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충동(衝動)을 조장(助長)한다는 것

충동(衝動)의 衝은 '찌르다'는 의미이고 動은 '움직이다'란 뜻이다. 그러니까 뭔가를 찔러서 움직이다란 뜻인데, 사전적 정의를 가져오면 "순간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하는 마음속의 자극" 또는 "어떤 일을 하도록 남을 부추기거나 심하게 마음을 흔들어 놓음"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자극'이나 '부추김'이 수반되어 어떤 행동이나 심정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찌르다는 뜻의 '衝'을 좀더 자극적으로 풀이하면 '들쑤신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충동에는 이런 자극, 부추김, 또는 '들쑤심'이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충동은 "목적, 관념을 떠나서 일어나는 의식"이다. 즉 무의식에 가깝다. 따라서 충동은 "본능적이고 찰나적인 것"을 그 특징으로 갖는다. 이 본능적 무의식이 어떤 '자극, 부추김, 또는 들쑤심'에 휩쓸려 어떤 행위가 수반되게 되는데, 이런 "동작ㆍ행위가 수행되지 않을 때는 불안감을 수반"하는 부작용이 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흔히 충동은 부정적으로 간주된다.

충동이 부정적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또 있다. 어떤 자극이나 유혹에 의해 무의식적, 본능적으로 수반된 행동에는 십중팔구 후회가 뒤따른다는 아주 강력한 부작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크게는 사회적 피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충동에 의한 성범죄나 살인, 방화 등이 그 대표적 예들이다. 그나마 이런 충동이 구매와 연결되는 것은 약소한 부작용이랄 수 있다. 그러나 충동-구매가 소수의 충동에 그치지 않고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나타날 때에는 문제의 심각성이 크게 부각될 소지가 있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장되는 소비충동은 간간이 그 사례들을 적절히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어떤 말이건 그 말이 태초부터 부정적일 수는 없다. 그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맥락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말은 후천적으로 부정적 의미를 갖게 된다. 衝이나 動은 그 不와 正을 떠나서 애초 중립적 위치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그것이 이러저러한 맥락에서 결합되어 '충동'이 되었을때는 지극히 부정적 의미를 갖는다. 그렇기에 충동은 우리 사회에서 자제되어야할 악덕내지 부덕이다.

이런 충동은 그것이 조장(助長)되어 질때 그 문제가 커진다. 조장이란 말 자체의 뜻은 '(힘을) 도와서'(助) '더 자라게'(長) 한다는 것이다. 이것과 비슷한 말로는 '권장(勸奬)'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 말은 '권하여 장려(奬勵)'한다는 뜻이다. 다시 '장려'는 "좋은 일에 힘쓰도록 북돋아 줌"이란 뜻이니, '조장'이 가지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조장'과 '권장'은 크게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조장은 흔히 '사행심 조장, 과소비 조장'이라거나 "사회 혼란이 조장되다, 위화감이 조장되다" 또는 "지역 감정을 조장하다, 과소비를 조장하다, 허례허식을 조장하다"와 같이 쓰인다. 반면 권장은 '권장 사항'이라거나 "독서를 권장하다, 허례허식을 줄이기를 권장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권장하다, 모유 수유를 적극 권장하다" 등처럼 쓰인다. 이러한 사용 용례에서 보듯이, 이 둘이 결코 같은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행심 권장'이라거나 '지역 감정을 권장하다" 같이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한 '조장 사항'이라거나 "독서를 조장하다, 모유 수유를 적극 조장하다"와 같이 말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처럼 조장은 부정적 문맥에서, 권장은 긍정적 문맥에서 사용된다. 正과 不의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에 조장과 권장이 놓여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권장하면 안될 것을 권장"하는 것이 조장이다.

이렇게 볼 때 충동은 '조장'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충동은 부정적 함의를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부정적 문맥에서 '권장되는' 조장이 쓰여야 옳다. 그래서 충동은 조장된다. 권장 되면 안 될 충동을 권장하는 것은 지극히 문제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배격되어야 할 것은 정작 충동이 아니라 이 '충동 조장'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충동을 조장"하려고 하고 있다. 다시 그 의미와 문맥을 고려하여 더욱 정확히 말하면 "충동을 권장"하려고 한다고 해야할 것이다. 충동을 조장하는 것은 비윤리적일 수 있지만, 충동을 권장하는 것은 비문법적이지만 때론 비윤리적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기에 문법적으로 옳은 '충동 조장'은 아주 가끔 긍정적 함의를 가질 수도 있는데, 여기서 그 일부를 주창하고자 하는 것이다.

2. 충동 구매와 충동 '도서' 구매

우선 충동이 조장되는 경우를 구별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충동이 조장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를테면 부동산 투기가 조장되는 것이라던지, 백화점에서 옷이나 화장품을 충동적으로 구매하도록 조장한다던지, 음란 영상물을 통해 외롭고 쓸쓸한 뭇 남성네들에게 성구매를 조장한다던지 하는 것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일단 수많은 충동적 행위 중에서 논의의 범위를 한정해야 하겠다. 그 범위를 알라딘은 '오늘의 태그'에서 정해주고 있는데, 여기서는 알라딘의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여 논의를 '충동 구매'로 한정해서 생각할 것이다.

다시 위에서 사용한 방법에 따라 '충동 구매'란 단어 자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살펴보고 넘어가자. 일단 '충동'은 부정적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그런데 '구매'는 대다수의 맥락에서 중립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물품 구매, 의류 구매, 화장품 구매' 등에서 이 '구매'가 어떤 가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구매'란 단어는 가치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충동'과 결합될 때 그 중립적 가치는 무참히 깨져버린다. 그러니까 '충동 구매'라는 조합의 단어는 그 한 덩어리로써 부정적 의미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다음으로 충동 구매의 범위를 한정해야 하겠다. 충동 구매에도 그 종류의 범위는 무수히 많다. 화장품, 옷, 전자제품에서부터 건담(내가 아는 친구 중에 이 건담을 조립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는 인터넷을 통해서 몇 만원에서 몇 십만원에 이르는 이 장난감을 간혹 주문하곤 한다. 내가 볼 때 그의 구매는 얼추 충동적이다.)같은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내가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는 대다수의 상품이 이 충동 구매의 대상이고, 우리가 여기서 논점을 제한한 충동 구매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대다수의 충동 구매는 충동이 가지고 있는 부작용, 즉 "동작ㆍ행위가 수행되지 않을 때는 불안감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된다.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경우 십중팔구는 그 가격, 용도, 필요성 등 경제적, 합리적 사고 작용에 의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자신의 경제적 여건이나 필요성 등을 무시하고 즉흥적으로 구매되는 경향이 많다. 문제는 '경제적 여건'이다. 재벌이나 준재벌 집 이세라던가 십세라면 상관없겠지만, 대다수의 충동 구매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충동은 동작이나 행위로 수행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많은 경우 이런 불만족으로 인해 불안해 하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우울해 지는 부작용으로 고통받게 된다.

어쩌다 한 번의 충동, 그리고 그것이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라면 문제의 심각성은 축소된다. 어느 정도 배고픔을 참고 카드값을 갚아가면 되기에 그리 큰 문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자주, 종종이라면 문제는 커진다. 그것은 개인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이런 개인 파산이 사회적 문제가 된 경우가 있었는데, 카드 대란으로 이어져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요즘도 종종 이런 경우를 뉴스를 통해 전해듣기도 한다.

결국 이런 식의 충동 구매는 '조장'되어서는 안 될 악덕이고 비윤리다.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용납될 수 없다. 내가 조장 혹은 권장하려는 충동도 이 지경까지 가는 것을 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니까 충동으로 인한 구매가 이런 파산의 경지에까지 이르지 않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충동 구매가 자신의 경제적 여건을 뛰어넘어 개인 파산 및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는 어머어마한 경우를 배제되는 것을 전제로 어떤 종류의 충동 구매는 어느 정도 조장 혹은 권장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논하자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조장하고자 하는 것을 밝혀도 되겠다. 그것은 충동 구매의 대상이 되는 상품 중에서도 아주 부분적인, 혹은 특수한 종류인 '도서' 부분이다. 이것을 좀더 명확히 하자면 '충동 도서 구매'라고 부를 수 있겠다.

'충동 도서 구매' 또한 그 단어 조합이 가지는 가치성을 판단해 보아야 할 것이다. 위에서 '충동'과  '충동 구매'가 지극가 부정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다분히 애매이거나 모호임을 나는 고백해야 하겠다. '도서'란 말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가치중립적의 우편을 지향한다. '도서'는 손쉽게 '독서'와 이어지고 '독서'는 아주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절대적으로 권장되는 善에 부합한다. 이 긍정적 함의의 '독서'의 대상인 '도서'는 이 긍정적 가치를 고스란히 이어받게 된다.

