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에게 포크너란......
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4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선천적인 전도사이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2007년 끝머리에 오르한 파묵 《새로운 인생 》을 읽었다. 제목이 시기와 맞아떨어져서라기 보다 첫 문장 때문이었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보자마자 나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을 꿈꾸었다고 생각했다. 어떤 책은 한 개인의 연상과 치밀한 우연과 사건들 속에 접전을 벌인다. 나도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뒤흔들려 보았지만, 어떤 식으로도 끝을 보지 못한터라 이 문장은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다.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이렇게 서두가 거창한 거야?라고 한다면 이미 당신도 이 책에 다가갈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저 문장의 비밀 중 하나는작가란 무엇인가 1》(파리 리뷰)에서 밝혀졌다. 파묵이 리엄 포크너 소리와 분노》를 읽고 그렇게 표현했다는 것을. 그런데 나는 아직 소리와 분노》 다 읽지 못해 왜라는 나머지 비밀을 알지 못한다. 나는 탐정되긴 글렀어. 그러면서도 <그것이 알고 싶다>나 범죄심리학엔 관심이 많다. 쯧쯧, 사칭 탐정도 못되고 시청자나 독자나  해야 하나;_;)

 

 

 

 

인생은 장소의 문제?

 

"그에게 이 모든 것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자 그도 나에게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의 시작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내가 찾아야 할 것은 시작과 끝이 없는 장소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그에게 물어볼 수 있는 질문조차 없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때로 정적이 흐를 때, 사람은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지금 이곳에서 우리 둘이 하는 것처럼, 아침에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하고 증기기관차와 기차들을 구경하고 호도애새들이 지저귀는 것을 듣곤 한다. 어쩌면 이것들은 모든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머나먼 곳으로 그렇게 오래 여행을 했는데도 그가 본 새로운 나라는 없었던가? 어떤 곳이 있다면 그곳은 글 속에 있다. 그러나 글에서 찾았던 것을 글 바깥에서, 인생에서 찾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세상 또한 글만큼이나 한계가 없고 결점투성이에,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 퍼즐 맞추기 좋아합니까?

  

인간은 잊힌 것들에게 회기 하는 순간을 계속 경험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표지에는, 그림이 있었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공들여 그려져 있었지만 인쇄가 잘못된 탓에 초록색 선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어린 날의 만화책들을 회상하는 주인공 기억 중 하나다. 이 문장은 만화책을 그저 읽어치우기 바쁘던, 혹은 관심 없던 사람들에겐 별다른 공감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인쇄선 밖으로 비어져 나간 것이 몹시 속상했던 그러한 심정...애정...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세계에서나 가져올 수 있는 기억이고 책 속에서 내내 말하는 아주 오래전에 닫힌 어떤 세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림에 재능이 뛰어났던 오르한 파묵의 경험이 담긴 것이라는 것도 이젠  안다.

 

책을 읽을 때 당신은 어떤 문장에서 멈췄다가 다시 읽기에 진입하게 된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서도 그 문장으로 다시 돌아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면 거기엔 당신만의 어떤 퍼즐이 있다는 소리다.  당신은 어떤 퍼즐의 짝을 찾기 위해 노력했는가?

    

 

● 책

  

"나는 책이 무엇을 의미하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좋은 책이란 우리에게 모든 세계를 연상시키는 그런 것이야. 어쩌면 모든 책이 그럴 거야. 그래야만 하고."라고 말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책은 실제로 책 속에 존재하지는 않으면서도, 책에 쓰여 있는 말을 통해 내가 그 존재감과 지속성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의 일부분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세상의 정적 또는 소음으로부터 벗어난 그 무엇일 수도 있지. 그렇지만 정적과 소음도 그것 자체는 아니야." 이렇게 말한 다음, 그는 내가 자신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봐 다시 한번 다른 말로 설명하고자 했다. "좋은 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 일종의 , 일종의 죽음을 설명하는 글이지……그렇지만 단어들 너머에 존재하는 나라를 글과 책 밖에서 찾는 것은 헛일이야." 

 

 

그때도 지금도 나는 하루가 지나가듯 책을 집어 든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기도 전에 그러는 것도 이제 버릇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 어느 날은 비겁한 모습이고, 어느 날은 슬픔의 모습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긴 장정을 놓지 않는다면 내가 바라는 어떤 세계를 만나는 날이 분명 올 것이라는 믿음. 아마 진실은 끝끝내 내 것이 아닐 것이지만. 그렇게 계속 새로운 인생을 만드는 지도 모른다.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생각되거나 연말이면 제목 때문에 종종 떠올리는 소설이다. 같은 제목으로 단테 알리기에리의 책도 있는 걸 보면 "새로운 인생"이란 인간의 영원한 염원인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영원이란 없잖아!로 얘기를 풀진 말자구.

