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론의 추상같은 분노에 겁을 먹은 것인지, 야권의 거센 공세에 정부 당국은 한 발 물러난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연이어 정운찬 농림부 장관은 청문회 도중 무슨 중대발표라도 되는 듯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얼굴색을 바꿔가며 "광우병 발생시 수입중단"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이 대통령의 발언과 대동소이하다. 그러니까 정운찬 장관이 결연한 의지의 발표를 하는 듯한 태도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오늘은 한승수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이와 같은 취지의 정부 방침을 알렸다.

오늘 담화는 일단 정부의 공식적 의사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크게 양보라도 하듯이 거창하게 티비앞에서 총리가 발표를 했지만, 내용을 좀 보면, 그게 그거다. 정부의 당국자들이 수차례 얘기하듯이 정부의 기본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하듯이 이번 총리의 담화는 아무것도 아니엇던 것이다. 대체로 이해하자면, 광우병 발생시 수입 전면 중단 가능, 축산 종사 농민에 대한 지원 강화, 원산지 표시 규제 철저 등의 대책 아닌 대책들이었다.

총리의 담화를 지켜보면서 이게 과연 이번 '미국 소 수입 협정 체결'에 대한 대책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테면, 축산 농민에 대한 지원은 외국산 고기 수입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장기적 정책을 마련하여 지원 육성해야 할 부분이고, 원산지 표시 제도의 강화는 식품 안전 상에서 미국 소때문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니까 이번 담화에 담긴 정부의 대책이라는 것이 이번 협정 체결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사항을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해결해 준 것이 없는 셈이다.

광우병 발생 시 수입 중단 하겠다는 정부의 약속도 하나마나한 소리다. 그때가서 협정문에 명시되지 않은 것이라고 발뺌하고, 미국이 강력히 항의하면, 게다가 국민들이 열화와같이 분노하지 않으면 유야무야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건 믿는다고 치더라도, 가장 핵심은 이 정부가 어떻든 한 놈이 죽어나가는 꼴을 보고야 말겠다는 인식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광우병 발생 시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문맥상에는 미국이건 한국이건 어느 한 놈이라도 광우병에 걸려 죽어나가야지 수입을 그때가서 중단하겠다는 의미가 생략되어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이는 식품의 안전성, 국민 생명의 보호라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에서 볼 때 상식에 어긋한 발상이다. 왜냐하면 생명에 대한 보호는 예방이 절대요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간 작태를 보면 몇 사람, 몇 십, 몇 백 사람이 죽어나가야 대책을 강화하는 행태들을 보여왔다. 숭례문 방화 사건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리, 사전에 예방하고 단 0.01%의 가능성 마저도 차단해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 먹는 문제이고 생명의 문제라는 걸 정부는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외면하는 것인가?

이번 총리의 담화 내용에 있어 가장 확실하고 이해충실하며 명백한 것은, 온 나라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에 대한 여론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모임이나 집회 등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철저히 대처하겠다는 대목에서 정부의 결연한 의지를 느낀 것은 비단 나만일까? 여권 일각에서는 불순한 세력의 선전선동이라고 호도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나도 좀 선전선동해달라고, 그 세력들이 누구들인지 좀 알려달라고 묻고 싶다. 검찰에서는 이런 불순한 세력들을 철저히 발본색원하겠다고 나서시겠단다. 최근 뉴스를 보니 정부에서 농림부 장관 명의로 MBC 'PD수첩'을 고소 고발하겠다고 천명했단다.

