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28일)이면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2006년 추계학술답사를 떠납니다. 대학생활의 백미라하면, 축제나 농활 등이 있겠지만은, 이 학술답사도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일 겁니다.

  그런데 나의 독고다이 생활방식과 귀차니즘의 여행기피증에 의해, 대학생활 내내 이 먼길 떠나는 답사를 경험한 기억이 없습니다. 이것이 대학을 졸업한 지금 저의 아쉬움으로 기억되는 것 중에 하나이지만, 그래서인지, 조교가 된 지금에야 답사를 떠나게 되는 것인가 봅니다. 아쉬움 하나 접을 수 있겠군요.ㅎㅎ

  물론 대학생의 신분으로 떠나는 학술답사의 추억을 만끽할 수는 없겠지만은, 조교라는 신분의 이질적이면서 양면적인 성격을 중용을 거부하고, 다분히 한쪽으로 기울이어 최대한 대학생답게 답사를 즐기고 싶습니다. 물론 조교로서 해야할 일들은 해놓고 말이죠.ㅎㅎ

  이번 학술답사는 그래서인지 많이 설레고 긴장됩니다. 아니, 그동안 나를 설레게하는 이 학술답사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해서였을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대강의 일정을 보면서 가장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안도현 시인과의 만남입니다. 얼마전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 선생님을 만났을 때보다 더 기대가 되는군요.

  올해 학술답사는 전라북도 일대의 군산, 익산, 김제, 만경 등지를 돌아보는 일정입니다. 전라북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문인이 바로 안도현 시인이 아닐까해요. 그러면서도 안도현 시인의 이력이 우리과의 학생들에게 더욱 많은 것을 배우게 해 줄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저에게는 시라는 매개가 하나 더 있어요.

  안도현 시인을 만난다기에 안도현 시인의 시집을 죄다 사 읽는 치밀함을 지니고 내일 떠납니다. ㅎㅎ 첫날 뵙게될텐데요. 최근 나온 2권의 시집을 짐꾸러미에 찔러두고 갑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이번 강연에 주가되는 시들을 담아 놓고 있어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은 시인의 대표적 시집이기 때문에, 이 둘을 골랐습니다. 두 권 모두 재판된 새책들이네요.ㅎㅎ 여기에다가 싸인을 모두 받을 욕심으로 지금 가득차 있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강연 외에, 또 저를 설레게 하는 것은 익숙한 곳이면서도(제 고향은 아닙니다만, 부모님이 익산에 사세요.)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아리랑>>의 주무대인 김제, 만경, 그리고 군산 일대를 돌아보는 것이지, 아직 그곳이 우리 민족의 애환과 아픔과 고통을 담아내고 있을테지요. 땅은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딘가에 숨어 있을 '아리랑'의 슬픈 곡조를 찾아내고 올랍니다.

  또한 전라도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하면 판소리를 빼놓을 수 없겠죠. 판소리를 집대성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신재효에 대해 세미나를 가지는 시간이 있답니다. 이참에 판소리 한 대목 배울 수 있으면 또한 좋겠네요. 아울러 채만식 기념관에도 가본다는 군요. 이래저래, 보람된 학술답사 되게끔, 대학생때 못한 것까지 모두 합쳐서 제대로 된 학술답사 만들어 가지고 오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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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희야양을 TV를 통해 본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의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하여간에 요즘 유행타는 뭔가 특이하거나 특별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프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늘 다시 보니 참, 놀랄만한 일임에 틀림은 없다. 가슴 뜨겁게하는 진한 감동임에는 또한 틀림없다. 그런데 이 동영상을 보고 난 후의 느낌이랄까, 그 감동만으로 기뻐할 수 만은 없는 내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희야양의 연주를 보면서, "어쩜 저럴 수가!"라는 감탄을 먼저하게 된다. '네손가락의 피아니스트'라는 별칭도 그런데서 연유할 것이다. 참 이것은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사실에 주목하고, 어떻게 그런 장애를 딛고 이렇게 아름답게 연주를 할 수 있었을까 하면, 그 사연들 속에서 감동을 받는다. 나도 마찬가지.

