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나라당 고조흥 의원이 대표발의한 군가산점제를 재도입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이 국회 국방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에도 불구하고 군가산점제를 부활시킨다고 하니 논란이 이는 것은 명약관화한 노릇이다. 여성부를 비롯한 각계 여성단체 및 진보단체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오늘 고조흥 의원이 MBC 낮 뉴스에 출연해 대표발의한 병역법 개정안에 대해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았다. 중앙일보 오늘자 신문에는 지면을 대폭 할애하며 군가선점제 재도입에 대한 토론 기사를 내보냈다.

<프레시안> 전홍기혜 기자의 "군가산점제, 여성들만 피해자일까?"라는 기사에서 간략히 군가산점제에 대해 정리한 부분이 있어 옮겨본다.

군가산점제는
  
  기존의 군가산점제는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제대군인에게 총점의 3~5%를 가산점으로 주도록 돼 있었다. 이는 공무원 시험 응시율이 매우 높고 응시자들의 점수 차가 크지 않아 아주 근소한 점수 차이로 합격, 불합격이 나뉘면서 군가산점제 때문에 여성과 장애인은 물론이고 군대를 안 간 남성들의 경우 만점을 받더라도 불합격할 수 있을 정도의 특혜가 됐다.
  
  그러자 공무원 시험을 치렀거나 준비 중이던 여성과 장애인들이 공동으로 군가산점제가 평등권, 공무담임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전원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고, 군가산점제는 1999년 폐지됐다.
  
  이번 개정안은 폐지된 지 8년 만에 다시 제대군인들에게 군 복무와 관련된 보상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이다. 기존 제도와 다르게 이번 개정안에서는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제대군인에게 과목별 득점의 2% 이내의 가산점을 부여하도록 바꿨다. 또 채용 선발 인원의 20%를 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가산점을 부여하고, 응시 횟수도 대통령령을 통해 3회 정도로 제한하도록 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도록 가산점의 비중을 낮추고 선발인원과 응시 횟수도 제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장치를 두었더라도 고용상의 남녀평등과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헌법적 가치를 여전히 침해하고 있다는 점, 또 실제 공무원 시험에서 합격과 불합격이 아주 근소한 차이로 갈려 2%의 가산점은 등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점수라는 점에서 기존 제도와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고조흥 의원이 대표발의한 병역법 개정안의 군가산점제도의 내용은 1999년 헌재판결로 위헌 결정이 난 가산점의 수치를 다소 축소 조정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곧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한 이유인 "평등권, 공무담임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군가산점제의 위헌 요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과 국방부에서 군가산점제의 부활을 추진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참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자꾸 찔러보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하는 억하심정에서 일까? 이번 군가산점제 재도입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군가산점제, 군복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인가?

  군가산점제는 분명 군복무에 대한 보상을 표면적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적절한 보상인가 하는 점에는 의문이다. 군가산점제로 보상하기에는 군복무로 인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교통사고 내고 딸랑 책임보험만으로 배째라 식이 아닌가 한다.

  남자들이 군복무으로 인해 받는 피해를 단순히 금전적으로 계산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수 있겠다. 현재 우리의 군장병 규모는 60만명을 넘는다. 차포떼고 60만으로 계산하자. 그러니까 매일 60만명이 군대에서 복무하고 있다는 얘기다. 복무기간이 줄어들고 있으나 간단히 20개월로 치자. 그러면 이런 계산이 나온다. 건장한 20대 초중반의 청년들 60만명이 20개월 동안 단순노무 노동을 한다고 치더라도 한 달에 100만원 못받겠는가? 이렇게만 계산해도 경제가치 무려 12,000,000,000,000원(60만×100만원×20개월)이다. 12조원이다. 연간 7조 2천억원, 매월 6천억원이다. 이런 경제적 가치가 군대에서 거의 소멸되다시피 한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 않는가? 총을 든 시간보다 삽을 든 날이 더 많았던 기억이 내 군시절이다. 개인당으로 따져보면 군복무기간 동안 2천만원을 손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2천만원 내고 공무원시험에서 딸랑 2% 가산점 받겠다고 할 사람 누가 있는지 나와보시라.

  이런 점에서 군가산점제는 너무나 부족하다. 합당한 보상 대책을 간구하지 않고 쉽고 돈 안 드는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것은 신성을 들먹이며 국방의 의무를 떠넘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치사하고 비루한 행태이다. 그러면 군가산점제를 대폭 늘리자는 얘기인가? 저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좀 제대로 보상하라는 얘기다. 군가산점제를 부활하려는 저들의 논리에 따르면 군복무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우리나라의 경제여건상 불가능하단다. 개탄할 노릇이다.

