청 닮아서인데, 나는 그를 닮았다는 것에서 오는 짜릿함과 반가움 때문에, 맨 처음 그를 봤을 때는 버스 안에서 안아버리고 싶었다. 확 끌어안고 뭔가 반갑다고 말해버리고 싶었던거다. 

스물 두살때, 어른 남자를 막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지하철이나 길에서 만나는 고등학생들을 보면 그 사람은 어릴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저기 저 학생처럼 옷을 입었을까, 저기 저 학생처럼 앉아 있었을까 등의 생각들을 했었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고등학생들을 보면 저 아이는 자라서 어떤 남자가 될까, 혹시 이러이러하진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 버스안에서의 그 학생을 보면서는, 너도 잘 자라면 '그' 처럼 될 수 있어, 하는 생각이 자꾸만 자꾸만 드는것이다. 후훗. 피곤에 찌들었던 나는 그 뒤로 눈을 감지 않고 계속 그 학생을 흘끔거렸다. 그냥 베시시 웃음이 나왔다. 그 사람 많은 버스 안에서 아마 누군가 내 시선이 향하는 곳을 봤다면, 그리고 내 시선이 닿는 곳에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면, 아마도 나를 변태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내가 그 학생에게서 본 건, 그 학생이 아니라구요, 아니에요! 

자꾸만 실실 쪼개다가 '박희정'의 만화 『호텔 아프리카』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나는 그 만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 가슴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턱, 막혀버리게 했던 바로 그 장면.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 ‥‥‥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그가 있었다.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그가, 있었다.
마법처럼! 

아, 난 정말 이 장면 좋아했는데! 

 

사람들은 우연한 계기로 만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고 이 만화에서는 말한다.

정말 그렇다.  

 

술 끊어야지. 다시 마실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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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0-11-0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쿵-. 쿵-. 쿵-. 쿵-. 쿵-.

정확하게 다섯번. 오늘 다락방 페이퍼를 보며 내 가슴이 뛴 숫자. 다섯번.

:)

다락방 2010-11-03 13:34   좋아요 0 | URL
자꾸만 자꾸만 가슴 뛰게 해줄게요, 내가. 그렇게 해줄게요, 레와님. 므흣 :)

2010-11-03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11-0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앞에서 청소하던 아델라이드가 생각나요.

다락방 2010-11-03 13:36   좋아요 0 | URL
아델라이드라면, 저 여자의 아들이었나요? 전 저 장면 말고는 이 만화가 전혀 기억나질 않아요. 저주받은 기억력이죠. 하핫 ;;

Kir 2010-11-0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다시 마실 때까지 술 끊으신다는 거 찬성입니다.
속 버리셔요, 그리고 속 버리시면 커피와 술을 즐기기 힘들어요.
그러니 커피와 술을 장기적으로 즐기기 위해서(?)
당분간이라도 조절하심이 좋을 것 같아요.

다락방 2010-11-04 08:30   좋아요 0 | URL
그쵸, Kircheis님? 한 이틀만이라도 술을 안마시고 견뎌봐야 겠어요. 그런데 어제 술을 안마셨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싶어지네요. 흑흑 ㅠㅠ
커피는 내려 마시고 있어요. 그런데 커피 마시기 전에 사과를 반쪽 먹었으니, 음, 괜찮겠죠? (뭐가..)

저 건강하게 잘 지낼게요.
:)

마노아 2010-11-03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가 완전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박희정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았어요. 그리고 이번에 완결된 마틴&존은 왜 대체 아직도 안 오는 걸까요.ㅜ.ㅜ(결국 1일에 주문한 녀자..;;)

다락방 2010-11-04 08:31   좋아요 0 | URL
저는 저 작품을 너무 좋아하고 그래서 '지요'라는 이름을 따서 자신의 닉네임을 정했던 남자를 알고 있어요. 전 저 작품보다는 그 남자를 더 사랑했어요. ㅎㅎ

저도 1일에 이미 주문한번 끝냈고 오늘 전태일 평전을 살까 어쩔까 계속 망설이고 있답니다.

sslmo 2010-11-04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요,을지로 순환선을 아주 아주 싫어해요.
술만 마셨다 하면 마냥 순환을 하는 누군가를 알아요~^^

다락방 2010-11-04 08:32   좋아요 0 | URL
저는요, 양철나무꾼님..술 안마셔도 그래요. ㅠㅠ
내릴 정류장을 지나치기도 하고 반대방향 타기도 하고. 멀쩡한 정신에도 그래요. ㅠㅠ
길치 방향치..후아- 네비게이션을 사다가 엉덩이에 달고 다닐까봐요. 흑.

sslmo 2010-11-07 04:55   좋아요 0 | URL
가슴에 보이는 빨간 단추를 달아놨으면 싶어요.
아니다,RC장치를 달아놨으면 좋겠어요.
아니다,연어를 한마리 가슴 속에 키우는 건 어떨까요?^^

다락방 2010-11-07 11:09   좋아요 0 | URL
네비게이션 역할을 해주는 잘생기고 젊은 청년을 데리고 다니는건 어떨까요, 양철나무꾼님? 으흐흐흐흐흐(음흉하게 웃는다)

카스피 2010-11-04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술을 안먹어도 차만 타면 졸아요.아마 어려서 차멀미가 심해서 생겨난 버릇인듯한데 잘 안고쳐지네요^^

다락방 2010-11-04 08:46   좋아요 0 | URL
지하철안에 유독 조는 사람이 많은건 지하철 공기가 나빠서라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나요. 저도 지하철 안에서 꽤 잘 졸거든요. ㅎㅎ
물론 졸아서 잘못 내린건 아니지만 ㅜㅡ

stillyours 2010-11-0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같아요. 나도 딱(!?) 세 편!
<오후>, <사랑이 익다>와 <낯익은 그림>!

다락방 2010-11-04 09:08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다른 시는 와닿질 않더라구요. 하하하핫
짧은 시들만 후두둑 와서 때리고 가죠.

다이조부 2010-11-04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야기 하면 푸웃 하고 웃겠지만, 나이를 먹는걸(?) 실감하는게 20대때는

고딩들 을 봐도 감정몰입이 되고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냥 꼬맹이 애들처럼 보여요.

근데 며칠 전 눈에 부실정도로 훈훈하지도 않은데 계속 집중하게 하는 고딩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뚫어지게 쳐다봤네요. ㅋ

다락방 2010-11-04 15:47   좋아요 0 | URL
저는 [볼수록 애교만점]에서의 고딩에는 엄청나게 이입해요. ㅎㅎㅎㅎㅎ

자하(紫霞) 2010-11-05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남자사람 다리(만화)가 너무 길어요!
저런 훈남은 세상에 없어 없어!!
아사히를 저번 주말에 사놓고 냉장고에 박아놓고 있는 1人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죠.ㅋㅋ)

다락방 2010-11-06 00:19   좋아요 0 | URL
저는 지금 너무 취해가지고 오면서 우동 한그릇을 먹었어야 했는데 우동집에 사람이 너무 많아 빈 자리가 없는 관계로 그냥 들어왔더니 머리가 팽팽 돌고 눈이 핑핑 돌아요. 아놔...
그런데 시원한 맥주로 한모금 입가심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 미친 생각은 왜 드는걸까요?
(여기까지 치면서 오타 이백번 난 1人)
 
