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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빌리러 도서관을 갔다가, 도서관이 가까우면 뭐 하나, 휴관일만 골라 가는 나인 걸 확인하고 터덜터덜 돌아왔던 밤,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시전집 소식을 접하니 역시 오늘은 시 밤이었어! 그 시밤 말고....
반가운 마음에 [지만지]에서 폴란드 원문 번역으로 50편을 수록했던 <헤르베르트 시선>을 다시 펼쳐봤다. 철학과 아름다움이 압축되어 있던 시가 와락 다가왔다. 그래, 여전히 거기 있었다. 나는 그 앞을 매일 무심히 지나쳤지.

전쟁 시기나 암울한 시대엔 신화 모티프가 예술에 자주 애용되는데, 인간 심리(융의 집단무의식, 원형의식 등등)와 엮어서 생각해 볼 문제다. 헤르베르트(1924~1998) 詩도 신화와 역사, 당시 시대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형식의 압축미가 강하다. 폴란드어를 외국어로 번역했을 때 시를 잘 살리지 못한다는 평(늘 나오는 골칫거리;)이었는데, 김정환 시인은 분명 영역본으로 번역했을 테니 그게 좀 걱정된다. 같은 폴란드 시인이자 동시대(2차 세계대전과 소비에트 전체주의)를 겪은 노벨문학 수상자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 시선집 <끝과 시작> 경우 폴란드어 전문 번역가이자 폴란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최성은 교수였던 걸 생각하면 좀 아쉽지만....각각 일장일단이 있겠지.


쉼보르스카는 헤르베르트의 새로운 시를 사람들이 늘 기다렸고 이름을 가려도 그인 걸 다 알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나는 ˝판 코기토˝나 신화와 전쟁 참상을 엮은 시 경우 독특한 형식 때문에 단번에 알 수 있는 정도다; 애정도 문제인가, 판별력 문제인가....무엇이든 반성하게 되는군...
소설도 아닌 시에서, ˝판 코기토˝ㅡ폴란드어 pan(남자 귀족 이름 앞에 붙이는 호칭)과 데카르트의 Cogito(생각하는 존재)ㅡ라는 캐릭터를 구축한 것만 봐도 예사 시인은 아니다. ˝판 코기토˝는 어찌 보면 이성적인 돈키호테 같기도....


방대한 시집 분량과 시인 소개글에 독자들이 선뜻 접근하기 저어할까 싶어 <헤르베르트 시선>(2008, 지만지)에서 비교적 난해하지 않은 시들을 발췌해 소개해 본다.





개의 물방울 (全文)


˝숲이 불길에 휩싸이면 장미를 위한 시간은 없다˝
-율리우시 스워바츠키


숲들이 불타고 있다
그들은
서로의 목을 팔로 휘감고 있다
장미 꽃다발처럼


사람들은 은신처로 달려갔다
그가 말하길 아내는 긴 머리카락을 가졌기에
그 안에 몸을 숨길 수 있다고 했다


한 이불을 덮은 채
그들은 속삭였다 음란한 밀어들과
연인들을 위한 연도(煉禱)를


상태가 악화되자
그들은 서로의 눈동자 속으로 뛰어 들어가
눈꺼풀을 굳게 닫았다


끝까지 용감했다
끝까지 서로에게 충실했다
끝까지 서로와 닮은꼴이었다
얼굴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멈춰 선
두 개의 물방울처럼





내면의 목소리 (全文)


나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목소리는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으며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도 말하지 않고
아니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 파장이 너무나 미약해서
거의 알아들을 수조차 없다


아주 깊이 몸을 숙여 귀를 기울여도
간신히 들려오는 건
의미를 벗어난 분절음뿐


행여 다른 소리에 휩쓸려 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나는 그를 정중하게 다루려 애쓴다


마치 그의 말이 중요한 의미라도 있다는 듯
동등하게 대하는 척한다


심지어 때로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는 시도도 한다
ㅡ알잖아 내가 어제 거절했던 일 말야
지금껏 그런 일은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안 할 거야


ㅡ글루(glu)ㅡ글루(glu)ㅡ


ㅡ그러니까 네 생각엔
내가 잘했다는 거지


ㅡ가(ga)ㅡ고(go)ㅡ기(gi)ㅡ


우리의 의견이 서로 일치되어 기쁘다


ㅡ마(ma)ㅡ아(a)ㅡ


ㅡ자 그럼 편히 쉬어
내일 또 이야기하자


내게 전혀 필요치 않았기에
그에 관해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내게 희망은 없다
그저 약간의 회한만 남았을 뿐
그가 연민의 이불을 덮고
거기 그렇게 누워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입을 벌릴 때
그리고 무기력한 머리를
들어 올리려 안간힘을 쓰는 걸 보면서





포위된 도시에서 온 보고서 (발췌)


만일 도시가 함락되고 한 사람이 살아남는다면
그는 망명길에 도시를 지니고 갈 것이다
그가 도시가 될 것이다





이력서 (발췌)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알고 싶었다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지
집은 새로 얻게 되는지 사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과 악한 것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무엇이 희고 무엇이 완전히 검은 것인지도 확실히 알고 싶었다





시인의 집 (발췌)


그의 찬장과 침대, 의자 사이에 부재를 뜻하는 흰 외곽선이 아로새겨져 있다. 뭔가를 던지던 그의 손동작만큼이나 날카롭게.