왠지 책 제목에 걸맞지 않은, 연말이라고 이 책 리뷰를 올리려 한 의도와 동떨어진 글이 되어 버렸다. 그냥 매력이라고 우겨보자. 나 말고 이 책의 매력!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12-25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12-25 22:10   좋아요 0 | URL
순간을 놓치면 그다음 순간이 오는 거잖아요. 우리가 느끼는 삶의 안정성도 우리의 생각일 뿐인데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미움이나 욕심도 연기 같기만 한데, 사람 속에 살다보면 그게 물질로 만져지게 다가오니 이거참 어렵다는 말 밖에^^,

겨울호랑이 2016-12-25 1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진리를 깨달으신 분들은 ‘호흡‘의 순간에 죽음과 삶을 느낀다는데, 저와 같은 일반사람들은 적어도 1년마다 끊어줘야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AgalmA 2016-12-25 22:15   좋아요 1 | URL
시간 전체가 우리가 계획한 것이죠. 하루를 24시간으로 정한 것도, 1년을 12달로 만든 것도... 사람은 맞추기 나름이라 깨닫고자 하는 사람들도 포기하지 않고 어려운 수행을 계속하는 거겠죠^^...
저는 하루에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것만도 숨이 찹니다. 누구나 하루의 삶을 꾸려나간다 생각하면 참 눈물겨울 때가 있어요

오거서 2016-12-25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이 책의 매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Agalma 님의 매력이지 않을까요. ^^

AgalmA 2016-12-25 22:16   좋아요 1 | URL
워낙 유명한 작가 책이라 제 리뷰는 모래알 하나 정도밖에 안 될 거 같습니다만 정겹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12-26 0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6 0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6-12-26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가 지나가듯 책을 집어든다는 말씀이 참 와닿습니다. 갖고 있지만 아직 못 읽은 수많은 책들 중 한 권이네요. 슬쩍이라도 들춰봐야겠어요. ^^

AgalmA 2016-12-27 11:35   좋아요 0 | URL
슬쩍 보려다가 왕창 읽는 수가 있죠ㅎㅎ 그럴 때가 책이 가장 재밌게 읽는 순간인 듯. 일상에 치이다 보니 그게 잘 안되는 게 늘 속상합니다. 그럼에도 읽고 싶은 책이 집에 있다는 건 행복^^ 그래서 우린 계속 책을 사는 거겠죠.
 
변신하는 분신들의 고백들
절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1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최종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코프 절망은 도스토예프스키 분신에서 좀 더 진화한 자아상을 보여준다. 두 소설에서 주인공이 분신 때문에 파멸을 맞는 결과는 같지만 당연히 과정은 다르다. 도스토예프스키 분신》의 주인공인 골랴드낀은 사회 속 노예의 삶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해 몰락을 맞았다면, 나보코프 절망의 주인공인 게르만은 자신이 노예의 삶을 살지 않는 영리한 주체라는 자기도취에 빠져 몰락을 맞는다. 더 풀어서 말하면, 골랴드낀은 자신과 닮은 분신의 음모에 당해 정신병원으로 가게 되고, 게르만은 부랑자인 분신 펠릭스를 자신으로 위장해 보험금을 타 자유와 돈을 모두 얻으려 했으나 교수대로 향하게 된다.

근본적인 요인은 우리 안에 있는 파토스일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향해 선의와 악의를 잘 구분해 표현한다고 생각하지만 무의식중에 혼재되어 있을 때도 많고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판단들은 상당수 불완전하고 합리적이지 않다. 골랴드낀과 게르만과 나보코프는 상당히 오만하게 느껴진다. 우리들은 그보다 나을까. 아니, 나와 타인을 끝없이 구분하며 온갖 차이에 비분강개하며 여러 감정들의 크기를 다르게 표현할 뿐 우리는 매우 닮았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곧 다른 이들에 의해 대체된다. 게르만과 펠릭스를 겔릭스와 페르만이라고 해도 본인들 외에 누가 그리 신경 쓸 것인가. 닮음의 익명성. 존재의 익명성.