2. 군가산점제, 왜 또 남여의 대립을 부추기는가?

  군가산점제가 군복무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아니면서, 괜시리 남여의 대립을 부추기고 있다. 여성들이야 위헌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이런 법같지 않은 법을 들고 나오니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반 남자들은 거기에 대해 니들도 군대가라 식이다. 여기서 여성들은 우리는 애 낳지 않느냐로 반문한다. 머리끄댕이 쥐어뜯으며 쌈나게 생겼다. 그런데 군가산점의 문제는 남녀가 군대가니, 애낳느니 하며 싸울 문제가 전혀 아니다.

  군가산점제는 일반남성들의 피해를 전적으로 여성들에게 전가시키는 국가의 배반행위에 다름아니다. 가산점을 주어 남성들을 공무원 선발해서 국가가 손해보는 것이 무엇인가? 절대로 돈 한 푼 들어가지 않는 누워서 떡먹기식 보상방법이다. 국가가 생색내고 군복무자는 꼬딱지만한 보상받고, 그 피해는 여성들과 장애인들이 죄다 받는다.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논란이 점화되면서 남자들과 여자들, 아들 둔 어머니들과 딸 둔 어머니들의 막싸움이 나오게 된다. 거기에서 군가산점제를 불쑥 던져둔 저 교묘한 정책입안자들은 쏙 빠져버린다. 니들은 싸워라, 나는 모른다, 내가 손해 볼 것 없다 이거다.

3. 군가산점제, 전복적 사유로의 가능성

  선심쓰기, 졸속행정, 전시행정의 대명사로 불리기에 충분한 군가산점제다. 여기서 군가산점제만을 두고 여성계나 남성계가 다툴 일이 아니다. 좀더 멀리보고 이런 비루한 정책을 무책임하게 떠벌린 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한 전복적 발상이 필요하다.

  기실 근대적 군대의 형성 이후 우리 군대가 한 것이 무엇인가? 조심스럽지만 내가 볼 때,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는 커녕,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우리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몰아 넣었고, 독재정권의 반국가적 민중학살에 아무 것도 모르체 동원되었을 따름이다. 이쯤하면 군대의 해체를 말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국방, 곧 나라를 지키는 것을 업으로 한다면서 우리 군대는 이에 자랑할 만한 그 무엇이 있는가?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런 군가산점제 같은 저질스런 발상은 애당초 하지 못하게 우리는 군대 해체의 상상을 해봄직하다. 대다수 일반 남성들의 피해, 이 피해에 대한 말도 안되는 보상정책, 그로인한 여성들과 소수자들에 대한 피해전가, 폭력적, 군사주의적 사회 형성, 기타 등등. 우리는 이런 대한민국을 혐오하면서도 거기에서 더 나아가 근본적, 거시적 안목에서의 대안을 향해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그런 전환의 사유에로 나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가능성을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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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서재 투데이가 평소와는 다르게 비교적 높아서 이상하다 했는데, 알고보니 5월 넷째 주 '이 주의 마이리뷰'에 내 리뷰가 뽑혔던 것이다.

알라딘에서 서재질을 시작한 이후 알라딘 서재를 대상으로 하는 정기적 시상제도에 뽑혀보긴 처음이었다. 다분히 경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인데, 기분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왜일까?
<이 주의 마이리뷰> 선정 도서 : http://www.aladin.co.kr/blog/aladdintown/wmyreview_best_weekly.aspx

다만, 요즘 알라딘에서 중복리뷰논란 이후 최대의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서재의 달인 시상제도가 아닌, 비교적 덜 문제적인 마이리뷰에 뽑힌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그러고 보니 알라딘 마을 메인화면에 <추천 마이리뷰>란에도 나의 마이리뷰가 딱하니 자리를 잡아 버렸다. 이건 기분이 좋은 일이다.
<알라딘 마을> 메인 화면 : http://www.aladin.co.kr/blog/aladdintown/waladdintown.aspx