묘사를 위한 시도 (발췌)


내 새끼손가락은
나와 똑같은 날 태어나
죽는 날을 함께하고
똑같은 외로움을 공유한다




수치 (발췌)


내가 몹시 아팠을 때 나에게서 수치심이 떠났다
아무런 저항의 의지 없이 내 몸의 가련한 비밀을
낯선 손에 내보이고 남의 눈에 보여주었다





판 코기토와 상상 (발췌)


그는 동어반복을
같은 말을 같은 말로 번역하는 것을
몹시 좋아했다


새는 새다
노예는 노예라는 뜻이고
칼은 칼이고
죽음은 죽음이다





계곡의 문에서 (발췌)


우리에게 알려진 바와 같이 그것은
어린아이를 빼앗긴 어머니들의 울부짖음
왜냐하면 밝혀진 대로
우리는 한 명씩 구원되기에




기도문 (발췌)



제 인생은
끝없는 심연에서 깨어난
물 위의 원과 같이 되지 못했을까요
나이테에 겹겹이 주름을 만드는
생장의 시작점이 되지 못했을까요
당신의 헤아릴 수 없는 무릎에서
편히 잠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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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0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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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15-10-20 0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란드에 이런 시인이 있었군요. 장소가 장소인지라 더욱 관심이 가네요. ˝두 개의 물방울˝이란 시의 이미지가 너무 선명해서 좋네요 . 이북이 있나 찾아볼래요.

AgalmA 2015-10-20 20:39   좋아요 0 | URL
전집을 보면 확연하겠지만, 작품 시기별로 경향 차도 꽤 있는 것 같아요. 헤르베르트를 ˝신고전주의˝라고도 하던데, 어떤 시들은 사물에 대한 천착이 두드러지고(특히 ˝돌˝), 또 어떤 시들은 대단히 자의식이 강하게 드러나는가 하면, ˝두 개의 물방울˝ 경우는 시대의 비극성과 시적 아름다움이 절묘하고...쉼보르스카와 헤르베르트 수준을 보면 그곳 시 세계도 대단할 거 같은데, 달걀부인님 눈 크게 뜨고 찾아보셔야 할 듯~_~ 세계엔 우리가 모르는 작가가, 시인이 얼마나 많은지....

북다이제스터 2015-10-20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시는 같은 내용이라도 사람 마음을 크게 움직이는 힘이 있는거 같아요.

AgalmA 2015-10-20 20:21   좋아요 1 | URL
언어가 그래서 참 대단한 듯. 시에서 저는 그런 충격을 제일 많이 받았어요. 위안 또한. 그래서 참 끈질기게 연연해 하고....그래서 참, 그래서 참....

북다이제스터 2015-10-20 20:29   좋아요 1 | URL
북플 어느 이웃님께서 제게 근래 알려 주신게... 현대 철학은 결국 언어로 귀결 된다고 하던데... 님 글 보니 막연하게 동일하게 느껴집니다. 어제 들은 팟케스트 지대넓얕에서도 현대인 인식은 언어라고 한 것도 같은 선상 공감 많이 되네요 ^^

AgalmA 2015-10-20 20:52   좋아요 1 | URL
저도 최근에 들어서야 철학, 문학, 과학, 인식 이 모든 문제에 ˝언어˝가 관건이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예전에 마냥 어려웠던 부르디외 ˝언어권력˝도 요즘 이해하게 됐고...제가 프랑스철학에 특히 관심이 많은 게 ˝언어˝ 문제에 대한 제 의문을 많이 다뤄주기 때문이죠.
아, 갈 길이 참 멉니다

2015-10-20 20: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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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20: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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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2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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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20: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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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2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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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2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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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2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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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10-20 21:36   좋아요 1 | URL
이 문젠 많이 생각해 봤는데도 아직 답을 못찾고 있어요.
어, 틀렸네. 고치고 끝~~이 아니라 아니@@ 틀렸잖아! 왜 틀린 걸까, 나는 이 개념과 뜻을 잘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닌가, 이러한 불협은 어째서 생기는가, 상대가 오해할 소지를 더 줄여야 한다!, 더 철저히 훑어봐야 한다!!, 더 정확하고 완벽한 표현은 없을까...생각의 자물쇠들을 모두 점검해보는 지옥이 되는데-_-....서재를 둘러보며 글쓰는 사람들 대부분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해 하더군요.
제 경우는 ˝개념˝ 지탄을 받은 트라우마가 있어서 좀 더 심해졌고요;;
완벽성이란 자기보호와 자기치장의 극대화라고도 할 수 있겠죠.

언어 얘기도 나왔던 만큼 언어도 우리 자신을 위한 최대 장치니 더욱 그런 상황이죠

2015-10-20 2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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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2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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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20: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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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15-10-20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넵넵. agalma님 글을 읽는것으로 먼 곳에서의 독서갈증을 다소 풀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당.

물고기자리 2015-10-20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면의 목소리`가 왜 이렇게 서글프게 읽히는지 모르겠어요.. 서글픔을 서글픔으로 위로받는 느낌이 들어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오물이 될 수도 있는 감정이나 생각들을 승화시킬 수 있는 것, 걸어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글의 힘인 것 같아요..

AgalmA 2015-10-20 21:33   좋아요 1 | URL
그쵸! ˝내면의 목소리˝ 베케트랑도 비슷하지 않나요? 정말 소진될 대로 소진된, 그러나 그 손에 무언가 놓지 못하고 있는 심정...헤르베르트 시들 중에 이런 내면의 극지를 드러내는 시들, 표현들이 저는 특히 좋더군요.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폐허가 된 저택 창가에 걸린 커튼의 휘날림을 보는 기분....