 

 

신체상의 이 놀라운 유사성은 아마 내게 미래의 무계급 사회에서 사람들을 결집시킬 저 이상적인 닮음을 약속하는 징표로 (무의식적으로!) 비친 것 같다. 그리고 특정한 경우를 이용하고자 애쓰는 가운데, 아직 사회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호하나마 어떤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이 닮음을 완벽히 실현하지 못한 이유는 순전히 사회적 원인들로만 해명이 가능하다. 나와 펠릭스가 분명히 구분된 상이한 계급에 속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계급투쟁이 타협이 불가능한 첨예한 지경에 이른 오늘날에는 단독으로 계급융합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사실 내 어머니는 태생이 천했고, 친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거위를 길렀다. 그래서 나 같은 기질과 습성의 인간이 내면에 지니게 되는, 비록 아직 완전히 발현되지는 않았지만 강렬한, 진정한 인식에 대한 염원이 어디에 기인하는지 바로 나 자신이 잘 이해하고 있다. 신세계를 꿈꾼다. 그곳에서는 모든 사람이 게르만과 펠릭스처럼 서로서로 닮았을 것이다. 겔릭스들과 페르만들의 세상. 장비 곁에 쓰러져 죽은 노동자를 그의 완벽한 분신이 평온한 사회적 미소를 지으며 즉시 대체하는 세상. 그래서 나는 소비에트의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고, 경험이 풍부한 마르크스주의자의 지도 아래 이 책이 담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의 기본적인 행보를 따라가보는 것이 상당히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다른 민족들에게도 내 책을 번역하게 할 것이다. 그러면 내 책을 읽은 미국인들은 유혈과 폭력에 대한 갈증을 풀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부랑자에 대한 나의 특별한 애착에서 소돔의 신기루를 감지할 것이다. 독일인들은 반()라브적 영혼의 광적인 변덕을 즐길 것이다. 여러분, , 더 읽으시라! 전적으로 반기는 바올시다.”

 

나보코프 절망

 

 

러시아에서 온 망명자라는 설정부터 러시아 전통 문학에 대한 조롱 등 게르만과 나보코프는 또 다른 분신 관계이다. 펠릭스와 게르만의 관계처럼 게르만을 다루고 있는 나보코프가 자꾸 느껴져서 불편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보코프의 글을 바라보고 있는 나. 사슬처럼 연결된 우리의 시선들, 추측들, 판단들. 그러나 나는 나보코프에게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하찮은 내 글에 상처받지 않게 작가가 이미 사망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보코프에게 진정한 독자는 바로 작가 자신”(p262)이었다는 해설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덕담으로 끝내려는 건 아니고, 나보코프 절망》은 이 소설이 어떤 것을 분신들의 재료로 썼는지 보여주는 향연이기도 하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 뿐만 아니라 각종 문학 모티프들('천재와 죄악', 재능과 거짓', '죄와 벌', '범죄와 분신')이 이 소설에서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독자에게 노골적으로 보여주며 자신의 게임을 만드는 데, 나보코프가 대단한 작가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

 


댓글(35)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12-22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12-22 22:32   좋아요 2 | URL
우병우 나온다 그래서 하루종일 청문회 보다가 고혈압과 심장병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습니다; 밥 먹으면서 보다가 소화도 안 되던...

겨울호랑이 2016-12-22 14: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절망」을 읽으려면 배경지식이 탄탄해야할 것 같습니다..문학의 세계는 심오하다는 것을 Agalma님의 글을 통해 또다시 느끼게 됩니다.^^-: 읽을 책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ㅋ

AgalmA 2016-12-22 22:38   좋아요 2 | URL
그냥 봐도 재밌지만 나보코프가 워낙 편집증적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 배경지식이 좀 있으면 더 재밌기도 합니다. 아는만큼 머리 아플 수도ㅎ;; 이건 어디서, 저건 어떻게 이런 식으로 찾아서 연결해보고 싶어져서 즐겁게 소설 읽기가 힘듭니다 ^,ㅜ...
주석과 인용 찾아보는 철학서를 보는 게 아니잖아요ㅎㅎ;;

2016-12-23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0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3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6-12-23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2016서재의달인 ㅡ발표가 났네요! 휘리릭 가셔서 좋아요 좀 눌러주셔요!^^

AgalmA 2016-12-23 20:23   좋아요 1 | URL
오~ 전 올해 알라딘 서재의 달인 안될 줄 알았는데 됐네요^^;;
북플마니아 2관왕도 기쁨ㅎㅎ

[그장소] 2016-12-23 20:27   좋아요 1 | URL
저도 마찬가진걸요 . 듬성듬성 해서..그런데 보니 우리 많이 떠들긴 했나봐요!^^ㅋㅋㅋ 축하드려요!^^