  우리는 또한 그녀의 피아노 치는 모습에 심금이 울린다. 한 손에 두 개의 손가락만으로 펼쳐내는 음율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고, 손이 찢어질 것 같아 보이는 모습, 가히 온 몸줄기에 소름이 돛이는 듯도 하고, 식은 땀이 나기도 하면서, 눈물을 머금게도 된다.

  분명 이런 것들로 자아내는 감동도 감동이다. 하지만 거기에 전제되는 것은 무엇보다 희야 양의 장애이다. 장애를 전제로한 감동일 뿐이다. 이런 감동으로만 보는 것은 희야 양에 대한 일종의 모독일 수도 있다.

  희야 양이 자신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사람들이 대단하게 보고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면, 희야 양에게는 피아노 연주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희야 양은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보다 진정으로 들어주길 바랄 것이다.

  나는 이 동영상을 보면서, 2가지 생각을 하게된다. 우선은 장애인이라는 전제를 벗겼을 때 우리에게 희야양은 어떤 감동을 줄 것인가? 그런데, 또한 그런 감동을 우리에게 주어야만 하는가? 그런 싸구려 감동을 벗겨내야만이 희야 양이 이 사회에서 정상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동영상은 일본의 모 방송에 초대되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다. 여기서도 희야 양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감동을 자아내고는 있지만, 희야 양도 기뻐하는 모습이지만, 일본이라는 사회에까지 가서, 희야 양이 사람들앞의 뭔가 신기한 일로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과 교차되면서, 예전의 모 프로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며 아파하고 힘들어 하던 희야양의 얼굴이 떠올른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런 나의 생각들이 다만 죄스럽기도 하다.

  또 하나의 생각은, 화면에서 보여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이다. 어머니의 눈물을 머금은, 두 눈을 감고 희야 양의 연주를 차마 보지 못하는, 희야 양이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지만, 그 시간 시간들이 매우 큰 고통의 시간들임을 어머니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 어머니도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연습을 게을리하는 딸아이에게 핀잔을 주기도 하고, 연주해서 아픈 손가락을 장난을 하며 더 피로하게 만드는 딸아이를 혼내기도 하고, 연주를 마치고 힘들어 하는 아이를 다독이고 위로하는 어머니, 아이에게는 고통이 남지만, 또한 기쁨이기도 한 피아노 연주. 그 두 가지에서 어머니는 오히려 우리 누구보다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일본까지의 먼 길을 건너가면 방송에 출현을 택한 어머니의 마음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모르는 이들로부터 오해의 말들을 듣기도 할 것이다. 바로 어머니의 머금은 눈물 안에는 이런 것들이 담겨 있지는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희야 양의 통해 얻은 감동이 다만 유쾌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이다. 나를 부끄럽게 하는 그런 감동이다. 희야 양을 더이상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로 부르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분명 희야 양은 피아니스트이지 그 이하 그 이상도 아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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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2006-09-11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지금은 나이가 어리니까 단지 네 손으로 친다는 것만으로도 주목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진정한 실력과 예술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잊혀지고 말겠죠. 그나저나 예전에 작곡가 라벨은 한 손으로 칠 수 있는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네 손가락으로 칠 수 있는 피아노곡을 써줄 작곡가는 없는지 모르겠네요.
 