"왜 하필 어제 나는 이 책을 읽었고, 또한 왜 하필 오늘은 '성년의 날'이어서, 붉게 활짝핀 장미꽃 한 송이 받아보지 못하고 굶어 죽어간 저 절반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울적해지는가?"라는 답답스런 문장으로 리뷰를 써내려간 것이 아직 마음에 묵묵히 자리하고 있던 차에, 왜 하필 나의 다른 좋은 리뷰(?)도 많은데 이 리뷰가 뽑혀서 오늘 그리 유쾌하지 못하게 하는가?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뽑혀서 좋고, 덤으로 5만원의 적립금을 준다하니, 이도 좋은 일이지만, 세계의 절반이 굶주린다는데, 그보다도 이 순간 죄없는 어린 영혼이 죽어가고 있다는데, 그 죄악에 소극적 동조자 혹은 방조자일지도 모를 나에게, 그 책으로 인해 5만원의 사례금이 지급된다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는 자못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을 지경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사상 첫 리뷰당선의 기쁜 맘에도 불구하고, 50000원으로 어떤 책들을 사볼까 행복한 고민에 맘놓고 빠져들 수 없는 그런 막막한 상황에 처해버렸다. 그렇다고 이 50000원을 아프리카 오지의 굶어죽는 어린 영혼들에게 보내는 것도 그리 현실적이진 못한 것 같고, 참으로 딱한 처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생각을 며칠 해보았다. 이 적립금으로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보내주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해서 이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고, 더 많은 사람이 이 참혹한 현실을 개탄하고, 그러한 현실을 뒤집어 엎어버리려 노력한다면, 이 돈을 아프리카로 보내는 것보다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아닐까하고.

그러나 이것도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을 거라는 조심한 마음이 든다. 하여간에 내가 꿀떡하고 이 적립금을 먹어버릴 수는, 차마 못하겠다. 이렇게라도 써놓아야 이 적립금을 내뱉을 것만 같기 때문에.

참고로 아직 알라딘 이벤트 당첨 상품이 오질 않고 있고, 이 적립금도 아직 안 들어오고 있다. 지난번 네이버 이벤트 상품과 알라딘 이벤트 당첨 상품과, 이 적립금을 합해서 조촐하나마 이벤트를 마련해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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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6-01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냥 박수친 제가 머쓱해집니다. 멜기세덱님의 마음밭이 따뜻합니다.

마늘빵 2007-06-01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음 돈 들어오자마자 질러버렸을겝니다. -_-

프레이야 2007-06-01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세덱님, 어쩌겠어요?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하시니 고개 숙여집니다.


멜기세덱 2007-06-01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너무들 박수 안쳐 주셔서 속상했었는걸요...ㅋㅋ
아프락사스님> 아직 안 들어왔다니깐요...ㅋㅋ
배혜경님> 고개 숙이시지 마세요. 고개 당당히 들고 다니셔도 충분할 만큼 아름다우십니다.

Mephistopheles 2007-06-0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세덱님의 페이퍼를 읽으면서 그 책을 사서 뿌리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뒷부분에 등장했어요...생각은 많이 해도 행동으로 옮기기 힘든
일인데..^^ 멜기세덱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조선인 2007-06-02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히 제가 으쓱해지고 자랑스러워지네요. 멜기세덱님을 안다는 사실만으로요, 같은 당원이라는 것만으로요. *^^*

2007-06-03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즘 한미FTA를 맺느니 못 맺느니 시끄러운 가운데, 나의 관심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비사범대 교직이수자에 대한 교원자격증 발급 비율을 대폭 줄이겠다는 소식이었다.
* 관련기사 http://news.media.daum.net/society/people/200704/02/donga/v16248328.html
* 관련뉴스 http://tvnews.media.daum.net/part/societytv/200704/02/ytni/v16248728.html

교육인적자원부의 이러한 조치는 그들 말대로 “교사 자격증 취득 요건을 강화해 교사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수급 불균형도 어느 정도 해소하기 위한 조치”일 수 있다. 정말 그럴 듯 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조족지혈(鳥足之血), 문자 그대로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 조치, 아니 흉내에 불과하다. 요즘 인기있는 개그프로의 한 유행어를 따라해 보면, "이건 조치 한 것도 아니고 안한 것도 아니여"다.

교육인적자원부는 그 전신 '교육부'에서 이름이 바뀌면서 지금의 교육'인적자원'부(강조는 필자)가 된 것이다. 박노자 교수의 지적처럼 무엇보다 '인적자원'의 활용가치를 중시하는 개명(改名)이다. 그렇다보니 '교육'적 논리보다는 '인적자원'의 효율과 경쟁력만이 강조되어 왔다. 그 정책으로 유지되어 온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지금까지의 교원수급정책이었다.