물고기자리 2015-10-20 21:22   좋아요 1 | URL
시인들은 조각가인 것 같아요. 소설가들이 화가라면 말이죠.. 소진되었다는 느낌도, 아갈마님의 마지막 구절도 황량함 속에서 흔들리는 애처로운 손짓처럼 와 닿아요..

2015-10-20 2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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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0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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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07: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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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1 15: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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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

움베르토 에코 중세와 위스망스 거꾸로를 곁눈질로 보다가 그 종합은 차후 또 때가 있겠지 싶어 이 글에선복종만 생각했다.

 


일단 미셸 우엘벡의 본심이 매우 궁금하다. 아마 차후 작품에서 파악되리라 짐작해본다. 그간 미셸 우엘벡 소설의 주인공들이-다분히 우엘벡의 삶과도 유사한-자멸에 가까운 은둔자의 길을 고집했다는 걸 생각해보면,복종』의 결말은 상당히 의외였다. 주인공 프랑수아와 실존작가 위스망스의 개종에 우엘벡 자신의 고민은 섞이지 않았을까. 이슬람교를 "가장 멍청한 종교"라고 발언해 소송까지 간 논쟁적 은둔자 미셸 우엘벡도 이 주는 달콤함에 사실 흔들리고 있진 않을까. 고통과 번민에 시달리는 한 인간으로서.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유명한 예수 수난상에서 위스망스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예수의 죽음이 아니라 육체적 고통이었고, 이 점에서 위스망스는 그의 종족인 다른 사람들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인간은 사실 자신의 죽음 자체에는 거의 무관심하다. 인간의 유일하고 실제적인 관심사, 그들의 진짜 근심은 바로 가능한 한 육체적 고통을 피하는 것이다. (p341)




 

우엘벡은 인간을 괴롭히는 불가항력적인 힘들-국가자본주의성적 욕망에 대해 작품 속에서 지속적으로 싸워왔다. 그리고 그 패배는 주인공들의 은둔으로 귀결되었다.어느 섬의 가능성에서 히피문화와 관련해 뉴에이지 종교를 신랄하게 보여준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종교와 신을 본격적으로 다룬 적은 없었다.

이 소설에서 이슬람교는 풍요와 개인적 욕망을 내세에서가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 해결해주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복종이 서구-이슬람 문화 사이의 문제성을 극적으로 대비해 보여준 것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그 둘은 차라리 형제처럼 닮았다. 개종의 길까지. 









유일한 해결책은 이라 불리는 유일한 점을 포함하는 상위 그래프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개인들 전체가 관계를 맺고, 이 매개체를 통해 사적으로도 관계를 맺었다. (p334)



서구의 무기력 상태가 결국 이슬람 문화에 굴복해가는 과정은 서구의 정신과 종교가 더 이상 현실에서 강력할 수 없는 노후하고 노회한 힘인 것을 보여준다. 이제 서구에서 십자군 전쟁 같은 일은 가능하지 않다. 지금의 서구 종교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체제 속에 갇힌 형국이다. “수도원이라는 표상이 말해주듯, 기독교는 예수를 통해 영혼의 기쁨에 머무르는 여성적 종교”(p265)라고 프랑수아는 말한다.

   

 

중세 기독교는 그 예술적 성취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토록 생생하게 남을 위대한 문명이라는 것을 르디제 그 자신이 제일 먼저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독교는 점차로 영역을 잃었고 이성주의와 타협해야 했으며 교황의 지상권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차츰차츰 사멸할 운명에 처했다. 왜 이 모든 일이 벌어졌을까? 참으로 미스터리했다. 신이 그렇게 결정해버렸다.(p336)

 

 

이슬람 문화권은 종교와 민족주의가 맞물려 체제를 지휘하고 있다. IS를 비롯해 각종 이슬람 무장단체의 성질이 단순히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서구 국가에 대한 반발이라고 볼 수 없다그것은 권력에의 의지며, 가부장적인 지배구조를 요구하는 폭력성에 기반하고 있다.   

한국에서 IS로 간 소년의 동기를 생각해보며, 모두들 소년의 교육과 학교생활(왕따), 가정사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인간 본성을 탐구해 볼 여지도 많다고 생각한다. 지금 전 세계적인 우경화는 과연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풀릴 문제인가. 경제 활동에서 남성과 여성은 앞으로도 경쟁 관계이다. 이 소설은 이슬람교로 새로운 세계를 시뮬레이션해 본다. 이슬람화가 되자 가정으로 돌아간 여성 때문에 일자리는 늘어나고 경제는 호황이 된다. 권력과 성도 혹할 만한 논리로 모두를 유혹한다. 이슬람의 일부다처제를 진화론으로 그럴 듯하게 이야기하는 소설 속 지배층 인사는 이 현실에서도 자주 목격되는 바다.


"자연선택은 모든 생명체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개념이긴 하나, 그 형태는 천차만별입니다. 심지어 식물한테도 적용되는데, 식물의 경우는 대지와 물과 태양이 제공하는 영양분으로의 접근성과 직결되죠. 인간은, 물론 동물이긴 하나, 들판의 개나 영양이 아니거든요. 자연선택에 의한 인간의 지배적 위치를 결정짓는 건 발톱이나 이빨이나 빨리 달리기 능력이 아니라, 바로 지성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지극히 진지하게 말씀드리지면, 대학교수가 지배적 수컷의 위치에 놓이는 건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p354~355)



페미니즘의 공격 대상이기도 한 우엘벡의 개인적 가치관은 여기선 차치하겠다. 