이런 행태가 문제인 것은, 국민들이 걱정하고 우려하는 것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대안과 대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괜히 우매한 국민들을 호도하고 선전선동하며 쓸데없는 소리 해대쌌는 놈들 잡아들여 혼내야겠다는 발상만 하고 있는 것에 있다. 5공시절의 발상이라는 얘기는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부터라도 MBC를 지키기 위해 목숨걸고 나설 각오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다 어디로 갔냐하면 MBC에 다가고도 남음이 있다. 이번 정부의 태도가 자칫 국민들을 자극하여 유혈폭동으로 전화될 수 있음을 정부는 알아야 할 것이다. 어린 학생들이 분노하면 그래서 더욱 무서운 것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국민의 분노를 수그려드리는 방법은 단 하나다. 제발 좀 귀기울여 달라.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은 아마도 신문지 상에 가장 자주 오르내린 말일 것이다. 정부는 이를 다시 반복할 것인가? 요즘 시대에 외양간이 어딨나? 이명박 정부가 표방한 실용주의 현실주의답게 고치면 축사 고친다고 해야할까? 아니다. 제일 우선은 이렇게 바꿔야 실용적이 될지 모르겠다. "소 먹고 어느 놈이건 뒤진 다음에야 협정문 고친다."로 말이다. 제발 정신들 좀 차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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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촛불 문화제에 다녀왔다. 지금까지는 촛불 시위라고 불리우던 것이 저 성가신 딴지걸기를 피하자고 문화제라고 개명한 듯 하다. 민주 사회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자유다. 이것이 이른 바 표현의 자유라는 것인데, 여기에도 자꾸 어느 별 이상한 분들은 딴지를 건다. 마광수 교수는 논외로 하기로 하고, 이번 촛불 문화제만 놓고 봐도 참 언어도단이고 어불성설 하기만 하다. 정치적인 것과 비정치적인 것의 구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해 아래 새것이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생각의 표현에 있어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면 시위, 집회가 되고, 그걸 또 야밤에 하면 불법이라는 이 무식한 법리는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무식하게 구는 것들에 대해서 똑같이 무식하게 굴다간 똑같은 놈이 되는 것이어서, 이 똑똑한 시민들은 살짝이 '문화제'라고 이름한 모양이다. 하여간 이 문화제는 '미친소'를 어떤 식으로든 기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문화제는 문화제다.

처음 참여해본 촛불 문화제의 첫인상은 좀 시시했다. 어수선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모인 사람들도 제각각이고, 주체하는 이들도 제각각이었고, 간혹 잡상인에 별별 전단지까지 돌아다녔다. 누구말을 따라야 하고, 뭘 하면 안되고, 촛불은 언제들어야 하고, 등등등, 많은 부분이 몇 시간 동안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 촛불 문화제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나는 이런 사실이 좀 의아하기도 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여기 모인 제각각의 사람들, 어르신들에서부터 아줌마, 아저씨, 젊은 사람들, 학생들, 어린이들, 간난쟁이들까지,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의사와 의지가 단호하면서도, 그런 혼란들, 어수선함들을 스스로 평정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촛불 들기의 박자는 여전히 제각각이었지만, 미친소 수입 반대의 의지는 똑같았다. 각각의 주체마다 요구하는 것은 조금씩 달랐지만, 나와 내 가족, 내 친구들에게 미친소를 먹일 수는 없다는 그 결연한 의지는 모두 동일했다. 그래서, 괜히 저 성가신 딴지걸기에 빌미를 제공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괜시리 혼란에 몸을 실어 저 무식한 이들에게 구실을 내어 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주위의 있던 어린 학생들까지 스스로의 행동을 자제하고 규제하고 있었다.

나는 이명박 정부의 이번 미국 쇠고기 협상 타결이 스스로의 무식함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고기가 먹고 싶은가? 그런데 어떡하지? 우리들이 먹는 것은 너무 비싼데? 아무래도 니들은 사먹기가 어렵겠지? 그래도 소고기가 먹고 싶은가? 뭔가 좋은 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 아 그래! 아주 싼 소고기가 있는데, 그걸 먹으면 되겠군. 그게 싼데도 질은 좋아. 그거라도 사먹지 그래? 약간, 아주 약간, 문제가 있기는 한데, 뭐 괘찮아. 니들 1000명 중 한 명 걸릴까 말까한, 뭐 광우병인가 뭔가 그런게 있는데, 미국이 안전하다니깐, 뭐 싼데 어때. 그정도면 양호하지. 니들 그거 먹으면 되겠다. 좋지? 수입이잖아. 그것도 세계에서 제일 좋은 나라 미국에서 수입하는 건데. 야, 수입 소고기를 그것도 싼 값에 먹으니까 좋겠다.