브로콜리너마저 - 2집 졸업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 / 스튜디오 브로콜리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토요일 오후 약속이 있어서 역삼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이제 내려야 할 때가 되어 출입문 쪽으로 가는데 어어, 내 구두 뒤축이 누군가의 발을 밟은것 같다. 그러나 아직 꽉 밟기는 전. 나는 꽉 밟기 전에 이걸-그러니까 내 발- 들어올려야지, 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날따라 얇고 높은 굽을 신어서, 찍히면 끝장난다. 나는 누군가의 발등에 빵꾸를 낼지도 모르는 것. 그런데 어어, 발이 안들어진다. 이거 왜이래, 하고 돌아보니, 흑. 구두 굽이, 그 힐이, 어떤 청년의 운동화 끈에 걸려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바둥바둥바둥바둥. 나도 바둥대고 그 청년도 바둥댄다. 이제 곧 문이 열릴거고 사람들도 출입문 앞에 몇명 서있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바둥바둥바둥바둥 ㅠㅠ 운동화 끈 사이로 내 구두가 빠져 나오고, 나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문이 빨리 열리기만을 기다린다. 그 시간이 어찌나 긴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 후다다다닥 내려서 계단을 올라가며 하필 오늘따라 이걸 신고 와가지고, 뭐 이런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눅눅한 버스를 타고
자꾸만 졸려 하다 보면
어느새 낯선 곳의 정류장
이젠 돌아갈 버스도 없는
열두 시 반의 거리를
걷는 지친 나의 어깨  -[열두시 반 中 에서]

약속시간 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아 베스킨 라빈스로 들어간다. 평소에 아이스크림을 잘 먹지 않는데, 그날따라 꼭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전날 마신 숙취가 아직 깨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술을 마실 것이니 속을 좀 부드럽게 해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바둥바둥 대느라 얼굴이 뜨거워졌으니 식혀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아몬드 봉봉 작은컵으로 하나 주세요, 한다. 2,500 원이란다. 해피포인트 카드와 신용카드를 함께 내미는데, 나에게 2,300점의 적립금이 있다. 아싸뵹. 그걸 사용해달라고 하고 현금으로 200원을 내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아몬드가 씹힌다. 아이스크림은 달게 녹는다.  

네가 미워 했던 만큼 멀리 날아갈 거야 
네가 아파했던 만큼 다시 꿈을 꿀거야
너의 마음 속의 어둠 만큼 빛이 날거야
내가 너를 차마 쳐다볼 수도 없을만큼 

난 사실은 너무 불안했지
네가 날 떠나진 않을까
그럼 널 따라 날 수가 있을까
네가 너무 좋아       -[변두리 소년,소녀 中에서] 

브로콜리 너마저의 1집도 그러했지만 2집 역시 우리 모두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냈다. 열두 시반의 거리를 걷는 지친 삶, 반짝반짝 빛나는 그가 내 곁을 떠나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 게다가 사실 브로콜리 너마저의 가창력이 아주 빼어난 것도 아니다. 이런 가사들로 노래를 해대는데 너무나 엄청난 성량과 빼어난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째 좀 부담스러울 것 같다. 너 노래는 그렇게 하지만, 사실은 우리 잘 모르는거지? 고단한 일상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부르는거지, 대들고 싶어질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도 그들의 가창력도 일상을 녹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도우'의 [사서함110호의 우편물]이란 책을 보면, 진솔이 혼자 속 끓이는 장면이 나온다. 진솔은 건PD를 사랑하는데, 건도 자신에게 어느정도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삼자로부터 '그는 다른 여자를 사랑해왔고 그여자를 잊지 못할것이며 너에게 줄 마음 따위는 없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 그 뒤로 진솔은 건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같아질 수 없고, 영문을 모르는 건PD는 안타까울 뿐이다. 그때 그 혼자 속 끓는 진솔의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게 뭔지 알 것 같아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왜 말을 못해 이여자야, 건피디에게 직접 물어봐, 라고 말하고 싶어서 내내 안타까웠는데, 사실 내가 진솔의 입장이었어도 혼자 속만 끓였을 뿐 건피디에게 가서 묻지는 못했을것이다. 당신 지금 나한테 하는거, 이거 사랑 아닌거에요? 다른 여자를 내심 품고 있는거에요? 그걸 어떻게 묻겠는가. 그래요, 라고 답해버리면 대체 어떡하라고.  

할 말은 너무 많은데 할 수가 없고
나는 자꾸만 작아지고 있었죠
말하지 못한 말들이 가슴에 남아
나는 자꾸만 잠들 수 없었죠  -[마음의 문제 中 에서] 

나도 묻고 싶은게 아주 많다. 잠들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것은 그 누구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내 마음의 문제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오해하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잠들지 못하는 그 많은 밤들은 그러니까 내 마음의 문제인거다. 그러니까 브로콜리 너마저는 2집에서 자꾸만 내 얘기를 하고 자꾸만 우리들 얘기를 한다.  

게다가 이 가을에 혼자 우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이 가을에 혼자 울었던 그 많은 여자사람들이 울고 싶으면 계속 울되, 이들의 [울지마]를 듣기를 권한다. 울 땐 울더라도, 울지말라고 누군가 말해주는 것도 듣자고. 10월에 울었으면 됐지, 11월에도 내내 울 수는 없잖은가. 이제 곧 겨울인데. 가을에 울었으면 그걸로 됐다. 겨울이 곧 오는데 얼마나 할 게 많은가. 부츠도 꺼내야 하고 장갑도 찾아야 하고 핸드크림도 준비해야 한다. 

어제 아침, 앞이 뾰족한 구두를 신으려고 했는데 스타킹을 신다가 내 발톱이 무척 자란것을 보았다. 길었다. 이 구두 신으면 아프겠네, 라고 하면서도 그 구두를 신었다.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느라 그 구두를 신고 좀 뛰었다. 발가락이 아팠다. 길게 자랐던 발톱이 신경쓰였다. 어젯밤에는 너의 발톱을 잘라주겠어, 라고 말하는 남자가 있다면 당장 시집이라도 가 버리고 싶었다. 난 다른건 다 필요없어, 내 발톱만 좀 잘라주면 돼. 라는 마음이 가득가득. 집에 와서 구두를 벗고 스타킹을 벗어보니 발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길게 자란 발톱이 발가락을 찔러버려 피가 났다. 이런 젠장. 나는 이런걸 미리 자르지도 못할정도로 게으른 여자사람. 샤워하기 전에 발톱을 잘랐다.  

발톱을 자르는 것 쯤은 혼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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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10-11-02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톤 프로젝트, 브로컬리 너마저, 루시드 폴, 이적 등등...
사고 싶은 음반이 많은데 쉽게 구할 수가 없어 못 듣고 있어요 ㅠ_ㅠ

아쉬운대로 Taylor Swift 나 듣고 있습니다 -_-/

2010-11-02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0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r 2010-11-0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그제... 저를 위로해준 음악이었습니다. 다락방님의 페이퍼로 만나니 더 반갑네요...^^
계피의 보컬이 빠진 앨범이 더 마음을 쎄하게 만들면 어쩌나 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다행스럽고 고마웠어요.

<브로콜리 너마저의 1집도 그러했지만 2집 역시 우리 모두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냈다. 열두 시반의 거리를 걷는 지친 삶, 반짝반짝 빛나는 그가 내 곁을 떠나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 게다가 사실 브로콜리 너마저의 가창력이 아주 빼어난 것도 아니다. 이런 가사들로 노래를 해대는데 너무나 엄청난 성량과 빼어난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째 좀 부담스러울 것 같다. 너 노래는 그렇게 하지만, 사실은 우리 잘 모르는거지? 고단한 일상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부르는거지, 대들고 싶어질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도 그들의 가창력도 일상을 녹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락방님 페이퍼의 이 부분, 몹시 공감해요.

