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의 픽션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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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휴대폰을 들고 나간 바람에 다시 돌아왔고 새 휴대폰을 들고 곧장 나가지 않고 생각지도 않은 일을 했다. 예를 들면 오래전 밑줄긋기 지우기 같은 일. 이렇게 끊임없이 기억하며 지운다. 간혹 지우지 못한 것도 남는다. 처음을 탓해야 할까, 치밀하지 못함을 탓해야 할까. 치밀보다 끝까지 치사하기로 한 누군가 들을 떠올리며.

다시 살펴본 《자정의 픽션》에서 유난히 아이가 많이 거론된 게 눈에 띄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내 증오심 중 가장 중요한 이유를 생각했다. 배와 아이들을 연결할 때 이곳 사람들은 즉각 트라우마와 죄책감과 분노를 가지게 되었다. 30년이 지나도 이 기억은 많은 사람들에게 트리거가 될 것이다. 또 하나의 금기. 금기가 증가하는 사회. 나는 이런 게 몹시 화난다. 아무 죄 없이 죽임을 당하는 것, 아무 죄 없이 벌을 받는 것, 혹은 죄에 비해 터무니없이 과한 벌을 받는 것. 적산타클로스가 루돌프 마차에서 악의 선물을 뿌려대는 한밤처럼.

뉴스에서 박 대통령이 화려한 성형 시술을 받았을 시크릿 가든이 스쳐 갔다. 길라임을 꿈꾸며 더 열심이었을지도. 어딘들 안 그렇겠는가마는 최근 한국 문학계에 가장 강적은 박 대통령 같다. 이것도 내겐 몹시 화나는 일이다. 문학의 위기, 문학의 종언은 문학 자체에 이유가 있다기보다 이런 사실들의 스캔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점점 문학 상상의 힘보다 사실들의 무기가 싸우는 걸 더 원하게 되었다. 점잖게 하지만 집요하게 핍진성을 요구하며. 세계 무대가 원하는 배우들은 그렇게 계속 뒤바뀐다. 서로를 원망하며.

언제인지 모르게 초가 꺼졌다. 나는 밤 속으로 나가야 한다. 곧 밤바람이 담배 연기처럼 내 분노를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 주겠지.

몸이 두 동강 난 현교수가 피범벅이 되어 떡볶이마냥 누워 있었다
ㅡ<논쟁의 기술>

과학은 언제나 극소수만을 위한 예술인 법이다. 그들의 삶으로부터 170년 전인 서기 2005년 시월의 지구에서 나는 그들을 보고 있다. 가을이라 하늘은 파랗고 이따금씩 지나가는 바람에는 쥐포 굽는 냄새가 났다.

갓김치나 호박엿 같은 특산물 하나 없는 못난 별이었다. 다들 그 별을 우습게 봤다.

거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는 사람들에게 묘한 느낌을 주었다.

높으신 분은 평소부터 ‘모두가 똑같은 옥수수 한 알‘ 따위의 싸가지 없는 구호나 외치는 옥수수행성 사람들을 싫어했다.

원숭이 구조대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갔다.

사고지역 부근의 대기는 음파 손실률이 제로에 가까웠다. 일단 발생한 소리는 거의 사라지지 않고 이틀 간격으로 심연을 한 바퀴 돌아 진원지로 되돌아왔기 때문에, 도떼기시장이 되지 않도록 지역의회에서 일주일마다 대칭음파를 쏘아 깨끗이 상쇄시키곤 했다.

그 시대엔 죽은 자를 그리워하지 않는 것이 영적인 진화의 증거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공감각 증세 때문에 노파의 클론은 고함 소리를 똥 냄새로 인식하고는 코를 틀어막았다.

아이가 결백하다는 건 조금도 기쁘지 않은 일이다ㅡ자기 팔이 두 개라는 사실이 조금도 기쁘지 않듯이.

ㅡ<날개>

세상 만사에 전력을 다해 궁금해하는 건 어린아이의 몫이었다.

ㅡ<노란 육교>

채 눈도 뜨지 못하는 어린 생명의 처소는 어머니의 팔 바로 안쪽에 마련되었는데, 거기는 애초에 아이의 자리였다.

사냥꾼의 총격에 넋이 빠진 어린 사슴처럼.

아기의 지친 울음소리가 버림받은 개새끼처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ㅡ<물속의 아이>

아전인수를 일삼는 몇몇 학자들의 방조 내지는 조장 아래 이제껏 우리는 문화사에 등장하는 길고 두툼한 건 무조건 남근의 재현이며 남성성의 상징이라고 해석해왔다. 그렇다면 야구는 난봉꾼들의 난봉대결이며 다듬이질은 의류에 대한 성적 학대인가? 이런 불합리한 잣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는 남근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불알 중심적 사고로 옮겨가야 할 것이다.