앞서 '아주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한다고 하였는데, 이를테면 대다수의 무협지, 만화, 성인물 등이 그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종류의 것이 권장될 수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이런 종류의 도서는 권장 도서 목록에 포함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보편적 견해에 따라 여기서 다루는 '도서'에 위에서 언급한 그런 종류의 것을 제외하고, 아울러 내가 개인적으로 쓰잘데기 없다고 생각되는 자기계발서 같은 종류도 제외한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이 도서에 대한 독서가 일정 정도 도움을 주는,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대다수의 도서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구분하고는 있지만, 개인에 따라서 그가 충동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구매되는 도서는-그것이 무협지라거나 만화라거나 하더라도-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쁜 책'을 사는 사람은 아주아주 극소수일 것이기 때문이다.(이것이 비논리적 진술이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는 없다. 내 생각에 거의 90%이상이 그럴 것이라고 판단된다.)

자 다시 논의로 돌아와서 '충동 도서 구매'에 대한 가치판단은 간단히 내리기가 애매하고 모호한데,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도서'란 단어가 가지는 가치 긍정적 의미 때문이다. '충동 구매'라는 부정적 단어 조합 사이를 깨고 긍정적 의미의 단어 '도서'가 들어가서 이 세 단어의 조합은 '역설적 표현'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역설이라고 하는 표현 기법은 모순되는 진술을 통해 어떤 진리나 진실을 표현하는 것을 말하는데, '충동 도서 구매'란 표현이 어떤 진리나 진실을 표현하고 있지는 않더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간단히 옳고 그름으로 구분되어질 수 없는 어떤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긍정적이라고 판단하고, 그러하기에 여기서 이 '충동 도서 구매'에 대해 '조장' 혹은 권장되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3. 가장 아름다운 충동, 충동 '도서' 구매

위에서 나는 충동이 부정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대부분의 맥락과 상황에서 쓰이는 이 충동이란 말은 다분히 부정적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아리따운 어떤 여인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갈 때에 다가가 말 한 마디 붙여보고 싶은 충동은 대단히 긍정적이다. '아름다운 여인'이란 자극은 그 어떤 자극보다도 고매하고 강력하다. 그 자극에 유혹받지 않는 본성 혹은 본능을 우린 찾아보기 어렵다. 간혹 이 충동이 행위나 동작으로 수행되지 않을 때 우리는 바보 혹은 겁쟁이로 낙인찍히기도 한다.(내가 그렇다.) 또다른 아름다운 충동의 예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지하철 역의 출입구 계단에서 구걸하는 노인이나 노숙자, 어린아이들을 볼 때 그들을 동정하고 주머니 속의 동전이나 지폐를 손에 쥐어주고 싶은 충동은 언제나 아름다운 충동이다. 이런 충동들을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여기서 말하려는 '충동 도서 구매'도 이런 예에 포함되어 설명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충동이 본능 혹은 무의식과 관련된다고 할 때, 이 도서에 대한 충동 구매는 충동의 그러한 특성에 더불어 일부분 이성과 의식이 첨가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독서에 대한 열망, 앎에 대한 욕구는 다분히 이성의 힘에 의해 증폭된다. 여기서 나는 도서에 대한 충동 혹은 욕구를 반(半)본능 반(半)이성의 영역에 집어넣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서 '충동 도서 구매'가 일말의 역설을 담고 있고, 그렇기에 그 가치판단을 보류했었는데, 여기서 충동, 또는 충동 구매가 가지는 부정적 함의가 '도서'라는 대단히 긍정적 의미의 단어에 의해 엄청나게 상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충동 도서 구매'의 가치 판단은 가치중립의 언저리에서 부정적 함의를 쫓으려고 하고 있는 중이라고 정리하자.

그런데, 나는 그런 정리를 뛰어넘어 이것이 하나의 아름다운 충동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리려고 하고 있다. 무엇을 산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충동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가능하다. 책을 산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한 권의 대학교재를 강의 교재로 채택되었기 때문에 산다고 할 때, 이때에도 약간의 구매 충동이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을 꼭 사야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헌 책을 빌린다던지, 아니면 교재 없이도 강의만을 충실히 듣거나, 혹은 옆 친구의 교재를 같이 본다거나, 하여간 내가 강의를 들으면서 이 교재를 반드시 지참해서 들어야겠다는 어느 정도의 충동이 그것의 구매를 조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내게 필요한 책이 한 권이고 그 책을 사려다가 지극히 충동적으로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을 얹어서 이른바 충동 독서 구매를 한다는 것을 나는 아주 긍정적이며 바람직한 처사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그것을 전혀 읽지도 않고 어느 한 구석에 처박아 놓더라도 말이다.

또는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하는데 있어 충동적이 아닌 지극히 이성적인 구매라고 할지라도, 그 상황에서 5만원 이상의 추가마일리지라는 자극에 의해 '충동적으로' 몇 권을 추가하여 5만원을 맞추는 것을 나는 아름답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사 놓은 책이 인터넷으로 보고 자신이 생각했던 바와 조금 빗나가더라도 말이다.

또는 쿠폰이라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에 의해 경제적 여건이 다소 모자라는 데도 이른바 지름신의 강림에 의하여 충동 구매를 한 경우라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아름다운 미덕이라고 칭송할 것이다. 설령 그것이 내 서가의 저 높은 곳에서 그저 장식용으로만 쓰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나의 경우 지난 해 창비에서 출간된 <20세기 한국소설> 시리즈 50권짜리를 이른바 충동적으로 구매한 경험이 있다. 어떤 경로로 이 시리즈가 완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1차 자극) 창비 홈페이지를 갔다가 무려 4~5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는 배너 광고를 보고(2차 강력한 자극) 무턱대고 창비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넣었다. 그렇게 할인되어 판매하는 가격도 20만원을 약간 넘겼는데도 말이다. 신용카드로 3개월 할부 구매를 한 나름대로의 충동 구매이다. 그런데 이 시리즈 중 지금까지 단 2권을 읽는데 그치고 한편의 장식장에서 장식품 놀이만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것은 내게 뿌듯함이다.

또 한 번의 대표적 충동 구매는 얼마전 이름만으로도 충동 구매를 조장하는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눈뜬 자들의 도시』까지 준다길래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아름다움을 보인 적이 있다. 그런데 함께 온 『눈뜬 자들의 도시』는 내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돋보기끼고 봐야 할 만한 아주 작은 장난감 비슷한 책,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는 까먹었지만,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 책을 아주 귀여운 후배에게 선물했고 고맙다는 인사를 듣고 기분이 좋았다.

자, 여기서 그만 끝내자. 나에게 충동 도서 구매는 매우 익숙하고 자주 있는 경험이다. 위에서 일정 정도 전제를 두고 있듯이, 어느 정도의, 그러니까 파산의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도 충동적인 '도서'에 대한 구매는 충분히 조장, 아니 권장되어야 할 사항이라는 것이다. 장식품으로 책만큼 훌륭한 것을 나는 이 세상에서 알지 못한다. 잘못 알고 산 책이 내게 깜찍한 감사로 돌아오는 일처럼 행복한 일을 나는 또한 찾기 어렵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차지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가, 아주 중요하고 요긴한 이유가 있다.

4. 잠재적지식론(潛在的知識論)과 충동 '도서' 구매

결론을 빠르게 내려보자. 이 글을 시작한 것도 충동적이었다고 우선 고백한다. 이렇게 내 논의가 흐르고 결론이 나리라고는 크게 예상하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충동 도서 구매를 어느 선에서 한하여 아름답다고, 따라서 그 충동 구매를 조장한다고, 아니 바로 말하면 권장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충동구매조장론'인데, 정확히 말하면 '충동도서구매조장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충동도서구매조장론'을 지탱하는, 그래서 충동 도서 구매를 아름다운 일이라고 과감히 조장 혹은 권장하는 내 견해를 뒷받침하는 이론은 '잠재적 지식'론이다.

'잠재적 지식'론이란 '도서'에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그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러니까 다다(多多)할수록, 익선(益善)이라는 주장의 근거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이 아마도 현재까지 1400여 권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나는 아직까지 그 책의 10분의 1을 읽었으리라고는 생각이 되지만, 그 이상을 읽었을 것이라고도 생각되지만, 아무리 많아도 8분의 1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머지, 그러니까 10분의 9 내지 8분의 7에 해당하는 책들은 내게 어디까지는 불필요한 무용지물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잠재적 지식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번은 그 책을 보고 싶은 충동이 다시 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무엇이 그런 충동을 일으킬지 알 수 없기에, 구매 총동을 일으킬 때의 그 자극에 일차적으로 의거하여 그 자극이 다시 일 경우에 쉽게 손에 들고 읽을 수 있도록 구매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잠재적 지식은 언젠가 나에게 고개를 쳐들고 나와 나의 실질적 지식으로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이 잠재적 지식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은 내가 확보할 수 있는 지식의 양적 가능성의 지평을 최대한 넓히는 길이다. 가능성이라는 것은 하나의 불확실성이지만 우리가 가능성에 대해 결코 폄하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일말의 가능성이라고 하더라도 극히 존중되고 고귀하게 여겨져야 할 그런 종류의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소중한 지식 혹은 지혜를 갖게하는 가능성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잠재적 지식'의 지평을 확장시켜주는 일등 공신인 충동 도서 구매는 적극 권장되어야 하고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이것이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라고 말하고야 말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일은, 그것이 진정 아름다운 일이라면, 세상에 대하여서도 그것은 충분히 아름답게 빛나고야 말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라는 제한 사항의 수사는 불필요하고, 그렇기에 그냥 아름답다고만 해도 충분한 것이다.