그는 지긋지긋하게 여겼던 서구 체제가 전복될 새 카드를 유심히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카드는 매우 익숙한 카드다. 과학을 통해 우주까지 내다보며 많은 인간은 ’ 세계를 버렸다. 그런데 여러 체제와 사상을 거치며 거듭 실패를 경험한 인간은 우주를 거쳐 다시 신을 타고 돌아오고 있다. 이슬람은 신과 우주 법칙을 수와 아라베스크로 표현하며 복종해왔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천재라 꼽는 뉴턴과 아인슈타인도 을 버리진 못했다.

을 가장 거부한 자, 니체도 나는 의심한다. 니체는『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 신화를 가져와 자유로운 인간상을 말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기독교를 거부할 뿐이지 여전히 "신들 세계로의 귀환"이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하며 평생 이라는 개념과 싸웠지만, 그의 저작은 복종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기도 했다. 을 초인으로 바꿨을 뿐 신=힘과 법칙에의 유혹을 결코 거부하지 못했다고 나는 본다. 

즉 이 모든 건 동서양의 차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성의 문제다. 

 은 증명되지 않았는데도 통용되는 대표적 우주법칙이다. 이라는 개념은 태어났고, 그 법칙을 깰 증명은 여전히 없으며, 가장 강력한 인간 세계의 체제다. 우리를 고통 속에서 구원해 준다면, 복종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현대어인 것 같다. 이 소설에서 자유는 복종할 지 말 지를 정하는, 이미 넘어가 놓고 거부의 시늉만 하는 남루한 모습이다. 

 

 

 

미셸 우엘벡의 다음 책이, 위스망스가 『거꾸로』 이후 쓴『좌초된』으로 좌초된 것처럼(제목이 잘못했네;) 되지 않길 바란다. 그가 농경소설을 쓴대도 흥미롭긴 하지만. 





ㅡAgalma








ps)사람들은 왜 그렇게 로마(의 흥망성쇠)에 관심을 가지는 걸까. 서구가 가지는 향수성은 회자되어온 바지만 전반적으로 그 제국의 헤게모니가 만들어낸 많은 문화에 강력하게 끌리고 있지 않나 싶다. 아닌 게 아니라 『복종』에서 이슬람은 제 2의 로마 제국을 건설하려는 것으로 서술되고 있었다. 암튼 더 깊은 내막은중세』를 읽은 뒤 다시 점검하기로...서구-이슬람의 뿌리깊은 반목의 역사도 상세히 알게 되겠지.


지금 읽고 있는 책에 그런 심리와 관련되어 보이는 내용이 있어 참고로 옮긴다. 


키르케고르와 사르트르 같은 실존주의자들은 사람이 신과 이성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 우주에서 표류하며 따라서 불안 속에서 부유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실존주의자들은 불안이 생겨나는 까닭이 신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신과 무신론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때문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자유를 적극적으로 추구하지만 선택의 자유가 불안을 일으킨다. 키르케고르는 이렇게 썼다. "나의 가능성들을 보면 자유의 현기증과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공포에 떨며 선택을 한다." 선택을 피함으로써 불안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기괴하게도 사람들이 권위주의 사회에 매혹을 느끼는 까닭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엄격하고 선택을 억압하는 사회의 확실성이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격변의 시기를 지나다 보면 극단적인 지도자가 등장하곤 한다. 바이마르 독일의 히틀러, 대공황기 미국의 코글린 신부, 오늘날 프랑스의 장마리 르펜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등이 그렇다. 


스콧 스토셀『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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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6 18: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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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9 15: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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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9 15: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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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9 15: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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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0-01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스망스의 소설 <좌초된>의 원제가 궁금해요. 혹시 원제가 ‘Là-Bas’입니까? 원제가 맞다면 우리말 제목을 ‘저 아래에’, ‘지옥에서’로 쓰는 것이 맞습니다.

AgalmA 2015-10-01 22:56   좋아요 0 | URL
<좌초된>은 소설 속 그대로 인용한 겁니다. <거꾸로>와도 어울리고 이 소설 상황과도 참 적절하지 않은가 했는데, 작가의 의도로 저는 해석했습니다. 번역자가 국내에도 알려져 있는 <저 아래로>를 함부로 의역하는 건 위험한 일이니까요.

<거꾸로>에서 바로 <좌초된/저 아래로>로 넘어가는 것도 아니죠.
<거꾸로>책에 있는 소개를 옮겨 보았습니다. 정식 불어가 아닌 점은 감안하시고요/
<거꾸로A Rebours>(1984)->가톨릭 개종 후 가톨릭 3부작<피항지에서En Rade>(1886)-><어떤 이들>(Certains>(1889)-><저 아래로La-Bas>(1891) 이 순서죠.
이후 ˝에밀 졸라 <루르드Lourdes>(1984)에 맞서 기적과 치유의 신비를 옹호하려는 르포르타주 형식 <루르드의 군중들Foules de Lourdes>˝을 쓴 게 마지막 저작이라고 되어 있어요.
적절한 의문 감사합니다.

cyrus님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cyrus님 가을 독서는 또 어떻게 진행될까 궁금하네요. 모쪼록 건강히/ :)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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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로봇이라는 다중의 이야기 - 패턴화

 

겉모습은 어떤 사람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사실은 외계 생명체가 그 안에 들어가 있어서 그 사람을 흉내내는 거. 그래서 옆 사람이 계속 저 사람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거.”(p33)

 

이 대사는 <블레이드 러너> 여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로 서술되지만, 이 소설에서 우주알이 몸에 들어간 남주인공과 너는 누구였어라고 계속 묻게 되는 여주인공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장강명 작가는 복선이랄 것도 없이 노골적으로 이런 패턴화를 보여준다. 장강명식 패턴화는 출판계에서나 독서시장에서도 성공한 것 같다. ③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하면 인간은 찾는 재미를 느끼고 계속 읽으니까. 내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일수록, 얼하면 리얼할수록 더.