  내가 알라딘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5년 3월부터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다지 많이 읽는 편은 못되고, 한 권 한 권 사모으는 것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다. 그 전 줄곧 이용했던 것은 시중의 서점과 리브로였다. 그러던 차에 알라딘을 알게되었고, 2005년 3월 첫거래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줄곧 이용하고 있다. 최근 플래티넘 회원에까지 이르렀으니, 나름 알라딘 주요 고객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내가 이런 것을 자랑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알라딘과의 첫 만남 이후 줄곧 알라딘을 이용하게 된 것은, 낮은 가격과 상대적으로 빠른 배송, 그리고 배송 상태 등의 이유도 있었지만, 알라딘의 이 독서가들의 서재때문이기도 하다. 알라딘의 개인서재는 참으로 좋은 점이 많다. 많은 이들이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들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써 알라딘은 굉장히 폭넓은 장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충분히 이런 것들을 자랑할만 하고, 나로써도 가급적이면 알라딘을 이용하자는 생각으로 대부분의 책들을 알라딘에서 사왔다. 어느새 나도 알라딘의 한 가족이 된듯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옥의 티라고나 할까? 아니면 치명적 오류라고나 할까? 하얗게 잘 다려놓은 와이셔츠의 김치 국물 한방울은 굉장히 돋보이기 나름이고, 그 사람이 아무리 깔끔했었다고 해도 그것으로 인해 치명적 이미지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된다. 백로가 노는 곳에서 까마귀는 그야말로 돋보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돋보임은 얼굴 찌푸림과 함께이겠지만.

  나는 2005년 3월 이후 20여차례 알라딘과 거래해왔다. 1년 5개월간 거래액은 아마도 200여만원 정도는 되지 않을까한다. 자랑은 아니다. 17개월간이니 그간 1달에 1번 이상 알라딘에서 주문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근 그 횟수는 더 늘어났다. 이렇게 거래가 늘어날 수록 기대는 더욱 커지는 법이다. 거기에서 많은 거래에서 오는 알라딘에 대한 신뢰의 축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신뢰는 단 한 번의 오점으로 일거에 누너지는 모래위의 쌓은 성일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여차례의 거래에서 나는 4번의 교환요청을 하게 되었다. 산술적으로 5번의 1번은 교환을 요청해야 했다는 것인데, 이는 20%의 확률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굉장히 높은 수치다. 이것에 대해 알라딘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환요청의 사유는 모두 제품상태 불량이다. 잘 읽다가 텅빈 백지의 페이지가 나타나거나, 갑자기가 10여페이지를 건너뛴다거나, 제본이 이그러져 있다거나, 페이지가 접혀져 있는 상태로 제본이 되어 있다거나. 이러한 것들은 나를 굉장히 불유쾌, 불쾌하게 만든다. 신뢰도 마이너스, 모래위의 쌓은 성이되는 순간이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은 상품질의 저하를 전제하고 있는 것인가? 배송이 빠르다는 것은 제품상태의 불량에 대한 보상적 차원인가? 알라딘 서재를 꼼꼼히 운영하는 것은 제품상태의 철저한 확인을 불가능하게 만드는가? 물어보고 싶다. 상품의 질이 떨어진다면 당연히 가격은 저렴해야 하기에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은 내세울 장점이 못된다. 제품의 상태가 불량할진데 배송이 빠르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제품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하면서 알라딘 서재를 어떻게 꼼꼼히 운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말한다. 알라딘은 일차적으로 서점이다. 책을 파는 곳이라는 얘기다. 책을 파는 곳답게 책에 대한, 책의 상태에 대한 철저한 책임감을 가져주길 바란다. 나는 책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책의 상태를 매우 꼼꼼히 살펴보는 사람이다. 시중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은 내 스스로 책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기에 이런 걱정을 할 필요는 적어진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사는 책은 전적으로 책을 파는 회사에 대해 신뢰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알라딘이 나에게 이런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에 나는 무척 실망하고 있다. 교환율이 거래당 20%에 달한다는 것은, 이것은 어디까지는 나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지만, 알라딘이 인터넷 서점의 주인공으로 서기에는 부끄러운 수치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가격, 배송, 커뮤니티 등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어디까지나 서점에서는 책이다. 책이 확실해야 가격도 배송도, 폭넓은 커뮤니티도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갈에 지나지 않다. 알라딘의 발전을 위한 제언이라고 생각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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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6-08-30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쓴 글이라, 다소 오해를 살만했던 것 같습니다. 장문의 답글을 읽고보니, 다소 걸리는 표현들이 있네요. 조금 해명을 하자면, "제작상 하자 상품을 입수해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수준낮은 매도의 뜻은 전혀 아니었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 또한 알라딘을 아끼고 사랑하는 알라디너의 한 사람으로써, 알라딘이 보다 나은 인터넷 서점으로써 발전해 가길 바라는 뜻에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음을 분명 천명합니다. 오해의 소지가 분명히 있었음을 인정하며, 위의 표현들은 상품에 대한 알라딘의 보다 책임있고 철저한 관리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런 글을 쓰는 동시에 또한 새로운 상품을 주문하고 있는 나를 볼 때 알라딘은 저에게 무척 소중한 것임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관심이 모이고 쌓일 때 알라딘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때로는 관심과 격려, 때로는 질책으로 나타나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고독한女心 2006-08-31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30회중 2번 교환했습니다. 제품에 문제가 있어서요..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책 살땐 디게 꼼꼼하게 따져서 보잖아요. 티 하나 있어도 딴거 고르고.. 온라인에서는 차곡 차곡 순서대로 판매하다 보니 그런 문제점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알라딘은 다른곳처럼 교환이나 환불에 인색하지 않아서 좋아요. 방금 교환 신청한게 하나 있는데 4분만에 답변이 완료되는 신속함!!!-_-깜짝 놀랬다는.. 알라딘은 온라인 서점이지만 친절함은 바로 앞에 손님을 보고 대하듯이 해서 좋아요!! ^^ 저는 비록 실수는 있지만 계속 알라딘 이용할께에요..
 

