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희야양을 TV를 통해 본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의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하여간에 요즘 유행타는 뭔가 특이하거나 특별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프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늘 다시 보니 참, 놀랄만한 일임에 틀림은 없다. 가슴 뜨겁게하는 진한 감동임에는 또한 틀림없다. 그런데 이 동영상을 보고 난 후의 느낌이랄까, 그 감동만으로 기뻐할 수 만은 없는 내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희야양의 연주를 보면서, "어쩜 저럴 수가!"라는 감탄을 먼저하게 된다. '네손가락의 피아니스트'라는 별칭도 그런데서 연유할 것이다. 참 이것은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사실에 주목하고, 어떻게 그런 장애를 딛고 이렇게 아름답게 연주를 할 수 있었을까 하면, 그 사연들 속에서 감동을 받는다. 나도 마찬가지.
우리는 또한 그녀의 피아노 치는 모습에 심금이 울린다. 한 손에 두 개의 손가락만으로 펼쳐내는 음율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고, 손이 찢어질 것 같아 보이는 모습, 가히 온 몸줄기에 소름이 돛이는 듯도 하고, 식은 땀이 나기도 하면서, 눈물을 머금게도 된다.
분명 이런 것들로 자아내는 감동도 감동이다. 하지만 거기에 전제되는 것은 무엇보다 희야 양의 장애이다. 장애를 전제로한 감동일 뿐이다. 이런 감동으로만 보는 것은 희야 양에 대한 일종의 모독일 수도 있다.
희야 양이 자신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사람들이 대단하게 보고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면, 희야 양에게는 피아노 연주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희야 양은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보다 진정으로 들어주길 바랄 것이다.
나는 이 동영상을 보면서, 2가지 생각을 하게된다. 우선은 장애인이라는 전제를 벗겼을 때 우리에게 희야양은 어떤 감동을 줄 것인가? 그런데, 또한 그런 감동을 우리에게 주어야만 하는가? 그런 싸구려 감동을 벗겨내야만이 희야 양이 이 사회에서 정상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동영상은 일본의 모 방송에 초대되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다. 여기서도 희야 양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감동을 자아내고는 있지만, 희야 양도 기뻐하는 모습이지만, 일본이라는 사회에까지 가서, 희야 양이 사람들앞의 뭔가 신기한 일로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과 교차되면서, 예전의 모 프로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며 아파하고 힘들어 하던 희야양의 얼굴이 떠올른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런 나의 생각들이 다만 죄스럽기도 하다.
또 하나의 생각은, 화면에서 보여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이다. 어머니의 눈물을 머금은, 두 눈을 감고 희야 양의 연주를 차마 보지 못하는, 희야 양이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지만, 그 시간 시간들이 매우 큰 고통의 시간들임을 어머니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 어머니도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연습을 게을리하는 딸아이에게 핀잔을 주기도 하고, 연주해서 아픈 손가락을 장난을 하며 더 피로하게 만드는 딸아이를 혼내기도 하고, 연주를 마치고 힘들어 하는 아이를 다독이고 위로하는 어머니, 아이에게는 고통이 남지만, 또한 기쁨이기도 한 피아노 연주. 그 두 가지에서 어머니는 오히려 우리 누구보다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일본까지의 먼 길을 건너가면 방송에 출현을 택한 어머니의 마음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모르는 이들로부터 오해의 말들을 듣기도 할 것이다. 바로 어머니의 머금은 눈물 안에는 이런 것들이 담겨 있지는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희야 양의 통해 얻은 감동이 다만 유쾌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이다. 나를 부끄럽게 하는 그런 감동이다. 희야 양을 더이상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로 부르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분명 희야 양은 피아니스트이지 그 이하 그 이상도 아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