AgalmA 2016-12-23 20:40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은 리뷰 왕창왕 아닙니까ㅎㅎ 여러 이웃 가셔서 말씀도 많이 나누시고. 올해는 제가 서재를 비운 기간이 많아 수다꾼 역할 많이 못했는데 서재 기네스 기록 보니 이웃들이 제 서재 와서 말씀 더 많이 해주셔서 그게 특히 감사하더라는^^

[그장소] 2016-12-23 20:42   좋아요 1 | URL
ㅎㅎㅎ리뷰 왕창 ~댓글도 그런데, 그건 안쳐줍니꽈~^^ 그분이 오시는 날이 따로있거든요! ㅋㅋㅋ
Agalma 님 서재는 늘 도타운 대회로 북적북적 한걸 압니다~^^ 멋진 이웃님들이 많은거죠!
누가 멋져서 그렇더라~^^?

AgalmA 2016-12-23 21:24   좋아요 1 | URL
서재 기네스 보니까 댓글 달인으로도 떠 있으시더만요 ㅎㅎ 제가 6개월 안 쉬었으면 저도 아마 거기 있었을 테지만ㅎㅎ;;
제 서재에서 그장소님이 댓글러 1인자이시죠ㅎㅎ 그장소님 서재는 팬들이 많아 제가 댓글러 1인자가 못되지만^^; 그래도 제가 가장 댓글을 많이 남긴 곳이 그장소님 서재~
일상사 얘기 나누는 것도 좋지만 책과 생각에 대한 대화, 그게 알라딘 서재 매력이랄까요. 좋은 친구를 만나면 더 풍성해지고~
사람이 보석같을 수 있는 곳^^

[그장소] 2016-12-24 09:49   좋아요 1 | URL
댓글의 달인 ㅡ이건 따로 축하해줘야한다는!^^ 푸하핫~ 우리 자축해요. ㅎㅎㅎ
Agalma님 일년간 같이 떠들어줘서 감사했어요 !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AgalmA 2016-12-24 10:16   좋아요 1 | URL
와~ 댓글의 달인이 나타났당~ ㅋㅋ 그장소님이랑은 실시간으로 떠들어야 맛인데 시간이 안맞는 게 흠ㅎ;;
댓글의 달인 이렇게 만나기 어려워서야ㅎㅎ
책 보다가 쓰러지실까 걱정입니다. 몸과 댓글 쓸 손가락 두루 건강 잘 챙기셔야 합니다ㅎㅎ/

북다이제스터 2016-12-23 2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

AgalmA 2016-12-23 21:22   좋아요 2 | URL
전 케익 퍼먹으며 일할까봐욧ㅋㅋ;; 요즘 감기 유행이던데 건강 잘 살피시고요. 나라가 하두 어수선해서 조류독감 사람에게 전이될까 걱정됩니다;
암튼 북다이제스터님도 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시길요^^ 이웃들에게 찾아가 이런 인사하는 것도 다 정성인데^^

북다이제스터 2016-12-23 21:24   좋아요 2 | URL
넘 슬픈 노동자 현실 ㅠㅠ
조만간 좀 한가해지시면 좋은 책으로 좌담회 한 번 하시죠. ^^

AgalmA 2016-12-23 21:29   좋아요 2 | URL
연말이고 1월1일이고 뭐 상관없이 마구 일하는 작업환경을 제가 받아들인 꼴이니^^;; 싫어도 마땅히 갈 데가 없어요. 아하하;;;
가끔 그런 생각합니다. 꾸준한 독서모임은 좀 부담스럽고 단발성으로 시리즈(문학과 사회의 예술사 같은) 책 모임 한 번 해볼까 싶더라고요^^
암튼^^/

서니데이 2016-12-23 2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2016 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AgalmA 2016-12-23 23:13   좋아요 2 | URL
축하드릴 분이 많아 저는 인사하러 다니는 거 생략ㅎ
고맙습니다. 한해동안 서니데이님 이웃 사랑 저도 많이 받았죠^^

서니데이 2016-12-23 23: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간단한 인사 드리고 왔어요.
이웃분이 많아서 간단하게 썼습니다.^^ 아마 내일은 더 많은 이웃의 축하를 받으실것 같습니다.^^
좋은밤되세요.^^

AgalmA 2016-12-23 23:17   좋아요 3 | URL
최다 댓글 작성자, 최다 댓글 수해자이시라 서니데이님은 축하도 많이 받고 하셔야 할 듯ㅎ;
모두 흐뭇한 밤^^/

서니데이 2016-12-23 23:21   좋아요 2 | URL
제가 그렇게 많이 썼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12-24 0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즐거운 성탄 되세요