야밤에 나는 감행했다. 무엇을? 빚을 지고 야밤을 틈타 도주하는 야밤도주는 아니다. 울산행. 언젠가 한번쯤 가보리라던 울산을 향해 감행한 것이다. 울산에는 참 그리운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12시 버스를 타려고 밤 11시쯤 집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 탔다. 택시기사분께 물었다. "울산엘 가면 뭘 봐야될까요?" 시원스럽 대답을 듣지 못하였다. 그러고 보니 울산하면 딱히 떠오르는 그 무엇은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이런 노래가 생각이 난다. 

"동해나 울산은 잣나무 그늘
경개도 좋지만 인심도 좋구요
큰애기 마음은 열두폭치마
실백잣 얹어서 전복쌈일세
에헤에야 동해나 울산은 좋기도 하지

울산의 아가씨 거동좀 보소
임오실 문전에 쌍초롱 달고요
삽살개 재놓고 문밖에 서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린다네
에헤에야 울산의 아가씨 유정도 하지" -울산아가씨

이 노래는 민요다.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기억이 난다. 국악인 김영임씨의 목소리로 들으면 참 구수하면서도 애절하다. 이 노래를 찬찬히보니, 울산에 대한 정보도 참 많다. 우선 '잣나무'가 좋은가 보다. 그러니 잣도 자셔야겠다. 바닷가이니 전복도 좋단다. 혹시나 울산의 특산물이 잣과 전복인가? "실백잣 얹어서 전복쌈"을 먹어야 겠다. 사람 인심도 좋다니 듬뿍듬뿍 많이도 줄테지.

바닷가라서 그런지 울산의 노래들은 여인들의 애닲은 이별이야기들이 주테마인듯 싶다. 어느 항구도시나 이런 이별노래 쯤은 다 가지고 있기는 하다. 위의 민요에서도 떠나 임을 그리는 울산아가씨의 마음이 참 '유정'도 하다.


운무를 품에안고 / 사랑찾는 무룡산아 /산딸기 머루다래 / 따다주던 그손길

앵두같은 내입술에 / 그이름 새겨놓고 / 꿈을 찾아 / 떠난 사람아

둘이서 거닐던 / 태화강변엔 / 대나무 숲들은 / 그대로인데

어느곳에 정을두고 / 나를 잊었나 / 나를 나를 잊었나

돌아온단 그약속에 / 내청춘이 시든다 / 까치들이 울어주니 / 님 오시려나
아 울산아리랑

석양을 품에안고 / 사랑찾는 문수산아 / 산딸기 머루다래 /따다주던 그손길

배꽃같은 내가슴에 / 그리움 물들이고 / 꿈을 찾아 / 떠난 사람아

둘이서 거닐던 / 정자 바닷가 / 하얀파도는 그대로인데 / 어느곳에 정을두고
나를 잊었나 / 나를 나를 잊었나

돌아온단 그약속에 / 내청춘이 시든다 / 까치들이 울어주니 / 님 오시려나
아 울산아리랑  (울산아리랑, 작사 오은정, 작곡 김정일, 노래 오은정)