 

 

 

1950년대 이후 80년대에 이르기까지 교원의 수급은 용이하지 못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로인해 정부 당국의 교원자격 남발은 시작된다. 어떻게든 부족한 교사를 충원해야 했고, 당시에는 교사가 그리 인기직업은 아니었다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한 교원자격의 남발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우선 사범대학을 늘리고, 그로 부족해 비사범대의 교직이수 과정을 대대적으로 만들었다. 복수전공 및 부전공 이수를 통해서도 교원자격증을 발급하게 된다. 이로 인해 80년대 이후로 접어들면서 교원수급의 정체현상이 나타내게 된다.

교원수급의 정체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문제의 원인은 첫째도, 둘째도 교육당국의 교원수급 정책에 있다. 교원이 부족할 때(사실상 교원이 부족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필요한 만큼을 충원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이름하여, 예산부족으로 말이다.) 대대적으로 교원을 양성하다는 명목하에 교원자격을 남발했고, 교원이 어느정도 충원되어서까지 교원자격을 남발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정체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교육당국은 이런 교원자격의 무분별한 남발에 대해 이런 식의 논리로 변명한다. 교원의 경쟁력을 강화시킨다는 논리말이다. 말하자면, 10놈 중의 한 명보다는 100놈 중의 한 놈이 더 나을 거 아니냐 하는 논리말이다. 질 높은 교원을 선발하기 위해서 교육인적자원부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은 더 많은 교원후보생들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들을 잘 양성하고 교육하여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많은 인원을 확보해 놓고, 그들 중에서 젤 잘난 놈 하나 뽑으면 되는 것이라는 소리다.

이러한 정책의 일환인지, 대학들의 돈벌이 장사를 시켜주려는 심산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교육대학원이라는 특수대학원을 현직 교사들의 재교육 목적으로 설립해 놓고, 여기서도 교원자격증을 판매하고 있다. 교육부의 논리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다. 다다익선(多多益善)

여기서 잠깐 이 적체현상의 심각성을 살펴보자. 인천의 모대학교 사범대학 모 과를 예로 들면 이렇다. 이 과의 학년 정원은 40여 명이다. 이 인원이 대학 4년을 마치고 졸업한다.(군대로 인한 휴학, 복학 인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 40명은 넘는다.) 여기에 전과로 4명이 추가된다. 편입학으로 4~8명 가량 추가될 수 있다. 복수전공(단, 사범대학생만이 복수전공이 가능하다.)으로 8명이, 부전공(비사범대 가능)으로 8명이 추가된다. 따라서 이 과에서 배출하는 교원자격은 7~80명 선이다. 이 대학교는 교육대학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동일 교과목의 교원자격증 발급자는 한 해에 100명을 넘게된다. 또한 비사범대학의 교직 과장 이수자까지 합하면, 더 늘어난다. 작년도 임용시험에서 이 과목 선발인원은 3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한 학교에서 배출하는 인원만이 시험을 본다고 하더라고 합격률은 30%도 못된다. 나머지 70%는 뭐하느냐? 재수 준비에 박차를 가할 뿐이다. 다른 분야로의 진출은 현실적으로 막혀있다고 봐야한다.

작년도 이 지역의 이 과목 경쟁률은 20:1(실경쟁률은 다소 낮음)에 달했다. 30여명 뽑는데 1000명가량이 지원했다는 소리다. 이 적체는 10년이상 계속되었다. 앞으로는 더 그러할 것이다. 내년도 모집인원은 아무리 좋게 봐도 예년보다 더 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번 부전공 이수자 교원자격 발급을 줄여 교원자격 취득자 수를 15%가량 낮춘다고 하더라도 교원수급이 그보다 더 줄어버리니, 이건 낮춘것도 아니고 안 낮춘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코미디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이번 조치는, 그간 사범대 학생들의 계속적인 요구사항 중의 하나였다. 부전공 및 교직 과정 이수자에 대한 교원발급을 중단하고, 기타 무분별한 교원자격증 남발을 중지할 것을 요구해 왔다. 그중 극히 일부인 부전공 이수자에 대한 교원자격 발급 비율 감소 조치는 티도 안나는 조치에 불과하다. 이것으로 어느 정도 수급 불균형을 해소할 거라는 허무맹량한 소리를 해대니 기가 찰 노릇이다.