ㅡ<[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아랫도리에 무어라 형언할 수 없이 고요한 빛의 황혼을 달고 있던 진한 파란색의 하늘이었다.

ㅡ<존재, 혹은 고통 따위의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

그것들이 바로 진실의 방을 고동치게 하는 심장이었다.

"진실은 다정하니까. 진실만 있으면 누구도 아프지 않아."

짧고 간단한 실마리 하나, 그것만으로 갇혀 있던 모든 기억이 분수처럼 터져 나올 듯한데, 그 실마리는 손끝 너머에서 부유하다 자꾸만 자꾸만 허공으로 스며드는 것이었다.


사내와 경감, 그 둘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놀랍게도 긴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영원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도대체 며칠일까?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거울을 보고 싶었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도 진실의 방과 거울은 절대로 어울리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 것을 원했기에 O는 벌을 서는 잿빛으로 침묵.

그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임무는 이제껏 진행되어오던 일을 계속해서 진행시키는 것, 저 진실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상한 두려움이 O로 하여금 그 실마리와의 대면을 막았다. 사내의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차피 알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 알고 싶다면, 좋아 말해 줄게. 바보 녀석, 이 불쌍한 녀석, 진실의 심장? 좋아, 내가 알려 줄게. 책상 밑 서랍을 열어봐. 거기 있어. 그래, 거기 진실이 있어.

그것은 무덤이었다. 시계들의 거대한 무덤이었다.

침묵은 진실이 나오기 전 단계, 괜찮아요.

그때 욕조 옆의 작은 이끼를 발견한 경감은 그쪽으로 걸어갔다. O가 지켜보는 가운데, 손가락 하나를 이용해 깨끗이 지워 버렸다.


ㅡ<진실의 방으로>

헬기와 몸집이 작은 전투기들은 너무 많이 떨어져 내려, 마치 활화산 분화구로 길을 잘못 든 메뚜기 떼 같았다.

그렇게 거대한 불의 아가리는 모두를 깨끗이 삼키고는 하늘나라로 보내버렸다.
하늘나라에 난리가 났다.

ㅡ<두유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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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11-23 0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현실이 더 소설입니다. ^^

AgalmA 2016-11-25 16:30   좋아요 0 | URL
요즘은 현실이 더 자극적이죠.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보면 계속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지 않습니까... 돈이 없는 사람들도 아니고 드러날 게 뻔한데도 도대체 뭘 믿고... 옛날 사람이라서라고 말하면 옛날사람 욕될 거 같고 뻔뻔이 너무 옛날식이다 뭐 그렇게 말할 밖에....

2016-11-23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5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5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6-11-23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형서 작가 책이네요! 반가워라 ~ 이 책도 언젠가 보겠죠? ㅎㅎㅎ 덕분에 책을 구경하고 가요!^^

AgalmA 2016-11-25 16:40   좋아요 1 | URL
독자가 죽기 전에 한 권이라도 보게 만들 것. 작가가 욕심내서 노력할 부분? ㅎㅎ;

[그장소] 2016-11-25 21:03   좋아요 1 | URL
아..이건 음 ..작가의 노력, 이죠. 출판사는 그런 작가를 독려하고 발굴하고, 좋은 책은 독자가 알아본다고 생각하니까.( 아닌가? 모르나?)

[그장소] 2016-11-25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네이버 ㅡ 다행~^^ 북플 분위기를 맡기겠으~!!( 응?) ㅎㅎㅎ

2016-11-26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6-11-26 16:09   좋아요 0 | URL
으흐흣~ 그게 뭐 원한다고 안 원한다고 되는건 아니더라는!! ㅎㅎㅎㅎ
 
풍성한 삶을 위한 문학의 역사 결코 작지 않은 역사 1
존 서덜랜드 지음, 이강선 옮김 / 에코리브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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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트르는 소설을 ˝거짓된 의미를 세상에 분비하는 기계들˝이라 표현했다. 실존주의에 치우친 지나친 표현일까?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를 생각해 볼 때 '분비'나 '기계들' 같은 단어 사용은 사르트르의 개성이 담겨 있다. 사상과 시대에 따라 경향도 있게 마련이지만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이나 과잉된 소설 예찬론보다는 현실적으로 보려 했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환상'과 '사실'이라는 양 극단을 가지며 '지은' 글이라는 특성을 가지는 한, '거짓'과 '의미'는 소설을 설명하는데 늘 따라 나올 것이다. 