아~ 애절하다. 그런데 여기에도 참 좋은 울산정보가 있다. 무룡산, 태화강변, 대나무 숲, 문수산, 정자 바닷가. 그러고 보니 태화강변은 전에 들어 본 적이 있는 듯하다. 이 노래는 민요풍의 트로트로 오은정이란 가수가 불렀다. 나름대로 구성지고 간드러지게 잘 불러냈다.

말이 나온 김에, 가수 김상희가 불렀 나름 히트한 노래가 있다. <울산 큰애기>란 노래인데, 이 제목은 맨 위에서 말한 <울산아가씨>도 간혹 <울산큰애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어찌보면 이 노래들이 비슷한 연원을 가지고 있지 싶다. 김상희의 이 노래에서는 울산에 대한 정보는 울산이 경상도 소속이라는 정보 정도이다. 그런데 울산에 김상희의 울산큰애기 노래비가 있단다.

자! 이만하면 울산에 대한 정보는 많이 얻은 듯 하다. 12시차를 타고 왔더니 4시가 좀 넘어 도착을 했다. 인천에서는 고속버스는 없고 시외버스만 있어 6시간이 걸린단다. 그런데 막차여서 이리저리 걸치지 않고 직행을 해서 4시간밖에 안 걸렸다. 새벽에 도착하고 보니 어딜 갈 수도 없고 해서 찜질방을 찾아 보았다. 앗 그런데, 울산의 관문이랄 수 있는 울산터미널의 주변은 기대이하였다. 여기저기 남성휴게실 아니면, 안마시술소, 술집, 성인오락실, 뭐 무슨 유리방이라는 것만 있다. 찜질방을 열심히 찾아 주변을 돌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고, 잠시 사우나에 갔다가 지금은 근처 PC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기대를 크게 품었지만 첫 대면은 실격이다. 그런데, 울산기행은 이제부터이니 "동해나 울산은~" 이래서 좋은 것이여! 그것을 찾아 오늘 하루 햇볕에 살을 태우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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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선생 인하대 강연 ― 문학과 역사현실


 
 

  우리 소설문학의 큰 산봉우리라 할 수 있는 작가 조정래 선생이 지난 24일 인하대를 찾았다. 인하대학교 중등교육연수원에서 주관하는 1급 정교사 자격연수 교양강좌의 하나로 그를 초청했기 때문이다. 조정래 선생은 2시간여의 강연에서 자신의 문학 인생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지금까지의 삶과 문학을 총정리 했다.

  우선 선생이 문학을 하게 되기까지의 인생이야기로 시작했다. 어린 학창시절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많은 상들을 휩쓸면서 그는 문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단다. 그런데 선생이 말하길,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당시 자신이 상을 탄 글짓기 대회의 대부분의 주제는 ‘반공’이었다며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렇게 선생의 강연은 시종일관 곳곳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재미있는 강연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묵직하게 자리 잡은 문학 인생의 연륜에서 나오는 커다란 선생의 가르침을 담고 있었다. 그것을 직접 현장에서 듣게 된 사실은 지금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선생이 대학시절 문학을 시작하기는 시에서부터였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먼저 시에 도전을 하고, 시가 안 되면 소설에 도전하고, 그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 비평을 한다는 문학하는 사람들이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을 폭로했다. 그러면서 선생을 초청하는데 큰 역할을 한 평론가 김명인 교수를 가리켰다. 일거에 청중들의 폭소가 터진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선생은 시를 쓰다가는 안 되어 한 등급(?) 낮은 소설을 쓰게 되었단다. 대학을 졸업하면서도 등단이 되질 않았고, 어떻게 하다 보니 학교교사를 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선생 자신의 말로는 등단이 안 돼, 먼저 등단한 부인을 꿰 찼단다.