그런데 이 소설의 패턴은 게임에서처럼 상향식이 아니다. 작가는 평준화된 패턴을 계속 제시한다. 박석거리 전설의 부부 이별 그믐,…』주인공들의 이별 식으로 1:1로 입력해 놓았다. ‘시공간연속체를 볼 수 없는 인간 : 로봇 : 독자를 위해. 반복의 단순패턴화에만 천착하는 작가의 논리를 위해. 남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교도소로 간 이영훈 어머니에게 '우주알'이 들어간다는 설정은 반복이라기보다 인위적이었다.


이 소설에는 반복을 위한 반전인 터닝포인트가 있다. 반전을 제시하면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 패턴을 보인다. 과거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이었고 이게 진실이군! / 과거를 모두 거짓으로 만들면서까지 진실을 보여주려 하는군! 이 반응은 이 소설의 심사평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진실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 뒤에도 여전히 살아 있을 사람들을 위한 거짓을 만들어내는 데 최선을 다하고, 그 거짓을 통해 시적 정의를 실현한다”(p168) - 강지희 문학평론가

남자가 죽고 나서야 그가 해온 거짓말이 사실은 믿을 수 없는 진실임을 깨닫고 도대체 너는 누구였어?’라고 절박하게 물어야만 했던 여자의 이별 이야기?”(p169) - 권희철 문학평론가

 

남주인공의 반전은 소설(내면) 속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외면)에서까지 진실/거짓이라는 혼동을 일으킬 예견된 패턴이다. 우려점은, 장강명 박사(어울려서 한 번 붙여봤다. 놀림은 아님)가 현실 패턴화를 소설 시스템화 하는데 경직되어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그래서 김도연 소설가의 의문’ 평과 신수정 평론가의 작위성평이 나온 것이라 짐작된다.

 

 

 



§§ 저널리즘과 환상성 환상적 사실주의? 사실적 환상주의?

 

환상적 사실주의대명사로 불리는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환상성에 방점이 크게 찍혀 회자되지만 환상적 사실주의라는 어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주의가 더 핵심이다.

마르케스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저널리즘에서는 기사가 가짜라는 한 가지 사실만이 기사 전체에 편견을 갖게 만듭니다. 대조적으로 소설에서는 이야기가 진짜라는 한 가지 사실이 작품 전체를 정당화해 줍니다.”(작가란 무엇인가 3파리리뷰, p359)

 

저널리즘을 강조한 마르케스만의 작법은 그렇게 등장한다. 내적 독백 기법, 글에 딱 맞는 자연스러운 어조, 환상적인 것을 현실적으로 믿게 만들어줄 세세한 묘사.

 

언론계에서 온 장강명 작가 그믐,…』은 마르케스의 취지와 작법의 괘를 같이 한다. 헌데 이 소설에서 어조가 마뜩찮았다. 어조 뒤의 화자가 작품을 규정짓는 느낌이 확연했다. 분명 더 풍부하게 확장될 수 있는 소설이었는데...

소설 말미에 작가가 소설 재료들을 주머니 털 듯 보여주는 것도 이 소설의 패턴화를 보여주는 이중주이다. 표현된 이상 저의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문제는소설을 무척 도구적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 그렇다고 해도 나쁠 건 없지. 세상 많은 것이 이미 그렇게 이용되고 있다. 시작과 끝을 우리가 인과적으로 받아들이듯이 가벼움과 무거움의 의미도 매우 자의적이다.


장강명 작가의 저널리즘에서 사랑은 느껴지지 않는다. 인물들의 관계와 사랑은 도식적인 클리셰로 다가온다. 이 작품만이 보여주는 독자적인 실존의 문제와 긍정성은 적어도 내겐 와닿는 게 없다. 작품의 긍정과 부정의 호불호를 따지자는 게 아니라 작가가 표방하며 성취하려는 저널리즘의 좌표가 나는 계속 걸렸다. 이 작품 전체는 세계에 대한 부의 어조가 짙게 배어 있.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욕망과 적의로 가득차 있고, 이영훈의 어머니가 그토록 강력한 캐릭터로 작동한 것도 그 영향이라 생각된다. 단지 현실 반영일까. 평온한 내면은 '우주알'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패턴을 알고 있는 남주인공 뿐이다. 그런 현실 해법 밖엔 정녕 없었는가. 이러한 경향은 작가의 허무주의에서 기인한 걸로 보인다. 객관적인 듯 냉정한 데이터 중심에 기반한 패턴화를 보는 관점은 거기서 온 것 같다 저널리즘은 아직 많이 의심스럽다. 인터뷰를 보니 작가도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고, '어떻게'를 무척 고심하고 있는 듯했다

작가든 인간이든 극복되어야 할 현안은 같다. 외부적 패턴화와 내부 근원적인 문제는 동떨어져 있지 않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 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뇌간이 없으면 인간은 꿈을 꾸지 못한다. 꿈이 억압과 충동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프로이트와, 꿈은 다음날을 위한 예비연습이라는 앨런 홉슨의 분석은 차후 문제다. 패턴은 꿈 자체에 있지 않다.