이명박 정부는 99.9%의 안전을 보장한단다. 0.1%의 위험은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뭐 비행기 사고날 확률보다 한참 낮은 데, 니들은 비행기 타잖아? 비행기도 타면서, 광우병 그거 아무 문제 없겠지? 그런데 비행기 타는 것과 먹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걸 이 정부는 모른다? 아니 외면한다. 러시안 룰렛이라는 것이 생각하는데, 권총에 총알을 하나 넣어 놓고 돌아가면서 자기 마빡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게임 아닌 게임이다. 확률은? 총알이 몇 개가 들어갈 수 있을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뭐, 적어도 1/10 이상은 될 것이다. 한 놈은 어떻게든 죽게 되어 있다. 그런데 정부 말대로라면 이 광우병은 1000:1의 러시안 룰렛을 이 나라 서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1000개의 과자를 아이들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 중 하나에는 독이 들어 있단다 얘들아, 맛있는 과자니까 니네들 먹어. 한 놈은 죽을지 몰라.(ㅋㅋㅋ) 내 자식에게 일억개의 과자알 중에 하나에 독이 들었으니 잘 골라 먹이라면 먹이겠는가? 일억개 아니 십억개가 있어도 그 중 한 알에 독이 들었다고 한들 어느 부모가 어느 형제가, 어느 가족이 그걸 먹고 먹이겠는가? 이걸 모르는 것이라면 이 정부는 지적인 측면에서 무식한 것이 되고, 알면서도 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방법적 측면에서 무식한 것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식으로 무식하든간에, 그걸 빤히 보고 있는 이 촛불 문화제에 모인 시민들은 다들 부처님이다. 이 부처님들께서 저마다 촛불을 들고 이 무식한 정부에게 마지막 해탈의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촛불 문화제다. 어떤 식으로 딴지를 걸든, 부처님 손바닥 안인 것을, 내 주위에 있던 어린 여고생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면서, 이명박 정부가 똑똑해 지기는 바라지도 않겠지만, 최소한 교활해 지시길, 그래야 살지 않을까 하는 확신을 갖게 됐다. 교활해 지기라도 해서, 어 이거 이러다가 쪽박차겠는데, 하고 정신 번쩍 들어야 하지 않을까? 촛불 문화제면 어떻고 촛불 시위면 어떤가? 그 쪼잔한 술책, 무식한 딴지걸기는 무식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좀 교묘해 지시길. 당부드린다.

2008년 5월 6일 여의도 촛불 문화제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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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07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부가 아무 것도 안 하기를 바라는 국민의 심정을 그자들은 알기나 할까?
몇 달 되지도 않은 정부에 느끼는 거대한 피로감...

전호인 2008-05-07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묘해지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을 어찌하오리까. 그냥 쭈욱 무식버젼으로 가는 것이 상책일 듯 합니다. 바라보는 국민으로서 너무 피곤하니까 단순무식이 오히려 편합니다. 제목만 있지 내용이 없는 정부이기에 기대라는 말을 내뱉는 것 조차 한심스러운 지경입니다. 당연히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을 정치적 논리로 문화제를 바라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도 한심하거니와 기성세대들이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함을 탓하며 중고등학생들이 분기한 것을 놀이라고 폄하하는 인간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런지 암담합니다. 연일 정부를 옹호하며 내지르고 있는 조중동을 보면서 끼리끼리 잘 놀구 있구나로만 생각하자니 가슴만 답답해 오네요.
이 정부가 미국의 연합정부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조중동에만 게재한 미국산 소고기 광고를 보노라면 기가 찹니다

심술 2008-05-08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승철씨 글 딴지일보에서 찾아 읽어봤는데 아 글 되게 어렵게 쓰더군요. 머리 아파서 못 읽겠더라구요.
 

시인 김수영의 미발표 시와 산문 등 15편이 발굴됐다. 나름 특종인듯 싶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사에서 작게 나마 보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튼, 나는 이 사실은 한 일주일 전에 알고 있었다. 기사의 인터뷰에서도 보듯이 김명인 교수님을 통해서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이제야 기사화되다니. 여하튼, 반가운 소식인 듯 하다.

김수영의 따끈따끈한 온기의 시들은 이번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실린 예정이다.

기사를 옮겨온다. 여러 신문에서 보도하고 있지만, 한겨레와 경향이 제일 길~다. 그 둘을 옮겨온다. 먼저 한겨레 최재봉 기자의 기사다.

김수영 미발표시 15편 만난다

40주기 맞아 육필원고 공개…이념문제 ‘반려작품’도 빛봐

<풀>의 시인 김수영(1921~68·사진)의 미발표 시 15편이 새롭게 발굴돼 계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공개된다.