  뒤 늦게 선생이 등단을 하고 여러 편의 소설을 써 내던 어느 때에, 이제는 중견의 소설가라고 할 수 있을 때에,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지금까지 내가 쓴 소설 중에 세월이 흘러도 남을 수 있는 것은 몇 편이나 될까. 선생은 그러면서 단호히 말한다. 단 한 편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그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남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써야겠다고 다짐을 했단다. 그렇게 해서 탄생하게 되는 것은 바로 대하소설 󰡔태백산맥󰡕이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명멸했다. 그렇게 사라져간 작가들의 작품 중에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것은 얼마나 될 것인가? 작가 조정래는 그렇게 명멸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선생은 자신의 작품이 남기 위해서는 무엇을 써야하는가를 궁구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작가 조정래는 자신이 말해야 할 그 무엇으로 찾아낸 것은 바로 빨갱이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반공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남한 사회는 지극히 왜곡적으로 그들을 치장했다. 그들의 이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1990년대까지도 성행했던 반공 포스터 그리기와 글짓기다. 아이들이 그려냈던 반공포스터에서 붉게 칠해진, 때론 뿔이 달린 악마로, 불을 내뿜는 화마로 그려졌다. 글짓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반인간적 폐륜까지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것이 이 ‘빨갱이’들이었다. 작가 조정래는 이래가지고는 어떻게 통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악마와도 같은 ‘빨갱이’들과 어떻게 하나가 되고 한 민족이 되며, 삶을 서로 의지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겠는가? 거기에 조정래가 말해야 할 것이 분명 있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작가들의 의무와도 같은 이 말을 어떤 작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비평가들도 이러한 문제들을 암시하는데 그쳤다. 왜냐하면, 그랬다가는 바로 저 남산 밑으로 끌려가 치도곤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태백산맥󰡕으로 인해 작가 조정래는 고발을 당했다. 그것은 그가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순서였을지도 모른다. 몇 년 전에야 무혐의 판결을 받아서, 강연을 듣고 있는 청중들은 다행이란다. 그렇지 않았으면 선생의 강연을 들으러 모인 모든 사람들이 공조자가 되지 않았겠는가.

  작가는 이 대작을 통해 “그들도 인간이다”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소설의 장면과 상황과 대화와 행동 속에 그려 담았다고 한다. 그들도 분명히 뜨거운 사랑을 하지 않았던가. 작가는 역사 현실을 말하면서도 그 안에 한갓 남녀의 정사를 비중 있게 그려 넣은 것은 그러한 의도였다. 거기에 작가는 수도 없이 가로를 치고 얘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가?”, “이들이 어떻게 악마인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지 않은가?” 이런 말들을 가로를 치고 달아놓고 싶었단다. 하지만 그것은 비평가들의 몫이기에 참은 것이다.

  조정래 선생은 많은 문학의 정의 중에서도 문학의 역사적 시대적 반영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작가의 역할을 “후세의 선생이요, 이 시대의 산소”와 같다야 한다고 역설했다. 후세를 인도하고 가르칠 선생의 역할은 이전의 위대한 작가들이 하겠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작가는 적어도 이 시대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산소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작가 조정래는 적어도 이 시대의 산소의 역할을 해냈다. 이 시대가 억압당하여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을 그때에 그는 그 숨 막히는 현실에 산소를 뿜어내었던 것이다.