사르트르에 비해 저자 존 서덜랜드는 좀 더 보편적인 풀이를 했다. 그는 문학을 아름다운 거짓이라고 하며,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표현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절정에 다다른 인간의 정신˝이며, ˝마음과 감수성을 확장해 복합적인 것을 더 잘 조절할 수˝ (p13) 있게 도와준다고 했다. 이 정의를 시작으로 저자는 신화에서부터 서사시, 비극, 초기 소설부터 낭만주의, 모더니즘, 실존주의, SF, 어린이 문학, 팬픽 소설, 각종 문학상, 저작권 등 문학이 관련되어 있는 가능한 모든 초점들을 다루고 있다. 문학에 대한 에스프리 참고서라고 하겠다. 독자들이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연대기 순으로 잘 짜여 있고 딱딱한 논조가 아니다.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문학사라 하더라도 비화와 적절한 유머를 섞어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이 책이 영미 문학권 중심인 건 감안하고, 소설의 시작은 18세기 경으로 추정한다. 그 이전 `소설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은 읽지 않았더라도 워낙 유명해 대개 알고 있다. 보카치오 《데카메론》(1351, 이탈리아), 라블레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1532~1564, 프랑스), 세르반테스 《돈키호테》(1605~1615, 에스파냐), 존 번연 《천로역정》(1678~1684, 잉글랜드)은 잘 알려져 있다. 저자는 여기에 프라 벤 《오루노코》(1688,잉글랜드)를 추가한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정보다. 작가가 여성이며, 영국 식민지에서 생활할 때 본 노예들의 고통스러운 처지와 기독교인들의 위선에 대한 것을 소설로 담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 소설을 30년 뒤에 나온  대니얼 디포《로빈슨 크루소》에 비견했고, 미국 소설가 겸 비평가 헨리 제임스는 이 소설을 '허구의 집'이라고 일컬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들이 말할 권리를 준 아프라 벤에게 모든 여성이 꽃을 바쳐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저자의 재미난 유머가 나온다. 울프가 아프라 벤의 무덤에 꽃을 던지라고 호소했듯이, 무인도에서 경제적 삶을 이뤄낸 크루소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였으니 그 연대기의 저자인 디포의 무덤엔 약간의 파운드 동전과 달러 지폐를 던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피식 웃게 만드는 대목이 많다. 

그 외 '《햄릿》에서 어린이가 보이는가?'(어린이가 문학에서 관심을 끌게 된 건 낭만주의 운동을 주도한 장 자크 루소와 윌리엄 워스워스 공이 크다), '다윈 《종의 기원》이 토마스 하디에게 미친 영향' ,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오스카 와일드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를 썼을지도 모른다?(프루스트와 와일드는 친분이 깊었다)' , '1922년은 문학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해였나' , '카프카- 카뮈- 베케트로 이어지는 부조리 주제는 누가 또 이어가고 있는가' , '1971년 가장 강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였던 W. H. 오든이 베트남 전쟁을 벌이던 미국의 시민이 아니었다면 상을 받지 않았을까' 등등 우리가 문학을 즐겨 읽으면서도 생각하지 못한 물음을 많이 제시한다. 


※ 노벨문학상은 나라별로 돌아가며 수여하는 경향이 있다. 2016년엔 미국에 영광이 갔는데, 필립 로스가 아닌 밥 딜런에게 상이 수여된 연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저자는 문학의 힘인 '유동성'이 처음 구전문학에서 출발했듯이 '팬픽 소설' 같은 데에서 여전히 힘 있게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2주마다 한 언어가 소멸하는 시대이고 인쇄 책이나 문학의 영역은 갈수록 협소해지고 있다. 하지만 빛나는 진주를 문학은 계속 보여주고 있고, 이를 후대에도 전해야 한다는 게 존 서덜랜드의 취지였다. 나도 동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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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8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11-09 00:04   좋아요 3 | URL
정치적이지 않으려 한다지만 그 또한 정치성을 표한다고 할 수 있죠. 사람이 하는 일이니 완전한 중립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문학은 시간과 상상력 속에서 끌어낸 인간의 역사이기도 할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문학과 현실에 관련해 얼마나 애써왔나 생각하면 거칠게 재단해 보기 어렵습니다
어떤 분야든 오랜 시간 투자가 필요하니 개인으로선 참 버거운 일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11-08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필립로스도 좋지만, 밥 딜런 딜란 토마스로 이어지는 딜런 들도 좋아서 말이죠.
전 딜런토마스로 논문을 쓰신 분의 논문집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죠~^^

AgalmA 2016-11-08 23:01   좋아요 2 | URL
양철나무꾼님은 별거 별거 다 가지고 계시구만요ㅎ!
밥 딜런도 충분히 받을 만하죠. 다만 시기적으로 왜 지금인가 그 생각을 하게 되더라는^^