자. 결론은 이것이다. 충동 도서 구매에 한해서 충동적 구매는 지극히 권장되어야하고 문법적으로는 조장되어야 하며,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 요즘 도서정가제의 시행으로 인해 제도적으로 이런 충동의 요소들이 축소되고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그리 편히 들리는 소리만은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알라딘을 포함한 인터넷 서점 등에서 적극적으로 대비책들을 내어 놓는 것이 필요하겠다. 그 일환으로 알라딘에서 기존 플래티넘 회원에게 한 달에 한 번 4만원 이상 구입할 경우 2000원 쿠폰을 주던 것을 확장하여 8만원 이상 구입하면 3000원짜리 쿠폰을 주고 있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됐건 저찌됐건, 우리들의 충동 도서 구매는 앞으로도 쭉 계속되어야 한다. 나의 잠재적 지식을 확장시키는 길은 우리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하는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 알라딘 서재지기 여러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일단 올려야겠다. 감사를 드린다. 오늘 밤은 무척 아름다운 밤이어서 잠도 오지 않고, 그래서 주저리 주저리 별 헛소리 비슷한 것을 다하고 있지만, 아무튼 기분 좋다. 나중에 좀더 자세히 진정적으로 감사의 말을 전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고생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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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꼬 2007-12-12 0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갑작스런 트랙백 요청에 이렇게도 멋진 페이퍼를 올리시다니요... 선리플 후감상입니다..

멜기세덱 2007-12-12 09:46   좋아요 0 | URL
앗, 트랙백 요청이라니요? 저한테요?

엔리꼬 2007-12-13 11:12   좋아요 0 | URL
잘못 썼습니다... 트랙백이 아니라.. 알라딘측의 태그 페이퍼 요청 말입니다.. 제가 정신이 없네요..

순오기 2007-12-1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재적지식론'에 추천!
길게 쓴 글을 찬찬히 읽은 나도 착하다 ^^ 그런데 알라딘에서 주는 8만원 구매의 3천원 구폰은 계산이 안 맞아~~ 4만원에 2천원이면, 8만원에 4천원 줘야지잉...이러면서 절대 안 씀. 반드시 5만원씩 나눠서 구매하며 추가 마일리지를 얻는 아줌마. ^^

멜기세덱 2007-12-12 09:4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장삿속이라는거...ㅋㅋㅋ 어찌되었건 간에, 8만원에 붙는 쿠폰때문에 충동이 잘 조장되고 있는거 같아요..저한테는...ㅎㅎㅎ
근데, 오기님 아줌마셨어요? ㅋㅋㅋ

순오기 2007-12-12 23:20   좋아요 0 | URL
아니, 그럼 제가 아저씬줄 아셨어요? 엥~~~><

멜기세덱 2007-12-12 23:22   좋아요 0 | URL
아가씨였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ㅋㅋㅋㅋㅎㅎㅎㅎ^^;;부끄~~

stella.K 2007-12-1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도 저 <눈먼 자들의 도시> 충동구매했어요. 사 놓고 아직도 읽지 못한 책이지만...조금만 일찍 서둘렀으면 똑같은 크기의 <눈뜬 자들의 도시>를 사셨을텐데. 저는 크기가 똑 같은 책을 가지고 있지요.^^

멜기세덱 2007-12-12 10:21   좋아요 0 | URL
ㅋㅋ 『눈뜬 자들의 도시』는 다시 제값주고 사버렸어요....ㅎㅎㅎ

웽스북스 2007-12-1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읽은 소장 책의 권수가 저보다 많으시다는 데 은근 위로를 받아버렸어요 ㅋㅋ
근데 저 창비 전집은 좀 많이 부러운데요? 나름 알차던데...!

멜기세덱 2007-12-12 13:19   좋아요 0 | URL
ㅎㅎ 막 쓰다보니 잘 계산이 안 됐는데...지금 생각해보니,... 한 5분의1 내지 4분의 1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알차긴 많이 알차요...ㅎㅎ

마늘빵 2007-12-12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너무 길어.... -_- 읽으려고 별찜해놨는데 엄두가 안나요.

멜기세덱 2007-12-13 11:1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안 읽겠다는 얘기? ㅋㅋㅋㅋ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쯤에, 맹랑한 댓글을 하나 달았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 나보다는 십수년을 더 살아오신 그 분께 눈물을 흘리라느니 운운하는 것은 정말 맹랑한 짓이 아닌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댓글은 그 분이 남긴 짧은 메모 속 깊이 담긴, 행간에 스민, 어떤 슬픔 혹은 그 무언가를 읽어내지 못하고, 그저 맹랑함의 허튼 소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로부터는 그 분께 섣부른 댓글을 달지 못하고 있다. 또한 다른 분들께도 한 번 씩 더 댓글을 닮에 생각하게 한다.

사실 그 때는 내게 눈물이라는 것은 메말라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1년 여가 지난 지금 내가 왜 예전의 그런 댓글을 생각하고, 또 왜 눈물 운운하는지 모르겠다. 그 때의 그 댓글은 맹랑한 소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눈물을 한 번 흘려보세요!"라는 지금의 권유는 어쩌면 내게는 한 소망일지 모르겠다. 지금 나는 울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슬퍼서도 아니고, 서러워서도 아니다. 삶이, 몸이, 고통스러워서도 아니다. 말하자면 그냥, 이다.

지금으로부터 가장 최근에 울어 본 기억은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얼마 전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살짝 울컥 했던 기억은 있다. 그러나 그건 울음이 아니다. 울컥한 김에 눈물을 찔끔 댄 기억은 멀지만 또렷하다. 이번에도 영화다. '타이타닉'. 이 영화를 나는 극장 상영이 한참 지나고 어느 날,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봤다. 몇 년 전이었을게다. 심심해서였을 것이고, 궁금해서였을 것이다. 이 대목에선 여자들은 죄다 운다던데, 왜 일까? 어둔 방 구석, 새벽녘에 이 영화를 보면서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잠겨드는 디카프리오를 보면서 그 여주인공처럼 나도 울었다. 울컥해서였을 뿐이다. 그리고 '아마겟돈'을 극장에서 친구와 보다가 마지막 장면, 브루스 윌리스가 딸과 작별하면서 나는 울었다. 울컥해서 울었다.

이때 나는 왜 울었을까? 그때 내 상황과 처지가 잘 재생되지는 않지만, 아마도 심정적으로 어려웠었던 것 같다. 좀 막막했었다고 해야 될까? 그때 영화는 울컥했고, 나도 울컥해서 울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 상황과 처지를 가까운 시일내로 돌려보아도, 여전히 막막하다. 그러나 그때만큼은 별다른 혼란과 걱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안니다. 막막하고 막연하다고나 할까? 이럴 때도 영화를 보면 울컥할 수 있을까?

나는 중학생 때쯤, 아니 국민학생 때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 가운데, 그 때만큼 서럽게 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 얘기는 지금까지 입밖에 내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못 할 것 같다. 어쩌면 산전수전 다 겪은 다음에야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건 내 가족사의 숨겨둔 일면이기에 아직은 나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때, 그 서러운 눈물이 지금은 왠지 부러워진다. 서러워서라도 울고 싶은 지금이다.

어려서는 참 말썽이 많았나 보다. 어른들 말씀에 따르면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오죽하면 어렸을 적 별명이 '찔통'이었을까? 동네 슈퍼에 가서 과자를 한아름 안고도 더 안지 못해 서럽게 울었다나. 하여간 그때는 많이도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근 5년 넘게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서럽지 않아서였을까? 슬프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삶도 몸도 편해서였을까? 그도 아니면?

서럽지만 그 서러움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닐까? 슬프지만 그 슬픔을 알지 못해서였을까? 삶도 몸도 고되지만 그 고됨에 익숙해져서가 아닐까? 서럽고 슬프고, 서른 즈음의 나이에는 그나마 조금은 느낄 수 있는 인생의 고됨이, 산전수전의 반(半)전은 겪어서 그만큼은 가졌을 나이에, 나는 왜 울지 못할까?

내년이면 서른을 맞는다. 아직은 익지 않은 나이여서 '설은'이고, 더욱 따갑게 익어야할 나이여서 '서(러)운'인지 모르겠다. 이 서러운 서른에는 울 수 있을까? 11월이 며칠 남지 않았다. 그건 얼마있을 시험이 그만큼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다. 그리고, 그 후의 어떤 일들도, 계획도,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서른 즈음의 이 나이에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가 의아해 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 조차도 의아하고 으아~하다. 그러나 어쩌랴? 막연하고 막막하고 앞은 까마득하다.