사실상 교육인적자원부는 수급 불균형에 대한 해소의 노력을 보인 것이 하나도 없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을 뽑으려면 머릿수가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돈 안드는 정책이다. 돈 안들이고 질 높은 교사 똑똑한 교사 뽑겠다는 얘기다. 군계(群鷄) 중에서 한마리 학(一鶴)을 뽑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많은 닭들 중에서 뽑아봤자 그건 학이 아니라 닭일 뿐이다. 무분별하게 교원자격증 발급해 놓고, 거기서 뽑아봤자, "그게 그거"라는 사실은 우리 교육 현실은 말해주고 있잖은가?

좋은 교사 뽑기 위한 노력은 이렇게 돈 안드는 티내기 전법으로 일관한다. 한 가지 좋은 예가, 이번의 교사 선발 방식의 변경이다. 현행 2번의 시험에서 3번의 시험으로 변경하는 내용인데, 다시 한 번 "그게 그거다." 논리인 즉, 2번 줄세우는 것 보다, 3번 줄세우는 것이 더 좋은 놈 뽑기에 낫다는 얘기다. 하긴 맞는 말이긴 하다. 시험 잘 보는 교사 뽑아야 학생들 시험 잘 보게 가르칠 것이 아니겠는가?

교육인적자원부의 교육 정책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책없는 전시행정인지 이루 다 말하기도 어렵다. 출산률 감소에 따른 학생수의 감소로 교원 선발 인원을 대폭 줄이는 처사 또한 그 무대책의 정책에 하나이다. 현재 각 학교에서는 학생수의 감소로 인해 과밀학급이 편성되고 있다는 웃기지도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교원 수급을 줄이고 대신에 학급당 인원을 더욱 늘린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경제강국이라고 자랑하고 있으면서도 사회 제도 및 여러 측면에서 그에 걸맞지 않은 현실들이 보고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교육문제다. 선진국으로 가는 이 마당에 출산률 감소의 위기를 학급당 학생 수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정책을 간구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교원 수급 불균형을 줄이면서, 적은 예산으로 장기적인 학급당 학생수를 줄여나가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툭하면 예산 부족을 핑계삼는 교육인적자원부에는 교육예산을 보다 많이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있는지를 묻고 싶을 따름이다. 현행 교원양성체계 또한 체계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체계가 없다. 그들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체계없는 이러한 조치들이 무슨 실효가 있겠는가? 교육인적자원부는 그 옛날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가장 탁월한 전술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무식하기 이를데 없는 '인해전술'이 오늘날 우리의 교원 수급 전략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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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가는 인터넷 바둑 사이트가 있다. 요즘은 각종 온라인 게임들을 많이 즐기고 젊은 사람들이라면 그런 것 하나쯤 못 하는 사람들이 없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런 게임에는 도통 재능이 없다. 조금 유별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유일하게 즐기는 온라인 게임은 이 바둑 뿐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내 주위에는 더더군다나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다. 그런 나에게 인터넷이란 매체는 바둑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해 주었다. 온라인 바둑 사이트에 적을 두고 여러해 접속하면서 온라인 상의 바둑 친구들을 많이 만난다. 오늘은 요 며칠 전 있었던 한 바둑 친구와의 씁쓸한 대화 몇 마디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하는 일이 대학의 조교이다 보니, 내 일은 아는 사람들은 곧잘 물어오는 것들이 있다. 대학 입학에 관한 것이라던지, 학과에 대한 질문들이다. 이 친구도 편입학을 생각하고 있던 차에 나에게 우리 대학으로의 편입학에 관한 일들을 물어왔다. 나는 그래서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었고, 그 친구도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이 친구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아주 망설이면서.

"대학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나요? 제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거든요. 화장실도 좀 문제고요."

나는 순간 말 문이 막혀 버렸다. 4층짜리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을 리 만무하고, 화장실에도 장애인 시설은 갖춰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고작 장애인 시설이라봐야, 건물 입구에 형식적으로 마련된 경사로와 주차장의 장애인 전용주차 구역 뿐이었다. 이런 사실을 그 친구에게 말하는 것이 다소 망설여졌다.

그러나 어쩔 수 있겠는가. "우리 학교에는 그러고 보니 그런 시설이 전혀 갖춰져 있질 않네."하고 말해 놓고는 안심이 되지 않아 이렇게 덧붙였다. "아니 어떻게 대학이라는 공간에 그런 기본적인 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은지, 참 우리 학교가 너무 부끄럽다." 그 친구가 빈말처럼 느끼리라고 생각되었지만, 어느 정도 나의 진심이었다.