AgalmA 2016-12-24 03:10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님도 축하드려요^^
작년엔 선물로 오는 도라에몽 다이어리 아이들에게 뺏긴 이웃들 있으시던데ㅎ 올해는 캐릭터 다이어리 없어서 연의가 탐 안 낼테니 다행인가 불행인가ㅎㅎ;

가족과 즐겁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바랍니다^^
 
변신하는 분신들의 고백들
분신 열린책들 세계문학 11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토예프스키 《분신》의 주인공인 9등 문관 야꼬프 뻬뜨로비치 골랴드낀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생각하듯 자신을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거짓 흥정을 하며 쇼핑을 즐기고 교양과 품위에 대해 신경을 쓰는 속물이기도 하다. 그는 주변인들이 자신을 파멸시키려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는 피해망상 환자이기도 한데, 초대받지도 않은 상급 관리자의 만찬에 나타나 망신을 당한 뒤 피해망상은 더욱 커진다. 무도회에서 쫓겨나 거리를 배회하던 골랴드낀이 자신의 분신이 자기보다 먼저 자기 집 침대로 달려가는 모습을 쫓는 환상 장면은 카프카 《변신》에서 불현듯 벌레로 변한 자신을 살피는 그레고르 잠자와 겹치기도 했다. 다음날 직장에서 지난밤 스쳐갔던 분신이 자신의 이름과 똑같은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것을 알게 되자 그의 분열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 이름과 생김까지 같은 사람이 같은 곳에 있는 데도 이상하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오직 주인공 골랴드낀 뿐이다. 이는 매우 소설적이면서 또한 현실을 반영하는 은유이다. 같은 공간에 자신과 이름이 같거나 닮은 사람이 있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주인공 골랴드낀은 다른 골랴드낀을 아군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리는 말실수를 하고 만다. 다른 골랴드낀은 주인공 골랴드낀보다 한 수 위다. 그가 제대로 못하는 대인관계에 능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 골랴드낀을 직장과 주변인들에게 소외되게 술수를 꾸민다. 다른 골랴드낀의 진짜 음모 때문에 또다시 만찬에서 망신을 당한 주인공 골랴드낀은 철저히 무너진다. 주치의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에게 인도되어 그는 정신병원으로 향하는 마차에 타게 된다. 골랴드낀의 비명과 절규는 또다시 그레고르 잠자의 몰락을 떠올리게 했다. 카프카 《변신》이 레퀴엠이었다면, 도스토예프스키 《분신》는 수난곡이었다고 할까.

 

 

“이 사람은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가 아니야! 도대체 이게 누구야? 그가 맞나? 그 사람인데! 이 사람은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가 맞아! 다만, 옛날의 그가 아니라 다른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다! 이 사람은 무서운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다……!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 저는 …… 괜찮은 것 같아요.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 얌전하고 온순한 언행으로 무서운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의 동정심을 다소 얼마간이라도 얻기를 바라며 우리의 주인공은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면서 입을 열었다.

「넌 장작, 등불, 하인까지 딸린 관사를 받게 되는데, 네겐 그것도 과분햇!」 사형 선고처럼 엄하고 무서운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의 대답이 그렇게 울리고 있었다.

우리의 주인공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아!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일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분신》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가 맞다 아니다 수차례 논하는 골드랴낀의 저 대사는, 타인을 수차례 가늠하고 자신을 맞추며 사는 모든 시대 우리들의 모습과 닮았다. 타인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불협화음 같은 골드랴낀 같은 이들은 사회에서 분리된다. 우리는 타인이 만든 우리의 분신을 감당하느라 이토록 힘든 건지도 모른다.

 

 

 

 

※ 도스토예프스키 다른 출판사 책을 읽다가 열린 책으로 다시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 화자의 분열적인 수다스러움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모마일 2016-12-22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신>은 저에게 생소한 작품인데, 서평에 푹 빠졌다 나왔네요. 분신. 서평을 보지 않았다면 평생 안 읽었을 작품인데, 덕분에 알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AgalmA 2016-12-23 20:44   좋아요 0 | URL
도스토예프스키 졸작으로 평가되기도 하던데요; 이 소설 앞에 쓴 <가난한 사람들> 이 히트쳐서 엄청난 격찬을 받아 <분신> 내놓고 글이 방만해졌다는 둥 악평에 시달렸죠^^;;
중편이기도 하고 환상성 때문인지 도스토예프스키답지 않은 느슨함을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어요. 언제나 그렇듯 한 번 보고 끝날 수 없는 좋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제가 광고 안해도 될 뛰어난 작가지만 즐겁게 서평 보셨다니 저도 흐뭇하네요^^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해 겨울 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읽고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과 겨울의 한기를 한껏 느꼈던 것과 상당히 달랐다.  당연하지! 다른 작가인데. 페터 회 그 소설처럼 스 라트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도 읽기와 재미가 한 몸 같아 속도감이 굉장하다. 작가가 시나리오 작가여서 더 그런 것 같다. 군더더기 없는 대사와 전개, 빠른 장면 전환, to be continue 같은 엔딩을 볼 때 시리즈와 영화화도 계산에 넣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예감이 빠른 독자라도 문장 유머에 흥미를 느끼며 따라가게 될 것이다.