어쩌면 내년에도 올해 하던 일을 계속하게 될지 모르겠다. 안주하자는 것일 게다. 그냥 이렇게 대책없이 좀더 살아보고 나중에 고민하자는 것일 게다. 그 선택을 내가 하더라도 나를 탓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오늘은, 아니 요 한동안은, 좀 울어봤으면 좋겠다. 무엇인지 모를 허무가 호되게 느껴지는 지금, 왠지 울어 봤으면 싶다.

울면, 눈물을 흘리면, 몸에도 좋다고도 한다. 남자는 여자보다 눈물을 덜 흘려서 수명이 짧다나. 미국 남자들은 한 달인지, 한 주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평균 1.4회를 운단다. 그런데 나는 최근 연 평균 단 1회도 울지 못했다. 그래서 더 일찍 죽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죽거나 사는 것의 문제보다, 그냥 아무런 댓가도 없이 울어 봤으면 좋겠다. 울고 나면 정신이 한층 맑아진다고도 한다. 뭔가 빈 듯한 이 마음을 눈물로 채우고, 뿌연 이 정신이 맑아졌으면 좋겠다.

삼국지를 보면서, 유비, 관우, 장비, 세 의형제가 고성에서 만나는 그 장면에서, 책을 읽으면서 한 번, 드라마로 보면서 또 한 번, 나도 울었다. 나는 책을 보면서 운 기억이 이것 말고는 없다. 하다 못해 성경책을 보면서까지도 울지 못했던, 그래서 날라리 기독교인인, 그런 신세다. 책을 읽으면서 책 갈피 갈피에 한 방울의 눈물 자국 한 번 남겨보는 것도 작은 소망이다. 박완서를 더 읽어보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작은 희망이 생긴다.

그러나 오늘 밤은 여전히 울음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런 헛소리들을 이렇게 해댔겠는가? 여하튼, 이 해가 가기전에는, 서른이 오기 전에는, 그래서 서러운 서른을 서럽게 울기 전에, 지금, 막막하고 막연한 울음 울어서, 그래서 정신이 맑아지든가, 수명이 연장되든가, 아니면 더 슬퍼지던가, 더 서러워지던가, 더 인생이 고되고 힘들어지도라도, 그냥 한 번 크게 울고 싶다.

울고 싶은 마음이 나뿐은 아닐 것 같아서, 이것저것 들춰보다가, 찾아보다가, 이런 시가 눈에 들었다.

   
 

눈물이 난다

- 이수인

이따금씩
사는 게
구질구질할 때가 있다

내 자신에게 진실하고 싶은데
내마저 내 자신을 우롱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깊은 밤
잠 못 이루며 괴로워하다 삶이
구질구질하다고 느끼며
내마음 깊은 곳에서 펌프질하듯 눈물이 난다

나에게 진실하고
남에게 정직하고 싶은데
세상은 가끔씩
사람은 자꾸만
나를 치사하게 만든다
세상에게
사람에게
가끔씩 우롱을 당할 때면
내 자신이 초라해져서 눈물이 난다

사는 게
살아 있는 게
힘들어서 구질구질해서 눈물이 난다

 
   

나도 사는 게 "구질구질"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나에게 진실하지 못하고, 남에게 정직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구질구질"해서, 그래서, 지금 울고 싶은 게냐? 그런 게냐?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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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11-22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적 습성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남자들은 전반적으로 울지 못하는것 같아요. 눈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것 같아요. 남자는 가슴이 울고 어깨가 울고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가 봅니다.

멜기세덱 2007-11-22 23:15   좋아요 0 | URL
남자라는 이유로 묻어두고 지낸, 그 세월이 너무 미워요~~~

라로 2007-11-2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엔 조용히 추천이나 누르고 댓글은 달지 말아야 하건만,,,
1.우리는 나이차이는 있어도 같은 세대군요~.ㅎㅎ(국민학교)
2.제 아들넘이 거의 맨날 울어서 속상했는데 크면 님처럼 안울까요?^^;;;
3.전 요즘 너무 자주 울어요,,,산후 우울증이려니 했더니 제 목숨을 연장하는 술수였군요! 하하하
4.구질구질한 삶,,,,때론 아름답기도 하더이다...

멜기세덱 2007-11-22 23:21   좋아요 0 | URL
추천도 안 누르고 댓글도 안 다는 사람보다 백만배 나아요...ㅎㅎ
1. 나이차이가 있군요. 근데, 성별도 다르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어요. 결혼을 하셨더군요.ㅠㅠ;;
2. 강하게 키우시면 그럴 수 있을지도...그런데, 저처럼 되는 건 권하지 않습니다.ㅋㅋ
3. 산후 우울증이라...그런걸 전 잘 모르지만...그건 '술수'로 폄하되어서는 아니 될 것으로 사료되네요.ㅎㅎ
4. 때론 아름답다. 나비님도...

2007-11-22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11-22 23:22   좋아요 0 | URL
어머나, 눈물 뚝, 급방긋, 으하하하.....잘 지내셨죠?

웽스북스 2007-11-22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다보면 또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는 게 나만이 아니라는 게, 굉장한 위로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누구나 다 화려하고 밝아보이는 이면에 다른 모습들이 있으니까요 ^^
저는 어렸을 때는 독하게 울지 않고, 꾹 참곤 했는데, 자라면서 자꾸만 마음이 말캉말캉해져서 작은일에도 갑자기 눈물이 툭 떨어지곤 한답니다 그러면 혼자 또 내모습에 적응 안되고- 전 정말 구질구질 대마왕이에요 ㅎㅎ

멜기세덱 2007-11-22 23:25   좋아요 0 | URL
근데, 알고보면, 이게 다 구질구질한 것 같아도...지나고보면, 그냥 추억이려니...ㅎㅎ
삶의 작은 일에도,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어요...그럼 나도 구질구질 대마왕할래...ㅋㅋ

비로그인 2007-11-2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구나.
나는 울지 못해서 아픈건가.
눈물을 안에 가두어서 익사해버린건가, 내 영혼은.

멜기세덱 2007-11-22 23:26   좋아요 0 | URL
내 영혼도.

프레이야 2007-11-22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눈물이 났던 적은 언제였더라..
영화 세븐데이즈 보며 엄마의 마음에서 흐흑..

멜기세덱 2007-11-22 23:27   좋아요 0 | URL
언제, 울고 싶은 사람들 한 번 모여서, 대성통곡 하는 시간을 만들어도 재미날 것만 같다는,,,,막 이래...ㅋㅋ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한지 일 년하고 아홉 달째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이 그리 다를 것 없겠지만, 이 동네에 터를 잡고 살 것이 아닌 이상에야 자취는 동네 소속감이 있을리 없다. 이곳으로 주소지를 옮겨 주민세를 이 동네에 바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직 별달리 이주 계획은 없지만, 내년에도 여기에 살지는 장담을 하지 못한다. 여기가 우리 동네니 하며 살면 가까이 사는 이웃도 사귀고, 아는 체도 하고, 옆집 사람들과 뭐라도 나눠 먹고 하면 좋겠지마는, 이곳은 언제나 내 맘도 몸도 우리 동네니 할 입장도 못되고, 그러고 싶은 생각도 크게 들지는 않는 여하한 삭막한 도시의 한 동네 구석과 같다.

그러나 아무리 자취를 하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한때나마 머물고 잠자고 먹고 싸고 하는 곳에서 말 한마디 건네고 지낼 이웃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근처 슈퍼나 편의점 주인이나 아르바이트생과 자주 또는 매일 마주치는 것은 자취생들의 일상일 것이다. 정기적으로는 한두 달에 한 번 머리 자르러 가는 미용실이 있을 것이다. 나도 다른 자취생들과는 그 점에서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라면 그 외에는 없다는 것일테다. 미용실은 내가 머리에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닌지라 자주 가는 편은 못 된다. 대강 따져보면 한 달 보름 만에 한 번씩, 그러니까 머리가 좀 덥수룩해져서 간지럽고 거치적거린다 싶은 그때쯤에 가까이에 있는 동네 미용실엘 간다. 일 년하고 아홉 달을 살았으니 한 열 번은 넘게 한 미용실을 다닌 셈이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과묵한 성격이라, 이런 데엘 가도 붙임성 있게 말을 한다거나 친한 척을 하지 못한다. 오죽하면 어떻게 잘라드리느냐는 질문에도 대충 단정히 시원하게 깎아 달라는 말만 남기고 눈을 감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드문드문 이긴 하나 두세 번이 지나니 슬슬 이 미용실 아주머니는 나에게 말을 건네 온다. 살갑게 받아주지는 못하지만 그리 싫은 내색도 하지 않고 간혹 말을 받아쳐주는 정도는 한다.