다락방 2010-11-02 16:34   좋아요 0 | URL
전 브로콜리 너마저의 1집을 사실 열심히 듣지 않았기 때문에 계피의 보컬에 대해 그다지 인식이 없었어요. 주변에서 계피가 빠진 브로콜리 너마저도 괜찮을까, 하는 염려를 자주 들었는데 저는 2집이 더 좋으니 이를 어쩝니까. 하핫;; 1집의 노래는 음 좋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2집은 으윽 좋구나 하게 된단 말입니다! ㅎㅎ 저 역시 위로를 받고 있어요. 변두리 소년, 소녀로 말이지요. 너무 좋아요~

Kircheis 님과 제가 같은 감각으로 이 앨범을 듣고 있군요!
:)

애쉬 2010-11-02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로콜리가 이 스산한 겨울의 길목에 음반을 내는 건, 의도일까 우연일까 생각해봤어요. 여름의 덕원의 목소리는 좀 아니잖아요. ^^
저도 그가 빼어난 가창력과 엄청난 성량을 가지고 있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목청껏 노래만 잘하면 가수가 되는 줄 아는 멍청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아, 저도 '변두리 소년, 소녀' 가 가장 좋아요~~

다락방 2010-11-02 16:32   좋아요 0 | URL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삶이 고단한게 비단 나 뿐만은 아니구나 싶어져요. 다들 나처럼 살고 있구나. 가끔은 힘들기도 하고 가끔은 설레기도 하고 가끔은 기쁘기도 하면서. 그런 노래를 부르기에는 참 적절한 목소리에요.

변두리 소년, 소녀 정말 좋죠? 저도 그 노래가 제일 좋아요! 이 앨범 처음 들을때부터 저는 그 노래에 꽂혔어요!! >.<

moonnight 2010-11-0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음반 소개 신문에서 읽고 아, 다락방님이 좋다 하신 그거. 하고 생각했어요. ^^ 저는 1년내내 주구장창 운동화 아니면 운동화 비슷한 구두-_-인데, 가끔 특별한 일이 있어서 힐 한 번 신을라치면 발뒤꿈치랑 발가락이랑 다 까지고 난리나요. -_-;;;;

제가 상상하는 다락방님은 항상 샤방샤방 여성스러운 몸차림일 거 같아요. 그래도 공원에 나가실 때는 꼭 장갑 목도리 부츠 다 착용하셔야지 돼요. 맥주도 차갑기 때문에 요즘 날씨엔 몸이 막 떨린다는. (가끔 벤치에 앉아서 맥주 마시며 책 읽는 1인 ^^;;;)

다락방 2010-11-02 16:30   좋아요 0 | URL
항상 샤방샤방 여성스러운 몸차림과는 좀 거리가 멀구요 ㅎㅎ 항상 힘차고 씩씩하게 행진하듯 걷고 있습니다. 우다다다다다다다 뛰기도 해서 타부서 직원들이 술자리에서 복도에서 뛰어댕기지좀 말라며;;

네네네네, 공원에 가서 캔맥주 마실때는 장갑 목도리 부츠 다 착용할게요. 안그러면 술마시다 얼어죽어요. 제가 죽자고 술 마시는건 아니니까 말입니다. 아 이놈의 회사에서 뛰쳐나가 공원으로 달려가고 싶어요. 벤치에 앉아 술을 마시고 싶네요. 캔맥주 한모금 홀짝이고 눈물 한방울 또르르 흘리고.

sslmo 2010-11-02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톱이 살을 파고 들지 않도록...
둥글게 자르지 마시고 일자로 잘 잘라주세요~^^

앨범 자켓이 멍든 내 맘이랑 똑 같은 색이예요~^^

다락방 2010-11-02 16:29   좋아요 0 | URL
저 한번 살 파고 들어서 병원가서 수술(?)한적 있어요. 울었네요. 완전 아파가지고 ㅠㅠ
이번에는 네번째 발가락의 발톱이 세번째 발가락을 찔렀어요. ㅠㅠ 구두가 뾰족해서..(뭔가 지저분하죠?)

양철나무꾼의 멍든 가슴에 날계란 하나 살포시 안겨 드리고 싶어요. 차갑고 섬뜩하겠지만 멍의 독기를 다 가져가준다니 말이죠.

무스탕 2010-11-02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아직 음악CD를 내가 들으려고 사 본적이 없어요. 작년이던가.. 브로콜리 1집 들어볼까.. 생각이 들어서 mp3곡을 찾아보니 없네요? 얼라.. 왜 없지.. 로 끝냈는데 다락방님 리뷰를 보니 듣지 못하고 넘어가버린 1집도 무지 궁금해졌어요.
1집 표지의 볼 통통한 귀여운 여자애랑은 분위기가 완전 다른 2집 표지네요. 혹시 저 파란색, 그 여자애가 불어 놓은 풍선일까요? ^^

아.. 글고, 전 승질이 못돼먹어서 발톱이건 손톱이건 조금이라도 긴 건 꼴을 못봐요. 또깍또깍 깍아버려야 속이 시원해서 제 손톱 발톱은 자랄 틈이 없다지요;;

다락방 2010-11-02 15:56   좋아요 0 | URL
전 정말 귀차니즘 작렬해서 손톱 발톱 자르는데 시간 오만년 걸려요. 잘라야지 잘라야지 생각하면서 또 하루를 보내고.. ( '')
같은 이유로 머리도 안빗어요. ㅎㅎ

그러게요, 그 여자아이가 불어 놓은 풍선일까요? 무스탕님은 어쩌면 그렇게 생각도 예쁘게 하세요? 네?

2010-11-02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illyours 2010-11-02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서 아침 저녁으로 후아- 후아- 하고 있어요.
다락방님 혹시 1집에서의 보컬 계피의 음색을 좋아했다면
'가을방학' 노래도 추천하고 싶어요!
계피와, 줄리아하트의 정바비가 만난 밴드예요.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라는 노래. 특히 추천하고 싶어요 -

다락방 2010-11-02 15:32   좋아요 0 | URL
넌 날 아프게 하는 사람이 아냐, 라는 가사가 나오는 노래 말씀하시는 거죠? 너같은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 하고 말하는 그 노래요. 전 이미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후훗.

브로콜리 너마저의 이 앨범 중에서 [변두리 소년,소녀]가 무척 좋아요, 무척!

마노아 2010-11-02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울지마'가 참 끌렸어요. 그 말은 나한테 필요한 말이어서 그랬을 거예요. 아, 쓸쓸한 것도 힘든데 춥기까지 한 나날이에요.

다락방 2010-11-02 18:06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울지마] 들으면서 이제 그만 울어요. 10월에 울었으니, 11월엔 그만 울어도 좋잖아요. 여전히 쓸쓸하고 춥다면 우리 곧 만나요. 포동포동 따뜻한 삼겹살을, 아니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테이크를, 그도 아니면 달달한 캬라멜 마끼아또를 함께 먹어요. 우리,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자구요.

저 역시 더럽게 춥고 아픈날들이거든요.

웽스북스 2010-11-03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이게 너무 좋아요. 오늘 바람부는 저녁의 버스정류장에서 이 노래를 들었는데, 아, 좋아서 죽을 뻔했네. <마음의 문제>랑 <열두시 반> 이건 완전 내노래 같고... <변두리 소년, 소녀>는 아직 마음에 잘 안와요. 내가 이상한건가...

그리고 뒤의 노래들은 아직도 제대로 듣지 못했어요. 집중해서 노래를 들을 1시간이 없어요. 흑흑. 힛~ 지금 변두리 나오네요. ㅎㅎ

다락방 2010-11-03 08:50   좋아요 0 | URL
어떤 노래가 좋지 않다고 해서 그게 이상한건 아니죠, 웬디양님. 저는 [변두리 소년,소녀]가 제일 좋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제가 이상한걸지도 몰라요. 전 그 가사가 완전 제 가사같더라구요. 제가 쓴 줄 알았네요. 제가 친구랑 대화하던 걸 듣거나 보고 혹은 제 일기장을 훔쳐보고 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반짝반짝 이랑 날개랑 뭐 그런것들. '네가 너무 좋아' 라고 말하는 가사 말예요. 아우 좋아 죽겠네요. ㅠㅠ

웽스북스 2010-11-03 09:2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제가 요즘 아무도 안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
주변에 날개가 있나 궁금한 사람도 없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0-11-03 09:28   좋아요 0 | URL
다락방에게 날개가 있는지 없는지 안궁금해요? 안궁금해요?!
요즘 나한테 너무 소홀해진 거 아니에요?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나기 2010-11-10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에 학교에 가는 버스 안에서도 이들의 노래를 들었어요.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음악이 좋아서 자꾸 들었어요. 그런데, 이들의 2집이 나왔다니. 왜 제가 그걸 모르고 있었을까요? :)

다락방 2010-11-11 10:16   좋아요 0 | URL
이제 알게 됐잖아요, 홀릭제이님! 들어봐요! 후회하지 않을거에요. 히히 :)
춥다. 잘 지내죠?