 

인생 파산 직전의 주인공이 신을 만나 가족과 인간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스토리로 할리우드 영화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전개다. 크리스마스 시즌 영화 중 하나인 프랭크 카프라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 》(1946)이 소설에서 직접 언급되고 있으며, 그 내용을 살짝 변형한 서사도 있다.

 

이 없더라도 우리는 신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볼테르)란 제사(題詞)처럼 이 소설의 신은 인간의 믿음이 미약해진 만큼 위력을 잃어버린 신이다. 인생의 실패자가 된 듯한 야콥과 자신이 만든 인간에 의해 실패신이 된 듯한 아벨은 불확정적인 이 삶의 비밀스러움을 함께 풀어 보고자 하는 대등한 관계다. 사람 사이에서 나를 고민하듯 사람 사이에서 자신의 실존을 고민하는 신이라... 너무 인간 중심적인 사고일 수도 있다.

 

 

 

내 세계로 들어온 걸 환영해.” 아벨이 말한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도 절대자가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을까? 단 하나의 결혼 생활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수십억 명의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물며 그 인간들이 맺는 수조, 수천 조의 관계를?”

 

 

 

야콥과 아벨의 대화 속에는 술과 커피가 간접 광고처럼 무수히 등장하는데, 작가 자신이 집필할 때 필요로 하는 것들의 반영이 아닐까 싶었다카페인 중독으로 사망한 걸로 추정되는 발자크인간 희극을 쓸 때 아벨이 커피를 끓여 도와줬다는 우스개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신 아벨이 서커스 광대인 것과 좋아하는 영화도 코미디인 것, 스토리 여러 연결들을 보건대 유머와 코미디가 삶과 소설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라고 여기는 작가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차원 이동 등으로 겹겹의 삶을 바라보는 장치는 요즘 보편적인 창작 기법으로도 여겨지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학은 지성의 최신을 증명하는 역할보다 우리의 상상을 하나둘 점검해가는 도구인지도 모른다고. 신이 있다고 해도 없다고 해도 우리는 신을 죽이고 믿는 두 행위를 모두 할 존재들이다. 우리의 불완전함이 나와 세계를 그렇게 만들듯 신을 더 강하게도 약하게도 한다는 것.

 

 

아벨이 부드럽게 웃는다. “지금 우리 둘이 앉아 있는 이 행성은 눈 한 번 깜빡하는 동안 우주 공간에서 15킬로미터 가까이를 이동해. 이건 나의 지혜로움으로 밝혀낸 것이 아니라……그는 다음 말을 즐기듯이 강조한다. “과학이 알아낸 지식이지. 이제 뭐가 좀 더 기묘하게 느껴지나? 내가 마법으로 자네 잔에다 커피를 더 따른 게? 아니면 우리 둘이 이 순간에도 세계와 함께 거의 분속 2천 킬로미터의 속도로 이 시커멓고 무한한 우주 공간을 내달리고 있는 게?”

 

 

 

신을 끝없이 의식하는 무신론자나 신을 강매하듯 하는 유신론자나 멀리서 보면 둘 다 우스운 광경이다. 중요한 건 신을 바라는 마음은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것. 인간 외에 신을 바라는 타 종족을 나는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삶이 평탄하고 단순했다면 우리가 신을 원망하고 의지했을까. 하루살이에겐 신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신이 있든 없든 우리가 있든 없든 세계는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아득해지고는 한다. 신보다 세계를 더 우위에 두는 생각일까. "세계의 넘침"에 대해서 현재 나는 이렇게 밖에 말하지 못한다.


 

 

 

    

하인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니, 그럼 그것 말고 믿을 게 뭐가 있소? 감정만큼 구체적이고 생생한 건 없소. 그래서 사람들이 지식이 아닌 사랑과 행복, 우정 같은 걸 동경하는 거 아니겠소?"