내가 자취생활을 하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는 곳은 큰길에서 집으로 들어서는 모퉁이의 작은 편의점이다. 담배를 피다보니 하루 한 갑씩은 집에 들어오는 길에 담배를 사야한다. 간혹 마실 물이라던가 필요한 잡다한 것들을 이 편의점에서 산다. 편의점에는 자취생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것들을 마련해두고 있어 나는 제각기 필요한 것들을 사러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수고를 절대 마다한다. 그래서 편의점은 내가 하루도 거를 수도 없고, 내 생활의 필수품들을 조달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편의점에 들락거린 지 한두 달이 지나니, 편의점 사장 아저씨와 사장 아주머니와 좀 낯설음이 없어졌다. 이 편의점은 내외가 주야를 나눠 일을 본다. 가끔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지키긴 하지만 대부분은 이 부부가 운영을 하는 듯하다. 그 사정을 알고는 좀 이상하다기보다는, 별 시답잖은 문제가 있을 거로 생각됐다. 근데 시답잖은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저 부부가 교대로 근무를 하다보면 언제 부부생활을 하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의문을 묻지도 않았고 이내 덮어버렸다. 알아서들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들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딸이 있고 이보다는 어려 보이는 아들이 있다. 별 시답잖은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이런데서 연유하기도 한다.

편의점에 들르면 먼저 아는 체를 하고 인사도 건네고, 이래저래 말도 주고받는다. 한 날은 딸내미가 모의고사를 본 모양이다. 어째어째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다니던 학교가 어딘지 알게 됐고, 그곳 국어선생님이 내 대학 동기라는 말이 오고 갔다. 그때부터인지 내 정체를 잘은 모르지만, 선생 친구라니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졌다 싶다. 내가 느끼기에 그렇다는 얘기다. 보다 정중해지고 보다 친근하게 대하려는 태도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건네는 말이 좀 더 많아졌다는 것 정도.

오늘은 좀 늦은 저녁 사장 아주머니가 뜬금없이 이런 말을 건네 왔다. 아들이 초등학생인데 휴대폰을 사달라고 보챈단다. 그건 어림없는 소리고, 본인도 휴대폰이 없다고, 사장 아저씨가 사주지도 않는다고, 사장님이 무서운 분이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말이다. 사장 아저씨는 매우 온화한 분이다. 요즘은 잘 보이지 않지만 예전 텔레비전에 자주 보이던 탤런트 이정섭과 외모와 분위기, 말투가 많이 닮았다고 느낀다. 말도 조곤조곤 여성스럽게 하고 손님들에게도 매우 친절히 세심하게 배려한다. 오히려 아주머니 말투가 덤덤하고 건조하게 느껴진다. 아저씨는 작은 키에다가 몸도 삐쩍 말라보여 내외가 외형이 좀 바뀌어야 싶기도 했다. 그 나름대로 잘 어울리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아들이 초등학생이란다. 중학생은 돼 보이는 무게감인데, 초등학생이라면 적어도 5~6학년은 되지 싶다. 요즘 초등학생들도 다들 휴대폰을 가지고 다닌다는데, 아직 없는 것을 보면 이 사장님이 그리 호락호락한 분은 아닐 것으로 짐작되고도 남는다. 항상 다정하고 부드럽지만 본인의 뜻과 어긋나는 점에서는 단호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버지를 무서워 한데나.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착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외모지만 이정섭이 그렇듯이 약간은 좀스러운 데가 있어야 더욱 어울리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좀스럽다고 단정 짓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 아들에게 휴대폰을 사주지 않는 것이 좀스러운 일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말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것이 교육적으로 문제라느니, 잘만 사용하면 해될 것도 없다느니 하는 것을 따질 곳으로 편의점 계산대 앞은 모자란 감이 있다. 그래서 농담 삼아 아드님이 여자 친구가 있으면 휴대폰을 사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건넸다. 여자 친구도 없을 뿐더러, 공부를 잘해야 한단다. 상위 5% 안에 들어야 한다나. 그것도 중학교에나 가서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내가 볼 때 이 아들이 공부를 그리 썩 잘하는 편이 아니구나 짐작됐다. 공부를 잘했으면 지금쯤 휴대폰이나 사달라고 보채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당당히 더 비싼 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공부만 잘하면 중학교 올라가기 전에 휴대폰을 손에 넣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 말에 공부가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러하듯이 공부만 잘하면 뭐든지 해줄 것처럼 하지 않는가. 그런 말은 공부 잘하는 자식들에게는 불필요하다. 아마도 공부를 못하는 애들에게 해당될 것이고, 그런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런 공약은 실행되기 어렵고, 아무리 떠벌려도 그리 해될 것이 없을 것이다.

물건을 사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내 어렸을 적 생각이 이것저것 든다. 시골에 살았던 어렸을 적에 동네에 자전거 붐이 분 적이 있다. 기어가 달린 자전거가 온 동네 아이들에게 최고 인기였다. 모두들 자전거를 타고 마치 요즘의 폭주족들처럼 모여 온 동네를 빵빵대며 달렸다. 나는 그런 붐에 이른 시기에 참여하지 못했다. 우리 집이 그리 잘 사는 형편도 아니고, 그런 것을 호락호락하게 사줄 어른들도 아니었다. 자전거 붐이 가실 때쯤에야 내게도 자전거가 생겼는데, 그 시기가 지나면 아이템 획득의 그 짜릿함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자전거를 타기 위한 균형감 정도를 익혔을 뿐 신나게 동네를 달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전거 붐이 지나고 나서는 비비탄 총의 붐이 이르렀다. 레밍턴이니 스미스니 하는 장난감 총인데, 쏘아대는 비비탄이 여간 위협적인 것이 아니다. 권총에서부터 장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델이 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여러 종의 총들을 들고 총싸움도 하고 편을 짜서 전쟁놀이도 하며 지냈다. 내가 뒤늦게 이 총싸움에 참여한 것은 그간 꼼쳐 두었던 용돈을 털어 몰래 이 비비탄 총을 샀기에 가능했다. 부모님에 걸려서 혼이 났던 기억 또한 또렷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가, 그때는 컴퓨터가 시대의 필수품으로 등장하는 초기여서 이 시골 아이들에게도 컴퓨터를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여겨졌다. 온 동네에 컴퓨터 학원 붐이 일었다. 작은 시골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읍내에서 노란색의 컴퓨터 학원 차가 들락거렸다. 아이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방과 후면 학교 앞에서 노란색의 컴퓨터 학원 가방을 들고 노란색의 차를 타고 읍내로 떠났다. 이번에 또한 나는 그 대열의 초기에 합류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못했다가 아니고 안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좀 반대였다. 부모님들은 내게 이 대열에 합류할 것을 권유했지만, 나는 별로 내키지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컴퓨터는 싫고 피아노를 배우고 싶으니 피아노 학원에나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는 거절됐다. 사내놈이 무슨 계집애들처럼 피아노를 배우느냐는 것이다. 두세 달이 지나고나니 학교를 파하면 나는 같이 놀 친구들이 없었다. 여간 심심해지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컴퓨터학원엘 다니겠다고 했다. 비록 세 달 만에 종을 쳤지만 말이다.

피아노는 급기야 고2때 여름방학 보충수업비를 빼돌려 피아노학원엘 2달간 다닌 것으로 그때의 한을 풀었다. 약간의 좌절과 함께였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내가 왜 이렇게 예전 일들이 기억났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더 생각나는 것은 국민학교 시절 같은 반 여자아이의 생일날이다. 동네의 다른 아이들은 거의 다 초대를 받았는데, 나를 빼놓은 것이 여간 괘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히 나를 빼놓다니. 소외감과 시기감을 절실히 받았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이런 소외감이나 열등감은 곳곳에서 발생한다. 자전거나 비비탄 총 붐이 일었을 때 아이들의 그 대열에 내가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아이가 집안의 경제사정을 돌아본다는 것은 그리 탐탁찮은 일이다. 이것은 부작용이 강한데, 자기 집은 못살기 때문에 이런 것을 가질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은 좀 잘못된 쪽으로 가기 십상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아이들 장난감 같은 것을 사주는 데에 그 집안의 경제사정이 전혀 못 미치는 것만은 아닌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 집도 그러했다고 생각된다. 사 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교육적 문제까지를 우리 부모님들이 고려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걸 가지고 노는데, 그걸 사준 대부분의 부모들은 교육적 고려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소외감과 열등감을 심어주는 것은 이런 소소한 데서 생긴다. 못 사줄 이유가 무엇이냐 이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가 이런 소소한 것에도 빼놓지않고 조건을 건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 조건은 십중팔구 공부와 관련된다. 공부만능주의, 공부지상주의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몇 등을 하면 사주겠다, 몇 점을 맞으면 사주겠다식 말이다. 그런데 이건 그리 교육적이 못된다. 적절한 거래는 부모 자식 간에 나름 유효한데, 그게 공부에만 집중되는 것은 적절한 것이 못된다는 얘기다. 나는 부모님께 이런 공부거래를 제의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공부를 그리 잘하는 편도 못하는 편도 아니어서 대강 중간적도의 순위권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한 번도 공부해라, 몇 등하면 사주겠다는 식의 제의를 거의 받은 기억이 없다. 간혹 이런 무심함에 원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에는 이게 참 감사한 일이지 싶다. 지금 내가 공부에 그다지 치를 떨지 않는 것은 모두 이 때문이라고 감사한다.