이번에 공개되는 김수영의 시들은 부인 김현경씨가 육필 원고 형태로 보관해 오던 것으로, 문학평론가 김명인 교수(인하대)의 해제와 함께 잡지에 실리게 된다. 김수영이 1966년에 쓴 송년시 <판문점의 감상>이 2002년 전상기씨의 발굴로 <민족문학사연구> 제20호에 소개된 데 이어 2005년에는 방민호 교수(서울대)가 김수영의 초기시 <음악>을 발굴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김수영 시가 한꺼번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명인 교수는 “김수영의 40주기를 맞아 생전에 발표하지 않았던 작품들이 한꺼번에 15편이나 공개되는 것은 커다란 사건”이라며 “이번에 처음 소개되는 김수영의 시 중에는 이념적인 색채 때문에 생전에 발표되지 못했던 작품들도 들어 있다”고 말했다. <김수영 전집>에 실린 산문에는 실제로 신문이나 잡지에 원고를 보냈다가 이념적 문제 때문에 반려당한 작품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이번에 공개된 김수영의 미발표 시들은 올해로 작고한 지 40년이 되는 김수영을 추모하기 위한 ‘추모사업회 준비위원회’에서 학술 세미나를 준비하던 과정에서 부인을 통해 입수한 것이다. <창작과 비평> 쪽은 “발굴된 시들은 현재 입력과 대조를 비롯한 정본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작업이 완료되는 9일께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수영 전집>을 낸 출판사 민음사는 ‘오마주 시집’과 육필 원고 시집 등을 발간하고 시인이 남긴 원고와 사진을 비롯한 유물을 전시하는 등 다양한 추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수영은 초기에 모더니즘 경향의 작품을 썼으나 4·19혁명을 전후하여 현실 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에 깐 참여시를 주로 썼다. 죽기 직전에 발표한 <풀>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경향신문] 참여시인 김수영 미발표 詩 15편 발굴

ㆍ육필원고 부인이 보관… ‘창비’ 여름호에 공개

올해로 추모 40주기를 맞는 대표적인 참여시인 김수영(1921~1968)의 미발표 시가 발굴됐다. 출판사 창비와 문학계에 따르면 부인 김현경씨가 보유하고 있던 시 15편이 이달 중순 발간될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를 통해 공개된다. 이 시들은 육필 원고 형태로 남아있던 것으로, 창비 편집부 측은 “휘갈겨 쓴 것들이라 아직 정본 확정이 안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창비 여름호에서 해제를 맡은 문학평론가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지금 확인해줄 수 있는 것은 3가지”라며 “김수영 시인의 친필원고이며 15편이 남아 있고, 해제가 창비를 통해 나온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시 중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거나 이념적인 색채 때문에, 정치적으로 암울한 시기였던 당시에 발표할 매체를 찾지 못한 시들도 있고 성(性) 담론을 다룬 시들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복 이후 본격적 시작활동을 시작해 초기 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주로 발표했던 김수영은 1960년 4·19 혁명을 기점으로 참여시로 돌아섰다. 그는 주로 현실비판 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발표했다.

시작활동이 늦은 데다 다작(多作)의 작가가 아니었던 그는, 1968년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마지막 시 ‘풀’을 포함해 시 170여 편과 산문 80여 편을 남겼다. 이 때문에 미발표작이 한꺼번에 발굴된 사연과 여태껏 유족들이 공개하지 않았던 경위가 주목된다.

한편 올 6월 시인의 40주기에 맞춰 민음사는 김수영에게 바치는 오마주 시집과 김수영의 육필 원고로 된 시집을 발간한다. 또 김수영추모사업회는 시인이 남긴 원고와 사진 등을 전시하는 추모 행사를 마련할 예정이다.

< 윤민용기자>

~옮겨놓고 보니 별로 길지도 않네...ㅋㅋ 아무튼, 평론가들이 바빠지게 생겼다. 이번 발표작들이 그간의 김수영 평가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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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8-05-02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소식이네요. 산문전집에 반려된 시에 대한 불평글이 실린 것을 기억해요. 산문전집은 노란가방 님 입대선물로 주었는데, 하나 또 사야 할 듯~~
나중에 시 나오면 구경해봐야겠다~~ 잘 들었어요^^

순오기 2008-05-03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건 경사로군요. 좋은 소식!!
 