 

 



§§§ 오래된 꿈 - 소원


뇌에서 운동을 담당하는 시스템과 꿈을 담당하는 시스템은 연결되어 있다. 뇌간에는 보다 강력한 뉴런이 작동하기 때문에 꿈속에서 우리는 현실보다 더 강력한 시뮬레이션 쾌감에 빠져들게 된다. 상상과 꿈은 인간이 지속적으로 현실로 가져오길 원한 힘이다. 오래전부터 작가와 예술가는 그것에서 영감을 가져왔다.

21세기, 장강명 작가는 이 소설의 재료들을 이렇게 밝혔다. ‘본인의 기사,  TV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3>, 미국드라마 <멘탈리스트>, 영화 <인터스텔라>, 드라마 사운드트랙으로 쓰인 최백호 <아름다운 시절>, 대니얼 카너먼 책 생각에 대한 생각, 짐 홀트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에서 우주 알(cosmic egg)‘, 메이플 학습만화 도둑시리즈 역사도둑, 마포구 설화 등.

장강명 작가의 재료들은 매우 현실적이다.

꿈에서 빌려오든 현실에서 빌려오든 우리가 세계를 기억하고 착각하는 방식은 유사해서 어느 작품에서든 공감할 수 있는 점이 있다. 결말들도 거의 동일했다. 자유에 대한 갈망. 그런 점에서 모든 소설은 이미 도착해 있는 소설이자 거짓 같은 사실이거나 사실 같은 거짓이다. 이 문장에 나는 긍정의 뜻도 부정의 뜻도 넣지 않았다. 

그믐,…』의 마지막 패턴 제목은 '소원'이.

자유로워지고 싶어”(p161)

 

그리고 끝내 덧붙이는 말은, 전달되어야 할 명철한 사실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탄식이었다.

오직 패턴만이 있었다”(p161, 소설 마지막 문장)

 

나는 이렇게 덧붙인다.

많은 이들은 패턴을 느낄 때 비로소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고 확신했다.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그렇다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끝없이 패턴을 만들었다.”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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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5-09-16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을까 말까 읽을까 말까요

AgalmA 2015-09-16 21:16   좋아요 1 | URL
남들이 좋아하지 않는 소설을 제가 열광할 때도 있어서 제가 적절한 조언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선택은 야나님 자유~ :)

[그장소] 2015-09-17 01:52   좋아요 2 | URL
읽어보셔요^^ 어렵지 않고 단순하게 풀어가니까요..
그 진면목을 Agalma님은 생눈으로 뜨고 보려니..차마...그러시는 걸지도...몰라요.
원래 진실이란면이 사악하고 사나운 면도 있고..어떤때는
단순한 면도 역시 있지않던가요?^^(말은... 참..글을 이렇게 써라ㅡ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음..역시 미드지만 천재소년하나에게 전 우주의 그 질서에 대한 기호 프렉탈이 읽혀요.그 패턴은 연쇄작용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보여주거나..어떤 때는 틀리는지를 보여주곤했었죠..
그믐 읽으며 그 미드 생각을 했는데..제목생각이 안나서..ㅎㅎㅎ
저는 그냥 내가 하는 어떤일이 다음에 누구에게 무슨 화학반응으로 작용하는가..식의 단순함으로만 봐도 의미 있다고여겼어요. 겉만 본 것일 수있겠지만..때론그럴 필요도있다고..(그건 역시 개인취향 일 것) 하면서요..
그치만..역시나..Agalma 님 글의 깊이는 늪이예요..빠지면..같이 잠겨야해..^^;;

북다이제스터 2015-09-16 2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패턴 인식은 본능이라 어쩌지 못할 일인 것 같습니다. 한데 패턴이란 골을 평소 잘 만들어야지 잘못된 길을 만들면 다림질로도 펴지 못 하는 것 같아 새삼 조심스럽습니다. 요즘 새삼 느낌니다.

AgalmA 2015-09-16 22:44   좋아요 2 | URL
저도 깊이 공감합니다. 제 자신에 대해서도요.

2015-09-17 0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7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8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8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9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9 0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

한때 시에서 자연과의 비유가 지긋지긋했다.

 

다시 읽으며 전봇대와 모래가 유독 눈에 뜨인다. 그것은 마치 뼈와 피처럼. ‘덩쿨은 살점 정도 되려나. 인간이라는 상징 진흙과 나라는 표상 얼굴의 조합인 이 시집의 제목이 이미 그런 것들을 명시하고 있었다.

 

 

 

 

철학의 생성논리나 과학의 사실근거보다 이런 언어의 은유가 더 와 닿을 때, 무엇을 설명해야 할까. 우리 자체가 이미 담지체이자 탐지자인데. 언어는 급기야 버려지고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일종의 자유라고, 지금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또 지금 불가피하게 거듭 서성인다.

 

내가 자연 속으로 돌아갈 시계 초침 같은 것들, ‘달라붙는진눈깨비, 벚꽃, 벌레들, 나를 두려워하며.