쓸데없는 말들이 많았는데, 집에 들어와서 다시 편의점 집 아들을 생각해보니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굳이 이 아들에게 휴대폰을 사주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다닌대서야 이런데서 오는 소외감을 아이가 맛보는 것은 그리 유익한 것이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공부 잘하면 사준다도 좀 탐탁찮은 구석이 있다. 조금 달리 거래를 해보아도 좋지 않겠는가? 이를테면 편의점에서 적당히 심부름이나 일을 시키고 그에 따른 보수를 모아서 네가 가지고 싶은 휴대폰을 사라는 제안이나, 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도 좋지 싶다. 공부가 다가 아닌 것을 이 부모들은 잘 알면서 아이들에게 공부가 다일 것처럼 가르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능력이 안 돼서 아무리 해도 상위 5%에 달하지 못해, 그때까지 휴대폰 하나 없이 소외감으로 지내는 것은 부모에게도 그 자식에게도 그리 달가운 일이 못 될 것이다. 우리 동네 편의점 집 아들에게 그 부모가 휴대폰을 사주는 것은 별다른 계약 없이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굳이 거래를 하자면 공부가 아닌 다른 어떤 창조적 방법이면 좋겠다. 나는 그 아이가 휴대폰을 가질 수 있는, 공부가 아닌 다른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방법이라면 내가 돈을 내서라도 사주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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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7-11-11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위화감 조성의 최고는 '가정조사'(용어 맞나)였지요... 집안 물건까지 조사해 가는건 도대체 뭔 짓인지... 우리집은 당당하게 피아노가 있었음 ㅡ..ㅡ; 전화기는 초등학교 2학년떄 쯤 들여놨던 것 같고..
요즘은 집 평수로 아이들이 갈린다면서요? 88만원 세대에도 잠깐 이런류의 얘기가 나왔던것 같은뎅...

멜기세덱 2007-11-12 01:04   좋아요 0 | URL
요새 아파트 광고 보면서 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한 남자아이가 같은반 여자친구한테 자기네집 가서 놀자는데, 이 여자애가 집에 뭐있냐, 집이 어디냐 뭐 이런 걸 묻는 광고 있잖아요....

마늘빵 2007-11-1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핸드폰이 애들 망치는거 같긴 해요. 현장에서보니. 핸드폰 없이는 단 1시간도 못버팁니다. -_- 점점 스스로가 중독이 되어가는거에요. 문자질 안하면 불안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게임하고 싶고, 엠피쓰리 듣고 싶고, 사진도 찍고 싶고, 티비도 보고. 애들 동영상도 찍고 싶고. -_- 만능 장난감이더라고요. 나 어릴 땐 레고, 코코블록 이런거 가지고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 논거 같은데 요즘은 이런건 유치원 애들이나 가지고 놀겠죠. 아닌가. 유치원 애들도 안가지고 노려나... -_-

무스탕 2007-11-11 12:10   좋아요 0 | URL
애들마다 틀리다고할수 있어요. 우리애들은 올해 초까지 하도 레고블럭(그것도 손가락만큼 작은거 말고 주먹만큼 큰거 있죠?)을 갖고 놀아서 제가 애들 몰래 버렸어요... --;;
그거 통에서 방바닥에 와르르~~ 쏟는 소리가 얼마나 정신 번쩍 깨우는지.. -_-;

웽스북스 2007-11-11 16:46   좋아요 0 | URL
핸드폰이 애들 망친다! 에 완전 공감 500% 에요, 교회에서도 보면 애들이 저한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선생님, 핸드폰좀 줘봐요' 였거든요- 게임하고, 문자보고, 사진보고, 이러는 게 재밌나봐요, 애들 때문에 잠금 해놨어요;;

마늘빵 2007-11-12 00:04   좋아요 0 | URL
으 무스탕님 저도 어릴 때 어머니가 몰래 누구 줘버려서 얼마나 서운했는데... -_ㅠ 좋아하는 몇몇 캐릭터라도 가지고 싶었는데...

멜기세덱 2007-11-12 01:07   좋아요 0 | URL
휴대폰이 애들 망칠수도 있고 어른도 망칠수도 있고 그렇겠죠.ㅎㅎ 그거야 부모들이 적절히 조치해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망칠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문제는 휴대폰이 애들 망친다는 신조가 있다면 안주사면 되는데, 그런 신조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라는 거죠..ㅎㅎㅎ

무스탕 2007-11-11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큰 애가 6학년인데 전 아직 핸드폰 안사줬습니다. 사달라고 조르지요. 친구들도 많이 갖고 다닌다고요. 그러면 중학교 가면 사준다고 미룹니다. 일단 초등학교엔 콜랙트콜 전화가 있어서 잔돈이나 카드가 없어도 엄마랑 언제든지 통화가 가능하고 친구들의 대부분이 갖고 있다면 생각을 바꿨을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절반정도인것 같더라구요. 큰 애를 사주면 작은애(2학년이에요)도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고 합니다. 일단 다른 조건 없이 제가 정한 기준은 중학생입니다.
시험때가 되면 일단 조건은 붙입니다. 몇 점 이상되면 원하는 뭔가를 사주겠다고요. 물론 평소에도 사줍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종의 보상품(?)을 걸어놓으면 목표의식이 뚜렷해 진달까요? 점수를 받아와서 상품을 획득했을땐 더욱 좋아하더라구요. 아직은 어리다고 생각해서 채찍은 많이 사용하지 않고 당근을 주로 사용하는데 좋은 결과일때가 더 많습니다 ^^

개인적으로 피아노 치는 남자를 멋져라~♡.♡ 하는데 멜기님 고2때의 슬쩍 외도가 호감도 84% 급상승 시켰습니다 ^^*

멜기세덱 2007-11-12 01:11   좋아요 0 | URL
아이들을 키우시는 노련미가 물씬 풍기네요.ㅎㅎㅎ

근데요, 지금 피아노는 못친답니다. 그때 2달을 하면서 바이엘 하까지하고 16주 반주완성하다가 말았거든요. 개학하고 나서 다닐 시간도 돈도 없어서....그런 이유도 있지만, 같은 학원에 다니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베토벤을 막힘없이 치는 것을 보고 좌절을 맛봐서리....

좀더 시간과 여유가 생기면 그때 확실히 배워보자는 생각입니다. 호감도가 좀 떨어지겠군요...ㅋㅋㅋ 근데 지금까지 제 호감도가 별로 안 좋았었나 봐요....ㅠㅠ;;

무스탕 2007-11-12 08:48   좋아요 0 | URL
엄머나~ 멜기님. 무슨 말씀!!
기존의 호감도도 상한선에 달락말락 했었는데 이번 뻬빠로 인해 천정을 뚫고 튕겨져 나갔다니까요?
어떻게 끌어내릴지 걱정입니다. ㅎㅎㅎ

웽스북스 2007-11-1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대 때 빼먹음 당한 적이 있었어요- 별로 친한 애도 아니었는데, 괜히 혼자(는 아니었겠지만,) 초대 못받으니까 섭섭하더라고요- 그래서 전 뻔뻔하게 갔었어요- 그야말로 초대받지 못한 손님- 가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숨바꼭질 하고 잘 놀다 왔어요- 쓰고나니 싸이코같다 하하하 -_- 근데 다른 생일파티들 기억은 잘 안나는데 이 생일파티 기억은 생생한 걸 보니 나름 그때의 상처가 각인이 돼있나봐요- 아! 근데 나는 그때 무슨 생각으로 거길 갔던 걸까 ;; ㅋㅋ 하튼 생일초대 이런 거 은근 민감해요- 저는 생일초대는 미안해서 친한 애들만 몰래몰래 했었고,(이게 더 나쁜가?) 크리스마스 카드같은 건 반 친구들 전체한테 쓰고 그랬었어요 거의 연례 행사로 막 한달 전부터 준비하고 막 ㅋㅋ 때로는 받은 애들도 황당해했었어요- 우리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받을 정도로 친했던가? 생각했을 거에요 ㅋㅋ 그래도 누군 주고 누군 안주고 이런 건 역시나 마음이 어려워요

멜기세덱 2007-11-12 01:13   좋아요 0 | URL
우리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받을 정도로 친한 걸까요? 안 친해도 그런거 받으면 기분은 좋던데....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ㅎㅎㅎ
예전에 크리스마스 카드 보내기를 권장하는 페이퍼를 쓴 적이 있는데....ㅎㅎㅎ 사실 받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ㅎㅎㅎ

웽스북스 2007-11-13 00:21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올해는 지난번에 혜경님께서 소개해주신 유니세프카드를 몇장 사서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사각사각 써줄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 점점 아날로그적인 것들이 좋아져요 ^^

2007-11-11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11-12 01:14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저는 애들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를 절대 하지 않으려고요.ㅎㅎㅎ

그냥 줄줄줄 써내려가다보니, 타자가 정확지 못했네요.ㅎㅎ 사실 평소 오타가 굉장하답니다.ㅎㅎㅎ(수정 완료)

Koni 2007-11-1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생들 가운데 휴대폰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정말 많이 갖고 있지는 않던걸요. 있으면 자랑거리가 되지만 없다고 소외감을 느낄 정도일까요? 아, 물론 어떤 동네에 사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멜기세덱 2007-11-12 01:15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휴대폰이 위화감을 일으킬수도 있겠네요. 아이들이 꽤 있던데요...

