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선집인 『견딜 수 없는, 미쳐 버리고 싶은』, 『히치하이킹 게임』 왜 둘 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책 제목으로, 책의 첫 작품으로 두었는지 누구나 젤 처음 떠올릴 짐작은 그의 유명세일 것이다. 그러나 연애적 사랑을 말할 때 결정적 파국의 낌새를 밀란 쿤데라만큼 잘 집어내는 작가도 드물지, 하며 내 결론은 마무리된다.
밀란 쿤데라 <히치하이킹 게임>과 <견딜 수 없는, 미쳐 버리고 싶은>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단편인데, 이 외에 더 있을 지도 모른다. 이것이 다 함께 묶인 단편집은 없나. 이 궁금증 때문에 밀란 쿤데라 전집 도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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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다른 여자들처럼 그녀도 자기 육체를 편하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을 설득하는 특별한 방법을 개발한 적도 있었다. 거대한 호텔의 수많은 방 가운데 하나를 배정 받듯, 모든 인간은 수많은 몸 가운데 하나를 배정 받아 태어날 뿐이라고 혼자 되풀이해서 중얼거리곤 했다. 따라서 육체는 지극히 비개인적인 기성품 하나를 임의로 빌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법을 바꾸어 가며 이런 생각을 되풀이했지만 사실은 조금도 그렇게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 정신과 육체의 이원성은 그녀에게 자꾸만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는 자기 몸 하나도 버거웠고 자신의 몸에 대해 너무도 많은 걱정을 했다.
ㅡ밀란 쿤데라 <견딜 수 없는, 미쳐 버리고 싶은>
요즘 아니 매순간 나는 인간과 감옥에 대한 연관성을 자주 생각하는데, 위 단편에서 `존재-호텔` 얘기를 보니 다른 비유도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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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교회의 축복을 느끼는 방식으로 나는 고독을 느낀다.
고독은 내게 있어서 은혜의 불빛이다.
내가 내 방문을 닫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칸토르는 학생들에게 무한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한한 수의 객실을 가진 호텔 주인 한 사람이 있고,
이 호텔 객실에는 손님이 모두 들어차 있다. 거기에 손님 한 명이 더 도착한다.
그래서 호텔 주인은 1호실에 있는 손님을 2호실로 옮겨준다.
2호실에 있던 손님은 3호실로 옮긴다. 3호실 손님은 4호실로.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이렇게 하면 1호실은 새로 온 손님을 위해서 비워진다.
이 이야기에서 내 마음에 들었던 점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손님들과 주인 모두가, 한 손님이 자기 방에서 평화와 고요를 얻을 수 있도록 무한한 수의 작업을 지극히 당연하게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독에 대한 커다란 존중의 표시다.
ㅡ페터 회 『스밀라의 눈(雲)에 대한 감각』
인간과 자신을 가장 치열히 인식할 수 있는 고독한 공간,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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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쏟아진 빛은 유죄 선고를 받은 자들의 얼굴을 비추면서 거기에 담긴 진지함과 순수함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보여주었다. p 32
인간의 선량함은 보편성을 띠지만(마샥도 담배에 불을 붙여주거나 영화관에서 자리를 양보하기도 할 것이다) 지능까지 그와 같은 보편성을 띠지는 않는다. p165
그러나 교도소와 숲은 차이점이 있었으니 패러것이 사랑하며 거닐었던 숲의 공기에서는 늘 새로움의 향기가 묻어났으나, 여기 교도소에는 늙은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오래되고 고약한 냄새와 기만당하고 있는 뻔뻔한 죄수들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죄수들은 속고 있었다. 아니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었다. 더 월에서 들려온 소식은 죄수들에게 새로운 기운과 변화의 힘을 불러일으켰지만(대부분이 그 소식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임질과 성경 그리고 손목시계 끈을 둘러싼 말다툼 때문에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p175
그들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비록 어설프고 잔인한 대안이긴 해도 고행은 그들의 타락이 지닌 미스터리를 가늠할 수 있는 적절한 척도였다. p175
누군가가 이 세상에서 보게 될 마지막 장소가 법정이라면 어떡할 거냐고 물었지만 패러것은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되받아쳤다. 하지만 마룻바닥이든 침을 뱉는 통이든 낡아빠진 벤치든 그 무엇이라도 패러것은 붙잡고 매달렸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그를 구원해줄 수만 있다면. p225
패러것은 치킨 넘버 투가 기꺼이 그에게 주고 싶어했던 무엇을 온몸에 흡수하는 듯했다. 갑자기 오른쪽 엉덩이에 통증이 느껴져 엉거주춤 일어나 살펴보니 의자에 치킨의 틀니가 놓여 있었다. ˝오, 치킨.˝ 패러것이 외쳤다. ˝내 엉덩이를 이런 식으로 꼬집는군요.˝ 패러것의 웃음은 가장 깊은 애정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이었고 그것은 곧 흐느낌으로 변했다. p228
두 개의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났고 몸이 기울어지는 것으로 보아 경사진 터널을 통과하는 듯했다. 그가 기억하기로 자신이 이런 식으로 운반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래전에 죽은 그의 어머니가 필시 어딘가에서 다른 어딘가로 그를 안고 간 적이 있었겠지만 그의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들려 가고 있노라니 순수와 깨끗함이라는 낯선 느낌이 엄습하면서 패러것은 마치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이렇게 나이 든 내가 누군가에게 실려 내가 지니고 있던 노골적인 정욕이나 경솔한 경멸, 원한에 찬 가식적인 웃음 따위는 결코 없을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있다니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그런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그저 가능성에 불과했지만 그 경험만은 비록 높은 나뭇가지에 걸쳐 있는 오후 햇살처럼 유용하진 않아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또 이렇게 어딘가로 들려 간다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경험인가 말이다. p230
ㅡ존 치버 『팔코너』
중력 법칙과 인식의 한계를 생각하면, 인간은 더욱 죄수 같다. 11차원은 고사하고 3차원도 감당하기 어렵다. 시간이 부가된 4차원만 생각해도 패닉이 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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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할아버지 스톤은 달 세계가 인류 역사상 유일한 개방형 감옥이라고 주장했다.
ㅡ로버트 A. 하인라인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개방형 감옥, 지구라고 다를까. 머물면서 갇힌 자.
밀란 쿤데라가 최근작 『무의미의 축제』에서 왜 그토록 ˝배꼽˝과 ˝방광˝에 집착했는지 이해되기도 한다. 아담과 이브는 배꼽이 없었을 테니 인간 근본에 대한 처절한 고민 아닌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배출본능 ˝방광˝은 또 어떤가.
잉태하고 배출하는 세계.
없음과 있음이 끝없이 산출되는 세계.
폭발은 왜 밖에서 안으로 오는 것이 아닌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구조인가. 차원이 밀려나며 다음 차원의 폭발이 일어난다. 빅뱅. 어느 차원에서도 객실은 대기 중이다. 손님은 말한다. ˝어, 이거 내가 생각한 것과 좀 다르네요.˝
커피를 마시며 답없는 생각을 잘도 한다. 쓸모없는 죄수 같으니. 나는 밖으로 전화를 몇 번 걸었다. 실질적인 밖인지 알 수 없다.
예약도, 투숙도, 감금도 지루한 경험이다.
호텔과 감옥, 입실과 퇴실은 반복된다.
ㅡAgal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