블랙겟타 2016-08-28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과제하면서 브로콜리 2집의 졸업을 듣고 있다가요.. ˝어? 노래 좋네 이 음반 얼마하지?˝ 하고 알라딘으로 검색해서 봤더니 다락방님의 이 페이퍼를 발견했네요. 무려 6년전 페이퍼이긴 하지만요.ㅎㅎㅎ;;; 너무 늦게 이 글을 봤네요. 그땐 아마 저는 다락방님을 모를때였지만 지금은 아니까 이글을 볼 수 있었네요. ㅎㅎㅎㅎ 이때도 좋은 글을 계속 쓰고 계셨군요. ㅎㅎㅎㅎㅎ
 

승희네는 아이가 둘인 과부이며 서른세살이다. 문기사는 서른살의 총각이다. 홍합공장에서 일을 하는 그들에게는 묘한 감정이 싹튼다. 윽.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고백을 한 것도 아니지만 서로가 서로를 신경쓰는 상황. 그런 둘이 함께 밀폐된 공간에 있으려니 참으로 간질간질 민망한 상황이 되고야 만다. 

둘은 박스 무더기 사이 오목한 곳에 있는 팔레트에 엉덩이를 붙였다. 백이십 평 냉장실에는 홍합 박스 외에도 미역, 갈치, 서대, 게 따위들이 포장되어 있거나 그냥 내용물만 뭉쳐 잔뜩 쌓여 있었다. 이런 자리라는 게 처음부터 우스개 소리나 하며 넘어가면 자연스럽게 되고 아주 짧은 한순간에 어색하고 심각한 것에 잡히면 또 그렇게 되는 거였다. 둘은 자연스레 있을 수 있는 정점을 놓쳐버려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렇듯 말없는 시간에 마음 속에서는 더 많은 말들이 만들어지는 법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지는 말들이란 게 입 바깥으로 나오기는 아주 어려운 것들이어서 문기사는 문기사대로 큼큼 헛기침만 하고 승희네는 승희네대로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속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해봤자 고작 오 분 정도. 그예 승희네가 슬그머니 어깨를 기대 오기 시작했다. 문기사는 속으로 놀라기도 하고 싫지 않기도 해서 그냥 어깨를 대고 있었는데 말로 만들어지지 못할 많은 것들이 작업복을 통해 오고 갔다. (pp.62-63) 

만약 승희네가 문기사를 신경쓰지 않았다면, 문기사가 승희네를 신경쓰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정도의 관심만 가진 상황이었다면 저 안에서 어색한 시간을 보내는 일 따위는 없었을 거다. 슬그머니 어깨를 기대다니, 늘 그렇듯 나는 그렇게 먼저 다가서는 여자들에게 크게 존경을 표한다. 남자든 여자든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 

이십대 중반에 다녔던 회사는 겨울에 일이 많았다. 겨울만 되면 아르바이트생을 엄청 불러들였다. 열명이 넘는 젊은 남자들과 다섯명쯤 되는 아줌마들로 구성된 단기 알바들. 어느 하루, 창고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담당자가 나더러 창고에 가서 일을 맡아 달라고 했다. 알바 한명을 붙여주겠다면서. 나는 알았다고 말하고 아줌마 알바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온 건 S 였고, 그는 나와 동갑인 젊은 남자였다. 아 하필 왜 저 남자를. 그가 누군가! 그와 나 사이에는 므흣한 기운이 흘러서 종종 다른 알바생들로부터 놀림감이 되는 그런 남자가 아니던가. 왜 하필 저 남자를. 담당자의 짓궂음에 조금 분노했지만 우리는 둘이 묵묵히 앉아 일을 시작한다.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해야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일을 다 했다고 했더니 자기가 올때까지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답하고 S 와 그 공간에 말없이 앉아있었다. 마침 작업을 마친 책을 박스에 넣는 작업을 마무리 짓고 있는 중이었는데, 나는 S 가 무얼할까 싶어서, 그러나 그가 무얼하는지 보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머리는 박스에 둔 채로 눈만 위로 살짝 올려 마주 앉은 S 를 쳐다보는데, 나와 똑같은 자세로 눈만 움직여 나를 보고 있던 S 와 눈이 마주친다. 아, 어색해! 아 긴장돼! ㅠㅠ 

S는 나를 두고 갑자기 바깥으로 나간다. 나는 그제서야 참아두었던 숨을 내쉬었다. 담배를 피러 나간걸까? 그렇겠지? 하고 멍하니 앉아있는데 그는 금세 들어온다. 그리고는 내게 캔음료 하나를 내민다. 이거 마셔요, 하면서. 2프로 부족할때, 라는 복숭아맛 음료였다. 나는 와- 하는 감탄사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음료를 받아들자 그는 "고맙죠?" 한다. 나는 네,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너무 고마워하지 말아요. 혼자 마시기 민망하니까 어쩔 수 없이 사온거에요." 한다. 나는 피식 웃었다. 담배 피러 나간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음료수 사러 갔다온거에요. 라고 그는 말했더랬다.  

 

 

 

 

 

 

 

[홍합]을 읽으면서, 창고안의 승희네와 문기사의 그 미묘한 분위기를 읽어내면서 나는 스물다섯의 나와 그 때 내 앞에 마주 앉아있던 그가 생각났다.  

자, 다시 승희네와 문기사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아주 관심이 많다. 그들의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자꾸만 나 역시 신경이 쓰인다. 그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이 책을 읽기를 멈추지 않는다.  

문기사는 승희네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 여인네가 이렇게 손에 잡힐 만한 거리로 들어온 게 언제부터였나 얼른 가늠이 잡히지 않았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순간이었다. 공장에 오기 전에 주변 여자는 친구나 후배들뿐이었는데 매사에 어른스럽고 모든 것이 성숙한 여인네 하나가 눈앞에 나타난 거였다. 팔십년대는 지식의 시대였고 주변의 모든 것을 경계해야 했던 시기였다. 연애니 사랑이니 하는 것도 불편함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서른이나 먹도록 여자로 인해 눈이 떠질 기회가 없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승희네를 보고 있으면 인류의 역사가 생겨나기 시작한 최초의 정사(精事)가 막연히 떠올랐다.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몸짓. 거칠 것 없이 휘몰아 타오르는 생산의 그 무엇. 막힐 데 없이 휘돌아 터져 나오는 풍요의 그 무엇. 꿈틀거리는 모든 것을 풀어놓고 매만지고 쓸어 안아주는 그 무엇. 덥다고 날씨 타박은 하나 땡볕 아래서 어느 한곳도 허물어지지 않고 탱탱한 이 여인의 품에 자신도 모르게 깃들고 싶어지곤 했다.
(p.167) 

 

승희네는 문기사와 함께 있는 시간을 꿈꾼다. 문기사와 데이트를 하고 싶다. 