2016-11-10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11-15 23:40   좋아요 2 | URL
이웃 서재 두루 챙기자니 하루 2~3시간은 훌쩍 소요되어 너무 힘들더라고요. 누구는 챙기고 누구는 안 챙기고 하기도 어렵고... 자기 글 안 보면 아는 척 안하는 처세도 이해하지만... 그런 면에서 나라욕 정치욕 하지만 저를 포함해 누구도 그리 떳떳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 마음이 몹시 어두웠어요. 제 눈이 삐뚤어서 더 그런 거겠죠?~_~

커피소년 2016-11-16 08: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이웃 서재 두루 챙기자니 하루 2~3시간은 훌쩍 소요되어 너무 힘들더라고요. 누구는 챙기고 누구는 안 챙기고 하기도 어렵고... 자기 글 안 보면 아는 척 안하는 처세도 이해하지만... ”




매우 공감되네요.... 이웃 서재 모두 챙기려면.. 아무것도 안 하고 북플, 알라딘만 하고 있어야 됩니다.. 시간이 부족하지요...

자기 글 안 보면 .. 아는 척도 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보여 집니다...

자신의 글에 관심 가져주는 이웃 분들 글보고.. 댓글 달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더군요... 오는 만큼 보내드려야 하는 마음이 있으니까요...

시간이 많다면 좀 여유롭게.. 하고 싶은데... 여건이 안 되네요..




“그런 면에서 나라욕 정치욕 하지만 저를 포함해 누구도 그리 떳떳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 마음이 몹시 어두웠어요. 제 눈이 삐뚤어서 더 그런 거겠죠?~_~ ”



예.. 맞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떳떳할 수 있겠고.. 아닌 부분도 있겠습니다.. 사람이 털어서 먼지가 안 난다면 말이 안 되니까요... 완벽하게 떳떳한 삶은 없을 것입니다... 삐뚤어졌기보다는.. 제대로 보고 계신 것이죠.. 원래.. 세상은 좀 삐뚤어져봐야.. 제대로 보이더군요... 세상이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 있거든요...기울어짐이 없었더라면... 완벽하게 떳떳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안타까워요..ㅎㅎ


AgalmA 2016-11-17 16:26   좋아요 2 | URL
김영성님 글 쓰실 때 얼마나 에너지 많이 쓰시는지 짐작합니다. 이렇게 긴 글로 많은 시간과 공감 나눠 주신 거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give & take가 단순히 경제적 논리는 아닌 거죠. 사람 심리라는 게 그럴 수밖에요. 저도 제게 관심 아끼지 않는 이웃에게 더 맘이 가니까요. 그래도 사적인 감정에 연연하지 않고 정보되는 글보다는 좋은 글 쓰려 노력하는 아웃사이더 분들을 찾아가 읽고 관심을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이런 노력이 제 삶과 이곳을 더 윤택하게 만들 테니까요. 결국 이 또한 100% 선의라고 할 수 없겠죠...아, 정말 어려워요. 가장 좋은 방법을 찾는 일이란....

커피소년 2016-11-18 08:57   좋아요 1 | URL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모든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자신에게 잘 하는 사람에게.. 더욱 잘 해주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요.. 그래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차별을 지양하지만.. 어느 정도의 차별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그래서.. 어느 부분에서는 떳떳하지 않다는 것이겠지요..ㅎㅎ




저도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시는 분에게 관심이 많이 가더군요..ㅎㅎㅎ

그런 분들 대부분 글만 쓰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이웃분들과 교류를 열심히 하는 분들이더군요..^^

저한테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니.. 알아서 찾게 되더군요..^^



어떠한 이익을 위한 행동에 100% 선의는 있을 수 없겠지요..ㅎㅎ 그것이 굳이 물질적이지 않더라도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 있을 런지요.. 항상 모든 행동에는 문제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저도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 실망하고 여러 번 생각을 바꾸는 일이 많습니다..ㅎㅎ

저 또한 진리를 이야기 하고 있지 않으니.. 아갈마님을 비롯한 여러 좋은 이웃 분들의 말씀을 경청하고 싶기에 글을 적는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이번 아갈마님의 댓글... 생각할 것이 참 많아져서.. 관련 내용을 포스팅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 또한 정보보다는 새로운 생각.. 그것에 집중하고 있거든요..ㅎㅎ 지식을 얻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니까요... 지식만 많고 생각이 지식을 따라가지 못 하면... 어떤 바보가 되는지 많이 봐오고 있죠.. ^^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단발머리 2016-11-22 0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밤에 이 책을 상호대차했다는 사실을 알리려 아침부터 아갈마님 방에 출동^^
소설의 기원에 대한 부분도 기대되고요.
아프라 벤의 발견은 정말 반갑습니다.
밥 딜런 노벨문학상 수상에는 이의없지만 내 사랑 필립 로스님 때문에 아쉬운건 사실이예요. 다만 로스님 장수하시기를~~