이로부터 지금까지 이 일이 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대학을 고를때, 그 대학에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화장실에 어떤 시설들이 갖춰져 있는지도 따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친구를 다른 무엇보다 이것이 대학진학에 있어 가장 큰 문제가 된다. 아무리 좋은 조건과 시설을 갖추었다고 해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친구는 포기해야 한다.

여기서 나는 우리 사회의 구조가 어디에 맞춰져 있는 것인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장애인에 비해 정상적이라고 생각되는 나같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세팅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이러한 구조는 소수자인 장애인의 차별을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누리는 이 사회는 기본적 혜택들이 그들의 피해를 담보로 제공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과연 이것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난 무엇보다 이것을 고민해야 했다. 왜 그 친구는 나 같은 사람들이 대학 선택에서 고민하는 문제 외에도 그런 이상한, 어쩌면 문제가 될 만한 것 같지도 않은, 엘리베이터와 화장실을 가지고 고민해야 하는 걸까? 그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 것은 나의 고민을 하나도 덜어주지 못하는 답변이다.

나는 장애인들도 나와 같은 문제들을 가지고 대학선택을 고민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말도 안되는 문제들이 장애인들의 대학진학을 방해한다는 것은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무언가 잘못되다 한참 잘못 되었다.

한가지 더 고백할 것이 있다. 내가 이 대학을 횟수로 10년째 다니고 있지만, 아직까지 장애인들이 이 대학(단과대학)에 다닌다는 것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렇다면 장애인을 안 뽑는다는 얘긴가? 하긴 장애인이 다니기에는 아무런 시설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 장애인들 중에 이 대학(단과대학)에 오고싶어 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던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또 하나의 차별이다. 장애를 갖게 된 것도 억울한데, 남들보다 더 걱정하고 고민해야 하는, 말도 안되는 일 가지고 자신의 진로를 포기해야만 하는, 이 사회는 분명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말하면서도 화가 나는 것은 그 친구에 대한 부끄러운 나의 마음을 숨기고자 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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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5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언젠가 한겨레21에서 장애인들이 대학입학시 박대받는 걸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안된다고 말하는 학교도 있고, 한명의 입학생을 위해 학교를 뜯어고치는 학교도 있었죠. 아직 장애인 시설에 대한 대학의 인식이 많이 부족합니다. 예전보다는 경사로도 설치하고, 엘리베이터 만드는 학교도 있고 하여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멀었죠...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중복리뷰 논쟁을 보면서 그게 무에 대수라고들 그리 열을 내시나 하는 의문이 들었을 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점차 뜨거워지는 논쟁의 뒷자락을 대강 쫓아 훑어보았을 뿐 별반 그 논쟁의 대열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몇몇 지인들이 그 대열에서 고군분투하시기에 말없는 성원을 보낼 뿐이다.

그래도, 여기서, 논쟁의 막바지라고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이제는 마무리가 되어 다시금 알라딘 마을의 행복지기들의 자리로 돌아와 그 맡은 바 역할을 다 하시옵사 하는 의미에서 나도 몇마디 올리지 않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다.

우선, 몇 마디 알라딘에 미안한 말을 하고 가자. 내가 알라딘에 칩거하기 시작한 것은 근 몇 년이 되지 못한다. 사실이야 버는 돈이 얼마 없어서 책 몇 권 사보기가 힘든 판국에 알라딘을 이용할 기회가 없었으리라.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기 시작한 데에는 무엇보다 인터넷 서점의 각종 할인제도에서 기인한다. 오프라인에 발품팔아 가면서 사온 책을 적게는 몇 십원에서 많게는 몇 천원까지 깎아주니 나로서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 지극히 경제적이었던 것이다. 인터넷 서점으로 먼저 접근한 곳은 포털사이트 다*과 연계한 리**라는 곳이었다. 나는 거기가 제일 싼가보다 했는데, 얼마 지나서 알게되니 그렇지만은 않았다.

이후 그래24나 알라딘을 알게되었고, 네**에서 가격비교를 해준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네**의 가격비교는 참으로 유용하게 이용하였다. 필요한 서적들을 찾아서 모아놓고 네**의 가격비교를 이용하여 가장 저렴하게 판매하는(각종 할인 쿠폰 및 적립금 등을 모두 고려하여)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입했다. 이후 알라딘에 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나는 그렇게 경제적 인사는 못되지만, 더 싸게 더 많은 적립금을 주는 곳으로 발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그런 다중적 생활을 하다가 각 인터넷 서점에 쌓이는 적립금들이 별반 효과를 내게 주지 못하다는 판단이 서게 되었다. 도서 구입이 분산되다 보니, 적립금이나 각종 혜택들도 분산되어, 효율적으로 그것을 이용하기가 힘들었다는 판단에서 였다.