신이 천재적인 서커스 곡예사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불완전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비록 힘은 없지만 선량한 신이 있다는 건 신이 아예 없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

도시가 하나의 거대한 강림절 달력 같다. 창문 하나하나마다 하나의 운명이 들어 있는 그런 달력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물 보낼 때 한 장씩 끼워 보내려고 살피다 보니 말라르메와 브레히트 시구가 무척 와닿았다.  

"되돌아오는 지난겨울을 깊이 들이마셨다"는 말라르메의 표현!

단 한마디로 설명되는 놀라움. 익히 알면서도 이런 시적 표현을 만날 때면 감격하게 된다.

브레히트는 시에서도 서사가 강한데, 썩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신이 잊는 과정으로 표현했다.

시적이라고 밖에 달리 뭐라 할 수 있을까.

 

 

 

 

 

현명한 생각을, 술을 내려라.
짧은 우리네 인생에 긴 욕심일랑 잘라내라.
말하는 새에도 우리를 시새운 세월은 흘러갔다.
내일은 믿지 마라. 오늘을 즐겨라.

민음사 세계시인선 1 《카르페 디엠》호라티우스

누구는 성품과 명성에서 더 휼륭하다
도전하고, 누군 피호민이 더 많다
떠벌리지만, 죽음의 필연은 높으나
낮으나 데려감에 차별이 없다. 모든
이름을 담아 항아리를 흔든다.

민음사 세계시인선 2 《소박함의 지혜》호라티우스

내 친절한 이들마저 가증하다 여기는데,
사랑하던 이들조차 등 돌리네.
나는 피골 상접하여 오직 잇몸만 남았구나.
불쌍하게 여겨 다오, 동정하라. 자네들은
내 친구들이니……
신의 손이 나를 쳤다.
너희마저 신이 되어 나를 괴롭히는가?
내 몰골만으로 성이 차지 않는 것인가?

민음사 세계시인선 3 《욥의 노래》

나를 그처럼 잔혹하게 거부하여,
나에게서 즐거움을 금하고,
또 일체의 쾌락을 쫓아낸,
내가 말했던 그 여인에게는
핏기 없고 가련한, 죽어 생기 없는 내 심장을
유물함에 넣어 남긴다.
알면서도 그녀 내게 이러한 불행을 안겨 주었지만,
신이여, 그녀의 죄를 사해 주소서!

민음사 세계시인선 4 《유언의 노래》프랑수아 비용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민음사 세계시인선 5 《꽃잎》김수영

그 때문이었어요. 오래전 바닷가 이 왕국에서
구름을 빠져나온 바람이 내 애너벨 리의 몸을
차갑게 만들어 버렸어요. 그리고 곧 그녀의
고귀한 친척들이 찾아와 그녀를 내게서
빼앗아 갔고 이 바닷가 왕국의 무덤 속에
기두어 버렸지요. 우리들이 가진 행복의 반도
가지지 못했던 천사들이 샘을 냈거든요.

민음사 세계시인선 6 《애너벨 리》에드거 앨런 포

거리와 들판에, 지붕과 밀밭에,
사나운 태양이 화살을 두 배로 쏘아 댈 때,
나는 홀로 환상의 칼싸움을 연습하려 간다,
거리 구석구석에서마다 각운(脚韻)의
우연을 냄새 맡으며,
포석에 걸리듯 말에 비틀거리며,
때로는 오랫동안 꿈꾸던 시구와 맞닥뜨리며.

민음사 세계시인선 7 《악의 꽃》샤를 보들레르

빨리! 다른 삶들도 있는가? 부(富) 속에서의
잠은 불가능하다. 부는 언제나 실로
공중(公衆)의 속성이었다. 신적인 사랑만이 과학의
열쇠를 수여한다. 나는 자연이 선의의 광경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공상이여, 이상이여,
오류여, 안녕.

민음사 세계시인선 8 《지옥에서 보낸 한철》아르튀르 랭보

방해받지 않고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다 보다
더 잘 일하고 싶은 진지한 사람이 되찾은 나의
이 심각한 파이프: 그러나 나는 이 방치되었던
물건들이 준비하고 있었던 뜻밖의 놀라움은
예기치 못했다. 처음 한 모금을 빨아들이자마자,
감탄을 금치 못한 채 감동하여 내가 써야 할
대작의 책들은 까맣게 잊고, 이제 되돌아오는
지난겨울을 깊이 들이마셨다.