  선생은 󰡔태백산맥󰡕 이후 오히려 더 방대한 분량의 󰡔아리랑󰡕을 펴냈다. 이 작품은 그동안 역사연구자들이 말했어야 할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 아무도 그 시대를 연구하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이 나섰다. 그는 말한다. 역사가들 덕에 󰡔아리랑󰡕을 쓸 수 있었다고. 이 작품을 쓰기위해 선생은 아직 수교를 맺지 않고 있던, 당시에는 적국이라고 할 수 있었던 중국에 들어간다. 중국의 연변에 가서 다양한 취재를 하고, 생생한 증언을 듣고 와서 󰡔아리랑󰡕을 써 낸 것이다. 당시 중국에 가기는 매우 어려웠단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선생 덕에 간신히 중국을 나가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어서 펴낸 것은 󰡔한강󰡕이다. 이제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것 중에, 남은 것은 전쟁 이후였다. 전쟁 이후의 남한 사회의 모습들, 문제들을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작품들을 끊임없이 쏟아낸 그에게는 작가의 의무로써 이 사회에 무엇인가 말해져야할 말해지지 않을 것들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한 도전해야만 했다. 그것은 때로, 아니 시종일관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던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날 수는 없었다. 이제는 마무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선생은 최근 󰡔인간연습󰡕을 펴내며 그간의 작업들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희생자, 그는 이 연습 같은 삶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모색을 시도’했고, 그러면서 바로 “인간답게 살고자”했다는 것. 바로 이것이 그간의 작업들의 종착점인 것이다. 북한의 이데올로기나 남한의 이데올로기나 어디까지 인간답게 살고자 한 연습에 지나지 않았겠는가? 그것은 시대와 사회와 민족과 인간의 아픔을 나았고, 때로 기쁨도 있었고, 행복과 슬픔도 교차해야 했다. 그러나 선생은 말한다. 아직 끝이 아니라고.

  선생은 이 책이 끝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벌써 50권의 출판 계약을 맺어 놓았단다. 그것은 손자들을 보면서 느꼈다. 올바른 우리 전래동화를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남의 자신의 생의 마지막은 ‘통일문학’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대략 통일의 시기를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를 대비해 이제는 ‘통일문학’을 내놓아야하지 않겠는가! 라고 반문하며, 그는 지금부터 그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그가 통일을 보지 못하고 죽더라도 유언으로라도 남겨 통일이 되면 자신이 써놓았던 ‘통일문학’을 책으로 내어 놓겠단다. 참으로 대단한 작가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강연 후 조정래 선생(가운데)과 왼쪽에서 두 번째 김영 교수(인하대학교 사범대학 학장 ․ 국어교육과 교수), 조정래 선생 오른쪽으로 김명인 교수(문학평론가 ․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김석회 교수(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가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상과 같이 조정래 선생의 인하대학교 강연을 정리했지만, 사실 뒤죽박죽이다. 실제 선생의 강연 속에 문학에 대한 선생의 성찰과 각오, 그리고 삶과 현실과 역사에 대한 인식들은 강한 전류처럼 전해졌고, 그러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선생의 입담에 시종일관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기대한다. 조정래 선생의 통일문학을 빨리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사실을 고백하면, 나는 선생의 대하소설들을 아직 제대로 읽지 못했다. 마지막에 이 사실을 고백하며 선생에 대한 죄송스러움에 감히 용서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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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6-08-01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인간연습 독후감 쓰고 다른 분들 독후감 읽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멜기세덱님은 인하대 교직원이신지요? 전 뉴질랜드 사는 백수입니다. 부럽습니다. 언젠가 조선생님 강연 들을 기회 있으면 꼭 가 보고 싶었는데 님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현장의 열기를 느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대하소설 3부작 제대로 읽어 보세요. 강추입니다. 독자가 소설에서 바라는 즐거움들을 모두 만끽시켜 주는 3부작이죠.

멜기세덱 2006-08-01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직원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요. 그냥 조교로 있습니다. 조정래 선생님을 직접 뵙고 싸인까지 받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강연도 너무 감명깊었습니다. 좋은 기회였던거 같아요. 저는 책 읽는 데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것이 지론인데, 대하소설, 그것도 3부작을 읽겠다는 것에는 조금 가리게 되네요. 그래도 꼭 빠지고 싶은 마음 간절히 있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뉴질랜드 사시는 백수"가 전 왜 더 부럽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