600년을 꿋꿋하게 버텨 온 숭례문(崇禮門)이 단 5시간만에 무너져 내린지도 열흘이 되어간다. 국보 1호라는 위상에 걸맞게 그 무너짐도 비장해보였다. 숭례문이 왜 국보 1호를 등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수도 서울에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는 현대 대한민국의 어떤 상징성이 강하게 작용하기도 했을 것이다. 문화재에까지 서열과 순위를 매기고 그 중요도를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렇게 숭례문을 1등을 자리에 올려 둔 이들이 그토록 무참히 무너져내리도록 내버려두었다는 것은 오늘날 순위와 서열 매겨지는 사회의 뻔한 앞날은 아닐런지 심히 걱정된다.

예를 높이고 숭상한다는 숭례문이 무너지는 순간, 바야흐로 대한민국에서 더이상 '禮'는 숭상받을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유교적 의미에서 禮가 왜곡되고 관념화되어 허례허식으로 치우쳐져 이제는 버려야 할 것이라는 편견이 생겼지만, 본디 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공자에게 있어 예는 "몸가짐을 바로 하고 표정을 단정히 하는" 것에서부터[禮義之始, 在於正容體, 齊顔色] 시작된다. 그리하여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고 강조한다. 각 개인의 몸가짐과 행동에서 먼저 예의를 지켜 행하는 것이 공자의 예였다. 그러나 그것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현실을 외면하고 관념화 되면서 왜곡되고 폐해를 낳게 된 것이다. 그렇게 조선이 무너졌지만, 현재에는 숭례문이 무너졌다. 현실에 맞지 않는 예를 지나치게 강조해서 유교주의 사회 조선이 무너졌다면, 오늘날에는 기본적인 예 조차 지켜지지 못해서 '숭례'의 상징 숭례문은 더이상 그 자리를 버티고 설 면목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예가 아님에도 돈이 되면 보고, 듣고, 말하고, 행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일말의 예가 남아 있을리 만무하다. 그래서 숭례문은 임란 호란을 이겨내고, 동족상잔의 비극까지도 감내해왔지만, 예조차 남아있지 않은 이 현실에선 라이터 불꽃에서 시작된 그 화염에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고 했지만, 대통령도 장차관도 모두 최고의 CEO일 뿐이고, 아비는 자식을 죽이고 학대하고, 자식은 부모를 버리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숭례문은 무너졌어도 벌써 무너졌어야 옳았는지도 모르겠다.

숭례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숭례문이 불타 무너져내리던 그 5시간 동안 나는, 앞으로의 대학민국 5년을 보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 것도 같다. 발화 초기 연기만 나던 대수롭지 않아 보이던 화재가 순식간에 제어할 수 없는 화마로 돌변하기까지 우리 소방당국은 물만 뿌려댔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나라가 무너지고 황폐화 되어가는 이 시기에 등장한 새 대통령이 "경제는 꼭 살리겠다"는 소리만 줄창 해대는 것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와 함께 오버랩 되는 것은 인수위원장이 어륀지인지, 오륀지인지 모를 소리를 해대며 몰입하라고 강권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스탠다드요, 세계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저 시골 5일장에서 이빠진 할머니도 살아남기 위해선 어륀지 해야할런지 모르겠다. 기와를 걷어내고, 뜯어서 그 작은 불의 원천을 꺼야 한다는 것을, 명박이도 경숙이도 몰랐던 것일까? 경제만 살려 놓으면, 오늘날 대한민국에 붙은 이 불이 꺼질까? 5년후 대신 무너져 줄 숭례문은 이제 없지 않은가?

한미FTA만이 살 길이라는 소리도 저 많던 수십대의 소방차에 불과할 뿐이다. 숭례문이 불타던 자리에 어느 누구도 공자가 말하는 "君君, 臣臣, 父父, 子子."를 다하던 이는 없었더랬다. 어느 인터뷰에서 외국인의 말은 뼈아프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숭례문을 관리했더라면,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거라며 우리만큼이나 안타까워 했다. 국보 1호라며 귀하게 여기던 숭례문을 벗겨놓으면서 가림막이라도 쳐 줄 사람 하나 세워놓지 못한 명박이는 아직 사과 한 마디 없다. 성금 모아 복원하자고 되로 줬다가, 헌납한다던 300억으로 해라며 말로 받았다. 그러나 그 꼴도 눈사나워 못보겠다는 성토가 이어진다.