정말로 문기사와 데이트를 한다면 어떨까 싶어서 그녀는 불가에 쪼그리고 있지만 몸과 달리 마음이 멀리로 떠다녔다. 일에서 벗어나 극장 구경도 가고 제과점에 들어가 팥빙수도 사먹고 음악도 듣는다면. 한 삼 년, 아니 한 삼 일 그것도 아니, 한 세 시간 만이라도 그와 단둘이서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듣기에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얼굴이나 한없이 들여다보고 손이나 한없이 만져 보고, 말이나 한없이 나눠 보고, 아, 한번쯤 뜨겁게 껴안아 봤으면 싶다. (p.176)  

 

그와 단둘이 앉고 싶다. 그를 마주 보고 싶다. 그의 얼굴을 한없이 들여다보고 손이나 한없이 만져 보고, 말이나 한없이 나눠 보고. 아! 한번쯤 뜨겁게 껴안아 보고! 승희네의 이 작은 소망이, 한 남자를 보고, 만지고, 안고 싶은 사실은 작은 욕망이, 그가 같은 마음으로 나를 봐주지 않는 이상 결코 이룰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갈망이 되고야 만다. 승희네 앞에 마주 앉아 소주를 한잔 따라주고 싶다.
 

가든이나 한식집이니 횟집이니 이런 데 말고, 듣자니 문기사가 기웃거리기 좋아한다는 어디 허름한 대폿집에 앉아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 중에 저희도 그들에게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 되어, 서로 옛사랑 이야기나 나누면서, 언젠가 본 영화이야기나 하면서, 한다면 용기 내어 막걸리에 사이다 몇 방울 타 마셔도 보련만. 그것이 아니면 온 밤중을 한하여 손잡고 이 골목 저 골목 싸돌아다니거나, 분위기 좋은 맥줏집 같은 데 가서 월급 받은 걸로 맥주 한잔 사도 좋을 것을. (p.176)  

온 밤중을 손 잡고 걷는 일이 대체 왜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대체 왜! 문기사에게 가서 승희네랑 데이트 해주라고, 제발 좀 그렇게 해주라고 말해지고 싶어지지만,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다른 사람의 사랑에 내가 끼어들어서는 안된다. 그 둘이 한 공간에 있고 끌어안기 위해서는 각자의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온다. 소중한 밤이. 짧게 끝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아주 아름답고 찬란하고 두근거리는 밤이. 

다시 빗소리와 뭐가 시끄럽게 구르는 소리가 빈 곳에 들어찼다. 이 소리도 이를테면 태풍의 노래였다. 문기사는 누워서 눈치로 승희네가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았는데 처음부터 그의 신경도 여인네 쪽으로 쏠려 있었다. 여인의 몽땅한 손이 다가왔고 동시에 그도 손을 뻗어 슬며시 잡았다.
"손구락이 영 기요이. 남자 손구락이 이렇게 질어서 어디다가 쓰까."
문기사는 올챙이처럼 파고 들어오는 손을 힘주어 감았다. 
"콧구멍 팔 때 좋소."
"콧구멍 파요?"
"예."
"콧구멍 파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 침착하고 다정다감하다요."
"별걸 다 아시요."
주체를 못하고 어디론가로 흘러가버려야만 되는 바람처럼, 꼭 그렇게 알 수 없는 어디론가로 몰려가버리고 싶은 충동이 손을 통해 오가기 시작했다.
(중략)
이번에는 문기사가 빗소리를 밀어냈다.
"여자 손가락이 이렇게 퉁겁고 짧아서 어디다 쓰까."
"호미질 하는 데 쓰지."
"호미질 잘하지라?"
"처녀 때부터 해온 것이 그것인디."
"메느리가 호미질 잘하믄 집안이 잘된답디다."
"......"
"일을 얼마나 했기에 젊은 나이에 손가락 마디마다 다 굳은살이요?"
"그러게 말이요."
다시 침묵이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을 거듭 보내고 받고 있었다
(pp.232-234) 

승희네는 아마도 이 아무것도 없는 말들을, 정말이지 별 의미도 없는 이 말들을 잊지 못할것이다. 이날의 대화와, 그의 손가락을 잡았던 감촉과, 둘 사이에 흐르던 묘한 기운을 결코 잊지 못할것이다. 밤마다 방안에 누워 천장을 보면서 자꾸만 자꾸만 이 날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기사는 다 잊겠지. 남자들의 기억력은 이럴때 아주 형편없다니까. 

좋아하는 남자의 손을 잡던 순간을, 그 느낌을 잊기란 힘든 법 아닌가. 아무리 고개를 세차게 저어봐도 대체 그걸 어떻게 잊어. 시간이 흘러 다시 생각해도 두근, 심장이 팔딱 거리는데! 다시 또 두근, 와락 조여오기도 하는데! 

승희네는 고생을 많이했다. 시부모를 모셔야 하고, 호미질도 해야하고,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공장에 다니며 돈도 벌어야 한다. 그런 승희네에게 사랑이 허락됐으면 좋겠다. 문기사와의 예쁘고 알콩달콩한 날들이 승희네에게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래야 승희네도 살아갈 재미가 있지. 승희네에게 그정도는 허락되어도 되잖아. 승희네는 문기사가 언젠가는 공장을, 이 마을을 떠날까 두렵기만 하다. 그런데 문기사는 "안 갈 테니께 걱정 마시요." (p.279)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말해봤자 가버릴거라고 승희네가 재차 걱정을 하자 문기사는 "쫓아내기 전에는 절대 안 갈 생각이요." (p.279) 라고 말해준다. 이건 무슨 감동의 도가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연인이든 친구든 그러니까 어떤 관계로든 내 옆에 있다가 간다고 말할때 한번도 가지말라고 말한 적이 없다. 가고 싶어하는 것 같은 기미만 보여도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보내놓고 아무렇지 않았던 건 아니다. 나는 슬펐고 아팠고 힘들었다. 가지 말라고 말하는데도 가버리면, 그러면 너무 아플까봐 차마 제대로 붙잡아 본 적도 없다. 이렇게 살아왔으니 아마 앞으로도 이런 성향은 변하지 않겠지. 그런데 놓고 싶지 않은 사람, 가지 않았으면 좋겠는 사람을 이제는 붙잡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어쩌면 붙잡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누군가가 이제는 가야할 때, 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번에는 참지 않고 말해볼 참이다. 가지말라고. 계속 옆에 있어주면 안되겠냐고. 이번엔 제대로 바짓가랑이를 붙들어볼까 싶다. 라고 쓰지만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밑줄 긋는 남자]의 여자주인공 '콩스탕스'의 이름이 무척 예뻐서, 나의 닉네임을 콩스탕스로 바꿔볼 까 했는데 관두기로 했다. 락방, 락방님, 다락님, 다락방님 이라고 불려지는 것이 내내 좋았으니까. 콩스탕스, 라고 발음할때의 그 부드러운 느낌이 좋지만 이대로 두어야지. 나는 핸드폰을 개통한 이후로 한번도 전화번호를 바꾼적이 없고, 이메일 주소도 만든 뒤로 한번도 변경한 적이 없고, 알라딘에 서재를 만든 뒤로 한번도 닫았던 적이 없다. 아르바이트도 4년 내내 한 곳에서 했고, 이 직장은 8년째 다니고 있다. 나는 사랑도 한결같으며 대상도 한 사람만을 향한다. 그냥 그렇다는거다. 

 

식어버린 커피를 마저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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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31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1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0-10-31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결같으신 다락방님이 예뻐보이지만,
변함이 인지상정이란 것도 알지요~
변할 수 있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고요.
저 또한 알게모르게 변하는 족속이기도 하구요.

전,그 순간만큼은 진심이라면...그랬다면,그러면 됐다고 생각해요.

한창훈의 '홍합'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여,불끈~^^

다락방 2010-11-01 10:3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양철난무꾼님. 저 역시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그 진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붙잡아도 결국은 언젠가는 변할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저는 늘 붙잡지 않았는가 봐요.
저도 언젠가는 전화번호도 바꿀테고, 이메일을 바꿀수도 있겠죠. 회사를 그만 둘 수도 있을거에요. 한결같은 사랑이 식기도 할거구요. 그러나 저는 언제든 최후의 순간이 올때까지는 충성을 다 해볼 참입니다.