그런 가운데, 알라딘의 이런 서재 마을을 알게되어 두루두루 둘러보다가, 나의 도서구입의 많은 부분을 알라딘에서 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알라딘에 칩거를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보다 효과적인 것도 같고, 이래저래 돌아다니기 귀찮아서이기도 하고, 알라딘 서재의 여러 지인들을 흠모해서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알라딘에서 책을 많이 산다고 알라딘에 자랑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하여간 중복리뷰 논쟁을 보면서 나는 이전의 나의 행각을 돌아보았다. 나는 굳이 알라딘에서 책을 사야만 하는 의무도 제한도 없다. 다만 나는 알라딘의 고객일 따름이다. 알라딘은 나를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서 각종 혜택을 부여하는 것일 뿐이다. 난 그것을 이용한 권한도, 그것을 이용하지 않을 권한도 있다. 알라딘이 나한테 뭐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중복리뷰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해 보면 안될까? 나는 알라딘에 고용된 서평노동자(?)가 아니다. 내 서평은 어느 곳에나 내가 원한다면 게재될 수 있다. 다만, 그것에 어떤 법적 제재가 따른다면 난 올리지 않을테지만 말이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나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얼마간의 사례를 준다면 그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나는 다른 경쟁사에 내 서평을 올릴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뭐 나만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알라딘에서 아무것도 받는 것이 없다. 땡스투를 받지 않았느냐고? 맞다. 나는 땡스투로 현재까지 만원 이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것은 알라딘이 준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알라딘이 주는 게 절대 아니다.

그럼 누가 주는 것이냐? 그건 바로 책을 산 그 구입자가 내게 주는 것을 뿐이다. 내 서평을 참조한 대가로 그 구입자가 내게 주는 것이 이치에 맞는 계산이다. 따져보면 그 구입자가 내게 주는 것도 아닐 수 있다. 땡스투는 말하자면 알라딘의 상업술이다. 책 많이 팔아보자는 상업술일 뿐이지, 알라딘이 서평써주는 사람들 고맙다고 소정의 원고료를 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어떻게 보면 22% 할인해 줄거 20% 할인해 주고 1%씩 나눠주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것을 두고 알라딘을 욕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니까 알라딘에서 땡스투 몇 십원 받았다고 이게 알라딘에 내 서평을 팔아먹은 것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알라딘도 내게 서평을 사간 것이 절대 아닌 것이다. 나는 고객으로서 알라딘의 상업적 전략을 이용한 것이고 그것이 내게 유용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서평을 올리는 것이다. 뭐 그런 교묘한 생각을 가지고 서평을 올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지 않는 나같은 사람을 누가 또 욕할 수 있느냐? 하면 또 그렇지 않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욕을 한단 말인가? 알라딘에서 내 서평에 원고료 주고 사가면 난 딴데 절대 올리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알라딘에서 나를 고발하고야 말테니까 말이다.

이주의 마이리뷰에 한번도 당선된 적 없지만, 나는 그것도 별 문제가 될일이 아니라고 본다. 이게 뭐 신춘문예도 아니고, 이중 게재를 금지하고 있지도 않으니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돈 몇만원 받지 않느냐? 하는데, 그게 알라딘의 상업 전략과 맞물리기 때문에 주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야 그런 돈 줄 알라딘이 아니다. 내가 알라딘을 완전 매도하는 것 같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알라딘이 장사하는 곳 아닌가? 이게 잘못된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님을 알라딘은 알아주기 바란다.

중복리뷰가 알라딘에 손해가 된다면 알라딘은 법적 제재 또는 규약을 만들면 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평에 대한 대가를 좀 올려야 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손해 안된다는 얘기다. 그래24가 이걸로 손해봤으면 진작에 금지시켰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손해보는 것도 아니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지 문제될 일이 아니다.