일본놈들이 붙여줬다고 그러는지 '남대문'하면 영락 없이, '남대문'이 아니고 '숭례문'이 맞다고 하는데, 오히려 남대문은 다른 것을 상징할 때도 많다. 그럴때 남대문은 南大門인지 男大門인 것이지 잘 구분이 가지 않지만, 분명 그것은 남자들의 중요한 대문이었고, 남대문이 열리면 인사를 꼬박꼬박 잘 했더랬다. 남대문이 열리면 참 민망하다. 그도 속옷이나 제대로 있었으면 모르지만, 꼬질꼬질 한 팬티를 입고 있다면 못 볼 일이다. 더욱이, 노팬티라면 할 말 없다. 대한민국의 '남대문'이 열렸는데, 알고 봤더니 노팬티였던 것이다. 그런데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대통령 (당선자하면 안 되고) 당선인은 경제만은 살리겠다고 하고, 전봇대 뽑으라고 명령했더니 하루 아침에 뽑혔다고 자랑하고, 자기는 매일매일 변하는 인간이라고 하고, 대한민국 통째로 땅파서 걸레만들어 놓겠다고 한다. 참 정안가는 경숙씨는 미국가서 오렌지 사먹기 힘드니 어륀지 사먹자고 하고, 자꾸 어디엘 그리 몰입하자고 하고, 당선인 찬양하기에만 바쁘다. 같은 교회 장로, 권사가 잘 어울려 노니 에구 아름다워라. 그 밑의 인수위원인지 자문위원이지 하는 것들을 이곳저곳 돌며 장어구이 식당을 인수하러 다니는 것은지, 방송가를 인수하려고 하는 것인지, 여튼 그 인간들은 짤렸지만, 나머지 인수위원들은 지금 다른 걸 인수하려고 맘먹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쯤하면 막하자는 거"라던 노무현의 말은 여기서도 썩 어울리는 언설이다. 숭례문이 무너져내렸는데, 사실 예서 더 막장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5년 후, 무너질 것은 뻔하다. 경제라는 물만 뿌려대겠다는, 영어만 잘 하면 최고라는, 여기저기 땅만 파면 되는 거라는, 대한민국의 5년이 그들의 손에 있는 한, 숭례문처럼 그렇게 무참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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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2-20 0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을 하리요!
애들도 한숨 쉬는 우리 미래가 뻔하게 보이는데.ㅠㅠ

마노아 2008-02-20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 사설 보는 줄 알았어요. 멜기세덱님 얘기 모두 옳아요! 그래서 슬퍼요ㅠ.ㅠ

bookJourney 2008-02-20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휴, 한숨이 나오네요.
그냥 추천만 꾸욱 ~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대학엘 들어가고, 이리저리 방황도 했다. 그러는 사이 군대라는 몹쓸 곳에도 다녀왔고, 현실과 나 자신에 대한 체념일지도 모르지만, 현재 나에게 주어진 여건에 최선이나 다해보자는 마음으로 복학을 했고, 무사히 졸업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깐, 졸업 후 2년을 현실에 대해 허송세월했고, 책이나마 열심히 읽었다. 그렇게 10년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숫자놀이에 재질이 없다. 10년이니 100년이니, 하물며 투투데이니 백일 기념일이니 하는 것을 썩 탐탁해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엇을 기념하고 기억한다는 것, 어떤 특정한 날, 특정한 시간의 흐름 뒤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인지상정에 속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구분지어 놓은 서른이란 나이에 서러워지는 것을 나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10년이란 감상에 빠져드는 것이니, 이것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닌 것으로 봐서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자주 하고 줄곧 듣지만, 내가 보는 내 주변의 '강산'들은 그리 썩 변한 바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는 많이 변했다. 많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생겨났다. 내가 느끼는 변한 바 없음은 그 생겨남이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심 밖의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내가 느끼는 10년이란 세월의 무상함은 간혹 씁쓸함이다. 그나마 보이던 자그마한 서점이 자취를 감춰버린 것, 매일 같이 들르던 단골 당구장이 1년 넘게 문을 닫고 있다는 것 정도. 그런 사라짐의 씁쓸함 외에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이미 오래 전에 접어두었다. 문득 당구장 사장님의 병환에 차도가 있는지 궁금해 진다.

