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1일 출근길. 버스를 탔는데 버스안에 사람이 별로 없다. 평소의 절반도 안된다. 사람들이 오늘 다 쉬는가 보구나, 나만 출근하는군, 하면서 외로이 자리에 앉아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잠실역에 내렸다. 잠실역,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들어서서 걷고 있는데, 그 때 마침 이어폰에서는 '별'의 [12월32일] 이 나오기 시작했다.
올해가 가기전에 꼭 돌아온다고,
하는 첫 가사를 듣는데 나는 그만 두 손을 모아 잡고 꼭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다. 마치 내가 기다리고 있는것처럼. 그렇게 잡은 나의 두 손을 입에 가져다대고 혼자 속으로 말하는데, 그 모아진 두 손에서는 아침 출근전에 내가 뿌린 향수 냄새가 났다.
아이고, 좋아.
그래서 바보같이, 니가 올 때까지는 나에게 1월1일이 없다고 말하는 이 슬픈 노래를, 12월 32일이고 33일이라고 말하는 이 서러운 노래를, 듣다가 조금 웃어버리고 말았다.
지하철을 탔다. 내내 노래를 들었다. 나는 서 있었다. 내 앞에 앉아있는 여자는 이십대 중반쯤 되어보였다. 얼굴이 작고 하얬다. 와, 작고 하얗고 예쁘다, 라고 생각했다. 지하철 창으로 비친 내 얼굴을 봤다. 앗. 이런 얼굴이라니. 이런 얼굴이 오늘 하루가 지나면 한살 더 먹기까지 한다니! 나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놀라서. 그러자 반짝, 반지가 보였다. 또 기분이 좋았다.
단 하루라도 너와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하는 맨디 무어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좀 웃었고, 그래 난 너를 잊을수가 없어, 라고 말하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들으면서는 아주 씩씩하게 걸었다.
가끔, 아주 가끔, 제시카 알바가 웃는 모습을 본다거나 할때 나는 다음 생에는 남자로 태어나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오늘, 다시 태어나도 역시 여자로 태어날거라고, 순간의 고민도 없이 나는 여자로 살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여자여서 너무 좋다. 향수 냄새가, 반지가, 그리고 내가 한 말에 대답해주는 남자가 좋다.
12월 31일이다.
돌아오겠다고 말한 남자들은 돌아와야 한다. 돌아오겠다는 말을 믿고 기다리는 여자들이 있으니까. 약속은 남자의 모든것. 여자들에게 12월 32일을 만들어줘서는 안된다. 32일을 만들고, 33일을 만드는 남자들을 내가 다 부셔버리겠어.
나에게 12월 31일 다음은 1월1일이다.
해피뉴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