 

 

 

 

 

 

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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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9-14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방금 읽은 책도 비유와 상징에 관한 것인데요. 인간은 흙이 아닌 물에서 왔다고 일종 은유로 표현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흙보다 물이 맞는듯 합니다. ^^

AgalmA 2015-09-14 16:35   좋아요 2 | URL
대체로 동의합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인간의 몸이 대부분 수분이고 물 속에서 출현했지만, 흙이라는 물질이 이쪽 세계에서의 형상화(육체)에 필수적이었다고. 꼭 흙이 아니더라도 육신이 될 매개체가 있어야 하니까. 정신과 육체의 문제라고 할까...우리는 자신이 의식할 수 있는 걸로 파악하고 표현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이런저런 비유가 출현한...

그런데, 북다이제스터님이랑 서로 읽고 있는 책 생각을 나누는 일이 잦으니 재밌네요. 서로 고심하는 세상사가 비슷해서 일까요. :)

책읽는나무 2015-09-14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연과의 비유~~~
식상한 듯도 하지만,시간이 자꾸 흘러 나이가 들고,죽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이 머물다 보니 인간은 결국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이구나!그런 생각이 들곤해요
그래서 인간을 더욱더 자연과 비유하지 않을까?싶기도 하구요
인간은 자연 그 자체인 듯해요!

AgalmA 2015-09-15 12:55   좋아요 0 | URL
자연에서 왔는데, 그 성질도 돌아갈 곳도 달리 있겠나요~_~
헌데 얼마전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를 읽고...생각의 실타래들이 많아져 아직도 곰곰이 생각중인데요. 차원이 다른 지성체는 (현실적으로) 어떤 식으로 생각할까 그게 참 궁금하더라는. 2차원 세계 개미가 3차원 세계 인간이 개입한 현상을 이해못하듯, 우리도 외계인에 관련한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고(이미 그렇고) 그 심층 생각은 더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죠. 그 책에 의하면 일단 감정이 없다시피해서 인간이 예술을 향유하는 것 같은 것도 없는 것 같고(그들 나름으로 있다 해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성질이겠지만)....
인간이 아닌 지성체는(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 인간 말고;, 귀신 같은 것도 말고;;) 어떤 것일까, 그 삶은, 그 세계는...

책읽는나무 2015-09-15 10:41   좋아요 1 | URL
음~~한 번 읽어봐야겠군요 일단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2015-09-15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물고기들이 냄새를 맡지 못하게 미끼를 달기 전에 손을 깨끗이 씻으라는 대사로 멋지게 시작하는 에리 데 루카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 대신 리처드 브라우티건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를 먼저 집어든 건 두 소설 다 자전적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ㅡ 일요일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제목과 그의 발문 때문이다.

 

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상상력과 인지력이다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에서는 이 두 가지가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그리고 상상력과 인지력을 바탕으로 생성되는 이미지와 메타포의 시적 테크닉은 그렇게 해서 쓰인 작품을 다분히 서정적으로 만들어준다.”

 

서.정. 그것은 성취일까, 한계일까. 여긴 어떤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서정 만들어지는 싸구려 감성이 아니다. 신파와 혼동하지 말 것. 왜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이 시를 완강하다고 할 정도로 서정시로 읽고 받아들이려 하는 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서정은 진부함이 아니다. 인간이 예술에서 가장 근원적으로 추구해 온 가치 중 하나다. 서사”성은 소설이 이어 받았다. 요즘은 이런 경계를 거부하는 이도 많지만. 독자 보다는 작가 쪽에서 더.


리처드 브라우티건. 자신의 소설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작가언어보다 행간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작가나중엔 어떨지 몰라도 개시(開示)된 언어에 이견을 달 수 없게 만드는 작가가 있다내게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그렇다나보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먼저 발견하고 이해한 사람들을 가끔 시샘한다박정대 시인을 제일...

 박정대 시인의 데뷔시집(1997, 세계사)이자 표제시 「단편들」은 리처드 브라우티건 『워터멜론 슈가에서』를 가져와 시작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곳곳에 녹아있다. 그 다음 시집에서도. 계속.

그리고 이젠 20년이 다 되어간다. 






상상력과 인지력의 언급은 철학과 과학이 주관과 객관의 싸움판을 벌이는 것과 연관되어 보이기도 한다. 주관과 객관-내면세계에 대한 각투(角鬪),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을 문학은 어떻게든 소통하게 하려는 멋진 예술이지하고 나는 일요일답게 중얼거린다.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62편 단편 중 첫 번째 이야기 <잔디밭의 복수>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 할머니는 미국의 과거라는 풍랑 속에서 등대처럼 빛나는 사람이었다할머니는 워싱턴 주의 조그만 마을에 사는 밀주업자였다.”





ㅡAgalma










(그의 생애 中)

1935년 미국 워싱턴 주 터코마에서 태어나 오리건 주 유진에서 자랐다. 가난했던 그는 차라리 교도소에 들어가 배불리 먹어보려고 경찰서 유리창에 돌을 던졌으나 경찰은 그를 오리건 정신병원으로 보내 전기충격을 받게 했다.

1984년, 브라우티건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로운 곳에서 49세 나이에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시신 행방을 찾기 위해 출판사에서 고용한 사립탐정에 의해 발견되어 정확한 사망날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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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9-06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읽는 책이 과학 정의는 무엇이고 과학이 과연 객관과 실증주의, 반증주의를 반드시 담보해야 하는 것인가여서 말씀이 마음에 많이 와 닿습니다.

AgalmA 2015-09-06 19:29   좋아요 0 | URL
같이 읽고 있는 책 중에 진화론 책이 있어서 계속 이런 의문이 끼어 들게 됩니다. 마구잡이로 갖다 붙이려는 의도는 아니고 유사하게 느껴지는 걸 어쩝니까ㅜㅜ
전대호 번역가의 말처럼 주관과 객관 사이엔 깊은 심연이 있어 이런 곤혹이겠지만요.