:)

마노아 2010-10-31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적의 '끝내 전하지 못한 말'이 떠올라요.
'가지 말아요 날 두고 떠나면 안돼요'라는 그 가사가 참 안타까웠어요.
가장 하고 싶었던 그 말을 끝내 못했던 거니까요.
전에도 한 번 얘기했지만 서태지의 '난 알아요'에서도 비슷한 가사가 나오죠.
이런 가사들은 오래오래 사람을 울려요.

다락방 2010-11-01 10:35   좋아요 0 | URL
[난 알아요]에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다는 가사가 나오죠. 어쨌거나 지금은 너무 늦어 버렸어, 라면서 말입니다.
[우리, 사랑일까요?]라는 애쉬톤 커쳐 주연의 영화를 보면요, 마노아님. 애쉬톤 커쳐가 여자 집앞에 가서 본 조비의 'I'll be there' 라는 노래를 부르며 사랑을 고백하거든요. 그런데 여자에겐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상황이었어요. 애쉬톤 커쳐는 그녀에게 그렇게 얘길해요. 내가 지금 내 마음을 고백하지 않으면, 나중에 늙어서 할아버지가 됐을때, 내가 왜 그때 고백하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고백하기로 했다고.

왜 그때 말하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대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전달해야 하는 것 같아요.

... 2010-10-31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콩스탕스라니요, 콩스탕스라니요, 콩스탕스라니요!!! 콩스탕스님~~ 하고 부르기도 어렵고 type 치기도 귀찮아요, 그냥 영원히 다락방 하세요! (이전 페이퍼에 댓글 놓쳤는데 <밑줄 긋는 남자>가 우리나라에서 배두나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어진거 혹시 보셨나요?)

가지말라고 잡는다고 해서 머물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가겠다고 하지도 않았을껄요? 갑자기 고려가요 "가시리"가 생각나는 군요. "잡사와 두어리 마라난 선하면 아니올세라 설운님 보내옵나니 가시난 닷 도셔 오셔서" 크~~~


다락방 2010-11-01 10:37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저는 배두나와 한국영화 모두 관심이 별로 없는지라, 게다가 무지한지라, 배두나 주연의 그런 영화가 있다는 건 지금 브론테님으로부터 처음 듣네요. 하하하핫.

그럴까요, 가지 말라는 말에 잡히는 사람이라면, 애초부터 간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을 사람일까요? 아, 가시리까지. 아침부터 가슴이 찢어져요. 1일이니까 알라딘 지름으로 이 가슴을 좀 달래줘야겠어요. 흑 ㅠㅠ

웽스북스 2010-11-01 23:24   좋아요 0 | URL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저는 봤지요 ㅎㅎ

다락방 2010-11-02 08:25   좋아요 0 | URL
밑줄 긋는 남자가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가 된건가요? 어쩐지 좀 생뚱;; 하핫
웬디양님은 배두나팬이시죠!

poptrash 2010-10-31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구락이 영 기요이. 남자 손구락이 이렇게 질어서 어디다가 쓰까."
문기사는 올챙이처럼 파고 들어오는 손을 힘주어 감았다.
"콧구멍 팔 때 좋소."
"콧구멍 파요?"
"예."
"콧구멍 파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 침착하고 다정다감하다요."
"별걸 다 아시요."

ㅜ_ㅜ

다락방 2010-11-01 10:37   좋아요 0 | URL
poptrash님은 그러니까,

침착하고 다정다감한 남자사람입니까?

무스탕 2010-11-01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호미질도 안하는데 왜 손구락이 짧뚱하니 안 이쁘까요?
타고나길 그러니 어디가서 일 잘한다고 말할수도 없고... -_-;;;

다락방님이 콩스탕스가 아니길 정말 다행이에요. 그랬다가는 다락방님이 사라져 버리는거 같아서 섭섭할거 같아요.
탕스는 못해도 무스탕은 제가 할테니까 다락방님은 그냥 계속 다락방하세요 :)

다락방 2010-11-01 10:44   좋아요 0 | URL
저는 손구락이 굵어요. ㅋㅋㅋㅋㅋ 이게 원래 안 굵었는데.....자꾸 굵어져요....이건 왜그래요, 무스탕님? ㅋㅋㅋㅋㅋ

네, 저는 콩스탕스가 되기 보다는 다락방으로 남겠습니다. 다락방으로 남아서 계속계속 무스탕님의 총애(응?)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우하하하하하하하핫

2010-11-01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1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11-0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 동안 알라딘 서재하면서 오랜친구같은, 그 자리에 계속 서 있는 분이세요. 다락방님은.
콩스탕스도 좋긴 한데...개명은 싫어요!

s와는 그날 이후로 끝인가요? 사람들 참 짖궂죠!

점심으로 김치볶음밥 먹고 있는데 약간 쉰 거 같아요. 먹을 게 없으니 쉰김치볶음밥이라도 먹어야겠어요^^

다락방 2010-11-01 18:34   좋아요 0 | URL
S와는 그 날 이후로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죠. 그러나 결국은 안녕, 했어요. 그 사이에 내 머리를 귀에 꽂아주기도 했고, 손잡고 종로며 인사동을 걷기도 했는데, 여러명이 함께 모여 술을 마실때 살짝 바깥으로 나가 전화로 나를 불러내기도 했고, 사람들 많은 곳에서 내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기도 했는데, 뭐 인연이 아니었는가 보죠. 아주 오래전의 일이니까요. 지금은 잘 살고 있으려나요. 후훗.

김치볶음밥은 잘 드셨어요? 괜찮으신가요? 저녁엔 따뜻한 밥 해서 드세요, 기억의집님! 밥은 잘 먹어야 해요!
그리고,
계속 다락방으로 있을게요.
:)

moonnight 2010-11-01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콩스탕스도 예쁘지만 '다락방'님이 더 좋아요. >.<
아주아주 예전에 제가 먼저 슬그머니 손을 잡았던 남정네가 생각나네요. 용기를 내봤지만 거절당해버렸어요. 흑흑 (엎드려 울...;;)지금은 뭘 하고 있으려나. (먼 산;;;)

다락방 2010-11-01 18:36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정말이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눈물나네요, 문나잇님의 댓글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먼저 손을 잡는게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데, 손을 잡아 달라고 말하는 게 정말이지 얼마나 미친듯이 많은 용기가 필요한데, 거절이라뇨 거절이라뇨. 이런 2-35ㅕ7209수 0ㅜ ㅂ-9ㅅ ㅜ-ㅄ-% 같은 경우를 봤나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이 댓글에 저는 정말이지 상심의 바다 ㅠㅠ

저주를 퍼부어 줄까요, 문나잇님? 그 남정네는 2017년까지 여자랑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할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흥!

2010-11-01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1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1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1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0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4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4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4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연극을 보러 가기로 했다. 대학로에서 일곱시 반에 시작하는 연극이었다. 나는 연극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기는 했지만 일단 보러 가기로 한 이상 늦기는 싫었다. 강남역에서 출발해서 일곱시 반 연극을 보려면 당연히 밥 먹을 시간은 없었다. 어쨌든 나는 지하철을 타고 연극을 보러 간다. 퇴근시간대의 강남-사당 노선 지하철을 타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겠지만 사람 정말 우라지게 많다. 어쨌든 강남에서 동행과 함께 지하철을 탔고, 사당에서 내리려는데, 와 진짜 사람 많다. 내 동행은 먼저 내렸고 내가 내리려는 찰나, 내 앞에서 내리는 남자가 여자친구(아마도?) 의 손을 잡고 내리려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내려 여자친구의 손을 놓치고 만다. 나는 그가 움직여야 지하철에서 내릴 수 있는데, 그는 여자친구의 손을 다시 잡아 끌고 내리기 전까지는 자리를 뜰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 이런 씨양- 나는 우물쭈물 하고, 내리고 싶고, 그는 그대로 사람 많은 지하철의 문 앞에서 뒤를 돌아 여자친구의 손을 다시 찾는다. 찾았다. 잡고 내린다. 그가 움직이고 나서야 나는 내려서 동행에게로 간다. 아마도 똥을 씹어버린 듯한 내 표정을 본 동행이 묻는다. 무슨 일이냐고. 나는 내 앞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 하고 동행에게 얘기한다. 