AgalmA 2016-11-22 22:50   좋아요 0 | URL
굳이 알려 주시다니^^; 즐겁고 유익한 독서가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로스님 장수하시는 걸 보시려면 단발머리님도 건강히 장수하셔야죠. 날이 상당히 쌀쌀하더군요. 건강 잘 챙기시길/
 

 


 

 

 

 

 

 

 

 

 

 

 

 

 

 

The Snow Man

One must have a mind of winter
To regard the frost and the boughs
Of the pine-trees crusted with snow;


And have been cold a long time
To behold the junipers shagged with ice,
The spruces rough in the distant glitter


Of the January sun; and not to think
Of any misery in the sound of the wind,
In the sound of a few leaves,

Which is the sound of the land
Full of the same wind
That is blowing in the same bare place

For the listener, who listens in the snow,
And, nothing himself, beholds
Nothing that is not there and the nothing that is.





눈사람


겨울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눈이 겉껍질로 덮인 소나무들의
서리와 가지들을 눈여겨 보려면


오래도록 추워야 한다
얼음으로 거칠어진 향나무들과
1월 태양의 아득한 광채 속에서 거친


가문비나무들을 바라보려면, 또한 바람소리 속에서
몇몇 이파리들 소리 속에서 어떤 비참함도
떠올리지 않으려면,


그 소리는
한결같은 헐벗은 장소에 부는
한결같은 바람으로 가득 찬, 땅의 소리다


눈 속에 귀 기울이면, 듣는 자는
그 자신이 無이면서
거기 없는 無와 거기 있는 無를 바라보기 때문.



- Wallace Stevens



 


 






검은지빠귀를 바라보는 열세 가지 방법





스무 개의 눈 덮인 산 속에서,
단 하나 움직이는 것은
검은 지빠귀의 눈이었다.



나는 세 개의 마음을 지녔다.
세 마리 검은지빠귀가 있는
나무처럼.



검은지빠귀가 가을바람 속에 선회했다.
그건 무언극의 작은 부분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다.
남자와 여자와 검은지빠귀는 하나다.




어느 쪽을 취해야 할지 모르겠다.
음조 변화의 아름다움
혹은 암시의 아름다움인가,
검은 지빠귀가 지저귐을 막 그쳤을 때
혹은 지저귐이 막 그쳤을 때인가.



고드름이 기다란 창문을
야만적인 유리로 가득 채웠다.
검은지빠귀의 그림자가
그 창을 가로질렀다, 이리저리.
그 분위기는
해독할 수 없는 원인을
그림자 속에서 찾아내었다



오 헤덤¹의 여윈 남자들이여,
그대들은 왜 황금빛 새들을 상상하는가?
그대들은 검은지빠귀가 어떻게
그대들 곁의 여인들
발 주변을 걷고 있는지 보지 못하는가?




나는 고상한 억양과
분명하고 확고한 리듬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또한 알고 있다.
검은지빠귀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연루되어 있음을.



검은지빠귀가 날아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많은 원들 중 한 원의
언저리를 남겼다.




초록빛 속에서 날고 있는
검은지빠귀들의 모습을 보면,
고운 음색의 매춘부조차도
날카롭게 소리 지를 것이다.



ⅩⅠ
그는 유리마차를 타고
코넷티컷을 지나갔다
일순, 공포가 그를 꿰뚫었다.
그는 마차의 그림자를
검은지빠귀들로
착각했던 것이다.



ⅩⅡ
강물이 흐른다.
검은지빠귀가 날고 있음에 틀림없다.



ⅩⅢ
오후 내내 저녁이었다.
눈이 오고 있었고
또 눈이 올 것이었다.
검은지빠귀가
삼나무 가지에 앉아 있었다.


¹)코넷티컷 주의 한 마을 이름. 스티븐스는 그저 그 이름이 좋아서 썼다고 했다.



- Wallace Stevens





§
내 능력 생각도 하지 않고 출간된 시집이 없으니 내가 번역해서라도 읽어 보겠다!고 생각하게 한 시인.
오랜만에 시집을 들춰보다가 여기도 어김없이 그림을 그려 놓은 걸 발견한 아침. 내가 그린 그림인데 신기하다. 항상 그랬다. 그 순간에 더 이상 살고 있지 않기 때문. 시인도 시를 쓰고 그랬겠지.