민음사 세계시인선 9 《목신의 오후》스테판 말라르메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민음사 세계시인선 10 《별 헤는 밤》윤동주

가슴은 우선 즐겁기를 바라지ㅡ
그리곤ㅡ 고통의 회피를ㅡ
그리곤 기껏ㅡ 아픔을 마비시키는
몇 알 진통제들을ㅡ
그리곤ㅡ 잠드는 것을ㅡ
그리곤ㅡ 심판관의 뜻이라면
죽음의 특권을ㅡ

민음사 세계시인선 11 《고독은 잴 수 없는 것》에밀리 디킨슨

그녀는 내가 그리울 거야
내 사랑이 아니라
내 피 맛이


민음사 세계시인선 12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찰스 부코스키

그녀의 하얀 몸이 물에서 썩고 있을 때
신이 점차 그녀를 망각하는 일이 발생했다.
천천히, 처음에는 얼굴, 다음에는 손,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을 잊었다.
그녀는 강물 속의 썩은 고기들처럼 썩은 고리가 되었다.


민음사 세계시인선 13 《검은 토요일에 부르는 노래》베르톨르 브레히트

시대는 우리에게 노래하라고 요구하고는
우리의 혀를 잘라 버렸다.
시대는 우리에게 거침없으라고 요구하고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시대는 우리에게 춤추라고 요구하고는
우리를 강철 바지에 욱여 넣었다.
그렇게 시대는 기어이 뜻대로
요구한 개짓거리를 손에 넣었다.

민음사 세계시인선 14 《거물들의 춤》어니스트 헤밍웨이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민음사 세계시인선 15 《사슴》백석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6-12-16 0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 디자인이 색의 조립된 세계로 나오네요..ㅎㅎㅎ이렇게 모아놓으니 멋찝니다.사진 찍을 만했네요^^

AgalmA 2016-12-16 00:39   좋아요 2 | URL
디자인 별로라고 툴툴댔는데, 모아서 보니 혹시 한국 색동 느낌을 어필하려 한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오늘은 이것으로 1일1사진으로 대체해야 할 듯^^ㅎ

[그장소] 2016-12-16 04: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되돌아오는 지난겨울을 깊이 들이마셨다˝는 말라르메의 표현 ㅡ 우움~ 멋지다는!^^
카드란 말이죠..저것들이~ 이것도 아름답네요..색색이~~ 활짝 ~~

AgalmA 2016-12-16 18:47   좋아요 1 | URL
크기도 커서 흔들면 화려한 부채같기도^^

[그장소] 2016-12-17 01:29   좋아요 1 | URL
얼쑤~ 언제까지 부채춤을 추게 할꼬얌~ 쿵쿵따~

AgalmA 2016-12-17 01:43   좋아요 1 | URL
ㅎㅎ 도사님, 도사님 당첨되면 책선물 많이 해 드릴테니ㅋㅋ내년에 복권 당첨되게 해주세요~ 복권 살 채비를 주섬주섬...

[그장소] 2016-12-17 05:44   좋아요 1 | URL
일단 복권을 사~~^^?
ㅎㅎㅎ 그리고 접신을 ...

양철나무꾼 2016-12-16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일1사진이랑 1일 1그림이랑 두개다 하시는 겁니까?
세상은 불공평합니다.
왜 Agalma님에게만 모든 걸 주시는 거란 말입니까?
철푸덕~OTL

저는 외국 시들은 그야말로 감성적으로 괴리감이 느껴져 잘 안 읽게 되는데,
것도 부럽고, 님의 저 엽서를 받게 될 분들도 부럽습니다~^^

AgalmA 2016-12-16 18:55   좋아요 1 | URL
우연히 그리된 실행인데 불공평씩이나^^;

외국 시 경우 번역이 잘 되면 되려 우리나라 시보다 더 멋질 때 많아요. 다른 감성, 다른 상상력까지 더해지니 더욱 매력적^^
양철나무꾼님께도 하나 보낼께요. 주소 보내주세요. 빈말 아님^^ 마음만으로도 고맙다고 그러시려나^^a

cyrus 2016-12-16 16: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나온 민음사 세계시인선이 독자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것 같습니다. 낱권만 산다고 해도 알록달록한 표지 색깔이 마음에 들면 나머지 시집도 사고 싶은 생각이 날 겁니다. 일종의 디드로 효과인거죠. ^^

AgalmA 2016-12-16 18:54   좋아요 1 | URL
단순하고 강렬한 색감이라 제목과 시인 이름이 더 확 와닿게 하죠.
브레히트 시집은 특히 읽어보고 싶은 제목이기도 합니다^^
나란히 두고 보니 찰스 부코스키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라고 지은 건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철> 염두에 두고 지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