늘 같은 곳에 있으면서 많은 변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변화로 느끼지 못하는 무딘 감각의 탓일지도 모르겠다. "큰 소리는 잘 들리지 않으며 큰 모양은 형태가 없다[大音希聲, 大象無形.]"는 노자의 말처럼, 그 안에서 아등바등 살아 온 나로서는 어떤 거대한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현재까지는 여전히 '강산'의 10년 변화를 절감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이 문득 떠오른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알 수 없었다는 장자의 이야기처럼 중요한 것은 마음인지 모르겠다. 강산이 변한 만큼 나 스스로도 내가 알 수 없는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변하는 세월 속에서 10년 전의 나만을 생각하고 세상의 무상함을 한탄하는 것도, 세상의 변화에 나 또한 체념하며 아무런 반성 없이 사는 것도, 모두 소용없는 짓이다. 내가 놓아야 할 것과 끝까지 쥐고 있어야 할 것, 그것을 가지고 세상을 보고, 10년의 세월을 바라보아야 하겠지?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세상은 변하고, 나도 변하고, 우리는 모두 변하지만,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 존재하지 않을까? 그와 함께 이제는 버려두고 나아가야할 삶의 아집이나 편견들도 많을 것이다. 내가 지난 10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허심탄회 하는 것은 일전의 어떤 충격 혹은 만남 때문이다. 정확히 10년의 학번차가 나는 새내기와의 뜻밖의 만남, 그것이 주는 충격이 컸기에 나는 지난 10년을 묻게 된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란 게 조교이니, 해마다 신입생들을 줄곧 만난다. 다들 내 후배이니 만큼 애정이 크다. 그와 함께 새로운 사람들을, 젊고 신선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은 기쁨이면서 어려움이다. 그러나 이번의 아주 사소한 대면에서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간혹 이맘때 쯤에, 입학이 결정된 신입생들이 한 둘 학과사무실에 찾아오기도 한다. 학생증 발급 신청 때문이 주된 이유다. 며칠 전에 내가 만난 새내기도 그런 이유로 학과사무실을 찾았다. 그런데, 우리 학교에서는 신입생들의 대량의 학생증 발급을 보다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일괄 접수하고 발급한다. 그러니 그렇게 미리와서 학생증 신청을 해도 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학과사무실을 찾아 온 그 새내기는 헛걸음을 했으니 불만스러웠을 게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 새내기에게 내가 이러한 사정을 친절히 전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불손하다거나 한참 어린 후배이기 때문에 함부로 대한 것 같지는 않다. 있는 그대로 공식적이고 사무적인 답변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새내기는 들어올 때도 그랬지만 나갈 때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만이 그 마지막 표정이었던 것이 다를 뿐이다. 그 새내기가 학과사무실을 나가면서 어디서 '퍽' 소리가 났다. 나와 내 후배였던 한 친구가 깜짝 놀랐다. 그 새내기는 사라졌고, 우리는 이 소리가 어디에서 났던 것인지를 곧 알아낼 수 있었다. 그 새내기가 줄곧 들고 있었던 것이 종이컵이었고, 사무실 안쪽 문 옆에 놓여있던 쓰레기통에 힘차게 뿌리치고 나가버렸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남겨진 나와 내 후배는 한참을 멍했다. 그 후배는 뭐 저런 게 다 있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나 이제 어떻해야 할까?'를 걱정했다. 그 새내기는 나를 선배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행동은 좋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일종의 싸가지 없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후배로서 선배에게 보여야할 싸기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간혹 우리가 은행이나 동사무소엘 가더라도 그 새내기처럼 행동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나는 그런 종류의 싸가지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예의가 그 새내기에는 좀 부족해 보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처음 만난 10학번 차이의 신입생 후배에게서 느낀 첫인상이다. 그래서 더욱 걱정인 것은, 내 후배 08학번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로 이것이 작용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선배와 후배를 나누고 후배는 선배에게 깎듯하게 예의바르고 무조건적으로 충성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만남과 관계에서는 기본적 예의가 필수적인 것이 아닌가? 내가 처음 만난 그 새내기 친구에게서 그런 예의 없음을 본 것이 08학번 전부에 대한 편견으로 작용할 것이 두렵다. 그런 친구들에게 내가 어떻게 다가가야 할 지도 걱정이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생각을 10년의 세월로 넓혀간 것은, 좀 다른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모든 08학번들이 그 새내기와 같겠는가?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10년 전의 나와, 아니 1년 전의 07학번 후배들과는 많이 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 친구들과 앞으로의 1년을 지내기 위해서는 나의 마음가짐도 많은 부분에서 변화하고 수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척 어려울 것 같다는 데서 오는 어떤 두려움이 크게 일어난다.