 

 

 

 

 




The Black Heart Procession [2] (1999)

01 -  the waiter no. 2

02 - blue tears

03 - a light so dim

04 - your church is red

05 - when we reach the hill

06 - outside the glass

07 - gently off the edge

08 - it's a crime i never told you about the diamonds in your eyes

09 - my heart might stop

10 - beneath the ground

11 - the waiter no.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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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6-11-0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이 시를 밑줄을 치고 읽었던 기억이... 이 책은 아니었고 다른 시집이었어요.

다른 길을 선택하느라 가 보지 않은 길은 언제나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법.

음악 듣고 있는데, 가사는 모르겠지만 멋지네요.

톨스토이의 소설 중 나오는 대사 한마디. 음악은 나를 미치게 만듭니다, 가 떠오릅니다.

AgalmA 2016-11-05 13:54   좋아요 0 | URL
요즘 춤에 미치신 일은 어찌 되어 가십니까. 가지 않았을 길 하나 뚫으셨잖아요? 전 그런 경험담 좋아합니다. 얘기 좀 들려주세요. 책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에게 몸을 좀 움직이라고 얘기 들려 주셔야죠ㅎ
제 지인도 오래 춤을 배우러 다녔는데, 대회 얘기며 신발이 빨리 닳아서 새 신 사는 얘기, 의상에 대한 고민, 생소한 얘기 재밌더군요

페크pek0501 2016-11-05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이 다 좋군요. 아직도 듣고 있어요. ㅋ

AgalmA 2016-11-05 13:53   좋아요 0 | URL
다른 앨범도 좋아요^^ 걸걸하지 않은 탐 웨이츠 같다고나 할까..
 

티븐 호킹신은 주사위를 던질 뿐만 아니라, ……때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다 던진다라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의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표현보다 더 마음이 간다. 주제넘지만 나도 첨언하자면, 그 보이지 않는 곳 중 하나는 문학이고, 그곳엔 폐허의 노래로 가득하다고 말하고 싶다. 각 시대를 거치며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문학들은 폐허 속에서도 남아있는 기둥이라고 생각한다 흙으로 기둥을 세웠듯, 노래를 글로 옮겼듯 우리는 그것을 간직했다
     

 
서덜랜드풍성한 삶을 위한 문학의 역사에서 에 대해 인지 작용과 관련해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는 패턴을 발견함으로써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데, 신화는 우리가 패턴들을 기억하도록 돕는다. 신화는 이야기(문학의 중추)와 상징(시의 본질)”이란 구조를 통해 설명을 제공한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지배자들의 영웅서사와 각종 재난이 가득한 신화를 통해 삶의 진실을 전달하려 했고 들으려 했다. 신화는 서사시에서 소설로 변모해오며 그렇게 내내 이어져 왔다. 시적 가사로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은 세계에 미치는 이야기”의 힘과 중요성에 대해 우리 이해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때 나는 음악극을 보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영국 출신 컬트 밴드 이거 릴리스 햄릿 이야기의 배경인 덴마크에서 온 극단 마크 리퍼블리크 씨어터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햄릿이었다. 공연을 볼 때마다 각종 장르와 기술들이 발달하면서 이야기가 날로 풍성해진다고 생각한다. 밥 딜런만큼 철학적이고 아름다운 가사를 쓰는 타이거 릴리스의 보컬 마틴 자크는 언제나 늙은 광대 같은 독특한 분장에 초고음의 카스트라토 창법으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준다


 

The Tiger Lillies Perform Hamlet

 

The Tiger Lillies- Hamlet [2012] full album

 

 

덴마크 왕자 햄릿에 대한 비극 서사는 워낙 유명해 넘어가고, 나는 햄릿에 대한 이해로 이 글을 계속 떠올렸다.

 