" 내 손을 좀 잡아 끌어주지 그랬어!" 

신경질이 방울방울 지는 순간이다. 

 

- 그렇게 어찌어찌 혜화역에 내렸는데 일곱시 이분이다. 역시 밥 먹을 시간이 없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카드를 대고 100원이 찍힌 걸 보고, 출구를 찾아 나가다가 우연히 벽에 걸린 광고를 본다. 한 커피 광고다. 이런 카피가 써있다.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면 결국 그 사람 앞에 서게 됩니다.] 텔레비젼을 잘 보지 않는 나는, 이 광고 역시 텔레비젼 보다 앞서 온라인 지인의 블로그에서 보게 되었는데 으음, 그런가 하고 심드렁 했다. 그러다 텔레비젼에서 보고는 아아 그런가 했다. 그런데 오늘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그 광고를 보는데 정말? 하게 되는거다. 정말 그래? 정말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면 결국은 그 사람 앞에 서게 되는거야? 진짜 그래? 나는 피식 웃으며 그럴 리 없지, 하고는 공연장으로 향한다. 

 

- 티켓을 바꾸고 나니 공연까지 18분의 시간이 남는다. 15분 전부터 입장 가능이다. 우리는 가볍게 저녁을 먹기로 하고 극장건물 내에 있는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동행은 2층에 자리를 잡아 두고, 나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받아서 동행이 있는 곳으로 가 앉는다. 우리는 마주보고 앉아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는데 남는 자리가 없다. 자리 구리다고 나는 한번쯤 궁시렁 거리고 열심히 먹는다. 시간이 별로 없다. 왼쪽 옆에는 여자사람이 혼자 앉아서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오른쪽 옆에는 남자와 여자가 앉았는데 그들의 대화가 고스란히 내 귀에 들린다. 그 둘은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 듯 하다. 소개팅이든 혹은 온라인에서 아는 사이가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거든. 어쨌든 처음 만나는 것 같은데, 그들의 대화가 들리고 여자는 내게 비호감이다. 너무 잔소리 스타일이다. 왜 핸드폰을 그 먼데서 개통했냐, 이상있을 때마다 따지려면 동네에서 개통했어야 한다 등등. 피식 웃으며 나는 동행과의 대화에 열중하느라 그들의 대화를 더이상 듣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어어어, 그들의 대화가 다시 들린다. 내가 관심 있는 소재다. 

 

- 내가 언제나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던 것, 그러나 그것이 그 누군가의 사생활에 관계된 것인 것 같아서 한번도 묻지 못했던 것, 너무나 궁금하고 알고싶지만, 나에게 그것은 관심의 표현이지만, 상대가 불편해 할까봐 차마 묻지 못했던 것을, 오, 그녀가 그에게 묻는다. 나는 귀를 쫑긋한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는데,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물음에 꼬박꼬박 대답을 해준다. 아! 나는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동안 전전긍긍 궁금해했던 것들을 그가 다 이야기 해준다. 아 신난다 ㅠㅠ 감동이다 ㅠㅠ 지하철 역에서 봤던 광고의 카피가 다시 생각났다.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면 결국 그 사람 앞에 서게 됩니다. 나는 정말로 궁금해했는데, 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그 궁금증을 다 풀어내고 만다. 간절히 원하는 건 어떻게든 이루어진다고,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헤죽헤죽 웃음이 나온다. 나 이제 알아, 다 알게 됐어! 누구의 사생활도 침해하지 않으면서 궁금한 걸 결국 알게 되고야 말았어!! ㅠㅠ 어쩌면, 정말 어쩌면, 마음을 다해 사랑하면 그 사람 앞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고, 정말 그럴 수도 있을거라고, 나는 그 순간 진심으로 믿는다.  

 

연극에 집중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며칠간의 침울함을 날려버릴 정도로 잠시동안 기뻐졌으니까. 나는 이 연극을 제대로 볼 수 없을거야, 가뜩이나 연극을 좋아히지도 않는데, 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나는 아주 흠뻑 빠져버렸다. 빠진 정도가 아니라 미칠 뻔 했다. 이 연극은 무.섭.다. 나는 잔인한 공포 영화는 잘 보아 넘기지만, 귀신이 나오는 건 진짜 끔찍해 하는데, 와, 이건 정말 ㅠㅠ 몇번 이나 비명을 질렀는지 셀 수가 없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목에 둘렀던 머플러를 풀러 다리 위에 올려 놓고는 두 손으로 머플러를 꽉 쥐고 있었다. 가끔은 머플러를 들어서 눈을 가리기도 했다. 그리고 기어코 끼약,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울 뻔 했다. 중간에 나가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ㅠㅠ 심장이 벌렁벌렁 거려서 아 어떡하지 정말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연극이 끝나고 난 후, 내 동행은 나처럼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다 내 쪽을 쳐다봤다고도 했다. 아 그래? ㅠㅠ 나만 소리 질렀어? ㅠㅠ 다른 사람들은 안무섭나? ㅠㅠㅠㅠ 

 

- 연극이 끝나고 나오려는데, 앞자리에 앉은 여자가 남자에게 기대어 있다. 남자는 연신 여자를 달래면서 정신차려, 그렇게 무서웠어? 하는 다정한 말들을 건넨다. 이런 ................................................... 저 여자도 견딜 수 있었을 거다. 나도 견뎠는데 자기라고 왜 못견뎌. 다만 , 다만, 옆에 기대도 좋을 사람이 함께 있었으니까 맘 놓고 정신도 놓고 멍도 때리고 하는거다. 분명 그녀도 여자랑 보러 왔다거나 혼자 왔다면 잘 보고, 잘 견디고, 툴툴 털고 일어났을 거다. 이런 뽀롱뽀롱거시기할 ㅠㅠ
 

 

- 이 연극을 보면 이 계절에 더 추워질거라는, 이 연극의 표를 준 친구의 말은 사실이었다. 너무 추워서 따뜻한게 먹고 싶었다. 끝나고 나니 아홉시가 좀 넘었는데 술을 마시기에는 어정쩡한 시간. 나는 동행에게 지금 미칠 것 같고 무섭고 춥고 심장이 벌렁 거리니 따뜻한 걸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칼국수 집을 들어갔는데, 메뉴판에 있는 소주를 보는 순간, 반드시 소주를 마셔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른다. 소주여야 했다. 결국 우리는 한시간 동안 소주를 두병 비워낸다. 소주 마시러 온게 아니었는데...나는 따뜻한 칼국수를 좀 먹고(사실은 많이), 소주를 마시고 난 후에야 어느 정도 진정이 된다.  

 

- 이러나저러나 어느 상황에서든 소주는 참 좋은 친구고, 난 정말 왜이렇게 귀신 나오는게 무서운지 모르겠다. ㅠㅠ 무서워. ㅠㅠ 정말 무서워 ㅠㅠ 완전 무서워 ㅠㅠ 자꾸자꾸 울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는 강한 여자사람이니까 결코 울지는 않았다. 그래도 무서워 ㅠㅠ

  

- 올림픽공원에 가서 혼자 캔맥주를 마시는 일이 너무 추워 더이상 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장갑을 찾고, 머플러를 찾고, 부츠를 꺼내 신으면 그리 불가능한 일도 아닐거란 생각이 어느순간 들었다. 완전무장을 해서 가고, 그렇게 캔맥주를 마시다 울어도 좋을, 가을이다. 아니 어쩌면 겨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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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0-10-29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다락방, 나는 다락방이 혼자 올림픽 공원에서 캔맥주 안 마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울고 싶을때 나한테 전화해.

...