비로그인 2015-09-06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을 읽고 다음이 궁금하게 느껴지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라는 글이 있지요.
저 `잔디밭의 복수`는 궁금증을 부르기에 실패는 아니라고 하고 싶네요...

AgalmA 2015-09-06 21:26   좋아요 0 | URL
<태평양에서 불탄 라디오> 단편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는 캘리포니아 주 몬터레이에서 시작된다. 그건 당신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로 시작합니다.
....제가 심혈을 기울여 고른 게 아니라 어느 단편을 봐도 이런 멋진 도약을 하는 문장구조를 가지고 있어 브라우티건을 좋아합니다 :) 괜히 브라우티건을 시적이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작품이 말해주죠

아애 2015-09-06 2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네요. 멋진 첫 도약이에요. 조만간 챙겨 읽겠네요. 틀림없이.

AgalmA 2015-09-06 21:42   좋아요 0 | URL
레이먼드 카버가 문득 맞닥뜨리는 나뭇잎 향기가 난다면,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아득한 구름향이 난다고 할까요(알지도 못하는 구름향이라니!) 브라우티건 장편소설 <워터멜론 슈가에서> 작품 영향인 듯;

붉은돼지 2015-09-06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라우티건은 그 유명한 송어낚시도 저는 읽다가 중도 포기했습니다만 단편은 한번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어요. 62편이라니...손바닥장 장편인 모양이군요^^

AgalmA 2015-09-06 22:59   좋아요 1 | URL
<미국의 송어낚시> 출간은 커트 보네거트의 도움이 컸다고 하죠. 저도 그 책은 중간까지 밖에 못 봤어요. <워터멜론 슈가에서>의 흥분감만 못해서 조금 심드렁했는데 다시 도전해봐야 할 듯;
네, 200페이지 약간 넘는데, 무려 62편;;
5줄짜리 시에 가까운 손바닥 장편도 있어요ㅎ; 그러나 그 짧음 속에도 울림은 참 제 취향>_<)ㅇ~~
하여간 하루키에게도 밀리지 않을 재미도 있다능!

2015-09-06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6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6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6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6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6 2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고기자리 2015-09-06 23: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느낌상 제 취향일 것 같은 책이에요ㅎ

AgalmA 2015-09-07 00:01   좋아요 1 | URL
밤새 다 읽게 될 듯...놓지를 못하겠어요! 예상은 했지만...엄청 안 진지한 문체로 술술 이야기를 펼치는데, 웃다가 찡그리다가 눈물이 날 거 같다가 하여간 브라우티건 참 괴상하게 맘에 드는 작가😭!
물고기자리님도 좋아하실 듯~
이 글에 물고기자리님까지 동석하니 물고기로 가득하다!!! 와아아아~~~
멋진 콜라보레이션을 만들어주셔서 감사/

에이바 2015-09-08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뜻 개구리인가 싶어 다시보니 멸치 대가리!(대가리라고 해도 되겠죠? 머리라 하면 어색해서^^;) 센스!! 더 위켄드 노래 좋지요 영화보다 사운드트랙 호평이 많더군요. 뮤지션이 나이도 어린데 실력있다고 인정받나봐요. 저 노래가 유독 치명치명... 브라우티건은 송어낚시의 평을 들은 이후로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는... 영화도 찍었다는 것 같던데 음~ 아마 에밀리 블런트가 나오는 것 같던데 말이죠.. 할머니 얘기로 시작하는 단편을 보니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의 삶은 몰랐는데 마음이 아프네요...

AgalmA 2015-09-17 11:37   좋아요 1 | URL
에이바님이 멸치 대가리ㅎ라고 말씀하시는 게 왜이리 귀엽고 사랑스럽죠? *- -*)
더 위켄드 들으면서 저는 브루노 마스도 생각했는데....이들은 마이클 잭슨 2세대인지도 모르겠다 했지요. 받을 건 받고 자기만의 개성 살릴 건 살리고 했다는 기분?
찰스 부코우스키 <팩토텀> 영화도 보고 싶던데!!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누가 뭐라건 제겐 명백히 시집입니다. 브라우티건은 언제나 시인이였어요. 그의 사고는 확실히 시인의 점프력을 가졌어요~ 이 책 저는 정말 사랑스러워요!

AgalmA 2015-09-09 0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데플렌드 간텐: 웬걸요. 나도 가끔 진화의 불가피한 부산물 때문에 짜증을 냅니다. 우리의 척추는 물고기에서 왔어요. 약 5억 년 전에 물고기들은 근육이 달라붙는 지지대의 역할을 할 구조물이 필요했어요. 물고기들이 사는 물속 환경은 중력이 없으니까. 그런 구조물로 척추가 이상적이었죠. 하지만 그 후에 양서류와 파충류가 육지로 올라왔어요. 결국 직립보행이 등장했고요. 그런데 척추는 직립보행을 위해서는 턱없이 약해요. 하지만 자연은 물고기의 설계를 끝내 버리지 않았어요.

ㅡ 슈테판 클라인 인터뷰집 <우리는 모두 불멸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중


(....물고기....물고기....)



[그장소] 2015-09-17 0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멸치..머리 행진 즐겁게 잘보고 가요^^

AgalmA 2015-09-17 11:36   좋아요 1 | URL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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