갈등은 인간의 조건 중 하나이다. 에덴동산이라는 종교적 신화, 고상한 야만인이라는 낭만적 이미지, 완전한 조화라는 유토피아적 꿈, 애착과 유대와 응집성이라는 끈끈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은 결코 마찰을 피할 수 없다. 모든 사회는 명성과 지위 차이, 권력과 부의 불평등, 처벌, 성적 규제, 성적 질투, 다른 집단에 대한 적대감, 폭력과 강간과 살인을 포함한 집단 내부의 갈등이 어느 정도 있다. 우리의 인지적, 도덕적 강박 관념은 이러한 갈등들을 추적한다. 전 세계의 픽션에는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은) 적수와 친족의 비극이나 사랑(혹은 둘 다)으로 정의되는 소수의 플롯이 있다. 실제 세계에서 우리 삶의 이야기는 대체로 갈등의 이야기이며, 친구와 친척과 경쟁자가 야기한 상처와 죄와 경쟁의식이 갈등의 원인이 된다.
(중략)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로봇이라거나, 복잡한 특성들이 단일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거나, 싸움이나 강간이나 불륜 같은 행위가 도덕적으로 사면을 받을 수 있다거나, 아이를 최대한 많이 낳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거나, 사람들이 문화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이것들은 진화유전학의 설명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보편적인 오해이다). 이 이야기들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반복되는 형태의 인간 갈등 상당수는 생명을 가능케 한 과정의 일부 특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티븐 핑커  진화유전학과 인간 사회생활에서 나타나는 갈등《이것이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글을 쓴 시기는 엘리자베스 1세의 후계자 문제로 정치적으로 미묘한 시기였기에, 그의 희곡에는 왕의 교체 문제가 이야기의 큰 줄기이기도 했다. “비밀스러운 암살햄릿, 공개적 암살줄리어스 시저, 내전헨리 6, 퇴위 강요리처드 2, 왕위 찬탈리처드 3, 정통 혈통 승계헨리 5”(존 서덜랜드, 풍성한 삶을 위한 문학의 역사참조) 등 이는 소설 속 갈등의 문제만이 아닌 실제 삶의 선택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했다.
오늘 내가 본 음악극 햄릿》은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대사, 음악, 움직임, 시각적인 묘사를 총동원한 노력이었다. 우리에게는 이런 다각적 노력이 필요하다. 폐허를 거쳐 다시 폐허로 가는 과정이더라도 스티븐 핑커의 말처럼 '지금'은  "생명을 가능케 한 과정의 일부"이다. 우리의 자아를 바쳐도 구원이 답으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걸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왔다. 폐허 속을 돌처럼 덤불처럼 굴러다니는 게 잘못이기도 하면서 잘못이 아니기도 하다고 우리를 다독이며. 햄릿의 주저와 고심을 대표하는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는 그래서 영원히 노래로 전달된다.  이미 노래로 탄생한  “Like a Rolling Stone”, "Knockin' on Heaven's Door", "Blowin' in the wind" 밥 딜런의 곡들도.


 

 먹먹한 세상에서 우리를 대신해 부르는 폐허의 노래들은 얼마나 많은가

 

"혀 지층 사이에는 납작한 화석의 시간만 남겠죠 날개와 다리 사이에서 진화를 멈추어버린 어떤 기관만이 남겠죠 // 이건 우리가 사랑하던 모든 악기의 저편이라 어떤 노래의 자취도 없어요 // 생각해보니 꽃이나 당신이나 모두 노래의 그림자였군요 치료되지 않는 노래의 그림자 속에 결국 우리 셋은 들어와 있었군요" (수경, ‘그 그림 속에서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북극은 사라지며 말하네, / 죽음은 멀고 입술은 너무나 가까워서 / 인간을 달리 부를 병을 나는 배우지 못했다
 (허수경, ‘겨울 병원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당신은 어떤 노래로 당도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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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선(禪)을 수행하여 자기 본심(本心)을 찾아 깨달음을 얻는 10단계를 일컬어 심우(尋牛) 또는 십우(十牛)라고 한다.
본심을 소에 비유하여,
1. 소를 찾는 심우(尋牛)
2. 소의 발자취를 찾는 견적(見迹)
3. 소를 발견하는 견우(見牛)
4. 소를 얻는 득우(得牛)
5. 소를 기르고 길들이는 목우(牧牛)
6. 소를 타고 본래의 집으로 돌아오는 기우귀가(騎牛歸家)
7. 소를 찾아 걱정이 없으니 사람만 남는 망우존인(忘牛存人)
8. 소나 자기나 다 잊는 인우구망(人牛俱忘)
9. 모두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반본환원(返本還源)
10. 본래의 뜻을 깨달았으니 중생들을 구하기 위해 세속으로 나가는 입전수수(入廛垂手)


사찰에서 십우도(十牛圖)를 늘 보게 되는데, 그 소들의 색이 다양한 게 신기하기도 하면서 특이한 지점도 보인다. 그 지방에 따라 소가 흰색, 검은 색, 황 색으로 다를 수 있겠지만 흰색과 황 색이 반으로 섞인 것은 괴이하다. 본래가 그런 식으로 있다는 것인지, 우리가 보기에 따라 달라짐을 형상화한 것인지 그 그림의 연유를 나는 아직 모른다.