다락방 2010-10-29 09:36   좋아요 0 | URL
알았어요. 레와님도 참... ♡

람혼 2010-10-29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뜩이나 연극을 좋아하지도 않"으시다니... 흑흑.

다락방 2010-10-29 11:19   좋아요 0 | URL
어제 연극 보고는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람혼님. ㅎㅎ
안그래도 어제, 대학로에 연극보러 왔다고 말씀드리려다가 꾹 참았어요. 울지마세요 ㅠㅠ

깐따삐야 2010-10-2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동그랑땡 좋아하시면 한 접시 드리고 싶네요. 맥주랑 같이 드시라고.

다락방 2010-10-29 12:13   좋아요 0 | URL
영달이 아빠 실컷 드시게 하고 남으면요. 남으면 주세요, 깐따삐야님. 따끈따끈한 동그랑땡이라면 맥주 안주로 이 가을겨울밤에 제격인것 같아요.

치니 2010-10-29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야, 읽다가 내가 다 숨이 턱턱 차오르네요. 고생 많았어요. 어젯밤 디게 으슬으슬 춥던데.
제 아무리 재미나다 해도 저는 무서운 영화, 무서운 연극은 무조건 패스. 보는 자체도 문제지만 나중에 두고두고 그 이미지가 떠오르는 건 정말 병맛. 그걸 견뎌냈다니, 대단하다 다락방님!

올림픽공원은 떼끼! 라니까요. -_-

다락방 2010-10-29 12:14   좋아요 0 | URL
치니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 진짜 완전 꺅꺅 거렸어요. ㅠㅠ 완전 실감나게 무서워가지고 ㅠㅠ 저도 무서운건 좀 패스하는데, 그래서 눈을 좀 가리고 있으려다가, 지금 놓치면 이 장면을 언제 또 봐 싶어서 또 두눈 부릅뜨고 봤더니 자꾸 소리만 질러대고. 아, 다 보고나서 정말 힘들어 미치는 줄 알았어요, 치니님.
그런데 지금은 해장으로 라면과 멸추김밥을 먹었는데도 어지럽네요. 라면을 좀 남겨서 그런가..다 먹을걸 그랬나. ㅠㅠ

하하. 올림픽공원은 떼끼!

moonnight 2010-10-2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연극이 별로... -_-;

연극보다는, 뜨거운 칼국수에 소주가 더 땡기는군요. 얌냠.
여름에 맥주 사들고 벤치에 앉아서 책 읽으며 많이도 마셨었는데 얼마전에 해 보니까 너무 춥더군요. 이제는 이것도 그만. 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락방님과 나란히 앉아서 마셔보고 싶네요. 머플러랑 장갑 둥둥 싸매고요 ^^

다락방 2010-10-29 12:18   좋아요 0 | URL
저도 연극이랑 뮤지컬은 영화나 책 처럼 좋아지지는 않더라구요. 그런데 어제 봤던 연극은 제가 그간 봐온 몇편 안되는 연극중 가장 재미있었고 몰입도도 좋았어요.

뜨거운 칼국수에 소주는 정말 이 계절에 확 땡기죠! 그래서 너무 순식간에 술을 마셔가지고 지금 어지러운 고통을. 흑흑 ㅠㅠ
저도 지난주에 올림픽공원에서 혼자 맥주 마시는데 처음엔 괜찮다가 두개를 다 비워갈때쯤 되니까 옴팡 추워지더라구요. 이젠 완전무장 하지 않으면 공원에서 맥주마시기는 힘들 것 같아요. 네, 문나잇님. 머플러랑 장갑 꽁꽁 싸매고 벤치에 앉아 건배를 합시다. 이왕이면 화장실 근처에 앉읍시다. ㅎㅎㅎㅎㅎ

새초롬너구리 2010-10-2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저, 전 straight이고, 보수적인지라 '이반'은 거부감이 큽니다만!
제가 만약에 남자라면 님이랑 연애해보고 싶어요. 아, 갑자기 님글 때문에 소주랑 따땃한 국물이 마구마구 땡깁니다. 아님, 둘둘 싸매고 발 동동 구르며 맥주를 마시고 부르르 떨거나요.

아, 전요. 남자랑 같이 와서 '꺄악, 넘 무서워쪄~'이러는 애들 뒤좀 파보고 싶어요.분명!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제대로 안앉고 다 튀기고, 발로 문차고 나와서 손도 안씻고 화장하고 종종걸음으로 나가서 그 손으로 분명 남자손 잡을 애들이예욧!

저 연극 아직도 하나요? 여름즈음에 보러가고 싶었었는데...음, 가서 소리 제일 많이 지르는 애중의 하나에 속할지도 몰라요. 소리는 좀 질러도 연약한 척은 안한다구욧.

아, 증말. 지하철에서 무슨 견우직녀났는지 좀 굵은 목소리로 '좀 갑시다!'하지 그러셨어요 ^^

아, 님 페이퍼에는 왜이리 참견할 거리가 많은건지...히히

다락방 2010-10-31 10:04   좋아요 0 | URL
ㅎㅎ 새초롬너구리님! 만약 남자였다면 저랑 연애하고 싶은 생각 안드셨을거에요. 정말 남자였다면요. 지금 여자라서 그런 생각이 드시는 겁니다.
그리고 전요, 남자랑 같이 갔으면 꺄악 하면서 남자 품에 안기는 여자사람이에요. ㅎㅎ 안참아요. ㅎㅎ 실제로 저는 이 날 연극을 여자사람이랑 봤는데도 자꾸만 정신을 차려보면 그녀쪽으로 몸이 기울어져 있었거든요. 안기지 않은건 순전히 그녀가 여자사람이어서 ;;
아직도 해요. 11월의 며칠까지 하는것 같더군요. 전 소리 진짜 완전 잘 질렀어요. 제가 그런 소리를 지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너무 질러가지고 창피했죠 ㅠㅠ 예전에 애인이랑 공포영화 보러 갔을때(아주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그는 내가 지르는 소리에 놀랐다고 하더군요. 하하하핫

그리고 평소의 저라면 저 좀 나갈게요, 라고 말하는 스타일인데 제가 요즘 심신이 많이 지쳐있어서 아무말도 못했어요. 정말, 정말 지쳐있었거든요. 흑 ㅠㅠ
앞으로도 많이 참견해주세요. 어제 친구에게 제가 보낸 문자메세지가 생각나네요. 개막장 내인생에 끼어들어줘서 고마워요, 라고 보냈는데. 참견해주세요, 새초롬너구리님.
:)

2010-10-29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31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10-10-30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캬캬 왜 난 늘 다락방 님에게 완전 공감되고 다락방 님이 겪은 일을 좌악 내 앞에 비주얼로 펼쳐 보이면서 상상하고 있는걸까요.

다락방 2010-10-31 10:06   좋아요 0 | URL
글쎄요, 왜 그런걸까요? ㅎㅎ
그래도 힘든것들은 상상하지 마세요. 힘들잖아요. 히히
아 아침부터 속쓰리고 배고프고 그러네요. 어제 폭풍처럼 술을 마셨더니 ㅜㅜ

자하(紫霞) 2010-10-30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림픽공원과 캔맥주와 눈물은 위험합니다요~
연극을 보면서 무서워질 수 있군요.
저는 생애 처음 본 연극의 기억이 그닥인지라...연극은 꺼려진다는...^^;

다락방 2010-10-31 10:07   좋아요 0 | URL
어제는 와인과 캔맥주를 가지고 왕십리광장의 벤치에 앉아서 술 마셨어요. ㅋㅋㅋㅋㅋ 아 완전 취해가지고 ㅋㅋㅋㅋㅋ
연극을 보면서 무서워졌다기 보다는, 무서운 연극이어서 무서워할 수 밖에 없었어요. ㅠㅠ
저도 연극을 그다지 재미있게 본 기억이 없었는데요, 이 연극은 참 재미있었어요. 몰입도도 컸구요. 무서운거 괜찮으시다면 한번 보세요, 베리베리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