프레이야 2007-11-12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등 하면 50만원 정도 하는 애완견 사줄게, 이러는 엄마도 있어요.
여긴 휴대전화를 아이들이 거의 갖고 있어요. 우리집 작은딸도 3학년인데 언니
쓰던 거 물려받아 쓰고 있구요. 정말 제가 볼 땐 불필요한데 워낙 아이들이 거의
갖고 있다보니 자꾸만 그런 것들에 매달리는 것 같아요. 며칠 전부턴 닌텐도 사달라고
은근/강압 조르고 있어 골치에요. 고가의 게임기로 알고 있는데 말이에요.
아직은 제가 꿋꿋이 버티고 있는데 자꾸 저러면 흐흑.. 이 녀석(아니 딸이지만)
정말 맘에 안 들어욧!! 우리 자랄 땐 어땠구, 이런 소리 늘어놓으면 완전 구닥다리 취급
당하겠지만 갈수록 문제다 싶어요.

멜기세덱 2007-11-12 13:13   좋아요 0 | URL
닌텐도 그게 게임기만은 아니더라고요....후배녀석들꺼 뺏어서 해보니깐....머리회전엔 좋겠더라구요....두뇌나이가 너무 높게나오는게 탈이지만...ㅋㅋㅋ

프레이야 2007-11-12 13:33   좋아요 0 | URL
그게 그런거에요? 엄마의 마음이란 참.. 흐흑..

2007-11-12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12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전국적으로 각 시도교육청은 2008학년도 중등 임용시험 공고를 했다. 시험일까지 딱 한달하고 하루를 남겨두고 말이다. 대부분의 응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자기 과목이 어디서 몇 명을 뽑느냐에 일희일비하기 마련이다. 선발 인원에 따라 어디에서 응시할지를 결정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하여간 그간 공부를 해오면서도 올해는 몇 명이나 뽑을지 걱정은 태산이다. 좀 일찌감치 발표를 해주면 안되나?

두 주 전 초등 임용시험 공고가 두 번 있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다. 선발인원이 증원되어 공고를 다시 한 모양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번 중등 임용시험 공고도 시험 1달을 앞두고 발표된데에 좀 불만이 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발인원을 결정하는 부분에 있는 것인데, 이게 그렇게 시간을 촉박히 남겨두고 결정되는 문제냐 하는 것이다.

시험 한 달 밖에 안 남겨두고서야 당해 선발인원이 결정된다는 건 얼핏 이해하기 힘들다. 말하자면 그 해 몇명이나 뽑아야할지 2달 전까지도 모른다는 얘기 아닌가? 이건 어찌보면 우리나라 교원수급 정책이 완전 주먹구구식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교육은 대계라고 하는 말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교육정책이 이렇게 조잡하게 이뤄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교육정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교원수급에 관한 문제이고, 이 교원수급 계획이 몇 십년은 아니더라도 1~2년은 앞을 내다보고 수립되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당장 한달 후에 몇명을 뽑을지가 결정된다는 것은 내부사정이 어떻든간에 욕먹을 만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급기야 초등 교사 선발인원이 이렇게 하루사이에 변경된 것은 이런 조잡한 교육정책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비교사들은 그 숫자 하나하나에 목을 매달고 있는 실정에서 보다 일찌감치 그 숫자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무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렇지 않고 질질 끄는 이유를 나는 참 이해하기 힘들다.

교원 선발 인원이 한달전에나 가야 결정되어서 그렇다고 할 것이라면 욕을 한바가지 해주어야 할테고, 그것이 아니고 괜히 일찍 발표하면 짱돌들고 시워할까봐서 질질끌다가 이도저도 못할때 공고하는 것이라면, 이런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기도 하다. 아무튼 미운놈이 하는 짓은 뭘해도 밉다.

이번 시험은 어느 시험보다도 이번 응시자들에게 중요한 시험이다. 왜냐하면 내년부터는 선발 방식이 변경되기 때문이다. 2차 선발방식에서 3차 선발방식으로 변경되고 전공 및 교육학에 관한 문제도 더 확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공포된 새로운 교육과정을 새로이 공부해야 한다는 어려움도 더한다. 말 그대로 더 빡세지기 때문에 이번 시험에 사력을 다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번 시험에서는 지난 해까지 와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응시자들의 제출 서류 중 '대학 학적부'라는 것이 추가된 것이다. 지난 해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학적부라는 게 중고등학교때의 생활기록부 같은 것이라는데, 이걸 왜 내라고 할까 곰곰 생각해보니, 아마도 우리 정아 누님 때문이지 싶다.

신정아가 학력을 속이느니, 권력의 실세가 개입했느니 떠들지만, 이건 죄다 남의 얘긴줄만 알았다. 그게 이렇게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여기서 몇가지 드는 생각은 세상 모든 일이 나와 상관없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고, 이것도 일종의 나비효과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등이다. 정아 누님 덕에 전국 몇 만의 예비교사들이 대학 학적부를 떼게 생겼으니 하는 소리다. 금전적으로도 500원씩 더 손해본다. 이 덕에 대학들은 수입이 좀 늘게 생겼다. 정아 누님 여러모로 사람 피곤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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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1-01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교육자체뿐만이 아니라 정책과 행정에도 문제점이 많은 우리나라 교육현실이군요.
신정아씨는 아직도 자신이 예일대 출신이라고 우길지 그건 굼긍하더군요. 재판 초기만하더라도 모든 사실은 날조되었고 자신은 분명히 예일대에서 학위를 받았다고 했었더랫죠.^^

이매지 2007-11-01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도서관 앞에서 만난 친구는 이제 삼십 며칠 남았다고 좌절하던데;
아무쪼록 멜기님은 좋은 성적으로 합격! 하시길 바랄께요 :)
 

요즘, 이상스레 "도를 아십니까?"식 접근을 받는다. 근 몇 해만의 일인지 모르겠다. 얼추 5년은 넘은 것 같다.

어느 날이었던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엘 갔더랬는데, 어느 이쁘장한 아가씨가 내게 오더니, 시간 있으시냐, 얘기 좀 할 수 있겠느냐, 하면서 접근을 해 왔다. 이땅의 순진건전한 당당한 청년으로서 어찌 그 제안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덜커덩, "도를 아십니까?"가 나온다. 아차 싶었고, 참한 그 아가씨가 안타까웠고, 못내 아쉬웠다. 그 '도'만 아니었어도 열심히 들어줬을텐데. 그런데 그 이전의 몇 번의 이런 공격에도 끄떡 없던 내가, 이때만은 '이참에 도를 한 번 알아볼까'하는 흔들림을 강하게 받았더랬다.

"도를 아십니까?"와 쌍벽을 이루는 것은 또한 "예수 믿으세요."다. 명색이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고 있는 나로서는 오히려 "도를 아십니까?"보다 이 물음이 더욱 곤혹스럽다. 그들이 왜 나를 알아보지 못할까? 한때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 냄새가 나게 되어있다"고. 나한테는 그게 안난다는 걸까? 그네들이 못 알아보는 것을 수도 있는 것이라며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여간 찝찝하지 않은게 아니다. 하긴, 어떤 우락부락하게 생긴 목사님도 매번 이 예수 믿으라는 소리를 단골로다가 듣다더란다.

내 기억으로는 꽤 오랫동안 이 "도를 아십니까?"나 "예수 믿으세요."를 못 들었던 것 같다. 특히, 길을 지나면서 기독교 전도자들을 몇 번 지나친 것도 같은데, 그들은 별 말 없이 그냥 지나쳐가 버렸다. 혹시 이젠느 날 알아보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아무리 얘기해도 나한테선 별 믿을만한 구석을 찾기 어려워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이런 귀찮은 부류들의 접근을 받지 않아서 편했더랬다.