 

 


비디우스 <변신이야기>에는 흰 피부의 아름다운 이오가 흰 소로 변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오가 자신의 뜻과 상관 없이 유피테르(제우스)의 사랑을 받자 유노(헤라)가 저주를 내려 그리 되었다. 이오는 이집트 풍요의 여신 이시스와 동일한 여신으로 여긴다. 이시스 신전의 신관들이 흰옷을 입는 것은 더운 지방, 염료 미발달, 신성함 등의 보편적 이유보다 `흰 소`였던 여신을 따른다는 상징이 가장 클 것이다.

<변신이야기>에는 연유도 모른 채 혹은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울면서 식물이나 동물로 변하는 이야기가 많아 읽으면서 내내 씁쓸하였다. 입방아라든지 가십 같이 이야기 속에 들어가며 고통당하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은 그 실사판인가. 오늘도 많은 이야기 속에서 나는 내 말이 심우(尋牛)를 찾기는 커녕 눈먼 소 울음 같아 심우를 떠올렸다. 어느 시인이 쓴 절절한 시편도. 노벨문학상 때문에 자주 거론되며 본의 아니게 고통당하는; 고은 시인이 이 시를 썼을 땐 분명 그도 진심으로 소를 찾고자 했을 것이다.




소 찾는 길(尋牛十圖)



찾아나섰건만(尋牛)

나뭇가지에 얼키설키 매미 울음소리인데
험한 길 마다 않고
풀섶 헤쳐
강을 만나면
강 건너 다시 먼 산 첩첩일세
이렇듯 찾아가는 자 누구이고
찾는 것은 무엇인가
행여 소 울음소리라도 어디 있던가


자취(足跡)

먼 바다에 이르러서는 절로 없어질 그 시냇물 소리 눈부심이여
그 시냇물 건너가니
제법 소 발자국 찍혀 있어
거기가 어린 자식 발바닥인 양 반가워라


만났도다(見牛)

보았도다
보았도다
꾀꼬리 노랫소리 그것으로도
봄바람 그것으로도 좋아라
저만치 엉덩이 언뜻 보였도다
소 엉덩이일까?
말 엉덩이일까?


너 이놈(得牛)

너 이놈 코를 꿰어야지
당겨야지
하지만 제대로 말 듣지 않으니
내가 도리어 끌려가네
분명한 것은 소와 나 사이 센 바람이 있었다


소 치는 아이(牧牛)

비록 채찍질과 고삐질로
길들였으나
아직 한눈 팔지 말아야 할 것
그런대로
서로 정든 사이
이랴 이랴


돌아가도다(騎牛歸家)

소 타고 피리 불며
돌아가는 길
얼씨구나


없어졌도다(忘牛存人)

없어졌도다
없어졌도다
소 한 마리 없어졌도다
남은 것
채찍과 고삐 쓸모 없도다
늦잠 실컷 자고 난 뒤
빈 손바닥 쥐락펴락


다 없어졌도다(人牛俱忘)

소 없고
나 없고
불화로에 눈 한 점 녹아


돌아와서(返本還源)

돌아오니
그 동안 괜스레 날 저물었구나
차라리
눈 멀고 귀멀어
물 절로 흘러가고
꽃 절로 피고 지고


한 걸음 내디디어(入0垂手 )

어디 여기서 그칠 손가
한 걸음 내디디어
흙구덩이
잿더미가 껄껄 웃거니와
여보게
자네가 고목나무 꽃노릇이나 하게




詩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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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12 19: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스님들이 득도 하는 순간 .하늘에서 소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하던데...그 소였나 봅니다.

2016-10-12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4 0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2 2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2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6-10-14 04:22   좋아요 0 | URL
<변신이야기>도 <변신>에 대한 것도 제가 ˝폐허를 떠돌 노래 속에서˝란 제목으로 쓴 글로 좀 설명이 되었으면 하는데요. 제가 직접 설명하자니 작품들의 무게가 너무 커서 존 서덜랜드 평을 좀 가져와 봤습니다. 허허;;;

cyrus 2016-10-12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오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소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관련되어 있어요. 미노스 왕의 왕비가 다이달로스가 제작한 소 모형(?) 안에 들어가서 숫소와의 교접(?)을 시도하잖아요. 그래서 태어난 게 난폭한 미노타우로스. 여기에 착안해서 청동으로 만들어진 소 안에 죄수를 가두어 불에 달구는 형벌이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이중섭이 그린 소가 정겹게 느껴져요. 이중섭의 소는 생명력이 넘치거든요.

AgalmA 2016-10-14 04:24   좋아요 0 | URL
수소 이미지 때문인지 아무래도 소가 관련된 신화 이야기는 좀 살벌한 거 같아요.
맞아요. 이중섭 그림이 대개 그렇지만 소도 힘차면서도 정감이 가게 그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