혹여, 내가 이 새내기들에게 자칫 무례한 사람이 될지도 모를 일이고, 선배로서의 헛된 권위로 그들을 강압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내 기준에서, 선배의 생각과 행동을 강요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내가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간에 그런 부당함을 내가 저지른다면, 그 친구들에게 나는 며칠 전의 그 새내기처럼 인간적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인간으로 보여질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래서 1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 걱정이다.

"10년 세월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 속에는 강산 이전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 전제에 반드시 포함되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10년의 세월 뒤에 내가 만나는 08학번 친구들은 10년 전의 98학번 나보다, 어느 10년 세월 변한 강산 만큼의 변화된 인간일 것이다. 나도 10년의 세월을 따라 변했지만, 그렇게 변한 나는 이제 30대의 모습이고, 그들은 20대다. 세대 차가 분명 있을 테지만, 적어도 인간으로서의, 인간적 관계에서 지켜지고 존중되어야 할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난 그것이 어떤 것인지 진중히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그 지켜야할 예의를 사랑하는 내 후배가 될 08학번들에게 지켜주고 싶다.

어쩌면 장자와 나비는 다른 것이 아닐 것이다. 장자가 곧 나비고, 나비가 곧 장자였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나나 10년 후배나 다른 차원의 인간이 아닐 것이다. 세월이 변하고 강산이 변하고 인간이 변하더라도, 그 변화 속에 사는 내 마음을 어떻게 가져가는 가에 따라 삶은 달라질 것이다. 난 그렇게 믿는다. 우선 내가 가져야할 마음 가짐은, 내가 며칠 전 첫 대면한 그 후배의 다소 무례함을 이해하고 잊는 것부터일지 모르겠다. 그것도 그리 쉬울 것 같지 않지만 말이다. 내일이면 08학번 친구들이 학교에 온다. 그들은 또 어떤 모습이고 새로움일지 설레고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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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2-19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08학번은 22일에 입학식을 한다네요. 아마도 21일 밤에 올라가야 할 듯...

멜기세덱 2008-02-19 09:35   좋아요 0 | URL
입학식을 그렇게 일찍해요?ㅎㅎ
아무튼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ㅎㅎㅎ
공부하다가 힘들면, 멜기세덱을 찾으라고도 전해주시구요...ㅋㅋㅋㅋ

순오기 2008-02-19 21:28   좋아요 0 | URL
원래 예비소집일이고 사흘뒤 OT, 3월 입학식이었는데, 지방생들 때문에 변경한 듯...감사하지만, 멜기님을 찾을만큼 힘들지 않기 바라는 엄마 마음 아시죠?^^

조선인 2008-02-19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의 간극 무섭죠. 그나저나 98학번이셨군요. 어맛, 어려라. ㅋㄷ

멜기세덱 2008-02-19 09:35   좋아요 0 | URL
아직, 철부지죠 뭐....ㅋㅋㅋ

마늘빵 2008-02-1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런 싸가지들 항상 있죠. 근데 해가 지날수록 점점 많아지는 거 같은 느낌입니다. 제가 나이를 먹고, 보수적으로 변해서라기보다는, 아해들이 점점 싸가지 없어지는거 같습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가 결여된 애들이 많아요. 00학번이었던 제 후배 하나도 그런 녀석이 있었어요. 동아리 후배였는데 교양수업 중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서 교수님이 화가 났는지 학생 뭐하는거냐 어쩌고 했는데 얘가 적반하장으로 막 싸가지 없게 굴은거죠. -_- 그래놓고 저한테 와서는 자기는 잘못한게 없는양 궁시렁궁시렁하는거에요. -_- 어이가 없었습니다.

bookJourney 2008-02-19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에는 나이 차이를 의심했는데, 꼭 나이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나이에 관계없이 기본적인 '인간됨'의 문제가 아닐런지 ... 가끔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건지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