그런데, 요 근래 몇 차례 "도를 아십니까?"식 공격을 받았다. "얼굴에 복이 많으시네요."라나. 몇 주 전 부평의 한 서점에 들렀다가 비가 오는 바람에, 비를 피해 건물 한쪽에 서 있더랬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확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나한테 복소리를 한다. 이럴 땐, 그저 외면하고 피해버리는 것이 상책이라는 걸 난 잘 알고있다. 문제는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비를 맞으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엊그제던가? 밤에 주안역 근처를 지나가는데, 어떤 아줌마, 아저씨 커플에 다가오더니, 또 그런다. "복이 많다"고. "아줌마 저 복 없어요." "아니에요 복 많으세요."하면서 계속 따라붙는다. 나는 아무 대꾸없이 20여미터를 걸어갔다. 얼마간 따라붙던 그 아줌마의 소리가 잠잠해 졌다. 역시나 말을 섞으면 문제다. 간단히 외면하고 지나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저 복 없어요."라고 말했을까 못내 후회스럽다. 이왕이면 "저 복 많은 거 저도 잘 압니다."할걸. 더욱이 요 근래의 이 두 차례 공습을 받고 드는 생각은, 조금 이상한 곳으로 흐른다. 왜 하필 나일까? 아무래도 그들이 무턱대고 공격하는 것은 아닐거란 생각이 든다. 뭔가 넘어올 만한 껀덕지가 보이니까 접근해 오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내 얼굴에서, 내 모습에서, 그들에게 뭔가의 기회를 엿보게 해주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은 아닐까?

이런 몇 차례의 공격을 받고 나는 나를 좀 생각해 보아야겠다고 싶었다. 그 사람의 마음은 얼굴에 비친다고들 하지 않던가? 뭔가 근심, 걱정, 불안, 초조 등등이 있으니, 뭔가 낚일 것만 같은 느낌을 그들에게 주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종류의 걱정거리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무념이라고 해야할까? 내가 과연 고독한지 아닌지조차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나는 행복한 지금은 아니다. 결국 나의 정체를 전혀 파악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어쩌면 이 정체의 혼돈이 내 모습에서 보여졌던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그들이 나에게 그 어떤 "도를 아십니까?"식 정체성을 이식해 놓으려던 것은 아닐까?

날씨가 갑작스레 싸늘해 진 이 가을에, 아무렴 나는 더이상의 이런 공격을 방문당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이 무언가의 공허같은 느낌을 쉬이 지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방법은 싸돌아 다니지 않는 것이겠다. 아직 '파수꾼'들의 방문을 받지는 않고 있다. 조만간 방안에 쳐박혀 있는 나의 못난 심사가 그들의 눈에 포착되어, 그들의 방문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이 "높고 외롭고 쓸쓸한" 이 가을의 심사는 여러모로 날 귀찮게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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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7-10-08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재밌네요. ㅎㅎㅎ

멜기세덱 2007-10-08 17:35   좋아요 0 | URL
이게, 재밌는 일만은 아니에요..ㅎㅎ 사람 좀 괴롭게 하기도 해요...ㅋㅋ

비로그인 2007-10-08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찔립니다 ㅠㅠ

멜기세덱 2007-10-08 17:35   좋아요 0 | URL
아니, 왜 찌리실까요? 혹시 道걸이셨어요?

무스탕 2007-10-0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녁 너무너무 힘든 상태로 동네에서 걷고 있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실례합니다' 하길래 길을 물으시려나하고 잠시 멈칫했더니 '얼굴이 참 공덕이 있게 생기셨어요' 이러는거에요.
그래서 순간 A~~C 하고 그냥 와버렸죠 -_-;;
근데 정말 이런 마주침이 잊을만 하면 반복되다보니 정말 내 관상이 후졌나 싶다니까요..

라주미힌 2007-10-08 16:57   좋아요 0 | URL
복 있다는 말은 그나마 기분이라도 좋죠...
저는 뭐가 끼었데요... 그래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나 ㅡ..ㅡ;

멜기세덱 2007-10-08 17:36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마늘빵 2007-10-08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와 '예수'로부터 가끔씩 찜당하곤 한답니다. 20대초반엔 자주 그랬는데 요샌 뜸하더라고요.

멜기세덱 2007-10-08 18:53   좋아요 0 | URL
그건 아프님께 그들이 넘볼 수 없는 그 어떤 포스가 느껴져서 그런 것일지도 몰라요. 혹시 요새 행복한 일이라도....? ㅋㅋ

마노아 2007-10-08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며칠 전 편의점에서 책 찾는데 알바생이 "혹시 교회 다니세요?"하고 물었더랍니다. 아니, 어떻게 알았지? 궁금했는데 안 말해주더군요..;;;

멜기세덱 2007-10-09 17:57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의 앳된 미소 가운데, 행복을 머금고 있어서 그런가.....ㅋㅋ

비로그인 2007-10-08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저도 道걸 만났었어요 ㅋㅋ 따끔하게 정신차리라고 일갈했는데 정신 차렸을레나..

멜기세덱 2007-10-09 17:57   좋아요 0 | URL
道걸이 은근히 이쁘면 어케하죠?

2007-10-08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10-08 21:02   좋아요 0 | URL
헉...
울뻔 했어요...ㅎㅎㅎ

잃어버린우산 2007-10-08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 많이당하는일이라 공감가서요 하핫.

멜기세덱 2007-10-09 17:57   좋아요 0 | URL
이거 많이 당하면 성질나죠...ㅋㅋ

순오기 2007-10-08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독주택에 사노라면 봄에 무차별 공격을 당합니다. '도'가 아닌 '파수대'를 들고 다니는 분들한데... 참,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난감...

멜기세덱 2007-10-09 17:58   좋아요 0 | URL
그 사람들이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니깐요...ㅎㅎㅎ
근데, 집에 있으면, 이날은 꼭 제대로 질펀하게 자는 날인뎅...꼭 그때 와서 신경르 돋구죠...ㅋㅋ

심술 2007-10-08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님/전 94년 9월부터 뉴질랜드 교민인데 99년에 교민 된 뒤 첨으로 한국 갔다가 "복스럽게 생기셨다"는 칭찬에 우쭐해서 대순진리회까지 '자발적으로' 끌려가서 4시간과 3만원을 버렸습니다. 나중에 한국 친척들한테 얘기했더니 모두들 웃어제끼면서 "한국엔 요새 그런 사람들 많으니 조심하라."고 그러시더군요. 그게 벌써 8년 전 얘기네. 시간 빠르다.

순오기님/딱 봐서 여호와 증인인 거 같으면, 깔끔한 옷차림과 분위기 때문에 쉬 알 수 있죠,틈주지 말고 "여호와 증인이세요?"라고 물으세요. 그럼 십중팔구 "네."라고 대답합니다. 여호와 증인들은 거짓말 안 하니까요. 나머지 십중일이는 아무 대답 안 하고 멈칫하며 잘못하다 들킨 애들이 짓는 표정을 할 겁니다. 다음 짜증과 염증, 분노를 잔뜩 섞은 목소리와 얼굴표정으로 "아이 씨 오지 말랬는데 왜 또 오고 지랄이야? 니들 글자 읽을 줄 몰라? 자 우리집 주소 모모구 모모동 어쩌구저쩌구야. 똑바로 들어. 한 번만 더 오면 그 땐 (경찰 부른다/대야로 물 퍼붓는다 가운데 맘에 드는 걸로 고르세요) 그리고 니들 모임 가서 말해. 그 집 절대 가지 말라고. 알았지? 아! 왜 대답이 없어? 귀머거리냐? 알았어? 몰랐어?" 라고 말씀하신 뒤 문 부서져라 있는 힘껏 꽝 소리 내게 닫아버리세요. 네, 심한 거 저도 인정합니다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떨어지더라구요.

멜기세덱 2007-10-09 17:59   좋아요 0 | URL
크아~~~ 무섭당....ㅋㅋ

웽스북스 2007-10-08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종종 잡히는 편인데, 한번은 단순한 호기심에 정말 궁금해서 같이 앉아서 그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나름 거기도 재밌는 세계더라고요 ^^ 자꾸만 제 속에 할머니귀신과 아기 귀신이 있다면서 해원식 하러 가자고 ;; ㅋㅋ 시간이 좀 지나고 한국종교 수업을 들으면서 그사람들이 증산교였다는 걸 알았죠-

멜기세덱 2007-10-09 17:59   좋아요 0 | URL
주류 교회에서 이단시 하는 것들에 대해 우리가 너무 편견을 가지고 있기도 한 것 같아요. 알고 보면 괜찮은 점들도 있을텐데....

Mephistopheles 2007-10-09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건 도를 믿어라 예수 믿어라가 아닙니다.
헌혈하세요 하면 팔을 잡아끄는 아주머니들이 제일 무섭습니다.

멜기세덱 2007-10-09 18:00   좋아요 0 | URL
피는 좀 나눠야겠습죠...

2007-10-09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10-09 18:0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애초에 말을 섞지 않는게 편한데...
"됐습니다."하고 문 닫아버려면 그냥 가더라구요...