좀 비약이 될지도 모르지만, 중복 서평이 금지된다면, 알라딘이나 그래24나, 리**에서 같은 책을 판매하는 것도 좀 문제지 싶다. 출판사가 자기 책 팔겠다고 이곳저곳 찔러보는 것과, 내 서평 팔겠다고 이곳저곳 올려놓는 것은 다른 일인가? 출판사는 책 살 사람에게 파는 것이지 알라딘이나 기타 인터넷 서점에 책파는 것이 아니고, 나 또한 책 살 사람들 보라고 서평 올리는 것이지, 알라딘 좋으라고 서평올리는 거 아니지 않는가? 그게 그건데 왜 문제가 된단 말인가?

누군가 논문을 이곳 저곳 팔아먹고 다닌다고 문제라는데, 하긴 그건 문제다. 그렇지만 나는 서평 이곳저곳 팔아먹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 서평 볼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다 싶어 이곳저곳 올려놓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알라딘이 내 서평 사주면 난 다른데 안 올린다. 내 서평의 저작권은 내게 있다. 알라딘 서재를 통해 올릴 뿐이지 그 저작권을 알라딘이 사 간 것이 전혀 아니다. 이것은 알라딘과 나의 계약상에도 명시되어 있으니 뭐가 문제인가? 이곳에서 몇 십원 받아먹었으니 다른데 올리는 것은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닌가하고 반문한다면, 내가 누구 좋으라고 서평쓰는데 하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알라딘의 서평노동자가 아니다. 알라딘에서 월급 안준다. 알라딘에서 월급주면 난 다른데 서평 안쓴다. 사실 알라딘에서 월급을 줄 만큼 내가 서평을 탁월하게 쓰지는 못한다. ㅎㅎ

중복리뷰는 그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좋은 서평(책 좋다는 서평이 아니라, 그 책에 대해 유효적절한 정보를 담고 있는 서평이 되겠다.)은 알라딘 이용자도 그래24 이용자도 리** 이용자도 다 볼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서평(수준 이하의 서평일 수도 있고, 출판사 알바가 이곳저곳 책 자랑삼아 올리는 서평들이 되겠다.)이 중복 게재되는 게 문제일 따름이다. 이런 문제는 무엇보다 인터넷 서점 자체적으로 정화시키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겠다.

두서가 없고, 논리가 없다. 여기서 마치면서, 좋은 리뷰를 볼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를 생각해 보고 싶다. 책을 볼 사람이라면 그 책에 대한 좋은 리뷰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꼭 알라딘에 와서만 좋은 리뷰 볼 필요는 없으리라. 그래야 한다면, 그래서 알라딘이 장사가 잘 될 일이라면, 알라딘은 반드시 그 서평들을 큰 돈 주고 살 것이다. 중복리뷰가 문제가 아니라 불량리뷰가 문제일 따름이다.

알라딘의 서재폐인들은 알라딘의 서평노동자가 아님을 선언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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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고독 2007-01-15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

마늘빵 2007-01-15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제 글에 주소붙여넣기 하겠습니다.

승주나무 2007-01-15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선언이었습니다. 그분들의 말을 듣다 보면, 우리가 쓰는 서평에 대한 땡스투가 우리의 계좌로 이체된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땡스투나 적립금도 역시 '도서구매'의 관점에서만 가치를 가지는 것인데. 그리고 리뷰왕이 한 주에 총합 100명 정도씩 뽑히고 거기서 상당수가 중복 리뷰어들이라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겠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서점의 자본주의보다 독자들의 자본주의를 공격한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잖아요. 잘 읽고 갑니다.

jedai2000 2007-01-15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태까지 나온 글 중 가장 공감가는 글이군요.

물만두 2007-01-15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백배!!!

멜기세덱 2007-01-15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년고독 님> 감사합니다. 아직 전 20여년 쯤 고독했었는데요..ㅎㅎ 공감할 수 있는 알라디너들이 많다는 것이 저의, 그리고 우리의 행복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아프락사스 님> 노고가 많으십니다. 보잘 것 없는 글일 뿐인데요...
승주나무 님> 제가 써 놓고도 멋지다고 생각했어요..ㅎㅎ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알라딘의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알라딘이 입장을 표명하면 더이상 알라딘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 거 같아요. 이자릴 빌어 알라딘의 목소리를 촉구합니다.
jedai2000 님> 행복한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여태까지 제게 달린 댓글 중에 가장 행복한 댓글이었습니다.
물만두 님> 언제나 간단명료명쾌하십니다. 감사백배!!!

비로그인 2007-01-15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공감합니다. 추천합니다.

멜기세덱 2007-01-16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라 님> 첨 뵙는듯 해요. 감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